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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 2부-65화 (182/249)

65 화

마침내 스테이지에서 빠져나왔을 때,내가 돌아온 장소가 지구가 아 니었다.

웅성웅성.

새까만 어둠 속에 무수히 많은 불 빛이 흩어져 있다.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를 보는 것 같은 엄청난 숫자 다.

[무지의 장막에 들어섰습니다.]

“무지의 장막?”

무심코 입을 열었지만,그것이 말 의 형태로 귀로 와 닿지는 않는다. 이미 내가 인간이 아니라 빛의 형상 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이건.”

그러나 이 어둠 속에 잔뜩 흩어져 있는 불빛들과 내 모습은 다르다.

고오오——!

거대한 빛이 주변을 밝힌다. 광원

은 무엇도 아닌 나 자신. 사방을 뒤 덮고 있던 어둠이 나로부터 뿜어지 는 빛에 밀려 멀찍이 물러난다.

“뭐야? 당신은 누구야? 날 내보내 줘!”

“웃기지 마! 이 타이밍에 신이라니 그런 작위적인 소리를 믿을 것 같 아!?”

“당신은 천사님인가요……?”

내 빛에 밀려난 어둠 안에 있던 불빛들이 인간의 형상으로 변한다. 나는 그제야 어둠 속 가득히 떠 있 는 무수한 빛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저게 다 사람들의 영체,혹은 정 신체인 건가.”

나는 의식을 집중해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내 영역 안으로 들어온 정신체의 숫자는 대충 봐도 수백이 넘었는데,그들 모두가 세 명의 존 재와 마주하고 있다.

‘저건.’

그들은 마치 인간처럼 보였지만, 인간이 아니다.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

여섯 장의 거대한 날개를 펼친 천 사.

까맣게 빛나는 석판을 안고 있는 노인.

그들은 마주한 이들에게 오만한 목 소리로 선언한다.

-나는 [정의]다.

-나는 [진실]이다.

-나는 [명예]로다.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린다. 왜냐하 면,내 영역 안에 있는 모든 불빛의 앞에 그들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와 저건.”

절로 신음이 나온다.

[후안]

[30 레벨]

[정의]

伴안]

[30 레벨]

[진실]

[후안]

[30레벨]

[명예]

‘30레벨이라니.’

인간이 어떠한 영능을 갈고닦아 완 성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레벨이 대 체적으로 10레벨이며,완성을 뛰어 넘어 초월의 경지에 도달,하급 신 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그것이 바로 20레벨이다.

즉 30레벨이라는 것은 초월의 경 지를 또다시 뛰어넘어 새로운 경지 에 도달했다는 것이며.

대우주에도 흔치 않은 중급 신. 황 제 클래스의 강자라는 것을 뜻한다.

그들이 어디에서 나타난 존재인지 는 궁금해할 것도 없다. 그들의 소 속이 모든 것을 알려주고 있었기 때 문이다.

“후안이군.”

알바트로스함에 찾아왔을 때부터 비범한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건 상식을 벗 어난다. 황제 클래스의 존재를 이렇 게 간단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니. 대우주 전체를 뒤져봐도 흔치 않은 경우가 아닌가?

나는 놀람을 가라앉히고 그들이 사 람들과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다.

-주께서는 멸망의 기로에 선 인류 를 긍홀히 여기사. 기회를 주기로 하셨다.

-그러나 지금의 인류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우 리는 판단한다.

-그러므로,우리가 너희를 훈육(訓 育)하겠노라. 너희들을 분류해 상을 주고,또 벌을 내리겠노라. 주의 은 혜를 받기에 적합한 존재로 만들겠 다.

대화라고는 하지만 통보에 가까운 태도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애원하 고,부정하고 심지어 비아냥거리거 나 비난하기까지 했지만,그들은 아

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할 말만 했 다.

[정말로 무지의 장막에 아무런 영 향도 받지 않으시는군요.]

“음?”

나는 가까이에서 들려온 여인의 목 소리에 의식을 집중했다. 내 곁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그 목소리를 인 식하자 내 앞에 그 대상의 모습이 나타난다.

“정의… 인가?”

[알아봐 줘서 영광이라고 해야 할 까요,신생자(하호구)시여.]

‘신생자라.’

맘에 들지 않는 호칭에 내심 헛웃 음이 나왔지만,나는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그러니 까 [정의]의 말을 반박하는 대신 물 었다.

“무지의 장막이 뭐지?”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입니다. 스스로 에 대한 정보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지요.]

“스스로에 대한 정보로부터 격리한 다?”

[이 장소에서 그들은 평소와 똑같 은 가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그들은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 인지,부자인지 거지인지,흑인인지 백인인지, 기독교인지 이슬람교인지 알지 못하지요.]

그녀의 말을 듣고 다시 주변에 시 선을 돌렸다.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세 명의 중 급 신과 대면하고 있던 사람들이었 는데,완전히 달라진 분위기를 보아 하니 아무래도 이 공간은 시간의 흐 름이 뒤죽박죽인 모양이다.

그들은 서로 모여서 대화를 나누 고,특이하게도 손을 들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있다.

“아니,마음은 이해하는데 너무 가 혹한 잣대 아닙니까? 실제로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혼자 사고 난 것 뿐인데.”

“맞아요. 상사가 억지로 먹인 술이 잖아요. 게다가 완전 새벽이라 교통 편도 별로 없었고요.”

“가정환경이 별로 안 좋아서 대리 를 부르기에도 부담이 됐을 거 같은 데.”

몇몇 사람이 안쓰럽다는 둣 변호했 지만 모든 사람이 그들과 같은 의견 은 아니다.

“음주 운전은 살인미수랑 동급으로 생각될 만한 범죄 아닌가요?”

“맞아. 충분히 살인미수급이지!”

떠들어대는 사람들에게 의식을 집 중하자 새로운 시야가 펼쳐진다. 어 떤 사람이 술을 마시고 차에 타더니 상가에 들이받고 멈추는 장면. 그리 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다시 이 야기를 시작한다.

“너무 과한 혐오가 아닐까요?”

“과하다니. 음주 운전한 놈 혐오하 면 안 됨?”

“음주 운전 존나 위험한 건더L 면 허도 없는 내가 봐도 졸라 위험해

보이는데 허허.”

홍분해 소리치는 몇몇 사람들. 그 런데 나는 그들을 살펴보다 특이한 점을 하나 깨달았다.

음주 운전이 살인미수라고 고래고 래 소리를 치는 사람 중 하나가,바 로 음주 운전을 한 사람과 동일인이 라는 사실을.

“허.”

나는 그제야 ‘무지의 장막’의 효과 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내로남불 방지인 건가?”

[타인에게는 칼같이 엄격하면서 자 신에게는 끝없이 관대한 것이 바로

인간이니까요. 그 때문에 저희는 자 신의 이득,소속,사상이나 입장 모 두에서 자유로운 원초적 입장을 그 들에게 강제했습니다.]

나는 어둠 속을 가득히 메우고 있 는 수많은. 어쩌면 [인류 전체]일지 도 모르는 정신체들의 모습을 보았 다.

그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완 전히 벗어나,심지어 스스로의 입장 마저 초월하여 서로 떠들고,토론하 고,투표하고 있다.

정의는 설명했다.

[주께서는 업(業)에 연관되지 않은 가치판단을 저울 위로 올리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판단하셨습니다. 정의 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또 환경에 따라 제각각이기 때문이지요. 따라 서 모호한 개념들에 관한 판단은 인 간 스스로가 내리도록 결정하셨습니 다.]

“업에 연관된 가치판단은 또 뭔 데?”

[실질적인 섭리가 관여하는 부분을 말합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 면 살생(殺生)과 같은 악업(惡業), 자기희생儀性)과 같은 선업(善 業),수행(修行)과 같은 중립의 업 등이지요. 그것들은 실존하는 현상 이므로 주께서도 그저 반영할 뿐 간

섭하실 생각이 없으시다 하셨습니 다.]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다시 사람 들을 보았다.

“세상에! 오직 국가만을 위해 헌신 한다더니,이런 파렴치한이었다니!”

“어라. 이 녀석 생각보다 나쁜 사

람은 아니었군……

“세상에! 이게 무고였다고? 저 사

람은 그야말로 매장이 되었는데!”

“저 살인마! 인간쓰레기!!! 저런 말

종은 심판받아야 해!”

무수히 많은 사람이 무수히 많은 사건을 지켜보며 손을 들어 견해를

밝히고 있다. 개인 정보 보호 따위 는 없다. 본인 말고는 누구도 모르 는 비밀과 죄악,혹은 선행들이 모 두에게 까발려지고 있다.

[현재 300년째 토론과 투표를 진 행 중입니다. 투표도 투표지만 토론 에 엄청난 시간이 소모되는군요. 생 각 이상으로 모두 의욕이 넘쳐서 1000년은 더 필요할 듯합니다.]

“벌써 300년?”

시간의 흐름이 제멋대로라고는 느 꼈지만,아무리 그래도 이 무슨 미 친 규모란 말인가?

“이걸 지구 전체에 하고 있다고?”

황당해하는 나를 보며 정의가 말한 다.

[어차피 기억은 매일 갱신하고 있 으니 자아에 영향이 갈 일은 없을 겁니다. 더불어 이 안의 모든 기억 은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습니 다. 그들이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기 억이 있다면 최초에 들은 안내와 답 변뿐.]

나는 잠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사람의 머리 위에 천칭이 둥 둥 떠 있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혹은 자신의 견해에 의해 한 쪽으로 기울고 있다.

“대체 뭘 하고 싶은 거지?”

[주(主)의 뜻에 따라 인류를 돕는 것.]

확실히 지금 인류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긴 하다.

10레벨에 도달하면서,종말 프로젝 트는 도저히 보편적인 인류가 따라 잡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막 말로 다음 스테이지의 적으로 소드 마스터가 나와도 이상할 게 없다.

‘보편적 인류는 고사하고 엄밀하게 말하면 나도 정정당당하게는 못 이 길 지경이지.’

물론 9레벨 상급 시험의 보스,오

우거 전사는 10레벨이었고 나는 녀 석을 무수히 많이 잡았지만,그건 내가 녀석을 [공략]하거나,혹은 나 폴레옹의 아이언 하트에서 뿜어져 나온 강대한 영자력과 어빌리티를 활용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직도 나 스스로의 역량은 입문자 ->숙련자-〉전문가-〉완성자의 등급 중 전문가에 머물고 있을 뿐이니까.

그런데.

“…이게 인류를 돕는 행위라고? 지 금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하루를 더 살아남을 힘이지 도덕성의 회복 따 위가 아닐 텐데.”

그러나 내 의문을 예상했다는 듯

정의가 웃음소리를 낸다. 새하얀 피 부에 붉은 입술이 구부러지는 것이 퍽 매혹적으로 보였다.

[이 행위 자체가 도움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저 도움을 주기 전 행해지 는 분류일 따름이지요.]

“분류?”

[그렇습니다. 그들이 정의롭게 행 동한다면,진실하게 행동한다면,명 예를 위해 전력투구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힘을 줄 것입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그들이 대상이 누구든 단지 정의롭고,진실 하고 명예를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 로 힘을 준다면 그건 틀림없이 인류

에게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 금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에게 힘을 주는 것일 테 니까.

하지만 문제가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어떻게 되지?”

[인류가 정의롭지 못하고,진실하 지 않고,명예로운 존재가 아니라 면?]

“그래.”

너무나 간단한 이야기다.

정의로운 인간보다는 그렇지 못한 인간이 더 많을 것이고,누구나 살 아가다 보면 거짓말을 하며 명예를

얻는 것 역시 절대 쉬운 일이 아니 니까.

내 대답에 정의 옆으로 다른 존재 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여섯 장의 날개를 가진 굳건한 인상의 천사와 까맣게 빛나는 거대한 석판을 안고 있는 노인.

정의가 먼저 말했다.

[아직은 ‘진짜’ 벌을 내릴 생각이 없습니다. 이제 막 강림한 우리가 지금까지의 모든 죄를 소급 적용하 는 것 또한 불합리한 일일 테니까 요.]

진실이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일을 없 었던 것으로 할 수는 없지.]

명예가 말한다.

[허허허. 맞네,맞아. 그래서야 주 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 는 꼴이지.]

웅!

세 명의 중급 신에게서 강렬한 기 운이 뿜어진다. 어느새 꺼내 든 정 의의 황금빛 저울이,진실의 은빛 검이, 명예의 칠흑빛 석판이 징징 울리기 시작한다.

[불의를 행한 이들은 그 불의가 몸

에 새겨져 누구에게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거짓을 말하고 살아온 이들은 누 구나 알 수 있게 코가 길어질 것이 다.]

[불명예한 자들은 그 어느 장소에 서도 편히 앉고 눕지 못할 것이다.]

그 순간,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선언한 순간,지구에 지금 껏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법칙] 이 생겼다는 것을.

‘이건.’

기가 막혀서 숨을 들이켰다.

‘저들의 한 일이 아니다.’

이건 중급 신 정도가 휘두를 힘이 아니다. 언터쳐를 중에서도 상당한 위계를 가진 존재여야 흉내 낼 수 있는 고위 권능.

자연스럽게 알바트로스함에 찾아왔 던 후안의 얼굴이 떠오른다.

‘언터쳐블급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 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라고?’

당황하는 나를 보며 정의가 말을 잇는다.

[아마 당신에게는 새로운 법칙이 잘 먹히지 않겠지요. 보통의 인류와 는 격이 다른 신생자이니까요.]

[그러나 조심하라. 그대가 혹여 허

튼짓을 한다면.]

[주께서,그리고 우리가 가만히 있 지 않을 것이다.]

팟!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배경이 변한 다.

어느새 나는 광화문 광장에 서 있 었다.

“으악!! 이게 뭐야!?”

그 즉시 비명이 터져 나온다. 돌아 보니 멀끔하게 차려입은 어떤 사내 가 새파래진 얼굴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건.”

그의 얼굴에 어린아이를 때리는 사 내의 모습을 형상화한 문신이 새겨 져 있다. 그 문신은 너무나 생생해 서,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다.

‘아니,그게 아니라 정말로 움직이 잖아!?’

어이없게도 그의 얼굴에 새겨진 사 내의 문신이 움직여 아이를 때리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아니야! 아니야!!! 이,이건 거짓 말! 엉터리야!”

비명을 지르는 여인의 코가 엄청나 다. 생긴 건 그냥 평범한 동양인인

데,코의 길이가 15센티가 넘는다.

“으악! 따가워!! 이,이 의자는 뭐 야?!”

스테이지를 시작하기 전 무슨 피켓 을 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 던 목사가 가시가 돋아난 의자에서 황급히 일어선다.

의자는 그가 몸을 일으키자 스르륵 사라져 버린다.

“코, 코가! 코가!!”

“이 문신은 뭐야!?”

나는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는 비 명을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행인지 불행인지 내 피부는 깨끗하

다. 바로 이 장소에서 10만 명의 인 간을 학살했음에도 그랬다.

“녀석들이 정말,이게 정말… 도움 이,구원이 될 수 있을까?”

미심쩍은 느낌에 혀를 찼지만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후안이 무 엇을 하건,또 사람들이 어떻게 되 건 사실 크게 관심 없으니까. 스테 이지 공략에 방해만 안 되면 된다.

“나는 나 나름대로 인류를 구할 방 법이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막 두근거린다. 왜냐하면,드디어 준비 가 다 끝났기 때문이다.

오늘. 혹은 내일 벌어지는 중급 스 테이지를 공략할 때면.

드디어 배럭 (Barracks) 빌드가 완 성될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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