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화
꼬우면 게임을 잘 만들든가.
-크아아아앙--!
들려오는 포효에 슬쩍 처마 밑으로 몸을 숨긴다. 순식간에 머리 위를 지나 멀어지는 망령통. 나는 그 모 습을 잠시 바라보다 결정했다.
“흠. 좋아. 저걸로 하자.”
[뭔 소리야? 뭘 저걸로 해? 망령 롱?]
[또 망령롱을 이용한 공략인가요?]
“그건 아냐. 망령롱을 이용한 공략 이라기보다는 공략을 이용한 결과가 망령롱이지.”
[날아다니면서 브레스만 뿜뿜 하는 놈을 잘도 써먹네.]
“이용이 아니라 결과라니까.”
그렇게 말하고 잠시 쉬고 있자 마 침내 내가 공지한 시간이 되었다. 나는 허리에 차고 있던 총기에 손을 올렸다.
-당신은 마스터 (Master) 랭크(임 시) 입니다!
-정의의 요람에 접속합니다!
-15억 1,235만 1,888명이 당신을 시청 중입니다!
“좀 줄었네.”
절로 인상이 찡그려진다. 13레벨 중급 때 그만한 폼을 보여주었는데 시청자가 줄었다는 건 뭔가 문제가 터져서 그냥 총인원 자체가 줄어들 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정의 포인트가 모자라서 추가 인
원이 줄어들었을 수도 있지. 악업을 너무 많이 쌓아서 포인트를 지원받 아도 정의 무구를 받을 수 없는 인 원이 늘었을 수도 있고.]
“하긴.”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감상에 잠기 는 것도 거기까지.
나는 공략을 시작하기로 했다. 어 차피 완벽 클리어에 성공한다면 죽 는 사람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자,그럼 공략 시작하겠습니다. 공 지했다시피 5레벨은 넘어야 합니다. 정확히는 5레벨 악령,혹은 새끼 키 메라 정도는 황금 거울이나 축복받 은 단검 없이 잡아야 한다는 말이지
요. 평균 레벨이 확 높아졌으니 충 분히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이라면 어 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식당 아주 머니도 10렙을 찍는 시대가 아니던 가?
“다만 레벨이 높아도 5레벨을 잡을 확신이 없다면 요람에서 나오지 마 세요. 공략 다 꼬여서 죽게 될 테니 까요.”
나는 어제와 비슷한 구성으로 공략 을 시작했다. 암기할 내용들을 죽 읊어주었다는 말이다.
시간에 따른 몬스터의 위치.
파밍 구간.
퍼즐의 구조와 해제 방법.
자물쇠를 풀기 위한 비밀번호 질문 과 답변 목록.
몬스터들의 패턴과 습격 위치.
입으로는 그 모든 것들을 옮어주며 몸은 공략을 이어나간다.
-키키킥! 캬캬캬! 크크크크!!!
“자. 망령이 등장했습니다. 여러분 은 당연히 저렇게 발작하고 있을 때 거울로 잡으시면 됩니다만,저는 할 게 있어서 직접 잡겠습니다.”
-원망… 원망!!! 캬하하하!!! 나는!
망령이 괴성을 지르며 덤벼든다. 영혼을 짓누르는 죽음의 기운과 몰 아치는 광기는 산 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저주의 집합!
그러나 생체력은 연마하면 연마할 수록 모든 속성에 저항하는 성질을 가지게 되는,굳이 말하면 세미 탱 커들의 수련법.
나는 녀석을 피하는 대신 마주 덤 비며 보조 무기를 꺼내 들었다. 물 론 축복받은 단검은 아니었다.
파지직!!!
번갯불이 튀자 소드 마스터도 쉽게 상대할 수 없는 최상급 망령의 몸이
일렁인다.
예로부터 벼락은 양기의 으뜸으로 귀신을 좆는 벽사(辭邪)의 상징. 내 가 잔뜩 만들어 충천해 놓은 라이트 닝 블레이드는 이런 망령들을 상대 로 꽤 높은 효율을 보여주는 무기 다.
땡크랑! 파지직! 땡그랑! 파지직!
한 대 맞고 한 대 찌른다.
나는 최상급 망령이 덤벼들 때마다 라이트닝 블레이드를 녀석의 몸에 꽂았다. 최상급 망령쯤 되면 속도가 너무나 빨라 피하며 공격을 성공시 키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영적인 추가 공격력(예를 들어 검 기)가 부족한 경천칠색이었기에 잔 뜩 쌓아놓았던 라이트닝 블레이드가 미친 듯 소모된다.
그리고 그렇게 라이트닝 블레이드 를 서른 자루쯤 썼을까?
-꺄아아악!!
결국 최상급 망령이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
“하악… 하악… 아이고 힘들어. 아, 난 유령이 너무 싫어. 잠시 쉬어가 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는다.
팟!
순간 주변이 밝아진다. 나는 나무 의자에 앉았지만 그 의자는 삽시간 에 왕관이 새겨져 있는 화려한 보좌 로 변해 푹신하게 내 몸을 받아주었 다.
-당신은 챌린저(Challenger) 랭크 입니다.
피투성이였던 몸이 빠르게 회복된 다. 보좌의 랭크가 랭크였던 만큼 금세 회복하는 몸. 나는 내친김에 간단히 식사까지 하고 공략을 이어
나갔다.
그래,그렇게 이어나갔다.
40시간 동안.
시간이 상당히 걸렸지만 사실 이 정도면 대단히 빠른 편이다. 13레벨 상급 난이도의 제한 시간은 800시 간. 스테이지의 지형과 적들을 모두 꿰고 있지 않으면 이만한 플레이 타 임은 뽑을 수 없으리라.
그리고 마침내 악령나무 앞에 서 자.
아레스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아니,잠깐. 이건… 아주 정상적인 공략법 아냐?]
[함장님,5레벨 플레이어들은 이 공략을 따라 할 수가 없습니다. 오 시면서 키메라랑 망령을 죄다 살해 하셨는데 황금 거울로 이만한 숫자 의 몬스터를 잡는다는 건…….]
스테이지에서 주 무기와 보조 무기 가 가지는 역할은 막대하다. 스테이 지 레벨에 못 미치는 존재라 하더라 도 공략이 가능한 것은 바로 이 강 력한 무기들 덕분이니까.
다만 문제는.
이 무기라는 것들이 죄다 소모품이 라는 것이다.
‘항상 빠듯하단 말이지.’
내가 13레벨 중급 스테이지에서 했던 것처럼 버그성 공략을 하지 않 는 이상 주 무기건 보조 무기건 무 조건 부족하다. 플레이어들은 스테 이지에 걸맞은 레벨의 적을 최소한 1번 이상 자력으로 쓰러뜨려야 하는 상황에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공략만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 면 문제없지만.’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지 못한다.
왜냐하면 실수하니까.
13레벨을 예로 들면 13레벨 키메 라와 망령은 거울을 4번 비추면 죽 는데,그중 한 발이라도 빗나가면
그 빗나간 한 발은 플레이어의 피와 살점으로 채워 넣어야 한다. 무수한 연습을 할 수 있다면 실수를 줄일 수 있겠지만.
‘실패=죽음인 스테이지에 재도전은 없지.’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남문에서 몸 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 했다.
“아마 여러분은 지금쯤 북문 근처 를 싹 정리한 다음 파밍과 암기를 계속하고 계실 겁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최소 2개 이상의 축복받은 단검과 1회 이상 충전된 황금 거울 을 가지고요.”
내가 40시간 동안 공략을 진행하 며 내내 주지시킨 사항이다. 자력으 로 공략이 가능한 사람이 아닌 이상 나를 따라 움직이지 말고 초반부나 탈탈 털고 있으라고.
“그럼 이제 본격적인 공략을 시작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한 공략은 당 연한 밑바탕이고,제가 준비한 건 그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는 방식입 니다. 흔히 딜 뼝이라고 부르는 방 법이지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아까 지나쳐 왔던 파밍 장소에 도착했다. 최상급 망령이 숨어 있는 것을 확인했던 보 상 상자 속이다.
그리고 설명한다.
“황금 거울로 상대를 비추면,그 거울에 비친 상대는 일종의 신성 대 미지를 입게 됩니다. 겨우 네 방 만 에 13레벨이나 되는 최상급 망령을 죽여 버릴 정도니 아주 강력한 성물 (聖物)인 셈이지요.”
사실 이 수준의 성물은 대우주 시 대에도 흔치 않다. 그냥 몇 번 비추 는 것만으로 13레벨의 강자가 죽어 버리다니? 천재가 수많은 역경과 시 간을 들여 소드 마스터가 되고 심지 어 거기에서 더 발전했는데 일반인 이 와서 총으로 쏴 죽이는 거나 다 름없다.
과학기술로 치면 3문명으로는 불가 능한 위력이다. 삼대 속성(時空無) 을 다룰 수 있는 4문명에 들어서야 가능한 이야기.
“하지만 여러분들은 당연히 이 위 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겠지요? 겨우 네 방이라고 했지만 그 네 방을 맞 추기가 힘들 테니까.”
일격은 먹이기가 쉽다. 달의 위치 를 확인해 몬스터의 위치를 숙지하 고 있다면 기습을 당할 일도 없고 먼저 적을 발견하는 게 가능하니까.
그러나 한 대를 맞추면 그 순간 13레벨의 괴물들이 미쳐 날뛰기 시 작한다. 화살. 심하면 총알 정도의
속도로 날아다니고 대뜸 돌진해 플 레이어를 살해하려 드는 것이다.
거기까지 말하고 나는 보상 상자를 거울로 비췄다.
-아프…….
과직!
비명이 터져 나오기 전에 축복받은 단검을 보상 상자에 찔러 넣는다. 단검을 두 개 찔러 넣자 13레벨로 추정되는 망령이 소멸한다.
이미 꽉꽉 채운 황금 거울의 코스 트는 감소하지 않았다. 최상급 망령 을 죽인 것은 거울이 아닌 단검이었 기 때문이다.
“사실 꽤 사기적인 함정입니다. 그 야말로 아무런 복선 없이 터지거든 요. 웬만한 능력으로는 함정 상자를 판별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나야 맞고 버텼지만 이 함정에 죽 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혹 맞고 버렸다 하더라도… 그는 부비트랩 때문에 평생 PTSD를 앓는 미군처 럼 정신적인 불구가 될 가능성이 높 다. 기본적으로 망령과 키메라의 저 주는 대상의 정신을 박살내는 효과 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파밍을 안 할 수도 없다 는 점에서 악질적이죠.”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본격적인 파
밍 전에 황금 거울부터 얻어야 하 며,보상 상자 외의 수단으로 황금 거울을 충전시켜야 한다.
상당히 번거로운 과정이지만 귀찮 다고 그냥 진행한다면 보상 상자를 열 때마다 죽음의 주사위를 굴려야 만 한다.
“대신 반대급부도 있습니다.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망령은 네 방이 아 니라 한 방이면 죽는다는 점. 축복 받은 단검으로는 여덟 방을 찔러 넣 어야 하는데 두 방이면 됩니다. 즉 상자 안에 있으면 이 녀석들은 4배 의 대미지를 받게 된다는 말인데.”
-아프…….
과직!
비명이 터져 나오기 전에 축복받은 단검을 보상 상자에 찔러 넣는다. 나는 산책하듯 걸어 다음 보상 상자 를 향해 이동했다.
“그런데 그게 사실 그렇지가 않습 니다. 사실 이 상자의 효과는 받는 피해 증가가 아니라 딜 4배 증가지 요.”
[•••그게 뭔 소리야? 너 그렇게 한 다음 다른 악령을 겨눴을 때에도 4 번 비춰야 했잖아?]
아레스의 말대로 내가 말한 과정. 그러니까 거울로 함정을 비춘 후 바
로 단검으로 쑤시는 과정을 거친다 해도 이후 황금 거울의 위력이 4배 가 되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물건의 칭호를 볼 수 있는 나 말고도 그걸 발견하는 사람들이 나왔을 것이다.
“뭐,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황금 거 울로 보상 상자를 비추면 바로 반응 이 시작되는데,그때 잽싸게 축복받 은 단검으로 망령을 찔러 죽이면 황 금 거울은 코스트도 소모되지 않고 딜만 4배로 증가하게 됩니다.”
그렇게만 말하고 잠시 기다려 본 다. 역시나 경탄의 리액션이 돌아오 지 않는다.
짐작하고 있던 일이기에 어깨를 으 쏙였다.
“다들 혼란스러워할 게 짐작되네요. 어? 아닌데? 안 그런데? 나도 해봤 는데?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아프…….
과직!
설명하며 축복받은 단검을 보상 상 자에 찔러 넣는다.
-아프…….
과직!
또 찔러 넣는다. 또 찔러 넣는다. 내가 바리바리 들고 있던 축복받은 단검은 이제 다 써버렸고 함정도 끝
이다. 맵 전체에 스무 개 정도 있는 보상 상자 중 함정은 총 6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이 황금 거울에 제약 이 걸려 있어서일 뿐 딜은 계속 증 가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이 과 정을 6번 거쳤지만 3번만 거쳐도 제약이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수준이 되지요. 즉,그때는 황금 거울을 비 추면 악령이든 키메라든 다 한 방에 죽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빠듯하던 황금 거울의 사용 횟수가 오히려 남게 된 다.
그뿐인가? 거울을 한 번 비추는
것만으로 적이 죽는다면,정말 엔간 히 방심하지 않는 이상 문제없이 스 테이지를 클리어할 수 있게 되리라.
“이것으로 공략은 끝. 이지만 증명 과정이 필요하겠지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스테이지의 중 심부에 있는 광장으로 이동했다. 이 미 경로의 몬스터를 다 죽여 버린 상태이기에 주변은 조용하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정의의 요람을 이용하고 있는 시청자들은 내 주위 3미터 내에서 자유로이 시점을 변경 할 수 있으니 내 시선을 따라 시점 을 변경할 것이다.
거기서 말한다.
“자,여기서 문제. 황금 거울의 힘 은 딜 뻥의 과정마다 4배씩 증가합 니다. 그렇다면 딜 뼝을 6번 거친 황금 거울의 대미지는 얼마나 증가 했을까요?”
-크아아아앙--!
저 먼 하늘에서부터 망령룡 레플리 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황금 거울을 들어 녀석을 겨 누고,말했다.
'답은 4,096배입니다.”
번쩍!!!!!!
순간 황금 거울로부터 눈이 멀어버 릴 것 같은 빛이 터져 나온다. 인간 을 초월한 괴력을 지닌 나조차도 두 팔이 후들거릴 정도로 황금 거울이 격동하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마침내.
쩌억!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균열음 이 터져 나온다.
-크아아아악!!!!
하늘을 쩌렁쩌렁 울리는 비명 소 리. 실눈을 떠 하늘을 을려다보니,
새하얗게 빛나고 있는 레플리가 보 인다.
“와. 저것만 보면 무슨 신의 사자 같네.”
그러나 현실은 망령룡.
잠시 휘청거리던 레플리의 몸이 이 내 추락하기 시작했다.
쿵! 과과광!!!!
거대한 망령롱의 육신이 도시를 파 괴하며 바닥을 구른다.
그 즉시 알림이 떠오른다.
-14억 3,843만 6,777명이 당신에 게 경탄합니다!
-정의 포인트가 79억 1,222만
3,924점 누적됩니다!
들어오는 정의 포인트가 줄었지만 별로 섭섭하지는 않다. 당장 목숨 보전하기도 어려운 녀석들이 쓰지도 않는 내 정의 무구를 강화해 줘봐야 껍껍할 뿐이었기 때문.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른 글자체의 텍스트가 떠오른다.
-시스템이 일부 업데이트됩니다.
-특정 플레이어가 비정상적인 방 법으로 NPC를 사냥했음이 확인되
었습니다!
-망령룡 레플리가 더 이상 등장하 지 않습니다!
“음? 뭐지?”
예상치 못한 알림에 고개를 갸웃거 린다.
“…왜 굳이?”
스테이지는 뭔가 추가 조건을 클리 어한다고 보상을 더 주는 그런 게임 이 아니다. 추가 보상을 얻는 방법 은 반복 노가다뿐인 망겜인 것이다.
내가 망령롱을 잡은 것은 어디까지 나 끝까지 증폭한 황금 거울의 딜을
확인하고 싶어서였지,뭔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말.
그런데 이렇게나 급하게 적용한 패 치 내용이 딜 증폭을 막는 것도 아 니고 망령롱의 등장을 막는 것이라 니?
“설마?”
그 순간 번개처럼 머리를 치고 지 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도시의 남 서쪽 건물들이 일직선으로 파괴되어 있었기에 헤멜 필요가 없다.
“설마!!!”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다.
도달한 그곳에는… 하얗게 불타고 있는 거대한 망령룡의 시체가 있었 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