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화
그리고 그것 역시.
고유세계도 마찬가지다.
고유세계에서 태어나거나,너무 어 린 나이에 고유세계에 들어온 젊은 이들은 [바깥] 세상에 대해 궁금해 하고 또 가보고 싶어 했다.
그들뿐이 아니다.
이미 성인인 상태에서 고유세계에
들어왔던 이들 중에서도 희망자들이 상당하다. 그들은 지구에서 도망쳐 이곳으로 왔지만… 20년이라는 시 간이 지나자 떠나온 지구를 그리워 했다. 향수병이라면 향수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알고 있겠지만,아무나 내보낼 수 는 없습니다.”
내 단호한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 덕였다. 하긴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 밖에서 스테이지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14레벨 상급 스테이지 를 수행하고 나면… 고유세계의 시 간은 최소 백 년 이상이 지나 있을
겁니다. 다시 돌아올 수는 있지만 알고 있던 모두가 죽고 없을 수도 있지요.”
내 말에 지원자들의 성향이 갈린 다.
“이미 10년 전부터 알고 있던 일 입니다!”
“어차피 가족 하나 없는 몸이지 요!”
“저희 어머니는 동면 장치에 들어 간다고 하셨습니다!”
말 그대로 '나가보고 싶어서’ 도전 하는 사람들.
“이제 충분히 수련했습니다. 나가
서… 가족들을 제 손으로 구할 겁니 다.”
“제 나라는 거의 멸망에 가까운 상 황이었지요. 돌아가야 합니다.”
“죽는다면 고향에서 죽고 싶습니 다.”
지구에 남겨둔 것들에 대한 미련 때문에 도전하는 사람들.
“스테이지! 꼭! 해보고 싶습니다!”
“영약을 퍼 준다던데!”
그리고 물질적인 욕망 때문에 도전 하는 사람들.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사람 들의 외침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결심들이 이렇게 확고하 다면 차라리 좋게 생각하는 편이 나 을 것이다.
‘그래 뭐,지원자가 많은 건 좋은 일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지니에게 말 했다.
“시작해.”
말과 동시에 바닥이 열리고 40종 류의 기가스 수백여 기가 모습을 드 러낸다.
제일 첫 열에는 큰 덩치의 기가스 들이 보인다. 검은 호랑이,초록 호 랑이. 푸른 호랑이. 그리고 두 스타
일을 혼재해 만든 회적색 호랑이까 지.
이름과 달리 실제 색은 대체로 검 은색 아니면 회색이다. 색이 진짜 기체의 색을 뜻하는 게 아니라 스타 일을 뜻하기 때문이다. 다만 컨셉 컬러이기 때문인지 몸 이곳저곳에, 하다못해 무기에라도 도색을 해놓은 모습이 보인다.
있는 것은 호랑이뿐이 아니다. 늑 대,악어,뱀,매,사슴,말 등등.
당연하지만 말만 짐승이지 대부분 이족 보행 병기들이다.
“돌아보니 종류가 참 많기도 하 네.”
[온갖 스타일들이 있으니까요.]
40기의 기가스가 동시에 조종석을 열자 준비하고 있던 조종사들이 탑 승하거나 왕관을 썼다.
나는 그중 첫 번째 기가스를 바라 보았다.
[관대하]
[11 레벨]
[검은 호랑이]
20년의 시간이 무색하지는 않아서 수급 기가스의 수준이 훨씬 높아졌
다. 하물며 이건 기가스 자체의 레 벨.
위이잉! 철컥!
이렇게 조종사가 탑승하게 되면 기 가스의 칭호가 변한다.
[강철계]
[17 레벨]
[흑호 김종필]
“합격. 다음!”
[네? 전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요?]
검은 호랑이에 탑승해 이제 막 관 절을 풀고 있던 조종사가 황당해한 다. 칭호를 분류해 확인하니 10레벨 의 완성자급 초능력자다. 10레벨 수 련자가 11레벨 장비를 들었다고 17 레벨이 되다니 대단히 훌륭하다. 굳 이 확인 안 해도 상당한 수준의 조 종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음!”
그렇게 말하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다음 차례의 녀석은 이미 기가스에 탑승했다.
[강철계]
[14 레벨]
[청호 도널드]
“애매해,보류!”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억울해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도 어이없다. 이 녀석도 완성자였는데 기가스에 탑승해 나온 결과가 영 시 원잖다. 조종사로서의 역량이 떨어 진다는 소리다.
“합격!”
“불합격!”
“보류!”
“아니, 이건 자체 레벨보다도 떨어 지네. 불합격!”
나는 빠르게 조종사들을 걸러냈다. 그냥 보면 레벨로 대충 견적이 나오 기에 속도는 빨랐다. 그나마 조종사 의 정보도 대충이나마 훑어보았기에 시간이 걸린 것이지 정말 레벨만 확 인하려 했다면 전부 확인하는 데 10분도 안 걸렸을 것이다.
그렇게 대략 1시간. 확인 작업이 끝나고 결과가 나왔다.
“조종사 육성 시물레이션을 10년 넘게 운영한 것치고는 결과가 별로 인데?”
[인재 풀이 너무 작습니다. 고작 20만 명이 살고 있는 고유세계에서 나온 결과라는 걸 생각해 보면 오히 려 고무적인 편이지요.]
6천에 가깝던 지원자 중 절반 이 상이 탈락하고 2,300명이 남았다. 심지어 보류는 물론이고 나이가 어 린,말하자면 장래성이 있는 조종사 들을 포함한 결과가 이렇다.
“뭐,어쩔 수 없지. 외출 준비 시 작해.”
[네,함장님. 모든 작업을 마치고 중앙 광장에 대기시키겠습니다.]
“중앙 광장에서 송별회였던가… 그
건 알아서 진행하고. 그 후에 에덴 에 탑승하라고 해. 통째로 꺼낼 테 니까.”
[알겠습니다. 함장님.]
지니의 대답을 들은 뒤 다시 바쁘 게 움직인다.
지난 20년 동안 널널하게 사는 데 익숙해진 나였지만 오늘만큼은 일분 일초를 아껴 쓸 수밖에 없다.
오늘은 20년 만에 돌아온 하루.
그리고 다음에는 수백 년 후에나 돌아을지 모르는 하루다.
외부와 연결되는 모처럼의 기회니 할 수 있을 때 모든 작업을 마쳐놓
아야 한다.
“지니,지금 남은 인류의 숫자가 몇이지?”
[약 35억 명가량입니다.]
“아니,완벽 클리어인데 왜 이렇게 줄었어?”
[인간이 꼭 스테이지에서만 죽는 것은 아니니까요.]
“혼란의 도가니네 진짜.”
나는 혀를 차며 작업실에 도착했 다. 그대로 침대에 몸을 눕히고 의 식을 지구로 옮겼다.
“지니,고유세계에 가장 부족한 건 뭐지?”
사실 고유세계가 S랭크에 오른 지 금,한 번에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 의 수는 고작 10〜20만 명 정도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내가 이주 인원을 10만으로 제한한 것은 대책 없이 유입만 늘리면 고유세계의 자원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게 될 것을 알 기 때문이다.
[이제는 가축도 필요 없습니다. 물 을 되는 대로 충당해 주십시오.]
“그래. 바닷물이나 떠 가자.”
나는 적당한 바다에 내려서 한순간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맹렬하게 바
닷물을 흡수했다. 바닷물이 고유세 계로 넘어가 호수를 만들거나 하는 일은 없다. 고유세계에서 물은 필수 자원이기 때문에 조금의 낭비도 없 이 준비된 물탱크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리콜과 워프를 반복. 일성의 건물로 이동한다.
그리고 재석이를 만나 인사했다.
“안녕! 실력이 하나도 안 늘었구 나?”
“그게 인사냐? 에라이……
“와,말은 들었지만 대하 너,진짜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네.”
재석이 녀석은 경은과 함께 있었
다.
그것도 그냥 함께 있는 게 아니라 재석의 허벅지에 경은이 앉아 있다.
내가 나타났음에도 둘이 떨어질 기 미는 1도 보이지 않는다.
“후. 그나저나 실력이라… 나름대 로 영약도 챙겨 먹어 보고 괴물 놈 들도 잡아 죽이고 명상도 해보고 하 는데 통 변화가 없어. 진동 아닌 것 을 진동으로 바꾸는 방식에서 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할 것 같 은데.”
아무래도 재석이 녀석은 벽을 마주 한 듯했다. 물론 저 경지에 이르기 까지 벽이야 수도 없이 만났겠지만,
20대,30대에 만나는 벽과 80대, 90대에 만나는 벽은 근본적으로 다 르겠지.
게다가 재능의 한계라는 것 역시 분명히 존재할 테고.
‘과연 그 벽을 또 넘을 수 있을 까?’
그거야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미 경천칠색의 경지는 나보다 재석이 녀석이 더 높으니 조언할 것도 없 고.
그러나 그와 별개로 당장 전력을 늘리는 건 가능하다.
쿵!
고유세계에 있던 기가스를 꺼내 내 려놓는다. 빛을 빨아들이는 듯 시커 먼 색의 거인은 두터운 갑주가 인상 적인 외양을 가지고 있었는데,특이 점으로 양 팔을 묵색의 뱀이 칭칭 감고 있다.
“사신수 중 현무야. 보다시피 방어 형이고 경천칠색을 잘 운용하면 외 부 충격으로 코어를 충전시킬 수 있 어. 그리고 코어 충전 특성을 적극 적으로 활용하려고 듀얼코어 방식을 택했으니까 제어를 잘해야 할 거야. 아,출력은 혹호의 스무 배 정도 돼.”
주르륵 늘어놓는 설명에 재석이 황
당해한다.
“뭐? 출력이 스무 배? 아니,무슨 업그레이드가,그것도 이 정도로 엄 청난 업그레이드가 매일 돼?”
“나한테는 20년이었거든. 업그레이 드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지.”
“•••그래. 그러고 보니 그 고유세계 인가 뭔가가 시간이 그렇게 홀렸다 고 했지. 중급이 이 지경이면 상급 은 더 심각한 거 아냐?”
녀석의 말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지 만 대충 어깨를 으쓱이고 넘긴다.
사실 별걱정거리도 아니었기 때문 이다.
“아, 그리고 넌 이거.”
탁.
또다시 새로운 기가스를 내려놓는 다. 이것 역시 2.5미터나 되는 크기 지만,그 무게는 현무와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사신수 중 주작이야. 100% 특수 처리를 한 미스릴로 만들었지. 속도 전 중심이고 비행이 가능해. 이름에 붉을 주가 들어갔지만 보다시피 검 은색이야. 스테이지에는 천장이 있 으니까 날아다닌다고 깝치지 말고 속도전 중심으로 싸워.”
그렇게 기가스를 넘겨주고 나는 녀
석들과 잠시 담소를 나누며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잠시 후 리콜을 발 동해 알바트로스함으로 돌아왔다.
“바쁘다 바빠. 지니. 대전쟁 점수는 어때?”
[상당한 데이터가 업데이트되고 있 습니다. 아무래도 스테이지 내에서 기가스를 다루는 실력이 늘어 테스 트하는 사람이 많은 모… 호오.]
지니의 말이 끊긴다. 드문 일이었 기에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170만점 이 있군요.]
“오,진짜?”
대전쟁 랭킹 시스템에서 10만점 이상의 점수를 획득한 플레이어는 예비 조종사 자격을 얻을 수 있다. 50만점 이상이면 숙련된 파일럿으 로 취급하여 당장 기가스 탑승이 가 능하고,100만점 인(人)급 이상의 기가스를 탈 수 있는 일류 파일럿으 로 대접받게 된다.
그리고 1,000만점 이상이면 성(星) 급 이상의 기가스를 탈 수 있는,기 간트 마스터 (Gigant Master)자질을 가진 파일럿으로 분류된다.
“그럼 인급 기가스를 타도 될 정도 의 조종술이라는 거잖아?”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요. 저 점수는 어빌리티의 존재를 배제하는 대신 보정이 주어진 것이니까요.]
기가스 조종사에게 조종술은 물론 중요한 요소이지만,정말 중요한 것 은 바로 어빌리티를 가지고,또 활 용할 수 있는 영적인 재능이다. 이 재능이 없으면 그저 자신의 어빌리 티가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기가스 에 내장된 어빌리티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조종술이 웬만큼 뛰어나지 않은 이상 어빌리티의 한 계를 뛰어넘는 건 불가능하다.
“근데 다 소용없는 이야기지. 그
재능이 있어도 어차피 내 기가스에 는 어빌리티 자체가 없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아이언 하트를 가지 지 못한 내 기가스의 가장 본질적인 한계다. 내 손으로 수급을 만들었다 는 사실은 자랑스럽지만,그 근본이 아이언 하트가 아닌 라이트닝 하트, 혹은 소울 엔진인 이상 그 한계가 명확하니까.
“뭐,어쨌든 좋은 소식이네. 기가스 분배할 보람이 있겠어.”
그렇게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함장님,모든 외출자의 에덴 탑승 이 완료되었습니다.]
“좋아. 그럼 바로 꺼내줘야지.”
나는 즉시 알바트로스함의 워프 기 능을 사용했다. 정해진 좌표는 가장 많은 이주 희망자가 존재하는 장소 이자 가장 많은 외출자가 가고 싶어 하는 장소.
뉴욕이다.
팟!
그런데 이동하는 순간.
“철가면이다!”
“와아아아아!!!”
“진짜 왔어! 진짜 철가면이야!”
“오,하느님!!”
“철가면! 철가면!”
갑자기 우레와 같이 터져 나오는 함성에 그저 어리둥절하다.
“뭐,뭐야 이것들은?”
황당해하는 나에게 어떤 백인 남성 이 다가온다.
“미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당 신을 만나게 되어서……
“아,잠시. 잠깐만요.”
일단 손바닥을 내밀어 그를 멈추게 했다. 다행히 도착한 장소는 꽤 넓 은 곳이었고 주변에 고층 빌딩도 없 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 힘입어.
‘‘웃차. 하나,둘.” 나는 모함,에덴을 꺼내 들었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