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화
나는 아사(載死)한 것이다.
그것도 두 눈 똑바로 뜨고 움직이 던 와중에!
“배고파.”
그러나 [나]는 그런 그들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그저 멍하니 중 얼거리고 있을 뿐이다. 바닥에 주저 앉은 몸은 파들파들 떨리고 있다.
아레스와 지니가 나를 나무란다.
[생체력을 마냥 좋게 생각하지 마! 많이 먹는 만큼 힘을 낼 수 있다는 건 그 반대급부도 있다는 이야기니 까!]
[생체력은 내공 사용자의 심마라던 가 마나 폭주 같은 위험은 없지만 충분한 식사가 필수적입니다. 하지 만 설마 정말로 아사할 때까지 싸우 실 수 있다니……. 제가 함장님을 과소평가했군요.]
[여기까지 해. 어차피 모든 사람을 다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닌…….]
“배… 고파.”
신음과 함께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아레스와 지니의 타박이 멈춘다.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배고 파배 고파배 고파배 고파!!!!! ”
[하,함장님?]
힘없던 신음에 점차 신경질이 섞이 기 시작한다. 아레스와 지니가 당황 하는 사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 다.
“목말라”
[대하야? 뭐야 너. 왜 맛이 갔어?]
“목말라! 목마르다고! 목말라목말 라목말라목말라!!!!!!”
버럭버럭 소리를 지른다. 얼굴은
볼 수 없어도 잔뜩 일그러진 표정이 느껴진다.
“이게 뭐야! 엄청 배고프잖아! 목 마르잖아!! 짜증 나게!”
벌떡 일어났다가 휘청하고 다시 주 저앉는다.
그리고 그때였다.
“크와앙!!”
괴성과 함께 오우거 한 마리가 모 습을 드러낸다. 녀석은 내 모습을 발견하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돌진하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뭐야! 꺼져!”
웅!
경천칠색이 발동한다. 온몸을 휘도 는 청색.
그러나 그 빛은 곧 꺼진다.
“헉!”
[나]는 신음을 토하며 바닥에 쓰러 졌다.
청색이 육신의 힘이 아닌 소유자의 마나를 주로 사용하는 기술이기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생 체력의 식이다. 신체 자원을 [전혜 소모하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그렇기에 경천칠색을 사용하면 배 가 고파지게 되며.
지금의 나에게 허기란 고통이다.
쾅!
오우거가 내 머리통을 후려쳤다. 물론 성공했다는 말은 아니다. 마치 마술처럼 모습을 드러낸 은빛의 기 운이 녀석의 손을 막았다.
“쿠어?”
오우거가 당황하는 소리가 들린다. 녀석은 양손을 휘둘러 주변에 안개 처럼 자욱하게 퍼진 은빛을 흩어내 려 했지만,그보다 은색의 기운. 오 오라가 속성으로 구현되는 것이 훨 씬 더 빨랐다.
좌앙! 과드득!
안개처럼 퍼져 있던 은빛이 삽시간 에 수천 개의 도검으로 변해 오우거 의 몸을 갈가리 찢어버린다. 흩어지 는 핏물 속에서,[내]가 소리친다.
“아파! 아프다고! 배가 아파!!!”
사실 그건 배가 아픈 것이 아니다. 그저 지나친 허기가 그렇게 느껴지 는 것뿐이지.
녀석이 소리쳤다.
“아레스!!!!”
우우우응一!
거대한 영력이 휘몰아친다.
“와라!! 아레싀!!”
재차 소리친다.
[저,저기 대하야?]
“오라고!!!”
영력이 휘몰아친다. 그것은 강대한 언령.
그러나 그뿐이다.
[저기, 나 그쪽 세상으로는 못 가.]
언령으로는 절대명령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럴 [권한]이 없다.
계엄령을 명령할 수 있는 건 대통 령이지 돈 많은 졸부 따위가 아니 다.
“이익……! 여기 뭐야! 배고파! 먹
을 건 없어?”
[근처에 찾아보시면 열매가…….]
지니의 안내에 [내]가 붕 하고 떠 을라 숲을 뒤지기 시작한다.
“우어어어!!”
물론 그 와중에 덤비는 오우거들이 있었지만.
과작!!!
주변을 뒤덮은 살벌한 금속의 오오 라에 갈가리 찢어진다. 1천이 넘는 영력은 그 사용법이 일천하다 하더 라도 살인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흐엉……. 배고파!”
정신 집중이 제대로 안 되는지 비
틀거리기까지 하는 [나]. 심지어 나 는 내 볼을 따라 흐르는 축축함을 느꼈다.
‘이게 뭐야.’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미친……. 운다고?’
내가 황당해하는 와중 녀석이 숲에 있던 열매를 찾아낸다.
녀석은 반색하며 열매를 한입 씹어 먹었지만.
바로 그것을 뱉어내고는 바닥에 내 던졌다.
“젠장 드립게 맛없네!!!”
두 관제 인격은 물론이고 나 역시 할 말을 잊는다.
‘아니,뭐야. 이 녀석.’
나는 녀석을 두려워했다. 십만이 넘는 생명을 우습게 학살하는 광기 (狂氣). 인간을 벌레처럼 멸시하는 오만(微慢).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성립시키는 강렬한 영성(靈性)까지.
그러나 지금.
고통 속에서 녀석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왜 이렇게 징징거려?”
신이라 자칭하는 녀석이 고작 배 좀 고픈 거 가지고 야단법석을 떨다 니 어이가 없다. 인간을 벌레 같은 존재라 멸시하려면,적어도 이 정도 는 간단히 이겨내야 하는 것 아닌 가?
쿵!
기막혀하는 내 앞으로 10층 건물 에 맞먹는 은빛의 거인이 내려선다. 고유세계에 있는 존재 중 유일하게 외부 출입이 자유로운 무생물. 신급 기가스 아레스다.
[뭐야 너. 정신을 차린 거야?]
[함장님? 괜찮으십니까?]
어느새,나는 고유세계에 있었다.
“뭐야 이게. 움직일 수 있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이없게도 고유세계의 육신을 자 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물론 나는 원래부터 고유세계의 육신과 현실 세계의 육신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 었지만,현실의 자의식이 신성에 취 한 상태에서도 그럴 수 있다니 어이 가 없는 일이다.
[또 신성에 취한 거야? 근데 이게 어떻게 분리가 된 거지?]
“나도 모르지.”
당혹스러워하는 와중에도 [나]는
계속 움직였다.
콰득!
또 하나의 오우거가 갈기갈기 찢어 져 바닥에 쓰러진다. 순식간에 썩어 사라져 버리는 오우거의 몸을 짓밟 으며 [내]가 으르렁거린다.
“젠장! 씨발! 엿 같아! 날 여기서 내보내!!!!”
과르르릉!!!!!
고함이 태풍처럼 어둠의 숲을 뒤흔 든다.
나는 황당해서 입을 떡 하고 벌렸 다.
“•••등신인가?”
과연 내가 우려한 사태가 벌어졌 다.
“악!!!”
[나]는 비명과 함께 쓰러진다. 아 무리 그 배경을 이루는 힘이 영력이 라 하더라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 은 육신이다. 저렇게 [힘]을 실은 고함을 외치면 육신에 무리가 가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닌가?
물론 그래 봤자 느끼는 건 그저 약간의 고통일 뿐이지만 녀석은 그 조차도 견디지 못한다.
숨!
멀리에서 매서운 기세로 바위가 날
아온다. 8레벨 상급의 보스. 날렵한 러너가 저격을 감행한 것이다. 원래 는 대뜸 나타나 덤비는 습성을 가진 녀석이지만 [내]가 휘두르는 힘의 행사에 겁을 먹고 원거리 공격을 시 도한 것.
물론 기습은 실패다.
과직!
[내] 주위를 휘도는 은빛의 기운이 격자 형태를 취하더니 그대로 굳어 져 마치 그물처럼 바위를 받아낸다. 아레스가 감탄했다.
[마구잡이지만 그래도 대단하네. 무슨 구현을 자기 마음대로 하잖 아?]
“하긴 원래 구현은 저런 식이 아니 라고 했었지.”
오오라 사용자는 수련이 일정 경지 에 이르면 속성계(屬性繼)와 구현계 (具現繼)로 갈래가 나뉜다. 전자는 해당 속성을 에너지의 형태로 다루 는 방식이고 후자는 자신의 속성에 맞는 특수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
오오라 사용자가 속성계로 들어서 기 위해서는 해당 속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화염 속성이라면 불을 많이 보고,자신의 힘으로 불 을 피워보고,그 온기를 느껴보고, 아주 긴 시간 동안 불을 가까이하고 심한 경우 불로 몸을 지지는 경험까
지 해야 하는 것.
구현계도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단 순한 검을 구현하려 한다 해도 긴 시간 동안 검을 몸에서 떼지 않고 지니고 다녀 마치 한 몸처럼 익숙해 져야 하고,자주 보고,만지고,심지 어 맛까지 봐 눈만 감아도 검의 길 이,형태,무게와 특성 그 모든 것 을 그려낼 수 있게 되어야 한다. 그 야말로 그 검의 모든 것을 무의식 깊은 곳까지 때려 박아야 비로소 현 실 세계에 자신의 상상을 구현시킬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나]는 그저 영력을 휘두르는 것만
으로 자욱한 금속의 오오라를 사방 에 뿌려댄다. 심지어 그 금속의 오 오라는 한 줄기 상념만으로 현실에 구현되어 구체적인 형상을 한다.
“크아아!!!”
괴성과 함께 몸에 철검이 몇 개나 박힌 러너가 달려들어 [내] 몸을 붙 잡는다. 녀석은 그대로 손을 움켜쥐 어 온몸을 으깨려 들었지만 역시나 성공하지 못했다.
“끄아아아……!!!”
괴성을 지르는 날렵한 러너의 팔에 핏줄이 돋아났지만 [내] 몸은 간단 히 그것을 견뎌낸다.
어이없게도.
[내] 몸이 금속으로 변해 있다.
[아다만티움이다. 내 몸을 참고한 모양인데.]
“아니,아무리 그래도 몸 일부도 아니고 전신을 금속으로 만들어 버 리다니.”
[극(極)에 도달한 속성화입니다. 완 성자를 넘어선 오오라 수련자는 한 줄기 바람으로 변해 바늘구멍조차 통과할 수 있지요.]
우리가 감탄하는 동안 날렵한 러너 의 육신은 갈가리 찢어진다. 거대한 덩치의 오우거가 어린아이처럼 비명
을 지르며 죽어 나간다.
쿵!
마침내 쓰러지는 보스 몬스터.
그러나 [나] 역시 무사한 것은 아 니었다.
“아.”
어느새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나]의 얼굴이 엉망으로 일그러져 있다. 적에게 받은 타격 때문은 당 연히 아니다.
“배고파.”
녀석이 울고 있다.
“이게 뭐야……. 짜증 나……. 싫 어……
-다음 전투를 시작하시겠습니까?
언제나 그랬듯 흘러나오는 질문.
답은 뻔하다.
“안 해!”
-모든 시험이 끝났습니다!
-스테이지가 클리어되었습니다! 기 여도에 따라 보상이 주어집니다.
-당신의 순위는 866위입니다.
최후의 10인 안쪽으로 들었지만,
아직 위에는 상당수의 실력자가 자 리하고 있는 상황.
게다가 이번 텍스트는 이걸로 끝이 아니다.
완벽 클리어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당신의 클리어 횟수는 1041회입 니다.
-사망 취소 인원 1041명을 표시합 니다.
-대상은 혈족. 지인. 거주 지역. 출신 지역 순입니다.
-변경을 원하는 인원을 선택해 주 십시오.
눈앞으로 수많은 사람의 얼굴이 떠 오른다. 대체로 아는 얼굴들이었지 만 누구인가 싶은 얼굴들도 있었다. [나]는 손을 내저었다.
“치워!”
-사망 처리를 변경 없이 적용합니 다.
-남은 [사망 처리]의 숫자
-1 억 1,322만 3,111명.
- 집행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스테이지가 종료 되었다.
천천히 걷는다. 하와는 울창한 숲 을 가로질러 자신을 보며 덜덜 떠는 온갖 것들을 지나쳤다.
그리고 드디어 그,혹은 그녀라 부 를 수 있는 존재와 당면했다.
“왜.”
하와는 물었다.
“왜 녀석에게 고유세계를 준 거
죠?”
하와는 정령계에 들어와 있다. 그 리 깊은 곳은 아니다.
-죽을까 걱정되어서.
하와의 앞에는 인간 사이즈의 빛 덩어리가 둥둥 떠 있다. 그것이 가 진 힘은 미약하지만 마주한 하와의 태도는 극도로 정중하다.
당연하다.
그것은 대우주를 관리하는 절대신 중 하나이자 정령계의 지배자인 정 령신의 아바타.
대하를 찾아왔던 때와 다르게 그녀 를 마중하는 데에는 굳이 본체를 가 져오지 않은 상태였다.
“이해할 수가 없어요. 당신같이 위 대한 존재도 녀석을 보며 불안함을 느끼나요?”
정령신과 대하의 만남은 뜬금없었 다. 동시에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언터쳐블인 하와가 찾아왔음에도 고작 자신의 일부를 보내는 게 전부 일 정도로 오만한 정령신이 대하가 단지 정령계에 들어왔다는 이유만으 로 대뜸 찾아와 별다른 이유도 없이 상급의 권능을 선사하고 떠나간 것
이다.
-너도 마찬가지일 텐데.
“그렇긴 하지만……
대하를 본 초월적 존재들은.
모두 반사적인 두려움을 느끼게 된 다.
아,이 자식.
죽으면 어떻게 하지??
대하는 죽으면 안 된다. 인과율을
읽거나 조작할 수 있는 존재들은 직 감의 형태로라도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그 때문에 하와는 그를 만나자마자 [적어도 목숨만은 지키겠다.]는 약속 을 하고 말았다.
미션 시스템은 타이틀 효과로 [부 활] 능력을 부여했다.
그리고 정령신은 고유세계라는 고 위 권능을 하사했다.
대하는 몰랐지만,그는 이제 부활 을 금지하는 극악의 저주를 당하거 나 최상위 신격조차 죽여 버릴 수 있는 신살의 권능에 당한다 하더라 도 죽지 않게 되었다. 현실의 육신
이 영멸(永減)한다 해도 고유세계의 육신이 남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경우 대하는 영원히 고유 세계에 갇히게 되겠지만.
적어도 죽지는 않는다.
-너. 모르는군.
“…뭘 말이죠?”
-모른다면 됐다.
쿠우우——
순간 일어나는 차원의 파동에 하와 의 얼굴에 당혹이 깃든다.
“잠깐만요! 모르다니 그게 무슨--!”
팟!
삽시간에 하와는 물질계로 쫓겨났 다,
“이 망할 꼰대가!”
분개하는 그녀였지만 그저 그뿐 감 히 다시 정령계로 진입할 엄두는 내 지 못한다. 언터쳐블인 그녀라 하더 라도 감히 절대신의 뜻을 거스르며 그의 세계에 침입할 수는 없다.
“도대체 뭐야. 저 녀석한테 뭐가 더 있는 거야?”
하와는 광화문 광장 한쪽에 앉아 있는 대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막 스테이지를 끝마친 듯 바짝 마 른 그의 모습을 보자 절로 가슴이 아프고 그가 걱정된다.
그가 일어나며 쓰게 웃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따듯해지고 표정이 풀 린다.
이제는 신성을 분리해 예전 같은 권한을 휘두를 수 없는 지금도 이렇 다.
“대체 뭐야.”
질끈. 입술을 깨문 하와의 모습이 마술처럼 사라진다.
그녀가 사라진 도시에는 혼란에 빠 진 사람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