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화
철컥!
방아쇠를 당기자 젖혔던 공이치기 가 공이를 때리고 탄환이 발사된다.
총성은 없다.
하긴 아무리 리볼버의 형태를 가지 고 있다 해도 화약 무기가 아닌 쉐 도우 스토커에서 총성이 울리면 그 게 더 웃기는 일이겠지.
“•••지금 뭘 한 거요?”
스스로를 방이라고 소개한 노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 았다. 내가 쏘아낸 탄환은 그의 어 깨 위를 스쳐 지나갔다. 누구도 그 탄환에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 총알을 맞은 대상을 굳이 특정 하자면,바로 경회루라 할 수 있겠 지.
“뭘 하긴. 총을 쏜 거지.”
“하아. 홍분하지 마시오. 우리는 단 지 대화를 하러 왔을 뿐인데.”
“대화는 무슨,소똥 같은 소리하고 앉아 있네. 아니,애초에 밥 먹고
있는데 이게 무슨 짓이야? 게다가 대화를 할 거면 한 명이 조용히 오 면 되지 1,000명이 둘러싸고 이야기 를 시작하려 들다니.”
이놈들이 순수한 의도로 대화를 나 눌 가능성은 만에 하나라도 없다. 그리고 혹여 있다 하더라도 기본 태 도부터가 글러 버린 방식이다.
“어,어르신! 경회루 문들이 다 봉 쇄되었습니다! 나갈 수가 없어요!”
“아니,이게 무슨… 설마 저 총이 마법기였나? 하지만 영력의 발현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 가!”
“임시 채널이 봉쇄되었습니다! 외
부와의 연결이 끊어졌어요!”
그들 역시 바보는 아닌지 금세 이 상 상황을 눈■치 챘다. 하지만 눈치 채 봐야 뭐 하겠는가? 시공 격리탄 은 이미 그들이 만들어낸 임시 채널 을 현실세계에서 멀리 떨어뜨려 버 렸다.
[시공 격리탄의 정상적인 작동을 확인했습니다. 격리 한계까지 앞으 로 31분 55초입니다.]
[해당 차원은 격리 시간 동안 물리 세계와 별개의 시간축으로 분리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머릿속에 울리는 쉐도우 스토 커의 안내를 들으며 쉐도우 스토커
를 다시 시계의 형태로 바꿨다.
“뭐,그래.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봐. 용무가 뭐야?”
“관대하군. 당장 봉쇄를 해제하시 오.”
“용무를 말해달라니까?”
“일단 봉쇄부터 해제하시오! 이건 권고가 아니라 경고요! 지금 이 차 원을 봉쇄했다 해도 그 차원 안에 지킴이 1천 명이 있다는 사실을 잊 으셨소?”
버럭 하는 방의 말에 어이가 없어 물었다.
“아니,이봐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가 대화를 하려 날 이리로 납치했는 데 내가 대화는 안 하고 ‘날 어디로 끌고 온 거지?! 당장 나를 돌려보 내! 이건 권고가 아니라 경고다!!r 이러기만 하고 있으면 막상 자기는 답답해했을 거면서 왜 이렇게 답답 하게 굴어요?”
“납치가 아니라 잠시 다른 사람들 의 시선이 없도록 조치한 것뿐이오.”
“그걸 허락 안 받고 하면 납치라니 까.”
“말이 안 통하는군!”
고오오오---!
방이 몸을 일으키자 영기가 몰아치
기 시작한다.
그의 뒤에는 반투명한 거인이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그 모습이 내게 매우 익숙하다.
문제는 구면이라서 익숙한 게 아니 라는 점이다. 초면인데 익숙한 외양.
“오,저거 설마 관우예요?”
나는 노인을 보았다.
[지킴이]
[11(15) 레벨]
[강령술사 방(防)]
특이하게도 2개의 레벨이 보인다. 예전이라면 세계 정상급이지만 이제 는 제법 흔하게 보이는 레벨과 아직 까지도 정상급인 레벨.
거기에 플레이어 레벨도 따로 있 다.
[19 레벨.]
'아이구 경험치 물약 많이 드셨네.’
하지만 스랫 포인트를 19레벨까지 받고도 간신히 11레벨이라는 건 그 가 그리 대단한 강자는 아니라는 뜻.
그리고 그의 뒤에 있는 반투명한 거인은 그의 2번째 레벨이 왜 달려 있는지를 알려준다.
[대마법사 제논]
[15 레벨]
[수호령(守護靈) 관우]
그것은 길 가는 아무나 잡고 물어 도 모를 사람이 없는 전설적인 무장 이다. 혼돈의 시대에 떨쳐 일어나 최후에는 신격화되어 숭배까지 받는 만인지적(萬人之敵)의 강자.
‘그러고 보니 이 지킴이라는 녀석
들… 죄다 강령술사로군.’
방이라는 녀석뿐만 아니라 지금 경 회루에 앉아 있는 1천 명의 지킴이 들 모두의 뒤에 반투명한 수호령들 이 서 있다.
아서나 솔로몬 같은 신화 속의 존 재에서부터 알렉산더, 나폴레옹 같 은 역사책에 나오는 존재. 심지어는 잭 더 리퍼 같은 정체불명의 살인자 같은 녀석도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니 자연스럽게 고개가 기울어진다.
‘…좀 이상한데?’
왜냐하면 어이없게도 그 수호령이
라는 녀석들은 종류나 이름에 상관 없이 죄다 15레벨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상식적으로 엑스칼리버의 주인인 아서랑 나폴레옹이 같은 레 벨인 게 말이나 되나?’
한쪽은 신화 속 영웅이고 한쪽은 그냥 전쟁 좀 잘했던 인간에 불과한 데 레벨이 같다는 건 아무리 봐도 이상한 일.
그러나 아레스는 따분하다는 말했 다.
[말이 안 될 건 또 뭐냐? 기가스도 마찬가지 아냐? 인급 기가스 아서랑 인급 기가스 나폴레옹도 성능 고만 고만한데.]
‘…아니,강령술사라며. 강령술사라 기에 당연히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 온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위 상(位相) 이야?’
즉,여기 있는 수호령이라는 것들 은 정말로 과거에 살다 죽은 존재가 아니라 사람들이 가진 공통의 인식 하에 존재하는 컨셉을 가져와 사용 하고 있다는 말이다.
당연하지만 그 제작자는 안배의 달 인,대마법사이리라.
“자네… 내 말을 안 듣고 있군.”
한참 수호령들을 구경하다가 방의 서늘한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
다.
“아,전설적인 영웅들을 보니 감회 가 새로워서 그만.”
“아무래도 그냥 말로는 안 되겠 군.”
나를 노려보며 이를 갈던 방의 몸 으로 관우의 영체가 스며들어 간다.
고오오--!
관우의 영체를 받아들인 방의 몸이 크게 부풀었다. 휘몰아치는 영력과 세상을 떨쳐 울리는 패기!
그러나 조금도 긴장이 안 된다.
“말로 해서 안 된다니. 할아버지야 말로 진짜 분위기 파악이 안 되시네
요. 그쪽 다 죽이는 건 나한테 일도 아닌데.”
“건방진 놈!! 우리는 지킴이다. 인 류 전체를 지키던 방패이자 최강의 수호신들인 우리에게 감히!”
분노하는 방의 옆으로 다른 지킴이 들이 늘어선다.
“철가면,당신이 강하다는 사실은 알지만 자신감이 지나치군. 당신이 여기에서 그 거인을 불러낸다 해도 이 모든 전력을 이겨낼 수는 없어.”
“이야기조차 듣지 않고 이렇게 막 무가내로 나올 줄이야.”
그들의 말은 분명 일리가 있다. 15
레벨 1,000명이라는 전력은 대우주 시대에서도 절대 흔치 않은 전력이 었으니까. 설사 내가 지금 이 자리 에서 나폴레옹을 불러낸다 해도 이 만한 숫자에게 다구리를 당하면 죽 음을 각오해야겠지.
‘이 정도 수준의 유격대가 돌입해 오면 알바트로스함이라도 위험할 거 야.’
완성자 이상의 전투력을 가진 존재 는 제국에서도 장교급으로 받아줄 정도의 고급 인력이라는 걸 생각하 면 실로 당연한 일.
그러나 나는 어깨만 으쏙일 뿐이 다.
‘다 소용없어. 현실의 나는 스테이 지의 나와 차원이 다른 존재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차원이 다 르냐면.
템빨의 차원이 다르다.
팟!
들어 올린 오른손 검지 위로 한 장의 부적이 떠오르자 주변을 포위 하고 있던 지킴이들이 벼락같이 달 려들었다. 권총을 꺼냈을 때와는 전 혀 다른 반응!
그러나 이미 늦었다.
보패(寶具). 둔갑천령부(遞甲天靈符).
천간 (天間).
시간이 멈춘다.
나를 향해 달려들던 지킴이들은 물 론,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지킴이들 까지 장대한 시간의 흐름에 붙잡힌 다. 시간과 공간 계열 속성을 자유 자재로 다루지 못하는 이상,황제 클래스라도 벗어날 수 없는 강력한 억제력이 었다.
“이,이게 무슨.”
“안 움직여!! 아니,아무리 그래도 수호령까지 못 움직인다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간은
소유자의 자유까지 억압하는 강력한 기술이었지만 그거야 천간의 성능을 극도로 뽑아냈을 때에나 그렇지 지 금처럼 적당한 수준에서 제어한다면 시전자인 난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 다.
'물론 이 상태에서도 공격은 무리 지. 천간의 기본 구조에 반하는 일 이니까.’
천간은 절대적인 평화지대.
그러나 그거야 나나 아는 이야기지 지킴이들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겠 는가? 내가 성큼성큼 걸어 다니자 지킴이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잠깐! 잠깐만! 우린 싸울 생각을
하고 온 게 아니에요! 진정하시고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어르신,진짜 협상을 할 거면 제 대로 하지,지금 뭐 하는 거예요!!”
“저기,전 한국인입니다! 철가면 님 예전부터 존경하고 있었어요! 공 략 진짜 잘 보고 있습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어르신 이 좀 답도 없는 꼰대라서 저런 거 예요!”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에 아까만 해도 분위기 잡고 있던 지킴 이들이 아우성치는 모습에 방의 얼 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진다.
“이것들아!! 조용히 하지 못해?!”
“아니,어르신이 좀 알아서 잘해야 저희도 조용하죠! 이건 뭐 대놓고 시비 걸더니 털리기까지 하면 어떻 게 해요!”
“철가면 님은 널리고 널린 플레이 어랑 차원이 다른 사람이라고 했잖 아요!”
나는 시끌시끌한 지킴이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이것들 태세 전환 보게. 진작 목 소리를 내던가.’
혀를 쯧쯧 찬 나는 끊긴 식사부터 재개한다.
남남. 껍껍.
바사삭!!
그렇게 약 10분 동안 식당 아주머 니에게 받아 온 초밥과 튀김을 먹었 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이 마족 아줌 마 요리 솜씨가 보통이 아니란 말이 야.”
살이 탱탱한 연어 초밥을 마지막으 로 식사를 끝낸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지킴이들은 멈춰 있는 상태 로 지켜보아야 했다.
“아,잘 먹었다.”
“…이제 좀 풀어주지 않겠는가?”
“왜요?”
“…미안하네. 잘못했네. 내가 너무 오랫동안 대우받으며 살다 보니 상 대를 가리지 못했네.”
방의 정중한 사과에 나는 손을 탁 탁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말했다.
“뭐,그럼 하고 싶다던 이야기 해
보세요.”
“이 자세로 말인가?”
현재 방은 거대한 언월도를 찍어 내리던 자세 그대로 멈춰 있는 상태 다.
“이야기.”
그렇게 말하며 주변에 있던 지킴이 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팟!
한순간에 사라지는 지킴이. 나는 혀를 찼다.
“에이 수호령은 안 딸려가네. 역시 나 개인 소유가 아니라 대마법사의 시스템 위의 존재였나.”
“자,자네 지금 뭘 한 건가? 미카 엘이 어디로 간 거지? 서,설마 현 실로 보낸 건 아니지? 우리 지킴이 들을 현실로 데려가면 안 되네!!”
기겁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고유세 계로 데려간 지킴이의 상태를 살폈
다. 다행히 별문제 없어 보인다.
“현실 아니고 다른 데로 갔고. 별 문제 없어 보이니 이야기나 얼른 해 요.”
팟!
또다시 한 명의 지킴이가 사라진 다.
그리고 그 모습에 위기감을 느낀 것인지 방이 서둘러 말했다.
“지구 밖에 있는 자네의 우주선을 발견했네!!”
‘아니,지니야. 이런 하위 문명에 들키면 어떻게 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지
구는 일반적인 2문명이라기엔 좀••….] 변명하는 지니의 말을 넘기며 물었 다.
“그래서요?”
“저,그건. 그래서……
순간 방이 차마 더 말을 잇지 못 하고 더듬는다. 그 늙은 얼굴에 수 치와 부끄러움이 보였지만 나는 배 려하고 기다리는 대신 재촉했다.
“그〜 래〜 서〜 요?”
“우,우리를 지구 밖으로 데려가 주게. 우리는 더 이상 스테이지를 견딜 수가 없다네.”
“뭐라고요?”
그야말로 상상도 못 한 부탁에 어 이가 없어 고개를 돌린다.
팟!
그 와중에도 지킴이는 사라지고 있 다.
“아니, 이게 뭔 소리야. 설마 지구 에서 도망치겠다고요? 인류 최강의 지킴이들이?”
내 말에 방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 한다. 수치심을 느낀 모양.
그러나 그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 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그가 악에 받 쳐서 소리친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벌써 2만
명이 넘는 지킴이가 죽었어! 제기 랄! 내가 벌써 180살인데 스테이지 에서 150년을 보냈다고! 이게,이게 사람의 삶이냐? 아냐! 이건 사람의 삶이 아니라고!!!”
버럭거리다 마침내 흐느끼기까지 하는 그의 모습에 황당해하는데 여 기저기에서도 비슷한 한탄이 터져 나온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스테이지에서 돌아가셨어 요. 이제는 제 차례라고요! 더는,더 는 견딜 수 없어요.”
“흑흑. 흐아앙! 이젠 싫어! 싫다고 요!”
“언제까지 인류 전체를 위해 우리 가 희생해야 합니까?”
“이대로는 지킴이 일족이 멸족할 겁니다! 기나긴 세월을 숨어서 희생 한 결과가 이런 거라니.”
여기저기에서 성토하다 못해 터져 나오는 통곡에 사방이 시끄러워진 다.
꺼이꺼이 울고 있는 수백 명의 사 람들.
“뭔 상황이야 이게?”
나는 황당해하면서도 지킴이 하나 를 건드렸다.
팟!
또다시 사라지는 지킴이를 뒤로하 고 묻는다.
“자세히 좀 설명해 봐요.”
일단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