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머리 위에 2부-86화 (203/249)

86 화

종말 프로젝트에게 인격 같은 것은 없다.

종말 프로젝트는 단순한 시스템일 뿐이다. 절차였으며,도구였고,결과 를 위한 과정에 불과한 존재. 종말 프로젝트가 언네임드 사이에서 그저 병기로 쓰인 것도 그런 이유.

하지만 그것이 종말 프로젝트가 낮 은 위계(位階)의 존재라는 뜻은 아

니다.

“안 돼!”

새카만 형상의 아이가 화면을 보며 비명을 지른다. 아이는 어쩔 줄 모 르며 발을 동동 구르더니 어디론가 달려가 한참 후에야 한 손에 인형을 들고 처음의 자리로 돌아온다.

아이의 손에 들린 것은 새카만 기 운을 흩뿌리는 용 모양의 장난감이 다.

퉁!

아이가 자신이 보고 있던 거울에 장난감을 눌러 넣었다. 아무런 음직 임이 없던 장난감이 곧 생명을 얻고

포효한다.

-크아아아앙!!

포효는 강렬했지만 그것을 보는 아 이는 불안과 초조함으로 안절부절못 했다.

“안 돼. 이게 아닌데.”

불안과 초조함은 점점 심해진다. 구체 안에서 은빛의 거인이 일어나 용을 두들겨 패기 시작하자 그 불안 은 정점에 달했다.

그는 다시 두 개의 용 모양 장난 감을 들고 와 거울 안으로 눌러 넣 었다.

일한이 땅에 내려선 것은 그때였

다.

“와… 우리 아들 진짜 대단하네. 13레벨 시험까지 왔는데 인류가 40 억 가까이 살아 있다니.”

일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십억 의 거울들이 지평선 끝까지 늘어선 모습이 보인다.

실로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대전쟁 때 종말 프로젝트를 맞이했 던 문명들이 생존을 위해 만들어낸 ‘변형 컨셉’은 그 종류만 해도 10가 지가 넘었지만,그럼에도 그 모든 장르가 공통적으로 가지는 특성이 있다.

바로 생존자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 수록 난이도가 폭증한다는 것!

그것은 종말 프로젝트의 목적성 때 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온갖 꼼 수를 부려 해당 문명이 충분히 극복 할 만한 컨셉을 정하거나,혹은 필 승 요소를 넣으려 한다면,종말 프 로젝트는 절대 기존 시스템과 융화 되지 않는다. 오류 발생과 동시에 어떻게든 원형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것.

종말 프로젝트에게 인격은 없지만, 그것이 필요하다면 만들어낼 수 있 는 것이 바로 종말 프로젝트라는 존 재다.

‘언네임드라고 다 같은 언네임드가 아니야. 종말 프로젝트는 서사를 가 진 언네임드다.’

언네임드란 무엇인가?

그들은 이름 지어지지 않은 자들. 완성된 세계관(世界觀)에서 배제되 었던 존재들이다.

언네임드란 하나같이 세상에 있어 서는 안 될 존재들이다. 너무나 크 거나,너무나 작거나,너무나 아름답 거나,너무나 추하거나.

‘그러고 보니 내가 죽였던 [혹한] [가장 차가운][냉기][여왕]도 정말 난리도 아니었는데.’

[그]가 200년 전에 죽였던 언네임 드는 언네임드의 특징을 가장 잘 보 여주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녀는 주변의 온도를 영하 9,000 도까지 떨어뜨리는 존재였으니까.

‘말이 안 되지.’

그녀를 처음 봤을 때의 황당함을 떠올리며 일한은 웃었다. 영하 9,000도라니. 그야말로 물리법칙 따 위는 엿이나 먹으라는 것 같은 이야 기다. 절대영도는 어디 소풍이라도 갔단 말인가?

그러나 그게 바로 언네임드다. 세 상의 이치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

세계관 밖의 존재들.

그리고 그중에서도 [종말]이라는 기나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종말 프 로젝트는 결코 만만치 않은 언네임 드였다.

“도망가!!!”

그때 검은 아이가 버럭 소리를 질 렸다. 일한은 아이의 옆에 서서 거 울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가 그렇게 접근했음에도 검은색 아이는 신경 쓰지 않는다. 사람이 방 안에 날아 다니는 먼지를 인지하지 못하듯 아 이 역시 그의 존재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

일한은 두 망령롱이 대하가 쓰러뜨 린 망령롱의 몸통. 정확히는 드래곤 하트를 들고 도망가는 모습을 보았 다.

그리고 말했다.

“이의 있습니다.”

물론 검은 아이는 신경 쓰지 않았 다. 들리지도 않는다는 태도. 그러나 일한은 애초에 그에게 말을 건 것이 아니다.

-기획자 관일한이 이의를 제기합 니다!

“뭐?!”

이제야 검은 아이가 깜짝 놀라 일 한을 돌아본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알 수 없다. 미션 시스템은 대마법사가 아니라 일한이 설계한 것이며,그 모든 것들은 무의 신과 마법의 신이 만든 거대한 시스템을 카피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어찌 알 수 있을까?

일한이 말했다.

“두 번째 망령룡도 플레이어 철가 면이 잡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봅니 다. 다른 망령롱이 드랍 아이템을

강탈해 가는 건 불합리합니다. 실제 로 더 이상의 망령룡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공지도 하지 않았습니까?”

“뭐?! 아닌데? 아닌데? 아닌데? 아닌데!!!!”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악을 쓰는 검은 아이.

철컹! 철컹!

소리 지르던 검은 아이의 오른팔에 두 개의 쇠사슬이 나타나 걸린다.

일한은 재촉하듯 말했다.

“빨리 드래곤 하트를 내려놓게 하 십시오. 어차피 이미 한 개 뺏기지 않았습니까?”

검은 아이는 자신의 팔을 무겁게 내리누르는 쇠사슬을 보고 혼란스러 워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싫어!!”

철컹!

새로운 쇠사슬이 나타나 그의 다리 를 묶는 모습을 보며 일한은 웃었 다.

‘역시. 겁먹었다.’

사실 이제 와서 대하에게 새로운 드래곤 하트가 주어진다 해도 놓친 깨달음을 다시 붙잡을 수는 없을 것 이다.

‘깨달음은 그런 게 아냐.’

같은 상황,같은 조건이 주어진다 해도 이미 놓친 것을 붙잡을 수는 없다. 하지만 검은 아이는 같은 상 황이 벌어질까 두려워 무리하고 있 다.

종말 프로젝트는 특수하고 특별한 언네 임드.

애초에 종말 프로젝트에 검은 아 이,그러니까 [자아]가 싹튼 이유가 무엇인가? 대하가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하자 초월적인 예지로 이대로는 자신의 목표가 실패한다는 것을 알 았기 때문이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자아.

그것은 종말 프로젝트로서는 최선 의 선택이었겠지만… 일한이 끼어들 게 됨으로써 상황은 전혀 달라지고 말았다.

‘흠. 그나저나 잘 풀리긴 했는데.’

일한은 멍하니 서 있는 거대 기가 스의 모습을 보았다.

상황은 최상이다.

검은 아이는 아직도 감을 못 잡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는 이미 대하 때문에 너무도 많은 무리수를 저질 렸고,그 무리수는 종말 프로젝트에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다. 종말 프

로젝트는 결국 고유의〈설정〉에 얽 매인 존재였으니까.

‘대하 이 녀석,내 생각하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상황을 해결하고 있 는데.’

일한은 대하가 종말 프로젝트를 해 결할 것이라고 예상했고,그 예상은 맞아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결과적인 이야기일 뿐 과정 이 전혀 다르다.

‘원래 예상한 건 신성이었지. 그건 좋다 이거야. 두고 왔으니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왜 열쇠를 안 쓰는 거 지?’

모든 [제약]을 풀어버린다는 가공 할 만한 효과를 가진 열쇠는 어쩌면 한 자릿수의 넘버링을 가졌을지도 모를 초월 병기.

직접 그 열쇠를 건네주었고 지금도 대하가 그걸 목에 걸고 다니는 모습 을 기억하고 있는 일한으로서는 버 그 플레이를 널리 전파하기까지 하 면서 막상 열쇠는 쓰지 않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뭐,잘하고 있으면 됐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일한은 다시 손을 들었다.

“건의 사항이 있습니다.”

-기획자 관일한이 건의 사항을 제 기합니다!

“드래곤 하트는 안 돼!”

날카로운 목소리에 미증유의 힘이 실려 있다. 마주하는 누구라도 공포 에 질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과거 대우주의 언터쳐블을 죽이고 다녔던 일한을 흔들 수는 없다.

“드래곤 하트는 상관없습니다. 하 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당연히 해야 할 걸 하지 않았군요.”

“뭘?”

방어적인 태도의 검은 아이.

“뭐긴 뭐겠습니까.”

거울 안에 보이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일한은 말했다.

“업데이트입니다.”

-사망 처리가 모두 취소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스테이지가 완벽하게 클리어되었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주어집니다.

-당신의 순위는 공동 1위(12명)입

니다.

“공동 1위가 팍 줄었네. 상위 멤버 들이 슬슬 몸을 사리나?”

아니면 버그 공략으로 자력갱생하 는 사람들이 많아져서일 수도 있다. 다행히도 종말 프로젝트는 온갖 꼬 장을 다 부릴지언정 버그를 중간에 막지는 못했다.

“아,생각하니 또 열받네.”

이미 지난 일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나는 고유세계의 내 품에 안겨 있는 드래곤 하트를 확인했다.

[관대하]

[???]

[17% 실버 하트]

“아,얼마 하지도 못했네.”

작업을 꽤 오래 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결과는 5분의 1이다. 심지어 이건 일종의 각성 상태에서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서 다시 하려고 하면 훨씬 느리게 진행될 것이다.

“거기에 드래곤 본도 모자라. 아닌 가? 에너지가 부족한 건가? 아니면 다른 공정이?”

고룡급 드래곤 본을 다 때려 박았 는데 고작 17%라는 것도 문제다. 물론 나를 방해했던 또 다른 망령룡 의 날개와 머리통이 남긴 했는데 그 거로는 20%나 채우면 다행일 것이 다.

“아… 이걸 완성하면 뭔가 될 것 같은데.”

제멋대로 실버 하트라 이름 붙여진 드래곤 하트에서 전해지는 마력양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농담이 아니라 출력 하나만 보자면 아레스 의 아이언 하트와 비교해도 꿀릴 게 없는 수준인 것이다.

물론 상성 우위 때문에 아이언 하

트가 드래곤 하트를 압도하는 성능 을 보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잘만 하면,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 다.

신(神)급 기가스를.

[혹시 망령룡이 또 나올까?]

“아마 어렵겠지.”

이미 나한테 잡혔던 놈을 회수하려 고 구출 팀을 보낼 정도니 다시 나 오기는커녕 지금과 비슷한 상황도 발생하지 않게 노력할 것이다.

“그나저나 왜 망령롱의 시체만 다 른 것들과 달랐지?”

[어디선가 포획한 건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똑같 은 녀석이 몇 마리나 나왔단 말이 지. 아,제길. 아이템 업데이트도 안 하는 녀석이 이상한 데에서만 필사 적이고. 진짜 망겜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팟!

투덜거리는 내 앞으로 커다란 자판 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늘 그랬듯 안내 메시지가 흘러나온다.

-클리어 보상으로 24조 4,140억 6,250만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포인트는 거래의 수단이며 [각성

포션],[경험치 포션],[장비],[도 구],[재료] 등을 구매할 수 있습니 다.

언제나 봤던 메시지. 그런데 그 뒤 로 여러 문구가 추가된다.

-상점이 업데이트 됩니다.

-장비가 추가됩니다.

-도구가 추가됩니다.

-재료가 추가됩니다.

“어?”

전혀 뜻밖의 내용에 깜짝 놀라 목 록을 살폈다.

놀랍게도 5클래스 마법이 걸린 마 법 무구들이 생겼다.

텔레포트 스크롤과 은신 토템. 마 법 지도 등이 생겼다.

중급 마나석과 상급 마나석이 생겼 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 지?”

있다. 그것이 있었다.

미스릴과.

아다만티움이.

“설마 버그 다 고치고 업데이트도 충실하게 해서 갓점으로 재탄생하겠 다는 의미인가?! 아,아닌가? 당연 한 업데이트를 보고 감동하는 내가 조련된 것인가?”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물론 미스릴과 아다만티움은 미친 가격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억도 조 도 아닌,경 단위의 포인트를 가진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다.

결국 나는 소리치고 말았다.

“가,갓겜!!!”

감동하고 있는 내 앞으로 또다시 새로운 텍스트가 떠오른다.

-기획자 관일한으로부터 선물이 도착합니다!

풍!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손 위에 작은 구슬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나는 기쁨도 감동도 잊고 멍청히 반문했다.

“뭐라고?”

기획자 누구?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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