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정의 무구 소지자들에게는 스테이 지 진입 시 선택지가 떠오른다.
바로 스테이지에 진입할 것인가? 아니면 정의의 요람에 먼저 진입할 것인가?
그리고 거의 전부에 가까운 플레이 어들이 그중 후자를 선택한다. 정의 의 요람은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 그야말로 아무런 리스크 없이 얻는
것만 많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들어 가는 데 자격이 필요할 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무조건 들어가는 게 이 득인 공간.
정의의 요람에 진입하면 그리 넓지 않은 밀폐된 공간에 도착하게 된다. 아이언 랭크의 요람은 간신히 발이 나 뻗을 정도의 넓이에 가구조차 없 지만,랭크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공간은 점점 넓어져 책상,의자,침 대 등의 가구 역시 추가된다.
외부의 물건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스테이지를 위한 완전무장을 하고 진입했다고 해도 다시 스테이 지에 들어갈 때 적용될 뿐,정의의
요람에서는 오직 정의 무구 하나만 을 든 채 들어가게 되는 것.
장비들이 사라지는 대신 하얀색의 신관복이 주어지기에 나체로 있을 필요는 없다. 입고만 있어도 체온을 유지시켜 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에 그냥 맨바닥에 누워도 덥거나 추 울 일 없이 편안히 잠들 수 있을 정도.
음식도 주어진다. 아이언 등급에서 는 1일마다 정말 최소한의 식량과 물만 주어지지만,등급이 높아질수 록 어느 정도 넉넉하게 주어진다.
즈
밀폐된 독방이나 다름없는 환경이
라 하더라도 정의의 요람에서는 의 식주 모두가 보장된다. 괜히 [요람] 이 아니라는 말.
“윽!”
쿵!
명월은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으려 다 그만 바닥을 뒹굴고 말았다. 잠 시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 있던 명 월은 몰려오는 자괴감에 이를 악물 었다,
“최상급 스테이지가 시작되었을 텐 데… 나가서 도와야 하는데……
그러나 그의 마음이 그러할 뿐 그 러지 못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정의
무구를 들어 진입 요청을 하면 스테 이지에 들어설 수 있겠지만(다시 요 람으로 돌아올 수는 없다),지금 이 상태로는 그저 사람들에게 부담을 더하는 결과밖에 나오지 않으리라.
지금의 그는 두 다리를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으니까.
“하아……
명월은 완전히 절단된 후 박살이 나버려 회수조차 하지 못한 오른 다 리와 어떻게든 다시 붙여놓았지만 여전히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왼 다리를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사제로서의 힘을 각성한 명월은 그 전과 차원이 다른 힘을 가지게 되었
다. 여전히 그의 역량은 완성자의 경지를 넘어서지 못했지만,그럼에 도 14레벨 상급 스테이지에서 수천 수만 기의 데스나이트를 해치울 전 투력을 가지게 된 것!
그야말로 학살이라 불러도 모자라 지 않은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낸 명 월이었지만,그는 그것이 상대가 약 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말았 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반복되 는 전투에 익숙해져 그만 방심했다 고 할 수 있겠지.
사제로서의 권능을 각성한 명월이 이제는 마스터 랭크에 올라선 정의 무구에 다이아 랭크의 정언력을 가
지고 14레벨의 데스나이트를 상대 하는 것은,말하자면 전역한 지 얼 마 안 된 예비역이 좁은 복도에서 중기관총을 잡고 사자나 호랑이를 상대하는 것과 같다.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적이 하 나씩 나오는 이상,전투는 그저 방 아쇠를 당기는 것만으로도 끝나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전투라고 부르 기도 애매한 과정이다. 정확히는 노 가다라고 부르는 편이 정확하겠지.
그러나… 그렇게 학살할 수 있다 해서 예비역이 정말 맹수보다 강하 다고 할 수 있을까?
명월과 데스나이트의 관계 역시 마
찬가지 였다.
어차피 다 한 방에 죽여 버리고 있었기에 데스나이트와 데스나이트 킹의 차이를 잠시 잊어버렸던 대가 는 너무나 컸다.
단 한순간 방심했을 뿐이거늘 명월 은 허리가 거의 절반 이상 뜯겨 나 가고, 양다리는 절단,마지막으로 심 장에 칼이 박히는 치명상을 입고 말 았던 것이다.
“죽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겠 지.”
그는 간신히 몸을 움직여 의자에 앉았다.
팟!
평범하던 나무 의자가 강철로 변한 다. 그리고 그 의자에 담겨 있던 [힘]이 명월의 몸으로 쏟아져 들어 온다.
뿌득! 뿌득!
끊어졌던 왼쪽 다리의 힘줄과 신경 이 회복된다. 그 과정이 제법 고통 스러웠지만 명월은 이를 악물고 참 아냈다.
•■당신은 마스터 (Master) 랭크입니 다.
-힘의 소모로 인해 언랭크(UnRan
ked) 로 하락합니다!
팟!
오른 다리의 재생은 시작도 못 했 는데 명예의 좌가 사라지고 원래의 나무 의자로 돌아온다. 좌에 주어진 힘을 모두 소모해 버린 것이다.
“큰일이다.”
명월은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물론 그가 자신이 불구로 살아야 한 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것은 아니 다. 명예의 좌의 랭크는 시간이 지 나면 회복되고 좌의 힘이라면 어떠 한 부상이나 장애,심지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장애나 유전병 까지도 회복시켜 버리는 가공할 성 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명예의 좌가 가진 음식 창조 능력을 신기해하지만 명월이 보기에 진짜 놀라운 것은 이 회복 능력이다.
“오른 다리까지 완전히 회복시키려 면 적어도 다이아 랭크까지는 복구 해야 해… 대충 한달 정도 걸리겠 지.”
다만 문제는 그 한 달의 시간 동 안 최상급 난이도가 계속 진행된다 는 것.
그리고 지금 구도로 최상급 스테이
지가 계속 진행된다면,인류의 피해 는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최악으 로 치달을 것이다.
“가속이 좌의 회복도 가속시키면 좋을 텐데.”
모든 정의의 요람에는 마치 금고 다이얼처럼 생긴 장치가 벽에 붙어 있다.
그것은 요람의 시간을 가속/감속 하는 도구.
다이얼을 왼쪽으로 돌리면 요람의 시간이 감속된다. 요람의 시간이 천 천히 흐르니 반대로 스테이지의 시 간은 가속하게 된다. 정의 무구를 통해 [시청]한다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플레이어들의 공략을 볼 수 있게 되는 것.
감속은 최대 1만 배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최대치로 감속시켜 놓으면 스테이지가 어지간히 길어져도 잠시 쉬다 보면 끝나 있다. 정의의 요람 에서 하루만 푹 자도 스테이지에서 는 1만 일,그러니까 27년이라는 시 간이 지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과거 대하가 스테이지를 수십만 년 진행할 때 요람이 있었다면 요람은 그 자체로 감옥이 되어 미쳐 버리는 사람이 속출했겠지만,요람이 생길 때 즈음에는 그렇게나 장시간 스테 이지가 진행되는 경우가 없게 되었
으니 충분한 비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속 역시 최대 1만 배.
이것은 수련과 휴식을 위한 설정이 다. 전 스테이지에서 쌓인 부상과 피로가 아주 심해 요양이 필요할 때,혹은 혼자서 기나긴 수련을 하 고 싶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기능.
다만 이건 1인의 요람만을 가속하 는 것이기 때문에 외부의 힘을 부여 받는 좌나 정언력,정의 무구 등까지 회복되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가 속에는 정의 포인트가 소모되기에 무작정 1만 배 설정을 했다간 정의 무구가 언랭크까지 떨어져 버리리라.
끼리릭!!
명월은 일단 시간을 10배 가속했 다.
그리고 미리 준비되어 있던 1일 치의 음식을 아주,아주 조금 덜어 내 몇 시간에 걸쳐 씹어 먹었다.
그리고 정언의 힘을 사용한다.
“내 남는 지방과 영양분,그리고 힘은 내 오른 다리가 돋아나는 데 사용될 것이다!”
언령이 발동하자 온몸의 힘이 탁 풀리며 다리가 근질거리기 시작한 다. 재생이 시작된 것.
그러나 그렇다고 눈에 보일 정도로
엄청난 속도까지는 아니었다.
‘명예의 좌의 힘을 다 썼으니 음식 을 꺼낼 수 없다. 10배 가속을 사용 했으니 정의의 요람에서 제공하는 음식도 10일 뒤에나 주어지겠지.’
그나마 다행히도 명월은 제법 후덕 한 체형이다. 40년의 감옥 생활을 끝내고 나온 뒤 먹는 것을 좋아하게 된 그는 고작 171cm 에 불과한 신장 에도 체중이 100킬로그램이 넘을 정도의 비만이 되어버린 것.
그게 수행자의 체형이냐며 주지 스 님에게 늘 혼났지만 이 [남는] 육신 을 언령과 신성력으로 잘 덜어낸다 면 다리를 돋아나게 하는 것도 가능
할 것이다.
물론 새로운 다리뼈를 만들면 온몸 의 뼈가 약해지겠지만… 그건 스테 이지를 끝낸 뒤 어떻게든 복구하면 된다.
웅!
바닥에 정좌(또坐)하고 앉아 합장 한 명월의 몸 주위로 웅혼한 기운이 흐르기 시작한다.
신성력 (神聖方).
[삼원(근元)의 맹서 1] 로 삼신에게 귀의한 사제들에게 주어지는 힘이 다. 명월은 드루이드로 신성력과 별 상관없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삼신의 신성력은 마법사들조차 문제 없이 다룰 수 있을 정도의 포용력을 가지고 있어 사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신성력을 키워야 해.’
그저 다리만 복구하고 나가는 것으 로는 제대로 된 활약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정언력도,명예의 좌도 모 두 소모해 버린 것은 물론,온몸이 깡마른 상태로 나가게 된다면 사람 들에게 짐이 되는 상황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삼원(근元)의 맹세]를 추가했다.
“용서한다.”
[삼원(=元)의 맹세]가 처음 생겼 을 때부터 시도했던 맹세.
그리고.
지끈!
“크악… 끄으으으윽……H!”
몰아치는 고통에 명월의 대머리에 혈관이 잔뜩 일어나고 눈이 충혈 된 다. 그럼에도 쓰러지지 않은 것은 그가 실로 초인적인 인내심을 가졌 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하아… 하아… 아직도 미혹(述惑) 을 벗어던지지 못했구나. 다 털어버 렸다 생각한 것이 그저 나의 착각이 었다니.”
고통이 밀려오자 과거의 모습이 떠 오른다.
-옷을 다 벗으세요.
정증하기까지 하던 사내의 말이 떠 오른다. 자신의 팔다리를 교차하듯 묶어 막대기를 끼워서는 책상 사이 에 걸어놓던 사내들의 모습도. 마치 통닭구이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는 자신의 얼굴에 씌워지던 수건도,부 어지던 물도,질식 상태나 다름없던 자신에게 가해지던 각목 구타까지.
“허억… 허억……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호흡이 가빠 진다. 몸뚱이 전체가 공중에 둥둥 뜨는 것 같던 감각이 떠오른다. 비 명을 지르려 해도 목소리가 안 나오 고 가슴이 미어터질 것 같던 감각.
그는 자신이 왜 잡혀가 고문을 당 하는지도 몰랐다. 이유를 모르니 고 문을 당해도 뭘 말해야 할지 몰랐 다. 결국 진이 빠질 대로 빠졌던 그 는 사내들이 불러주는 각본대로 진 술을 받아쓸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야 그 모든 과정이 공안검사 의 지휘 아래에 씌워진 누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누명을 걷어내고 무죄판결을 받
기까지 40년이 걸렸다.
“•••나는.”
명월은 고요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말했다.
“용서한다.”
고통이 밀려온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시도했다.
계속. 계속.
그는 멈추지 않았다.
쿵!
내가 맨 처음 자리하고 있던,정확 히는 이가의 세력이 주류인 한국인 무리에 내려선다. 백만 명이었던 무 리는 어느새 천만에 가까워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원형진 역시 그전 보다 훨씬 더 거대해졌다. 아니,이 제는 그저 원형진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성벽을 높여!! 더 높여야 해!”
“포격 멈추지 마!!”
“성문 열어!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들어온다!!!”
“요격 부대,나가서 길을 내!”
지름이 10킬로미터가 넘는,규모로
만 보면 어지간한 도시를 넘어서는 무지막지한 규모의 성이 스테이지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스테이지의 땅을 파고 건설 장비를 동원해 구축 해 낸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성 안에는 간단하게나마 잠을 잘 수 있는 집들과 장비를 수 리할 수 있는 정비소들이 들어서고 있다.
가까이 있는 무리들은 이미 다 들 어와 있는 상태고,멀리 있는 무리 들도 천천히 이동해 접근하고 있다.
내가 부상자와 여태껏 대부분의 스 테이지를 죽으며 넘겨왔던 저레벨들 을 죄다 고유세계로 던져 버려 무리
들이 이동하기 편해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니,상태.”
[누적 사망자 410만 1,333명. 누적 부상자 3억 6,622만 1,007명입니 다.]
부상자가 확 줄었다. 물론 그들을 치료했기 때문은 아니다.
“한 번에 2억 살짝 안 되는 정도 까지 넣을 수 있는 건가……
다음 학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