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나는 고유세계의 에덴을 들어 올린 다는 느낌으로(실제로는 스스로 부 양하는 에덴의 움직임에 내 힘을 더 한 것이지만) 현실로 꺼내 들었다. 그 자세는 데드리프트처럼 허리까지 만 들어 올리는 동작이었기에 현실 에서 본다면 마치 우주선을 바지 주 머니에서 꺼내는 것처럼 보였으리 라.
모함,에덴의 기본 컨셉은 간단하 다.
쉽게 망가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얼마든지 수리할 수 있도록 단순하 게.
그리고.
무조건.
크게.
흑!
존재하지 않던 질량이 단숨에 현실 로 밀고 나오면서 주변에 강풍이 몰 아닥쳤다. 그 바람에 사람들이 어어, 하고 신음하는 순간.
한순간 온 뉴욕이 어둠에 잠긴다.
텅! 텅! 텅!
거친 소리와 함께 어둠에 잠겼던 도시가 다시 밝아진다. 빠른 원상복 구였지만,드러난 모습은 조금 전과 완전히 다른 광경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새로운 광원(光源)이 태 양이 아닌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강철의 구에 박힌 라이트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이,이게……
자신만만한 태도로 나를 맞이했던 백인 사내가 창백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가 다시 나를 보며
버벅거렸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 다.
애초에 누군지도 모를 사람. 나는 쓸데없는 데에 신경 쓰는 대신 에덴 으로 말을 전했다.
“뉴욕 도착. 미국행 외출자들은 즉 시 강하 준비하고 승무원들은 이주 자를 받을 준비를 해주세요.”
내 말과 동시에 구체 형태인 에덴 이 빙그르 회전하더니 바닥이 열리 고 커다란 원통형의 구조물이 바닥 을 향한다.
그리고 내 귀로 에덴에서의 보고가 전달된다.
[미국행 외출자! 검은 호랑이 김종 필 외 817명! 강하를 시작합니다!]
보고와 함께 바닥을 겨누고 있던 원통형의 구조물에서 빛이 쏘아진 다. 깜짝 놀란 사람들이 비명을 질 렸지만 당연히 공격은 아니다.
우우웅一!
아무도 없는 바닥을 겨눈 빛줄기가 반경 200미터 정도를 비추며 쏟아 져 내리고,에덴에서 뛰어내린 기가 스들이 빛의 길을 따라 떨어져 내렸 다.
사람들은 목이 꺾일까 걱정이 되는 자세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사실,보통의 인간이라면 볼 수 없 는 광경이다.
어지간한 시(市)에 맞먹는 거대함 을 가진 에덴이 도시를 짓누르는 상 황을 피하기 위해 고도를 엄청나게 높였기 때문이다. 하물며 수급 기가 스라 해봐야 인간보다 조금 더 큰 사이즈에 불과한데 어찌 땅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겠는가? 날아다 니는 먼지로나 보이겠지.
그러나… 지금의 지구는 인류 평균 레벨이 7에 육박하는 마경(魔境).
“뛰,뛰어내렸다!”
“기가스다! 기가스들이 떨어지고
있어! 엄청 많아!”
“어? 그런데 저건 무슨 기종이지? 지금까지 봐 왔던 기가스들하고는 전혀 다른데?”
“흑호!! 흑호가 있어! 아니,설마 저 기가스들이 다 수급이라고?!”
이제는 아바타 시리즈를 십억 대 가까이 뿌리고,또 그 이상으로 뿌 린 조종기를 통해 대전쟁을 플레이 할 환경을 만들어놓은 상황.
때문에 기가스에 대한 정보는 꽤나 광범위하게 풀려 있다. 대전쟁 자체 가 조종사로서의 튜토리얼을 겸하기 때문에 신성인수기의 기가스 등급 역시 많은 사람이 알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현 인류 최고의 슈퍼스 타 철가면이 제작계 능력자이자 기 가스 조종사니까요.]
“슈퍼스타라니……
[슈퍼스타지요. 나폴레옹에 자기네 기업 로고를 달고 싶다고 요청한 기 업이 한두 개가 아닐 정도인걸요. 심지어 그중 몇은 백지수표를 제안 하던데.]
“백지수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기업을 백지로 만들어 버릴까 보 다.”
물론 현 인류의 절반 이상이 내 플레이를 시청하고 있는 상황이니
광고효과야 어마어마하겠지만,인류 가 멸망하느냐 마느냐 하는 시국에 광고 생각을 하다니 그야말로 어이 가 없다.
쿵! 쿵쿵!
그렇게 투덜거리고 있는 동안 빠르 게 강하한 기가스들이 내려서는 모 습이 보인다. 기가스 중에 비행 기 능을 가진 기종은 극히 드물지만, 에덴에서 뿜어진 빛의 기둥은 일종 의 중력장이기 때문에 낙하 속도를 적절히 제어할 수 있었다.
땅에 내려선 외출자들의 분위기는 각양각색이다. 개중 몇은 벌서 기가 스에서 내려 바깥 공기를 마신다.
“지구다! 하늘이다! 저기 봐! 영화 에서 봤던 뉴욕이야!”
“와,사람 엄청 많아! 우릴 기다린 건가?”
날아갈 듯 가벼워 보이는 사람들.
“돌아왔군… 그래. 결국 돌아왔어.”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다. 나는 해낼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친구들……
죽음을 각오한 듯 비장한 분위기의 사람들.
“스테이지! 스테이지 시간이 7시 맞지?”
“나,지구 음식 먹어보고 싶다!” 무슨 여행이라도 온 듯 보이는 사 람들까지.
언뜻 보면 난잡해 보이는 분위기지 만 이들은 레온하르트 제국의 커리 클럼을 최소 3년에서 10년까지 수 행한 정예들. 기가스 자체에 설치된 보조 AI7} 지니와 연동되어 있기도 하니 사고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이다.
“대통령님.”
“당신은… 설마 한스 대위?”
“오랜만이군요.”
“이럴 수가! 세상에,노인이 다 되
었군 그래!”
아까 나를 반기던 백인이 외출자 한 명과 반가이 손을 잡는다.
'저 사람이 대통령이었나? 미국 대 통령은 포커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었는데.’
그러나 생각해 보니 이 혼란스러운 시국에 정치판 역시 지각 변동이 일 어났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정의 롭지 못한 정치인들은 모두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는 시절,대통령을 비롯한 다수의 정치인이 갈려 나가 는 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리라.
새로운 대통령은 나와 대화를 나누 고 싶어 하는 분위기였지만 내 성향
을 알고 있는 외출자들의 자연스러 운 방해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굳이 뭘 더 하려는 건지. 외출자 전력만 해도 충분히 도움 될 텐데.’
아닌 게 아니라 이만한 수의 외출 자는,그것도 수급 기가스로 무장한 외출자들은 미국에 가뭄의 단비와 같은 무력이 될 것이다.
그들은 전원이 최소 1천 회에서 최대 1만 회까지 클리어할 수 있도 록 준비된 [공략자]들이기 때문이다.
“지니,이민 지원자들의 위치는?”
[즉시 표시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지니의 안내를 따라 미리 공
지를 받고 대기하고 있던 이민 지원 자들을 찾아갔다.
나는 고유세계에 받아들이는 인원 은 하루 10만 명으로 제한했다. 무 작정 사람들을 받아들였다가는 고유 세계 안의 자원이 부족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모함,에덴은 억 단위의 사람 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그만한 자원이 필요하지 요.]
“그야 당연하지.”
지금 에덴에는 그저 거대한 강철의 거주 구역만이 존재할 뿐 단 하루치
의 식량도 없다. 지니는 안 그래도 제한된 고유세계의 자원을 유출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미리 말씀드렸던 대로 에덴에서는 외부의 재산을 인정할 생각입니다.]
“몸뚱이만 들어오는 고유세계랑은 상황이 다르니까. 그쪽은 부탁해.”
[매끄럽게 처리하겠습니다.]
나는 고유세계에 들어올 인원들을 선별했다. 예전만큼 경쟁이 빡세지 는 않았다. 에덴이라는 대체제가 생 기기도 했고,스테이지의 사망자 숫 자가 어느 정도 안정에 들어갔기 때 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민자가 모자라 지도 않지만.’
하긴 당연하다. 당장이야 문제없이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더라도… 스테 이지의 레벨은 계속 오르고 있었으 니까.
그저 지구 전체에 퍼져 있던 절망 감이 다소 걷힌 정도에 불과하다. 여전히 사람들은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다.
나는 몇 시간에 걸쳐 고유세계에 사람들을 들여보냈고 에덴 역시 전 세계에 자신의 모습을 내보이며 이 민자들을 받아들였다.
[각오하고 있던 일이지만 무겁군 요…….]
함선 전체를 뒤덮은 중력장의 힘으 로 무한정 떠 있을 수 있지만 별다 른 이동 수단이 없는 에덴을 새 모 양의 알바트로스함이 채서 날아다니 는 상황.
그 모습이 마치 제 몸보다 큰 야 자열매를 들고 날아다니는 새 같아 서 재미있다.
“엄살은.”
피식 웃으며 내 일을 한다. 대전쟁 점수가 높은 조종사들을 찾아다녀 확인하고 녀석들에게 어울리는 기가
스를 넘겨주는 것.
직접 만든 물건들이었기에 그에 걸 맞은 조종사에게 주고 싶었다.
“아,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나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를 보며 자연스럽게 웃었다. 그러나 내 심 놀라는 중이다.
‘이게 뭐야?’
[30기의 아바타를 동시에 조종하고 있습니다.]
어이없게도 서른 기의 고블린이 그 녀를 지키듯 서 있다. 손발을 건들 거린다든지 내 쪽을 힐끗거린다든지
하는 고블린들의 모습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심지어 그녀는 헬멧도 쓰지 않고 있는 상태.
지니가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
[맙소사. 어빌리티입니다. 심지어 아이언 하트 없이 활용이 가능할 정 도로 개화하다니…….]
최근에는 현실보다 고유세계에 더 관심을 가지던 아레스도 끼어든다.
[이거 운만 좋으면 기간트 마스터 도 될 수 있을지 모를 재목인데? 지구에 이런 녀석이 있었네.]
[오히려 대전쟁의 시스템 때문에
손해를 본 케이스입니다.]
나는 두 관제 인격의 말을 들으며 자세를 낮춰 소녀와 눈을 맞췄다.
그러고 보니 본 적 있는 얼굴이다.
“김소향이 었던가?”
고블린을 조종해 은행 강도들을 죽 인 선업으로 정의 무구를 받았던 꼬 마다. 어린아이의 살인을 막지도,참 고 지켜보지도 못하던 명월이 펑펑 울던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다.
“어?! 철가면 님이 절 아세요?”
“우연히 본 적 있어. 그새 많이 자 랐네.”
“헤헤. 스테이지에서 좀 오래 있었
어요. 그래도 진짜 오래 계시는 분 들하고는 비교도 안 되지만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시간대를 뒤죽박죽으로 섞어버린 스테이지지 만 그럼에도 어린아이가 금세 자라 는 경우는 많지 않다. 스테이지에서 오랜 시간 있었다는 건 스테이지를 여러 번 클리어했다는 뜻인데,초인 들도 어려워하는 스테이지를 어린아 이가 여러 번 깨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소향을 보았다.
[이가]
[15 레벨]
[군단 김소향]
‘고블린들을 이끌고 있는데 15레 벨. 그것도 이 어린 나이에.’
절로 떠오르는 미소에 오른손을 뒤 로 당겼다.
쿵!
회색의 거인을 땅에 내려놓는다. 그 모습을 본 소향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철가면 님?”
“사신수,백호다. 좀 아쉽구나. 너
같은 녀석이 있는 줄 알았으면 회색 사자 같은 걸 만들었을 텐데.”
그러나 아쉬움은 아쉬움. 나는 백 호의 기능을 설명해 주었다.
“자동 전투에 특화된 기종이다. 매 크로에 적합한 이능을 가진 조종사 를 위해 만든 기종이지만……. 넌 다르게 사용할 수 있겠지. 출력은 떨어지지만 전투 지속력이 뛰어나니 상황을 설계하며 움직이는 게 좋을 거야.”
“저,저한테 주시는 거예요?”
“선물.”
일어선다. 나야말로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기분이라 기분이 좋았 다.
그러곤 시간을 확인한다. 어느새 오후 6시 30분. 14레벨 상급 시험 이 다가오고 있다.
“지니,에덴에 탑승한 이주자 숫자 가 얼마나 되지?”
[1 억 7천만 명입니다. 걱정만큼 많 지는 않군요.]
“정의의 요람에 들어설 수 있는 사 람이 20억이 넘으니까.”
나는 미리 계획했던 작업들을 모두 마무리 지은 후 경복궁으로 돌아왔 다.
결국 청룡은 줄 사람이 없었기에 그냥 두었다. 뛰어난 마법사는 많았 지만,뛰어난 마법사이면서 쓸 만한 조종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시간이 흘러 금요일 저녁 7시.
스테이지가 시작된다.
-스테이지 (Stage)가 오픈됩니다!
-레벨 14. 상급(上級)이 설정되었 습니다.
-300시간 안에 데스나이트 킹을 살해하십시오.
-10초 후 스테이지가 시작됩니다.
-10. 9. 8. 7
“일단은 평범한 목표인가.”
지금까지의 흐름을 봤을 때 데스나 이트 킹이라는 녀석은 15레벨일 것 이다. 지금껏 스테이지 클리어에 지 대한 공을 세워왔던 지킴이들이 상 대할 수 있는 마지노선.
결국 이다음부터는 더 많은 플레이 어를 기가스에 탑승시키고 시험에 참여하는 인원을 줄여 부담을 줄이 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다.
[이번에도 편법이 존재할까요?]
“찾아봐야 알겠지… 다만 점점 찾
기 힘들어지고 있단 말이지.”
그렇게 투덜거리는 순간이었다.
-경고. 22억 1,211만 4,331명이 영역을 벗어나 있습니다.
-시스템이 일부 업데이트됩니다.
-난이도 [최상]이 추가됩니다.
-스테이지 종료까지 영역을 벗어 나 있는 인원의 할당량이 단체 전투 에 적으로 추가됩니다.
“아,또 이상한 거 하네.”
난이도 최상.
단체 전투.
다른 게임을 할 때에는 얼마든지 칭찬해 주었던 행위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규모 업데이트라니……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