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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 2부-73화 (190/249)

73 화

나는 온갖 디스플레이에 비치는 다 양한 사람들을 가만히 앉아 지켜보 았다. 핸드폰을 보며 거리를 걷는 사람. 잔뜩 흥분해서 떠들고 있는 사람.

그리고.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 사람들,

나는 참지 못하고 신음했다.

“와 출근 무섭다. 직장인 대단해.”

그러나 아레스는 콧방귀를 뀐다.

[어차피 대부분은 스테이지에서 아 무것도 못 하고 죽었을 거 아냐? 스테이지 기억이 없으면 몇 달 전 하고 똑같은데 출근 못 할 것도 없 지.]

“그렇게 말하면 또 그렇기도 하지 만.”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금요일 오 전 8시.

우습게도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생산 기종은 어떻게 하시겠습니

까?]

“뭐 일단은 헌터하고 버서커 중심 으로 해줘. 고블린은 이미 너무 많 으니.”

[확실히.]

아레스가 말했다.

[많긴 많지.]

녀석의 말에 나는 내 아래에 광활 하게 펼쳐진 강철의 산맥을 바라보 았다.

그렇다. 산맥.

나는 거대한 강철의 산맥 위에 앉 아 있다.

“지니,이거 총 몇 대지?”

[5,000만대가 좀 안 됩니다.]

“우리나라에 다 풀면 1인 1아바타 가 가능할 지경이라니… 당연히 다 시 고유세계로 넣는 건 안 되겠지?”

내 질문에 지니가 큰 충격을 받은 듯 목소리를 떨었다.

[지금 밀리고 밀린 투입 리스트가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말씀을……J

“하긴. 하루 몇 톤 넣지도 못하는 데 말이야.”

이번 스테이지에서 나는 평소처럼 광화문 광장이나 경복궁에서 플레이 를 시작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러면 안 된다. 경복궁에서 했으면 경복궁

결계가 다 터져 나갔을 테고 광화문 광장에서 시작했으면 수십만 명이 죽었을 것이다.

[스테이지가 끝나는 순간 알바트로 스함이 한순간 균형을 잃을 정도였 지요.]

“엄살은.”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 다. 모처럼 나왔으니 사람 구경이나 가야겠다.

“아,맞아! 나이트도 업그레이드시 켜 줘! 알바트로스함에는 영혼로랑 영자 회랑이 있으니 가능하지?”

[물론입니다 함장님. 중량은 어떻

게 할까요?]

“5톤이 넘어도 괜찮으니까 튼튼하 게만 부탁해!”

[알겠습니다. 아,영력이 떨어졌으 니 공유 부탁드립니다.]

“뭐,벌써? 오케이.”

고개를 끄덕인 나는 내 몸 안에 있던 모든 정령력과 오오라를 고유 세계의 육신으로 보냈다. 그 외 모 든 상태를 유지한 채 오직 지닌 힘 의 [상태]만이 오간다.

‘진짜 상태 공유는 아무리 봐도 말 이 안 된단 말이야.’

언터쳐블조차도 눈 아래로 내려다

볼 절대 신격. 정령신으로부터 선물 받은 고유세계는 권능 그 자체에 또 다른 육신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그냥 육체가 2개가 되어서 영혼이 날아다니는 그런 저열한 수 준의 권능이 아니라 ‘나’라고 하는 존재의 좌표를 증식시킨 것에 가깝 다. 좌표는 틀림없이 하나인데 거기 에 존재하는 육신도,세계도 2개라 는 불가해한 현상.

사실 정말로 말이 안 되는 건 상 태 공유를 스테이지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완전 무용지물이 되는 건 아니지 만… 아무리 그래도 정령신의 권능

을 차단할 수 있다니.”

현실의 육신과 고유세계의 육신은 모든 상태를 임의로 공유할 수 있 다. 즉,한쪽 육신이 내리 잠을 자 면 한쪽 육체는 잠을 안 자도 상관 없고 한쪽 육신이 밥을 두 배씩 먹 으면 나머지 육신은 영원히 식사할 필요가 없다는 말.

그뿐이 아니다.

현실의 육신이 어깨가 박살 나고 고유세계의 육신은 다리가 박살 나 도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상처를 교환할 수도,한쪽에 몰아 넣을 수 도 있다. 독에 중독되어도 두 육체 로 나눠서 부담할 수 있고,심지어

한쪽에서는 운동하고 한쪽에서는 휴 식해 둘 모두의 이득만 취하는 것조 차 가능한 것.

그런데 그 권능이,절대 신격의 권 능이 스테이지에서는 차단된다.

‘역시 언네임드겠지.’

이름 지어지지 않은 자. 비설정(非 設定)의 존재.

기이하고,끔찍하고,종잡을 수 없 는 그들은 대우주의 설정에 편입되 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에 세상의 법 칙과 이치를 무시한다고 알려져 있 다. 녀석들이라면 절대 신격의 권능 을 차단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겠 지.

‘그러고 보면 후안 녀석도 그래.’

나는 녀석이 알바트로스함으로 침 입해 왔을 때를 떠올렸다.

“이름이 뭐야?”

“후안이다. 후안 언네임드 니에또. ”

녀석의 외모를 생각해 보면,아마 도 녀석은 멕시코인일 것이다. 본인 의 이름+아버지의 성(姓)+어머니의 성(姓)으로 지은 이름만 봐도 그렇 다.

‘여기서 문제는 아버지의 성이지. 성이 언네임드라니. 너무 노골적이

야.’

즉 녀석은 처음부터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인간과 언네임드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후안이 라 할 수 있겠지.

“방으로 보내줘.”

[잘 놀다 오시길.]

인사와 함께 배경이 변한다.

“아,그러고 보니 고유세계에 있는 몸에 시간 정지 안 걸었지?”

내 물음에 아레스가 답했다.

[시간 정지는 왜? 헬스라도 해줘?]

아레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

다.

“아니,됐어. 매크로 헬스가 개꿀이 어도 이렇게까지 헛되면 안 하는 게 낫겠지.”

[매크로 헬스? 너 어감이 맘에 안 든다?]

투덜거리는 아레스의 말에 쓰게 웃 는다.

“됐으니까 둬. 지금 철 좀 더 든다 고 크게 달라질 것도 아니니.”

나는 준비 되어 있던 옷으로 갈아 입고 방을 나섰다. 내가 머무는 곳 은 여전히 강녕전이지만,예전과 달 리 한 층에 머무는 게 나 혼자일

정도의 초호화 객실로 변경된 상태.

심지어 담당 궁녀가 머무는 객실이 따로 딸려 있다.

달칵.

“와. 무슨 5분 대기조야r

“5분이면 너무 늦어. 10초 이내에 나올 수 있어야 해.”

내가 열고 나온 방의 맞은편 문이 열리고 나타난 것은 궁녀복을 입고 있는 선애.

[원일고등학교]

[8 레벨]

[권법 숙련자 이선애]

10레벨 스테이지를 클리어했을 텐 데도 그녀의 레벨은 겨우 8에 도달 한 상태. 그러나 또 다른 레벨은 다 르다.

[10 레벨]

다른 정보 없이 오직 레벨만 보이 는 스테이지의 정보창에는 저렇게 표시되어 있다. 아마 다른 플레이어 들의 눈에는 저 레벨만이 보일 것이 다.

‘역량이 스탯을 따라가지 못하는 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10레벨 스 테이지를 클리어했지만 그건 어디까 지나 [공략]의 덕분이지,그들이 정 말로 완성자의 경지에 이르러서가 아니다. 경험치 포션을 구입해 레벨 을 올리면 스탯이야 올릴 수 있겠지 만,대단한 천재가 아닌 이상 그 스 탯에 맞는 역량을 키우는 데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꼬꼬!”

“엥?”

나는 열린 문을 통해 쪼르르 달려

오는 닭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 다. 왠지 눈에 익은 녀석. 선애의 표정이 자상하게 풀린다.

“오구오구! 아리 나왔쪄? 엄마 나 갔다 올 테니까 집에서 쉬고 있어.”

“꼬!”

마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몸 을 돌려 쪼르륵 문 안으로 들어가는 닭. 나는 어이가 없어 물었다.

“뭐야? 저 닭을 설마 집에서 키우 는 거야?”

“뭐래,지가 줘놓고는.”

“아니,그렇긴 하지만……. 그냥 닭 이잖아?”

좀 특이하게 생기긴 했지만 내가 재석이한테 달라고 한 건 결국 가축 들이었는데?

황당해하는 내 모습에 선애는 발끈 했다.

“아리는 그냥 닭이 아니야! 백봉오 골계거든!”

‘백봉오골계가 뭐야?’

내 질문에 지니가 대답한다.

[백봉오골계. 오골계 중 온몸의 깃 털이 새하얗고 살과 혀,뼈와 내장 은 온통 검은색인 약용계입니다. 동 의보감에 ‘백모오골이 좋다’고 언급 됐을 정도로 귀한 약재로 쓰이는 닭

이지요. ‘왕의 보양식’이라고 합니 다.]

‘뭔가 엄청나다는 듯 말하지만 결 국 식용이잖아.’

[물론 그렇습니다.]

나는 전에 받은 700마리. 아니,정 확히 699마리의 닭이 이미 다 내 배 속에 들어갔다는 것을 기억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뭐,반려동물이 따 로 있나. 정 주면 그게 반려동물이 지.

“뭐,아리는 네가 신경 쓸 일 아니 고 선배가 말 좀 전해달래.”

“무슨 말?”

“한번 만나고 싶은데 괜찮냐고. 찾 아올 필요는 없고 허락해 주면 찾아 오겠다던데.”

그녀의 말에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하라고 해. 마침 쉬려던 중이니.”

그렇게 말하고 계단을 내려간다. 산책 겸 사람 구경 하러 광화문 광 장이나 가보려는 것이다. 이가는 광 화문 광장이 바로 앞에 있어서 산책 하기 참 좋다. 이면세계에서 빠져나 오면 바로 경복궁이니까.

팟!

삽시간에 표면세계로 빠져나오자 선애가 혀를 찬다.

“와 경복궁에서 표면세계로 직접 이동하는 건 절대 금지 사항이었는 데.”

그때 끼어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별 의미 없는 규칙이다. 알게 모 르게 직위 좀 되는 이들은 어겨왔다 고 하더군.”

“선배?”

어느새 우리 옆에는 민경이 도착한 상태다. 한창 바쁠 시기라는 걸 생 각해 보면 놀라울 정도로 빠른 반응

이다.

“선배라,뭐 이해 못 할 바는 아니 지만……. 너도 참 여전하구나.”

선애를 보며 쓰게 웃은 민경이 나 를 보며 꾸벅 고개를 숙인다.

[대한제국]

[11 레벨]

[황녀 이민경]

레벨을 보고 내심 휘파람을 불었 다. 못 본 사이에 그녀가 벽을 넘어 섰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는 완성자. 인류 정상급 강자다.

‘뭐,이유는 알겠군.’

원래도 성숙한 미모를 뽐내던 민경 이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은 고등학 생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성숙했 다.

‘이십대 중반… 아니 어쩌면 후반 일지도.’

그런 생각을 하는데 정중히 고개를 숙인 민경이 인사한다.

“오랜만입니다.”

“그래.”

대충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관광 객인 척 상당한 거리를 두고 서 있 는 민경의 호위들이 움찔거리는 모

습이 보였지만 무시한다. 이미 들은 말이 있는 듯 그들도 인상만 찡그릴 뿐 감히 나에게 뭐라 하지는 못했 다.

“전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을게요.”

“부탁한다.”

민경의 말에 선애가 조용히 사람들 속에 녹아든다. 어느새 그녀의 궁녀 복은 평범한 교복으로 바뀌어 있었 기에 누구의 시선도 끌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그렇게 민경에게 묻는 순간.

갑자기 사람들 사이에서 익숙한 이 름이 들린다.

“배재석? 그놈이 미쳤군. 장사치 따위가 어디 긴급 요청을.”

“하지만 단장님,황녀님께서 그 재 벌 손자 놈을 제법 중히 쓰시고 있 습니다.”

“하… 정말 말세긴 말세군. 영능에 입문도 못 하던 천것이 일반인들 모 아서 세상모르고 나대다니.”

시기에 가득 찬 목소리에 잠시 말 을 멈춘다. 내 앞에 서 있던 민경 역시 그 말을 들은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추한 꼴을 보여 죄송합니다. 변명 을 하자면 쓸 만한 녀석들은 다 할

일이 많아서.”

“호위 같은 허례허식에는 저런 것 들을 데리고 다닌다는 건가.”

“운검단은 이가 최대 세력이니까 요. 결국 품어야 할 사람들이지요.”

그녀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인 다. 그녀가 이가를 어떻게 이끌지에 대해서는 관심 없고,그보다는 다른 것에 관심이 간다.

“마침 근처라면 재석이도 부르자. 얼굴 본 지 너무너무 오래돼서 보고 싶네.”

“너무너무 오래라면……

민경이 내 얼굴을 가만히 뜯어보는

게 느껴진다.

“왜?”

“역시 당신도 오래 있었군요.”

“당연한 소리를.”

민경 역시 내가 철가면이라는 사실 을 아는 사람이다. 현재 전 세계에 서 가장 유명한 플레이어인 내가 상 위 랭커라는 걸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겠지.

“하지만 당신의 모습은.”

“아하.”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 왜냐하면 당장 그녀만 해도 더 이상 고등학생이 아닌 성숙한 여인이 되

어 있는데 내 모습은 그대로일 테니 까.

하지만 웃기는 이야기다.

“이제 와서 불로(不老) 따위가 신 기해?”

한 번 문을 열 때마다 올 스랫이 100씩 올라가는 몸뚱이다. 나이를 먹지 않는 것 따위는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는다.

“하긴 그렇겠군요.”

“재석이나 불러줘.”

내 말에 민경이 고개를 돌려 입술 을 달싹거린다. 멀리에서 애송이 녀 석들이 깜짝 놀라 허둥대는 모습이

보이더니 잠시 후 한 무리의 사람들 이 다가온다.

사람들의 술렁임이 느껴진다.

“아니.”

“이런 미친.”

“말도 안 돼……

운검단뿐만 아니라 경복궁을 거닐 던 사람들 모두 기겁해 비명을 지른 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무언가를 보았다는 반응.

재석을 무시하던 운검단 녀석들은 사람들 가운데 있는 사내를 보고 신 음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거짓말. 거짓말! 이건 불가능해!”

“정말,정말로 저 녀석이 몇 달 전 만 해도 입문도 못 했던 일반인이라 고?”

술렁이는 사람들을 뚫고 녀석이 모 습을 드러냈다.

2미터가 넘는 키. 떡 벌어진 어깨. 그리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잘록한 허리와 기다란 팔다리.

마치 극도로 압축된 강철처럼 단단 해 보이는 사내는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대하야!!!”

나는 녀석을 보고 어이가 없어 웃

었다.

“와.”

녀석의 머리 위에는 이런 글자가 떠 있다.

[일성]

[15 레벨]

[고행자 배재석]

지금은 사라진 우리 형과 맞먹는.

말하자면… 인류 최강급 강자가 그 곳에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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