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머리 위에 2부-93화 (210/249)

93 화

“선생님! 저 왕관 만들었어요!!”

[어머. 지은아 고마워.]

“선생님! 선생님은 왜 이렇게 살이 다 드러나는 옷을 입으세요?”

[으응. 그건 우리 아버지의 부탁이 었단다. 지금 내 모습이 너무 마음 에 든다고 절대 바꾸지 못하게 하셨 지. 얼마나 단호하셨는지 국방부 장

관하고도 막 싸웠다더라고.]

육감적인 몸매의 무희가 새로이 들 어온 아이들을 통솔하고 있다.

학부모들이 본다면 거품을 물 복장 이지만 그럼에도 지니의 인기는 엄 청나다. 가장 외모에 솔직하게 반응 하는 아이들에게 절세 미녀에 가까 운 지니의 인기가 많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비록 그 모습이 강철의 몸에 씌워 진 캐릭터 이미지라 해도 그렇다.

“…여긴 어디야?”

센터. 정확히는 ‘센터의 센터’라 불 리는 중앙 광장의 잔디 위에 누워

있던 여인이 눈을 떴다.

이제는 고등학생이라고 도저히 생 각할 수 없을 정도로 성숙한 외모의 그녀는 한때 내 짝꿍이었던 선애다. 한때 소녀소녀 하던 외양의 그녀조 차 스테이지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 고 나이를 먹고 만 것이다.

“말하자면,일종의 아공간이지.”

“여기가 그 소문의……

선애는 들은 이야기가 있는 듯 벌 떡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중앙 광 장은 가로세로 1킬로미터의 넉넉한 넓이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녀를 눈 여겨보는 사람은 없다. 중앙 광장이 10만 명의 신입들로 시끌벅적한 상

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아빠!!”

“마,마이클… 많이 컸구나.”

어떤 백인 남성과 아이가 서로를 껴안는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사 내와 다르게 아이는 해맑기만 하다.

“나 백 밤이나 잤어요!! 헤헤. 근 데 아빠도 문신이 잔뜩이네요.”

아이의 말에 어른의 얼굴이 사색으 로 변한다.

“아,그,그건……

“괜찮아요. 다들 많던데요. 선생님 께서 이제부터 안 늘리면 된다고 하 셨어요!”

“마이클… 이 착한 녀석..!”

사내가 아이를 안고 펑펑 운다. 나 는 잠시 그 모습을 구경하다 말했다.

“웬 천사같이 변하던데.”

“천사는 무슨,돌연변이 괴물이지.” 선애는 잔디밭에 앉아 150일 만의 가족 상봉을 한동안 가만히 지켜보 았다. 그사이 나는 현실의 몸으로 이런저런 작업들을 진행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참 후 선애가 말했다.

“만 개의 그릇이라고 했어.”

“뭐가?”

“흑마법사들이 나를 그렇게 불렀다 고. 세상에 둘도 없는 보배라고 했 지. 자체적으로는 별다른 힘이 없지 만… 영적인 그릇은 만 명분을 합한 것과 맞먹는다고 붙여진 이름이래.”

선애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고 한다.

그녀의 부친도,모친도 이면세계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일반인.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선애 는 특별한 자질을 타고났고,그것이 그들 가족의 불행이 되었다.

세상 누구보다 먼저 그녀의 존재를 발견한 세계적인 혹마법사 단체,로

맨서 (Romance)는 일말의 망설임 없 이 그녀의 부모를 살해하고 그녀를 납치해 온갖 끔찍한 실험을 자행했 다.

매일매일 죽기를 소원하는 지옥 속 에서 살기를 5년째.

정말 아무런 전조조차 없이 로맨서 가 붕괴했다.

그것은 그녀처럼 로맨서에서 키워 지던 강대한 초능력자가 반란을 일 으킨 결과로,좀 더 기다렸다면 그 녀도 그들과 함께하게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던 그녀로서는 그저 드러난 틈을 타 무 작정 도망쳤을 뿐이다.

“나를 관리하던 흑마법사를 찢어버 리고 도망칠 때 녀석이 말했지. 나 는 신도 악마도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존재라고. 그 자질이 아깝지 않느냐고.”

거기까지 말한 선애가 나를 바라보 았다.

“그래서 아까웠어?”

“그럴 리가 있겠어? 신도 악마도 될 수 있기는 개뿔.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소리지.”

그렇게 한탄한 선애가 차분히 자신 의 재능에 대해 설명했다.

“만 개의 그릇이라는 건 말 그대로

그릇이야.”

그것은 기본적으로 어떠한 [강화] 와 [주입]을 받아들였을 경우 어떻 게든 그것을 흡수할 수 있는 재능을 말한다.

“말하자면 영약을 계속 먹을 수 있 는 능력이지.”

“…개사기 아닌가?”

자판기에서 영단을 계속 살 수 있 지만 그렇다고 사람들 내공이 죄다 1갑자,마나양이 죄다 5클래스급 이 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체내 마 나양도 결국 수련자의 제어 능력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감당하지 못할 마나는 몸을 해치는 독이 될 뿐인

것. 그런데 저런 능력이 있다면 그 야말로 상식을 넘어서는 마나양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하지만 선애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봐야 한 방에 당했잖아. 하. 자판기에서 산 영단을 닥치는 대로 먹어서 돌연변이를 완성시켰더니 능 력을 제어하게 되기는커녕 폭주나 하고. 그나마 그게 유일한 희망이었 는데……

나는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텅 비어 있는 눈동자에는 조금의 울 림도 없다.

‘지쳤군.’

마치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다. 그녀의 모습에서 황제의 자리조차 마다하고 그저 평온함만을 바라던 내 모습이 보인다.

“내가 이곳에 이주민을 들이는 조 건은 알지?”

“그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게 불가능한 사람들이라고 했지.”

내 원래 기준이라면 그녀를 받아들 이면 안 된다. 지금의 선애는 고작 9레벨에 불과하지만 날개 달린 여자 로 변신하면 17레벨까지 강화되기 때문이다. 그녀 또한 1만 클리어를 할 수 있는 인재일 수 있다는 뜻.

그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 상태가 안 좋아 보이네. 지니 한테 가. 머물 곳으로 안내해 줄 거 야.”

“…고마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멀어 지는 선애의 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재석이처럼 원하는 자질을 가지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이들도 있지만 원치 않는 것을 타고나 고통받는 이 또한 있다.

그러나 이미 가지고 태어난 자질을 영원히 없는 것으로 할 수 있을까?

“폭주할 수도 있으니 잘 지켜봐 줘.”

[이제 고유세계도 거의 알바트로스 함에 비빌 만한 설비를 갖추고 있으 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래그래. 아,그리고 인챈트 작업 은 잘되고 있어?”

[네. 신입 중 마법사. 심지어 인천 터가 대거 투입되어 몇 배 이상 빨 라졌습니다. 숙련도도 점점 더 오르 고 있으니 최대 30배까지 가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게까지 빨라진다고?”

상식을 뛰어넘는 상승폭에 황당해 하자 지니가 답했다.

[이 작은 별에서 모집했다고는 믿

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마법사들이 니까요. 심지어 평균 지능지수 또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습니다.]

“마법사는 당연히 지능이 높은 거 아냐?”

[그게 꼭 그렇지도 않지요.]

마력을 다루는 능력과 지능은 전혀 별개의 재능이다. 거기에 타고나는 성향 또한 재능과 다른 경우가 허다 한 것이 현실.

그러나 지구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 다. 자판기에서 주어지는 [보편의 재능] 때문이다.

자판기를 이용해 영력을 각성하게

될 때 대상이 선택한 능력에 대한 재능이 없다면 실로 기적 같은 일이 발생한다.

바로 ‘없던’ 재능이 만들어지는 것!

당연한 말이지만 천재의 재능이 주 어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주어지는 것은 해당 재능을 가진 이들이 가지 는 가장 보편적인 재능.

영적인 재능이 전혀 없던 재석이 생체력에 입문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이 자판기의 힘 덕분이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주어지는 능력 의 장점은 바로 ‘선택’이 가능하다 는 것이다.

“아,그러네. 마력을 선택하는 사람 은 당연히 마법을 좋아하는 사람이 겠군?”

[그리고 스스로를 똑똑하다 여기는 검증된 인재들 역시 주로 마력을 골 탔지요.]

판검사,변호사,과학자,공학자, 수학자 등등. 자신의 지능에 자신이 있는 이들은 내공이나 생체력을 고 르는 대신 마력을 선택했다. 그리고 거기에 보편의 재능이 더해지자,그 들의 성장은 눈이 부실 정도다.

“하긴. 지구가 이런 상황이 아니었 다면 데려올 수 없는 고급 인력들이 니.”

물론 그게 마냥 좋기만 한 일은 아니다.

내 눈앞으로 화면 하나가 떠오른다.

널찍한 강당의 단상 위에 올라선 백인이 오른팔을 흔들며 열정적으로 소리치고 있다.

“이런 곳에 왔다 하더라도 우리는 미국인이오. 그가 우리의 은인이라 하더라도 이토록 자유를 억제하는 건 합당하지 않은 일이지!!”

화면이 바뀌더니 식당으로 보이는 장소에 모인 동양인들이 잔을 들어 올리며 소리친다,

“우리는 이제부터 중화 연맹이오!”

이번엔 널찍한 홀에서 파티를 즐기 고 있던 백인들이 서로서로 의견을 나눈다.

“철가면이 동양인이어서 그런지 신 입들 중 동양인이 너무 많소! 우리 가 왜 이 꼴을 두고 봐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심지어 양키들이 설 치는 걸 보세요! 유럽은 명백하게 차별받고 있습니다!”

어떤 방 안에 모인 동양인들이 소 곤거린다. 그 표정과 자세가 사뭇 비장하다.

“우리는 이제부터 일본 제국의 부 활을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연속해서 떠올랐다 사라지는 장면 들에 어이가 가출한다.

“얼씨구.”

기막혀하는 나에게 지니가 설명한다.

[파벌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체들과 각자의 룰이 만들어졌지 요. 심지어… 자기들끼리 세금을 걷 고 법전을 만드는 이들도 있습니다. 행정부는 저에게 맡기더라도 입법부 와 사법부는 인간이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더군요.]

“절씨구.”

후안에 의해 악인으로 낙인찍힌 이 들이 반드시 악인 것은 아니다. 주

어진 환경이 썩어 있다면 대단한 위 인이나 정의감을 품은 의인이 아닌 이상 집단의 방향성을 따라갈 수밖 에 없는 게 현실이니까.

그러나 악인으로 낙인찍힌 이들은.

당연히 진짜 악인인 경우가 더 많 다.

“정말 가지가지 하네.”

아무래도 이 고유세계라는 공간 안 에서도 권력이라는 것을 잡아보고 싶은 이들이 있는 모양이다.

“이미 규칙은 다 공고했을 텐데?”

[그래서인지 동아리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만 연관된 인원들이

구성원들 사이에서 상당한 발언권을 가진 이들입니다.]

“일단 세력을 키우면서 밑그림만 그린다 이거지.”

벌써 딴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온다. 하기야 벌 써라고 말하기도 뭣하다. 14레벨 하 급 난이도 전에 넘어온 이들에게는 벌써 150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니 까.

‘당연한 흐름일지도 모르겠네.’

그리고 내가 그저 고유세계만을 가 지고 있었다면 이 흐름을 막지 못했 을 것이다. 아니,그 정도가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잃

어버리고 오히려 고유세계의 육신을 억류당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나에게는 지니가 있다.

“걱정할 필요는 없지?”

[함장님,전 레온하르트 제국의 테 라급 관제 인격입니다. 제가 다뤄온 선원이 몇 명인데 그런 말씀을. 하 물며 여기는 인권위원회도 없는 곳 인걸요.]

우줄해 하는 지니의 목소리에 웃는 다.

“식량 사정은 어때?”

[아직 비축분에 여유가 있지만 다 시 비슷한 규모의 신입을 받으면 위

험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럼 남은 질량은 다시 가축으로 하지. 오후 6시까지 준비해 줘.”

[네,함장님.]

대답을 마지막으로 조용해지는 지 니.

나는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던 드래 곤 하트를 들어 올렸다. 모처럼 현 실에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고유세계에도 사람이 많아지니 굳이 나갈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시간도 애매하게 남는데 작업이나 해두는 게 낫겠지……

호흡을 고른다. 그리고 천천히 영

성을 일깨운다.

우우웅---.

마치 바람처럼 내 주위를 맴도는 어떠한 [힘]이 느껴진다. 나는 조각 칼을 들었다. 내 주위를 맴돌던 힘 이 그 안으로 스며들어 간다.

끼기 긱!

조각을 시작한다. 속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느리다. 하루 종일 드 래곤 하트를 잡고 있어야 겨우 0.02%쯤 올릴 수 있는 수준.

이론상 이 짓거리를 4,000일 넘게 해야 작업을 완수할 수 있다는 말이 나 다름없다.

‘노가다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그때 감각을 되찾아야 하는데.’

그러나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안 된다. 자고 있을 때에는 그토록 생 생하고 실감 나던 꿈이 깨어나고 나 면 신기루처럼 흩어져 버리듯 깨달 음의 순간 또한 아무리 잡으려 해도 희끗희끗하게 사라질 뿐이다.

“아! 진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아니,어떻게 거기에서 방해를 해?! 어떻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열이 뻗친다. 아주 악독한 새끼가 아닌가? 강호의

도리라든가 서로 간의 매너 이런 것 도 없단 말인가? 명색이 운영자라는 놈이 지가 만든 공지마저 어겨가며 꼬장을 부리다니!

진짜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화가 난다!

“화가 났군.”

일한은 가만히 웃었다.

“으아악!!!”

비명이 터져 나온다. 거울을 보고 있던 검은 아이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는 정의의 요람 에 접속할 수 없다. 후안은 그와 같 은 언네임드였으며 고유한 [설정]과 [신성]을 가진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테이지에 있는 존재가 정 의의 요람을 열람한다면.

그의 ‘눈’을 통해서 검은 아이 또 한 게시물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새로운 게시물이 올라왔다.

“으아아아!!! 아아아악!!!! 이! 바 보! 멍청이!!! 쓰레기! 벌레!!! 같 은!!!!!”

광! 광광! 광!!!

검은 아이가 분을 이기지 못한 듯 책상을 후려치자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무지막지한 굉음이 울려 퍼진 다.

그 게시물의 제목은 이러하다.

-1 시간 후 7레벨도 클리어할 수 있는 14레벨 중급 공략 올릴 예정. (철가면)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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