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머리 위에 2부-62화 (179/249)

62 화

“아니. 이런.”

그냥 좀 부족한 정도인 줄 알았는 데 그 정도가 아니다.

“1 억이라니.”

내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클리 어한 스테이지가 고작 1,000번에 불 과하다. 심지어 그 1,000번을 클리 어하기 위해 수백 톤이 넘는 가축들

을 대부분 소모해 버렸다.

그런데 1억이라니.

“아이고,근손실……

힘이 빠져 근처 나무에 기댄다. 제 법 커졌던 덩치는 이미 형편없이 쪼 그라져 있다. 단백질 섭취가 부족한 육신이 온몸의 지방을 태우고도 모 자라 근육까지 분해하여 에너지로 만들어 버리고 있는 것.

“육류는?”

[긴급 상황을 위한 100킬로그램 남짓이 전부입니다.]

“스마트 팜의 상황은?”

[전력 가동 중이지만 종자를 제외

하면 비축량이 5%에 불과합니다. 다만 몇 달이라도 불려 나갈 시간이 있다면 좀 다르겠지만…….]

“그런 시간을 벌었다가는 내가 굶 어 죽겠지.”

[그뿐이 아니라 수분도 모자랍니 다.]

“기어코 바닥이 난 거야? 가축들 피까지 전부 재활용한다면서.”

[빅 브래드는 기적의 작물이라 불 리지만 그렇다고 무에서 유를 창조 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아끼고 아껴도 한계가 있지요.]

“첩첩산중이네.”

나의 고유세계는 사철로 이루어진 세상.

당연한 말이지만 농사를 지을 만한 환경이 아니다. 고유세계로 가축들 을 끌어올 때 최대한 물을 먹게 하 고,그들의 뼈와 가죽,심지어 털까 지 적극적으로 활용했지만 그래 봐 야 한계가 있다.

‘고유세계가 흙과 물로 이루어진 장소였으면 달랐겠지만.’

그러나 내 영혼의 성질과 속성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결국,이렇게 되나.”

넋 놓고 스테이지를 진행할 때는

몰랐는데 꽤나 암담한 상황이다. 오 우거를 잡는 거야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이 이상 플레이를 진행할 자원이 없는 상황.

그뿐이 아니다.

“죽겠어.”

떨어진 자원은 단지 식량만이 아니 다. 내 육신도,정신도 한계에 도달 해 있다. 스테이지를 진행하면 진행 할수록 점점 체중이 가벼워지고 기 력이 떨어져 가고 있는 상황. 특히 나 나는 생체력 수련자였던 만큼 상 황이 심각하다.

그나마 여기에서 완벽 클리어가 코 앞이라면 다행이겠지만.

“하,

다시 생각해도 기가 막힌다.

“1 억이라니.”

나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1000번 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했다.

그건,틀림없이 위업이라 할 만하 다.

나는 어지간한 도시 규모의 밀림을 1000번이나 가로질렀고 1만 1천 마 리의 오우거를 때려잡았다. 숲 안에 숨겨진 길,히든 스토리,히든 웨폰 과 히든 퀘스트까지 모조리 밝혀냈 다. 아마도 지구상에 나보다 스테이 지에 더 해박한 이는 존재하지 않겠

지.

그러나 바꿔 말하면.

고작 1000번을 쨌을 뿐이다.

“기가 차는군.”

나 혼자 죽도록 깨봐야 그것만으로 완벽 클리어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 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공략 영상을 만들어서 뿌렸던 것이 기도 하고.

그러나 결국 이 꼴.

“도저히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잖 아?”

1000번의 클리어를 위해 1년이 걸 렸다. 그것도 안전도 뭣도 없이 속

도 중심의 스피드 런을 수행했음에 도 그렇다.

남은 1억 번을 모조리 스피드 런 으로 수행한다 해도 클리어를 위해 걸리는 시간은 10만 년.

그렇다. 10만 년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말이 안 되는 시간이다. 이쯤 되면 이미 식량이 문제가 아니다. 식량이 무제한으로 공급된다 하더라도 견딜 수 없는 규모의 시간.

물론 아직 나 말고도 9명의 인원 이 남아 있지만,그래 봐야 10만 년 이 1만 년 되는 건데 유의미한 차

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우거 잡다 가 늙어 죽는 데에는 만 년도 천 년도 필요 없다. 고작 백 년이면 충 분한 것이다.

-최후의 9인.

-최후의 8인.

-최후의 7인.

-현재 7명의 시험자가 시험을 진 행 중입니다.

“아,이런.”

그나마 그 최후의 인원들이 스테이 지에서 탈출하기 시작한다. 그들 역

시 지금 내가 하는 것과 같은 판단 을 내리고 더 이상의 진행을 포기한 것이다.

[여기까지 네.]

[수고하셨습니다,함장님. 다음 시 험 때에는…….]

아레스와 지니가 상황을 마무리한 다. 그들 역시 알고 있다. 이미 이 건 놀이의 영역도,훈련의 영역도 아니며,완벽 클리어는 어차피 불가 능하다는 사실을.

이어진 상황에 그들이 당황한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다음 전투를 시작하시겠습니까?

“…한다.”

[함장님?]

[대하야?]

지니와 아레스의 목소리에 나를 만 류하는 기색이 느껴진다.

이미 한계에 다다른 몸으로 무리를 하는 내 모습에 내가 지구의 인간들 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

그러나.

‘정말 그런가?’

모르겠다. 내가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인류애를 발휘할 거로 생각한 적이 없으니까.

다만.

-레벨 8. 상급(上級)이 설정되었습 니다.

-80시간 안에 해당 적(11개체)을 제거하십시오.

-10초 후 스테이지가 시작됩니다.

-10. 9. 8. 7…….

-3. 2. 1. 전투를 시작합니다.

그저.

그냥 솔직하게.

“간다.”

못하겠으니까 포기해야 한다는 사 실이 고까웠다.

-다음 전투를 시작하시겠습니까?

-다음 전투를 시작하시겠습니까?

스테이지를 계속해서 클리어한다. 방법은 여태까지와 같다. 숲으로 들 어가 획득할 수 있는 열매들을 구해 서 먹고 시냇물을 마시고 생체력으

로 오우거를 때려잡는 것.

숲 안에는 오우거를 상대할 수 있 는 작살과 오우거를 깊은 잠에 빠지 게 하는 독초. 그리고 사냥꾼들이 만들어두었다는 함정 등이 있지만 숲 전체에 흩어져 있기에 무시하는 것이다.

다만 전투 방식이 지금까지와 좀 다르다.

경천칠색 (講天七色).

청 (W).

천둥소리와 함께 새파란 빛이 터져

나간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다 른 오우거가 멀리에서부터 달려든 다.

경천칠색 (蘇天七色).

청 (W:).

천둥소리와 함께 오우거가 쓰러진 다. 움직임마저 줄여 칼로리의 소모 를 최소화하고 전투는 오로지 영자 력만을 활용해 수행한다.

[이게 뭐야. 전사가 아니라 무슨 마법사처럼 싸우고 있네.]

“말 걸지 마라. 근손실 온다.”

[뭐래…….]

아레스에게 한 말은 개소리였지만 실제로 몸 상태가 심하긴 하다.

“으 목말라.”

온몸이 바짝바짝 마른다. 툭 털어 보니 피부 각질이 먼지가 날 정도로 자욱하게 일어난다.

꿀꺽.

투명한 시냇물을 들이마신다. 처음 에는 이 시냇물을 보고 물은 무제한 으로 먹을 수 있을 테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지.

슈아아!

내가 일정 수준 이상의 물을 마시

자 시냇물이 거짓말처럼 삽시간에 말라 버린다. 한 물줄기에서 마실 수 있는 물은 고작 한 모금 정도다.

“시발 사탄 같은 놈들.”

이 망할 놈의 스테이지를 설계한 놈이 누군지 모르지만,눈앞에 있다 면 머리통을 쪼개 버리고 싶다. 먹 고 마시는 거로 진짜 개치사하게 군 다.

“배고파……. 진짜 배고프다……

나는 고통에 익숙한 편이다. 청명 에게 납치되어 비인들에게 고문당할 때도 녀석들에게 농담 따먹기를 했 던 나다. 내 정신력은 특수 요원이 나 독립투사에 맞먹을 정도라고 감

히 자부할 지경.

그러나 지금 내 몸을 지배하는 허 기 (虛獻)는.

“죽겠네.”

점점 인간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 고 있었다.

와삭!

이 숲 안에서 허락되는 유일한 식 량. 열매를 따 먹었지만,고작 이 정도로는 일반인의 배를 다 채우기 도 어렵다. 그나마 고유세계에서 먹 는 식량이 스킬로 적용되기에 망정 이지 아니었으면 벌써 예전에 시험 을 포기했어야 하리라.

“아 제길 괜히 경천칠색을 골랐 나……

생체력은. 특히나 레온하르트 제국 의 생체력은 배고픔을 감수하는 수 련법이 아니다. 오히려 매 순간 어 마어마한 수준의 보급을 받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기에 제대로 된 보 급이 없다면 기초대사량조차 채우기 어렵다.

-다음 전투를 시작하시겠습니까?

-다음 전투를 시작하시겠습니까?

열댓 번 더 스테이지를 클리어했

다. 말이 좋아 열댓 번이지 배고픔 에 플레이 타임이 늘어져서 일주일 이 넘는 시간이 지난 상황.

그리고 그러던 와중에도.

-최후의 6인.

-최후의 5인.

-현재 5명의 시험자가 시험을 진 행 중입니다.

“다 나가네.”

시험자는 꾸준히 줄어갔다. 내가 그러하듯 그들 역시 한계 상황이니 그렇겠지. 아니,사실 한계에 도달한

몸 상태만이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어차피 완벽 클리어는 불가능해 보일 테니.”

점점 지쳐간다. 허기가 너무나 강 해져 오우거를 만나면 무섭거나 투 쟁심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입에 침 이 고일 정도다.

몬스터고 뭐고 먹을 수만 있었으면 벌써 먹었다.

‘역시 생체력으로는 한계가 있어.’

물론 그렇다 해도 그만둘 생각은 없다.

그만둘 거였다면 그냥 최후의 10 인이 되었을 때 그만두었을 것이다.

‘오오라와 정령력을 써야 해.’

스테이지의 육신이 자리를 잡고 잠 들 때마다 나는 고유세계에서 오오 라 제작술을 수련했다. 오오라 제작 술은 일반적인 오오라 수련자들이 사용하는 방식과는 조금 다르다. 그 들은 굳이 오오라를 특정 형태로 구 현하지도,속성력을 부풀려 몸에 두 르지도 않으니까.

오오라 제작술 수련자는 이미 있는 대상의 성질과 형태를 변형시키는 것으로 제작을 수행한다. 따라서 금 속성 계열의 수련자는 오직 금속만 을. 목속성 계열의 수련자는 오직 나무만을 제작의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뭐 예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의 토속성 계 열의 수련자는 돌과 금속을 다 사용 할 수 있고 화속성 계열의 제작술 수련자는 대상 그 자체를 다루기보 다 금속을 제련하는 대장술의 형태 로 제작을 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규모가 이쯤 되면 무투로는 안 돼. 내가 직접 싸워서는 답이 없다.’

기계신 디카르마의 피를 이은 나는 경이적인 속성력으로 오오라 제작술 을 습득한 그 순간부터 완성자급 수 련자나 가질 만한 특수능력을 갖추 게 되었다.

특성 부여.

나는 정신을 집중해 오오라를 쏟아 붓는 것으로 금속에 특수한 성질을 깃들게 할 수 있다. 오오라가 금속 자체에 깃들기 때문에 그 형태가 파 괴되어도 유지되는 특성.

그중에서 내가 제일 먼저 습득한 특성이 바로 동심원(同心圓)이다.

외부에서 공격이 들어올 경우,그 힘이 아무리 일점에 집중되어 있다 하더라도 동심원을 그리며 갑옷 전 체로 분산시키는 동심원 특성은 진 동을 다루는 경천칠색과 너무나 어 울리는 능력이라 가장 먼저 선택했 었지.

그리고 종말 프로젝트가 8레벨이 되는 동안 나는 추가적인 특성들을 습득했다.

대상의 강도와 내구를 상승시키는 [강화]와 파손 시 원상태로 되돌리 는 [복원]. 그리고 화염과 빙결,그 리고 뇌전의 [속성저항]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만 완성한다면……

스테이지의 플레이타임이 답도 없 이 길어지면서 나는 연 단위의 시간 을 투자해 하나의 특성을 가다듬고 있었다.

대장술에 흔히 있을 법한 특성은

아니다. 무기보다는 병기에 들어갈 특성.

‘그래. 공략을 만들려면 당연히 모 든 조건을 포함한 공략을 만들어야 해. 10만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 다면 당연히 정상적으로 플레이해선 안 된다.’

아무리 내 멘탈이 좋다 하더라도 10만 년은 불가능의 영역. 그러나 이 특성만 완성할 수 있다면.

‘가능성이… 있어.’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난이도가 문 제지 시간은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나 혼자서도 모든 인류의 스테이지 를.

클리어.

수 있.

‘어?’

철컥.

순간 나는 내가 문 앞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뿐이 아니다.

문이 열려 있다.

‘뭐!?’

경악해 소리 질렀지만,당연히 아 무도 듣지 못한다.

‘아니,어째서? 왜 뜬금없이 주도 권을 뺏긴 거지?’

지금껏 이런 적이 없는 것은 아니 지만 이렇게 뜬금없는 상황은 처음 이다. 분노에 이성을 잃은 것도 아 니고,일부로 연 것도 아닌데 어째 서 문이 열렸단 말인가?

다행히 눈앞에 떠오르는 텍스트가 그 이유를 알려주었다.

[타이틀. 인류의 재앙 효과가 발동 합니다!]

[부활합니다!]

[함장님!?]

[아니,무슨……J

아레스와 지니가 뒤늦게 비명을 지 르는 소리가 들린다. 바닥에 처박혀 있던 고개가 들리고 시야가 회복된 다.

[나]는 멍하니 앉아 있다. 부활이 발동했지만,그런데도 여전히 몸은 바짝 마른 상태다. 온몸이 박살 나 고 심장이 터져도 부활시키는 타이 틀 효과라 해도 없는 살과 근육을 만들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배고파.”

[아니,뭔 머저리 같은 소리를 하 고 있어!? 너 지금 설마 죽은 거 야?]

[무리하셨습니다,함장님. 여기까지 하시지요.]

[나]의 말에 아레스와 지니가 나를 타박한다.

그럴 만하다.

나는 아사(載死)한 것이다.

그것도 두 눈 똑바로 뜨고 움직이 던 와중에!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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