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화
“자세히 좀 설명해 봐요.” 일단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지킴이. 그것은 대마법사가 초월경 의 마법 능력. 그리고 그 마법 능력 을 기반으로 기나긴 시간 동안 마련
해 온 인프라. 거기에 성계신의 축 복을 더해 만들어낸 두 개의 율법 단체(律法團體) 중 하나이다.
그들의 목표는 단순하다,
인류의 수호.
그리고 표면세계와 이면세계의 분 리.
“이면세계 녀석들이 표면세계 세력 다 먹었던데 분리는 무슨 분리예 요?”
이가의 세력 중 하나에 불과한 녀 석들이 재벌 3세를 꼬붕으로 부리고 뭐만 하면 장사치라고 무시하던 것 만 봐도 뻔한 이야기 아닌가?
그러나 90년생이면서(1890년 아니 고 1990년) 지킴이 최연장자인 방 (防)은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면세계 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 요.”
“그냥 비밀이면 장땡이다?”
“그렇소. 적어도 그 선을 지키는 이상 표면세계는 평화롭고 인류는 번영할 수 있으니까.”
방은 설명했다.
지구 유일의 초월자이자 세계 최고 의 예언자이기도 했던 대마법사는 이면세계와 표면세계가 통합되면 벌
어질 일들을 예지한 후 두 세계를 분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분의 말씀에 따르자면 전쟁이 끝도 없이 벌어질 예정이었다고 하 더구려. 물론 그 결과로 인류가 멸 망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니,그렇 게 온갖 환란을 겪으면서 새로운 질 서를 잡아갈 수도 있겠지만……. 종 말의 때를 예지하고 있던 대마법사 께서는 인류의 소모를 줄이기 위해 이면세계와 표면세계를 엄격히 구분 하는 수많은 장치를 만들고 저희 지 킴이 일족을 그 마지막 부품으로 삼 으셨지.”
그리고 그 결과 인류는 번영(繫榮)
하였다.
‘그렇군. 지구 전체를 커버하기 위 한 지킴이 일족인 건가.’
지킴이 일족의 정체는 간단하다.
그들은 극단적으로 치우친 재능을 가진 영매 일족.
그들은 스스로 그리 엄청난 힘을 가지거나 하지 못한 대신 미션 시스 템을 통해 지구 전역에 깔려 있는 그랜드 소울(Grand soul)에 접속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보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볼 수 있고.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15레벨의 수호령 1천 개 체!
한국 최강의 검사라던 천검이 11 레벨. 천하제일검이라 불리던 검황 쉬자인도 13레벨에 불과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온갖 권한을 가진 15 레벨 1천 명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전력인지 알 수 있으리라.
심지어 하나의 수호령으로 최대 10명까지 중복 계약을 맺을 수 있 다고 하니…….
“그럼 문제는 뭐죠?”
“이 세계를 지탱하던 지킴이라는 부품이… 종말을 맞이해 녹슬기 시 작했다는 것이오.”
당연한 말이지만,지킴이들은 받은 힘만큼 지켜야 할 율법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가능한 한 인류를 지키기 위해 헌신해야 하오.”
“그게 나쁜 겁니까?”
“나쁘오. 여력이 남아 있다면 무조 건 스테이지의 재도전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니까. 스스로에게 최면 을 걸어도 피해 갈 수 없는 강대한 억제력이 지킴이 일족 전체에 걸려 있으니 꼼수 따위는 불가능하오.”
다시 말해 중도 포기가 불가능하다 는 뜻이다. 무조건 ‘할 수 없을’ 때
까지 재도전을 해야 하는 것.
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강령술 수련자는 생 체력 수련자와 반대의 상황이겠네.’
풍부한 보급이 뒷받침해 주면 엄청 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생체력 수 련자는 보급이 없다면 위기를 맞게 된다. 단적으로 말해 나만 해도 스 테이지를 돌다 아사하지 않았던가?
강령술 수련자는 그것과 정반대다.
그들은 거의 보급이 불필요한 존재 들이다. 강신의 순간 반쯤 영적인 존재로 화하는 것이 바로 강령술사 들이니까.
즉.
그들은 스테이지에서 파밍하는 최 소한의 물과 식량만으로도 무한히 스테이지를 재도전할 수 있다.
그렇다. 이론상 ‘무한히’ 재도전이 가능하다.
그들의 수명은 무한하지 않은데 £••••...
“긴 시간 동안 지킴이 일족은 늘어 나면 늘어났지 줄어들 일이 없었소. 율법에 보호받는 지킴이 일족은 사 고를 당하지도,병에 걸리지도 않고, 외부에서 재능을 타고나는 이들이 계속해서 수급되었기 때문이오. 덕
분에 최근에는 3만 명이 넘는 역대 급 규모를 가지게 되었지만……. 그 렇게 늘어난 지킴이 중 2만 명이 고작 요 한 달 남짓의 시간 동안 죽어버렸소.”
그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근정전으 로 들어섰다.
이곳은 표면세계의 경복궁이 아니 다.
그렇다고 이면세계의 경복궁조차 아니었다.
[놀랍군요. 거품세계를 이런 식으 로 활용하다니…….]
근정전이 수백 명의 사람으로 가득
하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몇 명의 노인들이 숨을 거두는 모습이 보인 다.
노화(老化)로 인한 자연사(g 然死) 다.
웅!
죽음과 동시에 그의 몸에 걸려 있 는 궁극 주문의 편린이 미션 시스템 으로 환원되고.
팟!
그의 몸이 이면세계로 이동한다. 나는 그것을 따라 임시 채널에서 빠 져나왔다.
파스스!
근정전 안에 나타났던 노인의 몸이 한순간 먼지로 변해 흩어진다. 나는 다시 임시 채널로 돌아왔다. 이면세 계에 다녀오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방이 설명을 이어나간다.
“지킴이 일족은 대부분 임시 채널 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살아가오. 그리고 임시 채널의 요소로 채워진 일족의 육신은 임시 채널을 벗어나 는 순간 사라져 버리지.”
나는 예전 선애와 했던 대화를 떠 올렸다.
“이 세계의 것들은 현실로 가면 사
라져 버린다?”
“그래. 이면세계로 돌아가든 표면 세계로 돌아가든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지. 특히. ”
“특히 혹시라도,만약에라도,그 어 떤 상황에라도 절대 임시 채널의 음 식을 먹으면 안 돼.”
“음식?”
그래,음식. 임시 채널의 음식은 절대 건들지 마. 현실의 것과 똑같 ■& 향과 외형을 가지고 있고,또 현 실의 것과 똑같은 맛을 가지고 있어 도 그것들 모두 임시일 뿐이야. 네 가 표면세계로 돌아가게 되면. ”
“…마찬가지로 사라지겠군.
“그럼 표면세계에 있는 지킴이들 은?”
“서포터들. 그마저도 1천 명으로 숫자를 제한하기에 한 명이 죽어야 한 명이 충원되는 식이오.”
거기까지 대화했을 때 바글바글 모 여 있던 지킴이 일족 중 일부가 방 과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수군거림이 커져간다.
“어? 철가면! 철가면이다!”
“세상에 진짜 철가면이야! 설마 철
가면을 직접 보게 될 줄이야.”
놀라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른 목소 리도 홀러나온다.
“저기,그런데 손님으로 온 거면 끼니부터 대접해야 하는 거 아냐?”
“미친 소리 좀 하지 마! 아니,철 가면 님이 지금 인류한테 어떤 존재 인데 여기에 묶어두겠다는 거야?”
“하지만 법도인데……
대략 수백 명. 작은 마을 규모의 인원이 나를 보고 있다. 나를 찾아 왔던 1천 명의 지킴이들과 다르게 한국인들로만 구성된 인원이다.
“간추리자면.”
나는 쭈뻣거릴 뿐 감히 다가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잠시 바라보다 방 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거품세계에서 인류를 지 켜오고 있었고,이제 그만 그 업을 포기하고 싶다는 말이지요?”
“그건……! 아니,그렇소. 정확한 말일지도 모르겠군. 이대로 가면 지 킴이 일족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하 기 때문이지.”
“어떻게 뻔하죠?”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서 우리는 멸족(減族)하고 말겠지… 전대나 전 전대의 어르신들은 불타는 사명감으
로 지킴이가 되었지만 우리는 아니 오. 우리는 그저 태어나 보니 지킴 이었을 뿐이니까.”
어느 정도 공감 가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이 아니겠지요. 지금이야 이 렇게 노환으로 죽지만… 스스로의 역량이 증가하지 않으니 상황은 또 달라질 겁니다. 이대로 스테이지의 레벨이 ₁₅가 된다면.”
“…수호령과 동급의 적이 나을 것 이라 이거구려.”
“심지어 더 높은 적도.”
그렇게 대답하며 손을 내저었다.
팟!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지킴이 일 족 하나가 튀어나온다.
30대로 보이는 그녀는 마치 어린 아이처럼 흥분한 상태다.
“밝아요!”
“뭐,뭐니 수련아. 아니,그보다 괜 잖니?”
“밝아요! 밝다고요! 밝고 화려하고 포근해요! 그곳은,그곳은… 으흑!”
“아,아니,수련아. 임시 채널도 충 분히 밝은데……
“달라요! 여기는 생동감이 하나도 없어!”
티격태격하는 둘의 모습을 잠시 바 라보다 묻는다.
‘지니,지킴이들의 상태는 어떻지?’
[현재 넘어온 999명 모두 정상입 니다. 그들 모두 거품세계의 존재들 이지만 고유세계에서는 그 본질이 흐트러지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지 요. 다만 여기에서 다시 표면세계로 나가면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 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나를 보고 있는 수백의 지킴이들을 바라보았 다.
그리고 왼팔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
다. 오전 9시. 아직 꽤 여유로운 시 간이다.
“방 님,오후 3시까지 도저히 스테 이지 진행을 못 하겠다는 사람들을 뽑아서 이곳으로 모아주세요.”
“…도와주시는 겁니까? 정말로?”
“네. 다만 알바트로스함에 승선시 킬 수는 없습니다. 이면세계를 벗어 나면 죽게 되는 당신들이 알바트로 스함에 타고 나면 알바트로스함도 지구를 떠날 수 없게 되니까요.”
내 말에 방의 얼굴이 굳었다.
“그,그럴 리 없소! 이미 저희는 달까지 가는 실험을 마친 상태인
데……
부정하는 방에게 지니가 알려준 지 식을 읊어주었다.
“몇 명이나 실험해 보셨어요? 죄송 하지만 거품세계를 지구에 깔린 인 프라에서 멀리 떨어뜨리는 행위는 그랜드 소울에 부담을 줄 겁니다. 수백 수천 명이 그런 짓을 했다간 거품이 꺼져 버리겠지요.”
“그,그런.”
내 말에 경악하는 방. 그러나 놀라 는 건 그뿐이 아니다.
“잠깐만요! 방님,정말 지구를 벗 어날 생각인 겁니까?! 이건 의무를
내팽개치는 일입니다!”
“그 의무. 난 이미 할 만큼 했네.”
“아니,아무리 그래도.”
“난!”
방이 버럭 소리 질렀다.
“난! 150년을 했어! 150년!!!! 제 기랄! 난 이제 언제 늙어 죽어도 이 상할 게 없는데 아직도 남은 의무가 있단 말인가?!”
고오오——!!
그의 영력이 타오른다. 그 기세가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하지는 않지 만,그저 감정의 흐름만으로 이만한 영력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이
지금 그가 얼마나 절박한지를 알려 준다.
“평생을 역겨운 괴물을 죽이며 살 았네! 이제는 지금처럼 강신을 푼 상태가 더 어색해!! 도대체,도대체 내 인생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피를 토하는 것 같은 외침에 딴죽 을 걸었던 사내조차 더 말을 잇지 못한다. 지킴이들 모두가 할 말을 잃으면서 침중하게 가라앉는 분위 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공지했다.
“어쨌든 3시까지 모아주십시오. 다
행인지 불행인지 지금 보내 드리려 는 곳에는 수호령을 데려가지 못합 니다. 의무를 행하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남아서 할 수 있을 겁니다.”
거기까지 말하고 거품세계를 벗어 난다.
나는 내친김에 민경도 찾아갔다.
“…도저히 스테이지 클리어가 불가 능한 인원 말씀이십니까?”
난데없이 찾아왔음에도 침착하게 묻는 민경에게 설명했다.
“그래. 너무 어린 아이도 좋고 악 업이 너무 쌓여서 어떻게 해도 정의 의 요람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도
좋아. 나는 그들을 내 개인 차원에 데려갈 테고,적어도 그 안에서는 스테이지를 진행할 필요가 없을 거 야. 아,참고로 을 수 있는 것은 몸 뿐이야. 입고 있는 옷도 못 가져가 니까 염두에 두고 진행해.”
내 말에 민경은 잠시 차분한 표정 으로 내 눈을 응시했다.
그러다 물었다.
“저에게… 이런 막대한 권한을 주 셔도 되는 겁니까?”
“어차피 나는 누가 되든 상관없으 니 익숙한 사람이 대신 해주는 게 편하지. 싫어?”
“아뇨. 그럴 리 없지요.”
“그래. 그럼 오후 3시까지 경복궁 으로 사람들을 모아. 인원은 1만 명 안쪽.”
“즉시 실행하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떠나가는 민 경.
나는 인식능력을 왜곡시키는 도구 를 챙겨 광화문으로 나가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리고 오후 3시.
나는 수천 명의 지킴이와 정확히 1만 명의 추가 인원을 고유세계로 보내 버렸다.
[특성 고유세계 (Legend++++) 가 랭 크 업 합니다!]
[A랭크 一 S랭크]
구구구구구------.
나는 고유세계의 규모가 한 차원 더 거대해지는 것을 느꼈다.
미친 듯이 팽창하는 사철의 소행 성.
소행성의 중심부에서부터 쏟아진 엄청난 양의 사철에 소행성이 풍선 처럼 부풀어 오른다. 구획별로 분류 되어 있는 건물들이 폭풍을 만난 조
각배처럼 출렁이자 빌딩 등에 방을 배정받고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 르며 불안해했다.
그러나 애초에 이렇게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설계했 던 강철의 도시들은 마치 배처럼 사 철의 파도 위를 항해하다 확장이 멈 출 때쯤 미리 지정했던 장소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즉시 드론을 사출해 천장의 높이를 파악한 지니가 통보해 온다.
[충분한 고도를 확보했습니다. 인 공 태양 라(RA). 발사하겠습니다.]
“오,드디어 그게 되는 건가.”
나는 광화문에서 사람 구경을 하며 잠시 기다렸고,인공 태양 라가 고 유세계를 한 바퀴 돌며 전해준 정보 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결과,나는 내 고유세계 가 오세아니아를 한 개 반은 넣을 수 있는 넓이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 다.
그렇다.
마침내 고유세계가… 대륙(大陸)급 에 이른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