103화
“한 번에 2억 살짝 안 되는 정도 까지 넣을 수 있는 건가……
기이이잉!
철컥!
나폴레옹을 대기 모드로 전환하자 나폴레옹이 한쪽 무릎을 땅에 댄 채 멈춰 선다. 그리고 그제야 조종석이 명예의 좌로 변한다.
고오오--!
소모된 체력과 영력이 급속도로 차 오른다. 누가 국자로 마구 휘젓는 것 같던 머릿속도 고요히 가라앉아 최상의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당신은 챌린저(Challenger) 랭크 입니다.
-힘의 소모로 마스터 (Master)로 하 락합니다!
그랜드 마스터에서 간당간당하던 랭크가 마침내 마스터까지 떨어졌다. 힘의 총량이 랭크마다 크게 차이난
다는 걸 생각하면 가면 갈수록 랭크 다운 속도는 빨라만 질 것이다.
“나폴레옹의 아이언 하트를 회복시 킬 수 있으면 마스터가 아니라 언랭 크가 되어도 좋을 텐데.”
아무런 소모 없이 무한한 영자력을 생산하기에 무한 동력이라고까지 불 리는 아이언 하트라 하더라도 시간 당 생산량에는 당연히 제한이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저장된 영자 력은 완전히 소진되었다. 생산은 계 속되고 있지만 폭격을 유지할 정도 까지 회복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 요하리라.
“드래곤 하트는 아직 쌩쌩하지만
활용이 어렵고.”
꽤 많은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드 래곤 하트의 마력을 자유자재로 쓸 수가 없다. [조각]의 진행도는 아직 도 25%. 그나마 진행도도 칭호를 봐서 아는 것이지 전체적인 구조나 원리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함장님,배치가 완료되었습니다.]
“딱 타이밍 맞네. 이쪽 몸은 재워 둔다.”
[상태가 엉망이군요. 소독과 환복 을 진행해 두겠습니다.]
지니의 대답을 듣고 의식을 고유세 계로 넘긴다. 도착한 곳은 광활하게
까지 보이는 규모의 건축물 안으로, 원래는 에덴의 부품을 제작하던 공 장이었는데 한동안 놀려두다 긴급 병원으로 쓰고 있는 장소다.
사방에 가득히 들어찬 병상과 환자 들. 그리고 코끝이 아릴 정도의 피 냄새.
나는 팔에 차고 있던 쉐도우 스토 커를 권총 형태로 전환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응급실에서 기본적인 처치 를 완료한 환자들이 자동으로 음직 이는 침상에 실려 방 안으로 들어온 다.
응급처치를 했다지만 말 그대로 응 급처치일 뿐이다. 그들 한 명 한 명
이 대수술을 받아야 하는 중환자들 이었기에 이대로 방치하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
난 그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마구 발사했다. 어차피 죽을 사람 이라고 총살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탄환에 맞은 사람들은 죽는 대신 정 지된 시간 속에서 멈춰 버렸으니까.
나는 그렇게 가장 심각한 환자 1,500명가량의 시간을 정지시켰다.
“탄환 끝! 나머지는 내일!”
[조치하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마무리되지 않은 중
환자를 실은 침상들이 다시 아래층 으로 돌아간다. 나는 그것들을 따라 이동했다.
“23팀 작업 완료했습니다! 다음은 어디죠?”
“2층 중상자들 부탁드립니다! 설비 가 부족하니 응급처치만 해 주세요!”
“네!”
우렁찬 소리와 함께 분주하게 뛰어 다니는 사람들이 보인다. 거대한 건 축물 안,간격을 맞춰 바둑판처럼 배 치된 침상 위에 누운 환자들에게 접 근한 의료인들이 가능한 선에서 치 료하고, 불가능하다면 응급치료라도 하고 있다.
위이잉!
철컹! 위잉!
지니의 제어를 받는 침상들이 자동 으로 움직여 환자를 분류한다. 당장 목숨이 위험한 환자는 1층의 응급 실,당장 죽을 정도는 아니어도 놔 두면 상태가 악화되는 환자는 2층의 중환자실로 이송하는 것.
큰 부상은 없지만 기력이 다한 환 자들은 별도로 옆 건물로 이송해 각 자의 방에 눕힌다. 개중 환자가 아 님에도 고유세계로 진입한 이들,그 러니까 저레벨 유저들은 모조리 지 원 인력이 되어 다른 환자들을 돕거 나 의료진을 보조하고 있다.
‘어디 보자,처음 고유세계로 들어 왔던 인원이 9만 명이던가.’
그 후에 추가된 인원도 그보다 조 금 더 많은 정도에 불과했다. 그다 음도 마찬가지.
그러나 사실 내가 고유세계에 진입 시킬 수 있었던 인원은 고작 그 정 도가 아니었다. 작정하면 수십만,어 쩌면 백만 명까지도 들여올 수 있었 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왜 그러지 않았던가?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그저 고유세계 안으로 들여오기만 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고유세계는 오 직 사철로 이루어진,생명체가 살아 남기에 적합하지 않은 장소이기 때 문이다.
때문에 나는 이민자들의 숫자를 제 한하고 남는 진입 용량을 모조리 물 을 끌어오는 데 쓰고 있었다. 자판 기에서 철도,나무도,돌과 흙도 구 할 수 있지만 물만은 도저히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고유세계에 2억의 추 가 인원이 입장했다. 심지어 그 대 부분이 중상자!
고유세계 전체가 뒤집어지는 게 오 히려 당연하다. 모든 복지와 의료서
비스를 완벽하게 수행해 오던 센터 시티의 무인 병원으로는 도저히 감 당이 불가능한 상황인지라 고유세계 의 거주자 태반이 치료에 동원되었 다.
“봉합 완료! 여기 고정기 없어요? 고정기?”
“고정기는 무슨! 저기 부목 쌓였으 니까 붕대로 감아!”
“아니,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부목 에 붕대……
“으!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교대 불 가능한가요?”
“지금 환자가 몇인데! 약이라도 맞
으면서 버텨!”
“죽지만 않게 해! 막 다 치료할 생 각 말고 현상 유지를 우선으로 하란 말이야!”
의료진들이 제각각 필요한 사항을 외치며 빠르게 환자들을 치료하고, 임시 숙소로 이송하고,치료하고 건 물로 이송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리고 그렇게 환자들이 분류되면.
“130번 [냉동고] 클리어! 마지막 점검 부탁드립니다!”
“인원 관리 확실하게 해! 남아 있 는 사람이 있으면 안 돼!”
건물 입구에 서서 실려 온 환자들
의 상태를 체크하던 마법사가 건물 을 나오며 팔에 차고 있는 디바이스 를 조작한다.
푸쉬픽-!
거대한 건물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 가 들린다.
[130번 냉동고 폐쇄 완료. 아이스 에이지(Ice Age). 가동합니다.]
단번에 만 명의 인간이 동결된다. 간단한 수술과 치료로 안정화하는 데 성공했지만,그렇다 하더라도 움 직여 제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애매 한 상태의 사람들.
“냉동 인간이라……
“정말 엄청난 규모로군요.”
“그래 봐야 아직 130만 명입니다. 남은 사람은 언제 다 할 수 있을 지……
그들을 얼린 것은 다른 이유가 아 니다,
자원의 부족.
정확히는 물이 부족하다. 고작 수 십만 명이 거주하던 고유세계는 억 단위의 인간이 머물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지. 이렇게라도 [보관]하지 않으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갈사(渴死. 목말라 죽음) 하고 말 것이다.
“자자! 계속합시다! 아직 많이 남 았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일입니다! 힘냅시 다!”
서로를 격려하며 다시 움직이는 사 람들. 나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 다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왔다.
“나 참.”
문득 탄식이 홀러나온다.
“고유세계가 이렇게 커졌는데도 품 을 수 있는 인간은 한 줌이 안 되네.”
[그야 네 속성이 강철과 뇌전이니 까. 여기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 던 건 결국 철이 많아서인데,너무
우는소리 하는 거 아니냐?]
“아레스.”
내 눈앞으로 회색 머리칼의 근육질 사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제법 오랜 만에 보는 녀석의 아바타다.
“하긴,뭐 틀린 말은 아니지. 이만 한 도시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이 게 사철의 혹성이라 가능했던 일이 니.”
고유세계가 SS랭크가 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엄청난 변화가 있 었다. 24시간에 한 번씩 들일 수 있 는 인간의 수가 2억에 가깝게 늘었 고 사철의 혹성 역시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센터 시티를 비롯해 사철의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도시들이 혼란에 빠지는 것 역시 당 연한 일.
그리고 최종적으로 커진 혹성의 크 기는.
[직경 4,000킬로미터입니다.]
“달보다도 크다니.”
달이 직경 3,474킬로미터라는 걸 생각해 보면 실로 무지막지한 크기 다. 대륙급을 넘어 위성급에 도달했 다는 말이 아닌가?
[그리고 변한 게 또 있지.]
“또 있다고? 뭐가?”
[•••그나저나.]
아레스가 나를 보고 눈을 가늘게 뜬다. 뭔가 띠낍다는 표정이다.
[요새 나만 놔두고 재미있게 놀더 라?]
“놀다니. 대규모 전투가 어떻게 놀 이야?”
[너 내가 누군지 모르냐?]
“아.”
아레스의 말에 뭐라 반박하지 못한 다. 그러고 보니 아레스는 전쟁 신 의 위상을 가진 존재가 아닌가? 아 수라장이나 다름없는 최상급 난이도 를 보면 속이 타는 것도 당연하리
라.
[뭐,됐어. 고유세계가 성장하면서 방법이 생겼으니까.]
“그러니까 그게 뭔데?”
[금방 알게 될 거다. 이미 입문은 넘어섰거든. 흐흐… 그래 결국 이리 될 운명이었던 거지. 설마 스테이지 라는 거에서 전쟁을 벌이게 될 줄이 야.]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헤벌쭉 웃는 녀석의 모습에 몇 번 더 재촉해 보 았지만 결국 알려주지 않는다.
뭐 어쨌든.
정신없이 시간이 지났다.
다시 하루가 지나고 스테이지에서 2억 명을 데려왔다. 이번에는 환자 가 반도 채 되지 않았고 아직 몸 상태들도 괜찮았기에 하루 정도 부 려먹은 다음 자기들 발로 [냉동고] 에 들어가도록 처리했다.
냉동을 거부하는 인원이 있었지만 싫다는 녀석들을 다시 스테이지로 내보내 준다 하니 곱게 말을 들었 다. 급속 냉동에 대한 막연한 두려 움보다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가 더 두려웠던 모양이다.
또 하루가 지났다.
다시 2억 명을 데려왔다.
이번에는 중상자가 거의 없고 대체 로 멀쩡한 편이다. 한국 무리가 시 작된 장소에 만들어진 거대한 성, [최후의 성벽]에서 가장 먼 무리부 터 데려와 멀쩡한 이들은 새로운 장 비를 맞춰준 뒤 스테이지로 보내고 전투를 원하지 않는 이들은 냉동고 에 넣었다.
다시 2억 명을 데려왔다.
이번에는 추가 인원까지 있었다. 추가 인원이 뭐냐 하면 최초에 있던 10억에 들지 않는 인원이다. 정의의 요람에서 분위기를 보다 중간에 끼 어들었던 플레이어들.
짧지만 훌륭하게 활약한 이들도 있
고 영상으로만 전쟁을 보다 보니 쉽 게 생각했다가 크게 당하고 돌아온 이들도 있다.
다시 하루가 지났다.
다시 2억을 데려왔다.
그리고 또 하루가 지났다.
고유세계로 들어갈 지원자를 뽑던 나는 이제 그 숫자가 2억에 한참 못 미친다는 사실을 알았다.
최종적으로, [최후의 성벽]에는 10 만의 정예만이 남았다. 그리고 [리 젠되는 적의 숫자는 모여 있는 플레 이어 숫자에 비례합니다]라는 규칙 에 따라 데스나이트들의 리젠 속도
역시 1시간에 10만으로 줄었다.
1시간,1시간이 피가 말리던 스테 이지 진행이 점점 더 느려지기 시작 한다.
하루가 지났다.
또 하루가 지났다.
일주일이 지났다.
한 달이 지났다.
1년이 지났다.
그 와중에도 사상자는 물론 있었 다. 유리한 환경에서 부상자를 바로 바로 빼며 싸웠지만 적은 완성자를 넘어서는 강적.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그 빈도가 점점 줄
어든다. 무엇보다 플레이어들이 공 성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과과광!!!
기이이잉— 쾅!!!
성벽 안에서 쏘아진 포격이 성 밖 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성벽 위에 자리 잡은 플레이어들이 성벽을 타고 올라오려는 데스나이트 를 철통같이 막아낸다.
피로가 쌓이면 하루에 한 번 정해 진 시간마다 고유세계 안에 있는 인 원들과 교대했다.
[최후의 성벽] 내부에 더욱더 완벽
하게,무엇보다 강철을 재료로 한 새로운 성벽을 만들었다. 백만,천만 명의 플레이어들이 사용하던 성벽은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스테이지에 남은 플레이어가 1만 명이 되었다.
최상급 14레벨 난이도의 진행이, 점점 더 느려진다.
그리고 그쯤 지니가 부탁한다.
[함장님,드랍품을 다 수거해 주십 시오.]
“뭐? 이제 별로 안 부족하잖아? 맛도 없고 다 먹기에 오히려 많을 것 같은데.”
잠시 힘든 시절이 있었지만 잉여 인력들은 죄다 얼려놔서 많이 여유 로워진 상황. 그러나 지니의 뜻은 당 장 먹으라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 수거해서 고유세계 안으로 가 져오시면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단 말이야.”
진입 할당량을 소모한다면 스테이 지에서 주어지는 음식과 물들을 고 유세계에 가져오는 건 물론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몇 번이고 그랬었고.
그러나 스테이지가 갱신되거나 시 간이 지나면 보급품은 사라진다. 다
시 말해 저장이 불가능하다는 것.
그러나 지니는 말했다.
[다 먹으면 되지 않습니까? 대소변 은 사라지지 않는데.]
나는 깨달았다.
지니의 알뜰살뜰 심시티가 또다시 시작되었으며-
그 규모가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를 것이라는 사실을.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