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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 2부-87화 (204/249)

87 화

“뭐라고?”

기획자 누구?

그건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이름이 다. 지구로 온 이후 별의별 수를 다 써서 찾아다녔음에도 흔적 하나 찾 을 수 없었던 이름.

“아니,왜 아빠가 여기에서 나와?! 게다가 이제 와서 선물이라고?”

그야말로 기가 막힌 일이었지만 내 손에는 이미 구슬이 들려 있는 상 황. 나는 신경질을 내며 구슬을 살 폈다.

[없음]

[38 레벨]

[마도황녀 제니카]

“아니,무슨 물건이 38레벨이야… 설마 뭐 여의주 같은 건가? 아니, 여의주치고도 너무 고랩인데.”

그야말로 미쳐 버린 레벨에 당황해 자세히 살펴보았지만,아무리 봐도

평범한 구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강대한 마력이나 영력은커녕 소소한 마나조차도 없는 하얀 구슬에 불과 하다.

“아니,이게 뭐야… 아무것도 안 느껴지잖아?”

모든 환각과 환술을 무시하는 눈으 로 봐도 조금의 특이점도 느껴지지 않는다. 농담이 아니라 칭호가 아니 었다면 그냥 어디 액세서리 매장에 있는 목걸이에서 떨어져 나온 옥구 슬이라고 오해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손톱만 한 구슬 하나 가… 38레벨이라고?

“아니,말이 되나? 거의 언터쳐블

급 아닌가?”

20레벨이 하나의 행성에서 하나 나올까 말까 한다는 하급 초월자. 30레벨만 넘어도 대우주에도 몇 없 는 황제 클래스라는 걸 생각해 보면 38레벨은 그야말로 우주 정상급 레 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쯤 되면 어떤 언터쳐블이 죽어서 남긴 유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수준이다. 40레벨이 넘는 언터쳐를 이 죽어 남긴 영혼쯤 되어야 이만한 레벨이지 않겠는가?

“아니,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칭 호랑 이름이 이상한데.”

마도황녀 제니카.

이건 사물이 가질 만한 칭호가 아 니다. 심지어 종말 프로젝트의 시스 템으로부터 나에게 주어진 물건에 소속이 없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미션 시스템에서 무 슨 자료 화면처럼 나왔던 이름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구슬을 만지작 거리던 난 손끝에 와 닿는 감각에 멈칫했다.

“음?”

구슬을 잘 만져보니 묘하게 홈이 파여 있다.

더듬더듬 만져 파악한 홈의 형태는 두 개의 글자였다.

열쇠.

나는 가만히 목에 걸려 있는,마치 철 조각들을 이어 붙여 만든 것 같 은 열쇠를 보았다.

바보도 아니고 아빠의 뜻을 눈치 채기는 어렵지 않다.

‘다만 열쇠는.’

불현듯 하와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부터 그 열쇠,단 한 번이라

도 쓰면.”

“그 34태양계를 요〜 렇게 접어 서.”

“이〜 렇게 뭉쳐서. ”

“당신 머리통만 하게 압축시켜 버 릴 거예요. ”

화사한 얼굴로 살기등등한 말을 내 뱉던 하와.

생각해 보면 그 이후로는 가급적 열쇠 사용을 피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얼굴 본 지 오래되었 지.’

그녀의 협박은 절대 농담이 아니었

다. 그리고 최초의 리전이자 언터쳐 블인 그녀는 실제로 그 협박을 실행 할 힘을 가지고 있겠지.

그러나…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무서워서는 아니었어.’

내가 열쇠 사용을 자제해 왔던 것 은 물론 그녀 때문이었지만,그것은 공포 때문이 아니다.

그냥,그녀의 말을 들어주고 싶었 다.

‘이것도 내 태생 때문인가?’

투덜거리며 구슬을 손가락 사이로 굴린다.

‘그나저나 이 구슬을 열쇠로 열라

는 건… 이게 봉인된 상태라는 뜻인 데.’

고민한다.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도대체 아빠가 무슨 상황인지,또 뭘 목표로 하는지 알기 어려웠기 때 문이다.

아빠가 왜 종말 프로젝트의 [기획 자]라고 표시되는지. 어떻게 이런 선물을 보낼 수 있는지.

그리고 왜 나에게 모습을 보이지 도,상황을 설명하지도 않는지…….

팟!

결국 나는 들고 있던 구슬을 고유 세계에 밀어 넣었다. 작은 구슬은

아무런 부담 없이 고유세계로 이동 됐다.

‘그래. 내키지 않으면 말아야지. 나 도 영성 하나는 어디에서 꿀릴 게 없는데 직감을 무시할 필요는 없 다.’

그런고로 내 판단은 보류! 나는 잡 념을 떨쳐 버리고 자판기 조작했다.

“나중에! 나중에 생각하지 뭐!”

일단 쇼핑부터 해놔야겠다.

문을 열고 나서자 언제나 그러했듯

궁녀복을 입은 선애가 기다리고 있 다.

나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원일고등학교]

[9 레벨]

[권법 숙련자 이선애]

레벨이 고작 1 더 올랐다.

물론 그셔 역시 공략을 본 듯 플 레이어로서의 레벨은 13까지 올랐 지만 역량이 받쳐주지 않는 스탯 뻥 튀기가 뭐 얼마나 대단한 효과를 발 휘하겠는가?

‘아니,그래도 이건 좀 이상한 거 아닌가?’

물론 10레벨. 그러니까 완성자의 벽은 두럽다. 평생을 수련해도. 피와 눈물을 쏟고도 마스터의 경지에 오 르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한 것이 현실이겠지.

그러나 지금이 어떤 시기던가?

지금은 열심히 싸우기만 해도 얼마 든지 영단들을 구매할 수 있고 배우 고자 한다면 어떤 이능이든 접할 수 있는 시기다. 인류 전체의 평균 레 벨(역량)이 6을 넘어서지 않을까 생 각되는 와중인데 한참 전에도 8레벨 이었던 그녀가 아직도 9레벨이라

니?

‘무엇보다… 이 녀석의 재능은 진 짜였을 텐데.’

딱히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았어도 알 수 있다. 그녀의 재능은 재석이 녀석 따위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수 준이라는 사실을. 단지 그녀가 합성 마수라는 정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 이 아니라,그녀가 타고난 육신과 영적 자질이 인간의 수준을 넘어섰 기 때문이다.

인간을 넘어선 재능이라는 것이 초 인이나 신이 아닌,단지 괴물일 뿐 이라는 사실이 문제라면 문제였지 만… 그렇다고 그걸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불안정해 보이지도 않았는 데.

“너.”

“왜?”

“어째서 이렇게 약하지?”

내 말에 선애가 벙찐 표정을 지었 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날 혼내는 거 야?”

“그럴 리가. 그냥 내가 볼 때… 넌 재능이 있거든. 거의 천재적인 재능 이지.”

나름 칭찬이라 할 수 있는 말이라

생각했지만 내 말을 들은 선애의 눈 이 날카로워진다.

“재능이 있으니 당연히 강해져야 했다고?”

“…흠. 하긴 뭐 기질의 문제도 있 겠네.”

생각해 보니 수많은 엄마들이 ‘너 는 머리도 좋은데 왜 성적이 그 모 양이니〜〜’라고 갈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냥 넘기기 로 했다. 내 인생도 아닌데 오지랖 부리는 것도 지나친 일. 지금의 나 는 아주 기분이 좋은 상태였기 때문 에 그녀와 티격태격하고 싶지 않았 다.

‘지니. 되겠지? 될 거 같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시간이 필요하지. 하지만 스테이지 진행할 때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잖아. 될 거 같지?’

내 재촉에 지니가 답한다.

[그렇지요. 수급 기가스 양산… 가 능해 보입니다.]

그렇다. 미스릴과 아다만티움. 화염 목과 환상목. 만력석과 사령석. 거기 에 중급,상급 마나석이 추가되자 오오라와 정령력의 영구적인 소모 없이도 수급 기가스를 찍어낼 설계 가 완성되었다.

‘아,얼른 만들어보고 싶다. 영혼로 제작은 아직도 멀었어?’

[다시 말씀드리지만 시간이 필요합 니다. 적어도 몇 년은 필요한 대작 업이지요.]

‘뭐,지금도 스테이지 한 번에 년 단위는 기본이잖아?’

버그 플레이로 무난히 넘긴 13레 벨 상급 난이도조차 1년이 넘게 걸 렸다는 걸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 기다. 클리어 횟수가 1만 회로 제한 되어서 예전처럼 수십만 년 이상 머 무는 경우는 없겠지만 그렇다 하더 라도 시간은 많다.

‘아,그러고 보니 재료가 잔뜩 생 겼으니 나폴레옹도 새로 만들어야겠 다.’

[그렇겠지요. 그래도 1년 동안 공 들여 만들었는데 아쉽군요.]

‘그렇다고 좋은 보조 재료들을 안 쓸 수는 없지. 재료가 모자라서 궁 여지책으로 메꾼 부분도 많고. 무엇 보다 포격 시스템이 너무 구렸으니 까.’

그렇게 지니와 대화를 나누며 걷다 문득 멈춰 선다.

“홈. 그러고 보니.”

주변을 둘러본다. 경복궁을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왜 그래?”

“…어린 사람이 없네.”

내 말에 내 뒤를 따르던 선애가 놀랍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스테이지를 진행하면서 노인분들 이 많이 죽었는데도 대한민국 평균 나이가 50세가 넘을 정도니까.”

실제로 별로 레벨을 올리지 못한 선애조차 예전에 비해 성숙해진 것 이 눈에 보일 지경. 나는 내가 이 근처에서 제일 어려 보인다는 사실 을 황당해하며 물었다.

“아이들은?”

“아예 어린애들이 아닌 이상 다들 어른이 되어버렸지. 뉴스에서는 인 류 역사상 중고생이 가장 적은 시기 라고 하더라고.”

그렇게 선애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헛?!”

“음?”

난데없는 신음 소리에 고개를 돌린 다. 그곳에는 어떤 무사 한 명이 믿 을 수 없는 무언가를 본 듯한 얼굴 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는 사람인가?’

잠시 기억을 뒤져보았지만 떠오르

는 사람이 없는 상황. 그런데 의아 해하는 나를 보고 잠시 버벅이던 그 가 이내 꾸벅,고개를 숙이는 게 아 닌가?

머리가 바닥에 닿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깍듯한 폴더 인사다.

“뭐야.”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하며 경회루 에 들어선다.

뚝!

내가 경회루에 들어서는 순간 시끌 시끌하던 경회루가 단숨에 조용해졌 다. 이쪽으로 몰리는 시선들. 확장된 눈코입.

그러나 잠시 후.

“…정말,정말이구나.”

“거봐. 내가 봤다고 했잖아. 괜히 이야기가 나왔겠어.”

“와… 감동이다 진짜.”

“자자,예의를 지켜야지 예의.”

수군거리는 소리와 함께 모였던 시 선이 다시 흩어진다. 나는 식당의 늘어선 줄에 가서 섰다.

사사삭.

그런데 내 앞에 있던 사람들이 갑 자기 여기저기로 흩어지는 게 아닌 가?

“얼씨구.”

순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지만 얼타는 대신 죽 나아가 배식을 받는 다. 이가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메뉴 를 던져주고 있던 식당 아주머니가 길을 트는 사람들의 모습에 황당해 한다.

“이건 뭔 분위기야. 너,애들 때리 고 다니는 거냐? 어째 좀 무섭더라 니.”

“때리긴 뭘 때려요. 밥이나 주세 요.”

“그래그래.”

오늘은 일식.

아주머니의 손이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화려하게 움직이더니 365피 스의 초밥을 3층 접시에 담아주었 다. 1년 12개월을 상징하는 듯 총 12종류의 초밥.

그리고 또 하나의 그릇에는 각종 튀김이 수북하게 담겼다.

“올〜 오늘 메뉴 괜찮네. 고마워 요.”

“흐흐. 과연 언제까지 그렇게 고마 워할 수 있을까.”

아주머니가 사악한 미소를 짓는다. 벌려진 그녀의 입 사이로 톱날 같은 이빨이 보인다.

“뭔 소리예요? 무슨 일 있어요?”

“글쎄. 모든 것이 파멸하는 순간이 다가온다고 할까. 큭득큭.”

“뭔 이상한 복선을 뿌리고 있어. 이미 파멸이 과한 행성이거든요?”

나는 투덜거리면서도 자리를 찾아 앉았다.

초밥을 먹고 있으니 여기저기에서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진다.

[역시 다들 알아보는군요.]

지니의 말에 초밥을 먹으며 답했 다.

‘뭐,어쩔 수 없지. 20억 명이 봤 는데. 그나마 시끄럽게 하거나 매달

리거나 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솔 직히 좀 얼굴 붉힐 일이 있을 거라 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매너들이 있잖아?’

바삭! 우걱우걱.

빠르게 식사를 진행한다. 사실 이 렇게 식당으로 내려오지 않아도 식 사 정도야 얼마든지 배달해 줄 것이 다. 굳이 철가면이라는 정체가 아니 더라도 나는 이가의 귀빈이라 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스테이지를 진행하는 시간 동안 나는 언제나 혼자.

설사 좀 귀찮은 일이 생기더라 도……. 나는 사람들을 보러 나을 것

이다. 다른 게 아니라 내 정신 건강 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팟!

“음?”

그런데 그때 기묘한 감각과 함께 경회루에 가득하던 사람들이 일시에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사 라진 것은 아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는 내가 사라진 것으로 느껴지겠지.

그리고 그들이 사라진 자리가 새로 운 사람들로 들어차기 시작했다.

슥. 스슥.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빈자리가 하나씩 채워지더니 순식간에 모든

자리가 차버린다. 그리고 그러고도 남은 사람들은 벽 쪽에 가서 섰다.

그 숫자는 정확히 천 명이다.

“만나서 반갑소. 나는 지킴이……. 지금 뭐 하시오?”

내가 앉아 있던 식탁의 맞은편에 앉은 노인은 무게 잡고 말을 걸다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근처에 앉아 있는 다른 사람들도 수군거린다.

“총이다.”

“뭐지? 정의 무구는 아닌 거 같은 데.”

“이 타이밍에 웬 총을……

나는 술렁이는 사람들 전원이 15

레벨 이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백 인부터 흑인까지 남녀노소 구분 없 이 섞여 있는 온갖 인간 군상들.

‘아마 전원 지킴이겠지.’

나는 그들이 수군거리거나 말거나 총 형태로 변한 쉐도우 스토커를 잡 아 들었다.

“무슨 무기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진정하시구려. 나는 지킴이 방(防) 이오. 나와 지킴이들은……

뭔가 설명하려 하는 노인. 그리고 나는 그런 그를 보며.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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