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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 2부-47화 (164/249)

47 화

눈을 뜬다. 가볍게 씻고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별다른 준비물은 없다. 쉐도우 스토커를 차고 우자트를 쓴 다. 그 외에는 스마트폰 정도.

문을 열고 나선 내 눈앞에 궁녀복 을 입은 소녀의 모습이 보인다.

“안녕.”

나는 문 앞에 서 있는 궁녀를 가 만히 바라보았다. 궁녀복을 입고 있 는 소녀는 나에게도 낯익은 상대다.

[원일고등학교]

[3 레벨]

[우울한 이선애]

궁녀복을 입고 있음에도 여전히 고 등학교 소속인 그녀는 더 이상의 추 가적인 인사 없이 그저 조용히 내 옆에 선다. 정확히는 내 옆에서 한 걸음 반 뒤. 나는 고개를 슬쩍 돌려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다.

‘아,그러고 보니 이 녀석 변신했 었지?’

뭔가 비밀이 있는 녀석이다. 위기 의 순간 합성 마수로 변신하며 레벨 이 8까지 치솟던 모습은 꽤 인상적. 이름까지 니케로 바뀌던 와중에도 소속은 원일고등학교였다는 게 개그 라면 개그겠지만.

“다시 궁으로 돌아왔네.”

“그렇게 되었어.”

나는 뭔가 뻔뻔한 태도로 답하는 그녀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이내 어깨를 으쓱이고 계단으로 향한다. 그녀가 누군지,어디 소속이고 어떤

힘을 가졌는지,안가가 습격당한 건 어떤 연유였는지,누가 배신자이고 또 상황이 어떻게 정리되었는지 굳 이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관심 없기 때문이다.

별 관심도 없으면서 그냥 할 말이 없다는 이유로 남의 사정을 캐묻는 것도 참으로 꼴불견이다. 나에게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사안이라 하 더라도 그들에게는 나름 기밀 사항 일 테니까.

꾸벅.

계단 옆에 서 있다가 허리를 숙이 는 궁녀를 지나쳐 계단으로 내려간 다. 평소보다 허리를 숙이는 각도가

10도 이상 깊어서 부담스럽다.

내가 머물던 숙소,강녕전에서 나 와 경회루로 향한다.

“지현아! 괜찮은 거야?”

“좀 다친 정도니 오버하지 마. 그 난리 통에서 살아난 것도 감지덕지 니까.”

“너 소식 들었어? 가주님께서 가주 직을 내려놓으셨대.”

“하하! 진짜 상상도 못 했어. 설마 우리가 이길 줄이야!”

“황제 폐하께서도 모르는 사이 황 녀님께서 엄청난 준비를 하셨더군. 그리고 무엇보다 검귀의 힘이 컸

어.”

“실로 악마적인 재능이었습니다. 그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이가가 과 연 승리할 수 있었을지.”

경회루는 소란스러운 평소보다도 훨씬 더 시끌벅적했다. 식사하는 사 람들이 목소리를 높여 떠들어대고 개중에는 꼭두새벽부터 술을 마시는 자들조차 있다. 거대한 규모의 전투. 믿기지 않는 승리. 그리고 그 와중 발생한 죽음으로 인한 홍분과 두려 움이 뒤섞여 마치 용광로처럼 펄펄 끓고 있다.

“가락국수 주세요. 아,참고로 저 강체사입니다.”

“그래그래,많이 처먹는 거 잘 알 겠……

이가의 능력자들에게 배식하고 있 던 마족 아줌마가 내 모습을 확인하 고 멈칫한다.

“왜요?”

“왜가 아니라……. 너 아직도 이가 에 남아 있었구나?”

크레파스로 칠한 것 같은 까만 눈 동자가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느껴 지는 것은 약간의 경계와 두려움. 나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떠날 이유 가 없죠. 어디 갔나 안 보였는데 전

투를 보긴 했나 보네요.”

“그야 그런 계약이었으니까. 하지 만 도통 모르겠군. 너, 아니,당신 으 ”

“국수나 줘요.”

“…그러지.”

나는 그녀에게서 국수를 받았다. 세숫대야만 한 크기의 접시에 면이 가득 들어 있고 다시 그 위에 고명 이 산처럼 쌓여 있는,그야말로 타 임 어택 챌린지에나 나올 것 같은 메뉴다. 말이 좋아 가락국수지 건더 기 엄청 많은 우동 같은 메뉴.

물론 맛만 있으면 상관없기에 받아

서 적당한 자리에 앉았는데,그렇게 앉은 내 맞은편에 따라서 앉는 사람 이 있다. 선애는 아니고 처음 보는 얼굴이다.

“드디어 만나게 되었군. 어이,너. 그 검귀 놈의 동생 맞지?”

내 맞은편의 의자를 빼 앉은 그는 나보다 1〜2살 정도 많아 보이는 청 년이다. 훤칠한 키에 탄탄한 몸,매 력적인 이목구비를 가진 미남.

그러나 그는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다시 일어나야 했다.

자의(S意)가 아니었다. 타의(他意) 다.

“어? 선배님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따라와.”

“아니,잠깐. 지금은 훈련 시간도 아니고 공적인 자리도 아닌데 이렇 게 강압적으로… 컥?!”

반항하던 청년의 복부에 인정사정 없는 철권이 틀어박힌다. 자연스럽 게 그의 두 팔을 잡은 두 사내가 쓰러지려는 그의 몸을 부축한다.

“실례했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공손한 말과 함께 기절한 사내를 질질 끌고 간다. 내 뒤에 서 있던

선애가 황당하다는 듯 신음 소리를 낸다.

“아니,A4B4가 왜?”

“아는 사람이야?”

“아는 사람이냐니! A4B4잖아! ‘굿 나잇 잘 자요’랑 ‘커플 데이’도 몰 라?”

“아이돌이구나.”

그러나 전혀 모르는 녀석들. 나도 나름 TV 보고 사는 고등학생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리 유명한 그룹은 아 닌 모양이다.

후루룩.

지름이 1미터는 되어 보이는 국수

그릇을 기울여 국물을 마시고 면도 집어 먹는다. 경천칠색을 수련한 이 후로 기초대사량이 너무 늘어서 먹 는 걸 게을리하면 근손실이 발생했 기에 부지런히 먹는다. 물론 고유세 계에 들어가 있는 내 몸 역시 틈틈 이 식사하고 있지만,그 몸은 권황 에게 입은 부상을 완전히 치료하지 못했기에 현실에서 더 부지런히 먹 어줘야 한다.

“말도 안 돼. A4B4 면 소화랑도 아 니고 진짜배기 화랑인데 어째서 널 케어하고 있는 거지? 저 공손한 태 도는 또 뭐고?”

선애가 말을 건다. 의욕 없던 지금

까지의 태도와 다르게 눈을 반짝이 는 모습이었지만 그저 어깨를 으쏙 이고 되묻는다.

“넌 밥 안 먹어?”

“궁녀는 경희루에서 식사 안 해. 아니,그보다.”

“뭐 그렇다면야.”

평소와 달리 궁금한 게 많아 보이 는 녀석의 말을 끊고 식사를 시작했 을 때였다.

-전체 공지입니다. 오늘 오후 6시 태원전에서 합동 장례식이 시작될 예정이니 유가족분들과 문의 사항이

있으신 분들께서는 수정전 4층으로 찾아와 주시길 바랍니다. 영환 스님 께서 주관하시며 방식은 화장(火葬) 입니다.

느닷없는 방송에 잠시 식당이 조용 해졌다. 그러나 그건 아주 잠시일 뿐 이내 조금 전보다도 더 시끄러워 졌다.

“와,장례식을 치러준단 말이야? 진짜로?”

“주가 놈들 시체가 많긴 많나 보 네. 사자(死者)에게 이만한 예의를 갖춰줄 수 있다니.”

국수 접시를 들어 국물을 모조리 들이켠 후 탁,소리 나게 바닥에 내 려놓는다. 국물 요리라서 그런지 약 간 부족한 느낌이었지만 새벽 단련 을 하지 않았으니 이 정도가 적당하 리라. 부족하면 알바트로스함에서 에너지바를 보급받으면 되겠지.

“장례식을 하는 게 그렇게 놀라운 일이야?”

자리에서 일어나며 묻는다. 선애는 멋대로 진행하는 이야기에 토라진 듯 입을 삐쭉였지만 항의하는 대신 설명했다.

“놀라운 일이지. 소속이 있는 능력 자의 시체는 보통 그 집단에 귀속되

니까.”

“이가에서 시신을 갈취한단 말이 야?”

황당해 돌아보자 선애가 오히려 더 황당하다는 듯 나를 본다.

“너 정말 이면 세계에 대해 전혀 모르는구나?”

“딱히 알 이유도 없지.”

그릇을 반납하고 경회루를 나선다. 흥례문을 지나 영제교를 건너 근정 문을 통과한다. 근정전에 있는 문을 통해 이면 세계에서 표면 세계로 넘 어가는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였다.

“능력자들의 시체는 그 자체로 높

은 가치를 지닌 자산이야. 동시에 각 세력의 기술들이 집약된 기밀 덩 어리이기도 하고. 대마법사님의 지 시 사항이기 때문에 세상 어느 세력 에 가입하더라도 사망 시 시체 양도 는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해. 그러기 싫으면 상당한 수준의 재화를 내야 만 하고.”

녀석의 설명을 들으며 준비된 차량 에 도착한다.

나는 차를 보고 혀를 찼다.

“과해.”

선애는 차 옆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지검 (地貪lj)!”

육중해 보이는 디자인의 리무진이 주차장에 서 있고 그 앞에 갑주로 온몸을 감싸고 있는 사내가 대기 중 이다.

“호들갑 떨지 마라. 못 본 사이에 궁녀 수준이 많이 떨어졌군.”

“궁녀 아니에요! 이거 알바하는 거 니까 아저씨는 신경 끄시죠?”

발끈하는 선애의 말에 헛웃음 짓는 다.

“알•바•이:?”

“그래. 이미 옛〜 날에 그만뒀어. 네 담당이 된 건 일당이 세서라고.”

“…네 이년.”

고급 세단 옆에 있던 지검의 목소 리가 묵직하게 가라앉는다. 선애는 표정을 굳히며 그를 마주 보았다. 일촉즉발의 분위기이지만 내 알 바 아니다.

“네 이년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차 바꿔 와.”

“하지만 이 차량은 천궁(天宮) 1호 입니다. 특급의 결계가 적용된 방탄 리무진으로.”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바꿔.”

더 말 섞기도 귀찮아서 끊어버리자 지검이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

덕였다.

“알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불과 십여 초도 지 나지 않아 검은색의 세단이 주차장 으로 들어온다. 꽤 빠릿빠릿하다.

“이게 대체 무슨.”

당황스러워하는 선애를 무시하고 세단에 올라탄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다. 선애는 내 옆에 앉아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을 뿐이다.

“왜?”

“왜라니.”

선애가 내 옆에 붙어 소곤거린다.

“어째서 지검이 너한테 저렇게 쩔

쩔매는 거야? 검귀라는 선배가 엄청 난 활약을 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가 육검이 운전사 를 자처하다니.”

“이가 육검?”

막연히 이가 최고의 무력이라고만 알고 있던 이름에 의문을 표하자 선 애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천지인풍운우(天地人風雲雨) 해서 육검이야. 대마법사께서 칠대 가문 모두에게 직접 내리신 천검,지검, 인검과 이가의 역사가 담긴 풍검, 운검,우검을 맡은 고수들을 지칭하 는 말이지.”

또 대마법사의 안배가 나왔다. 그

러고 보니 주가에서 온 녀석들도 천 검인가 지검인가 하는 녀석들이 있 었다.

“그러면 천지인과 풍운우 간의 수 준 차이가 있겠네.”

“아무래도 그렇지. 실력 차이는 그 렇게까지 크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그래,장비빨이 어마어마하겠지.”

이제는 죽고 없다는 대마법사는 편 집증이 느껴질 정도로 전력을 다해 지구 전체의 전력을 끌어올렸다. 능 력자들이 순조롭게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세력들을 가다듬었 으며 각 세력에 어마어마한 위력의 마법기들을 안배해 놓은 것이다.

그저 아이언 하트가 없을 뿐이지 그 수준이 인급 기가스에 맞먹는 영 혼거병 순신과 세종,경회루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이무기,어지간한 도시 이상으로 확장되어 고립되어도 몇 년이고 버틸 수 있는 무지막지한 규모의 공간 결계,그리고 여기저기 숨어 있는 포격 결계와 긴급 물품들 까지.

당연한 말이지만 대마법사가 직접 내린 그런 무구들은 지구의 제작자 들이 만들어낸 병기와 차원을 달리 할 것이다.

“세력 차이도 커. 천검이 이끄는 별운검단(別雲劍團),지검의 야차단

(夜艾團),인검이 이끄는 화랑단(花 郞團)은 이가의 삼대 무력 단체거 드 ”

녀석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음? 어제 보니 천검이 야차단이라 는 단체에 명령을 내리던데.”

실제로 그랬다. 그 백발 영감이 천 검의 이름으로 어쩌고 하고 명령을 내리니 경복궁에 있던 웨어 비스트 들이 움직였었다.

“그거야.”

순간 말문이 막힌 듯 선애가 멈칫 하더니 이내 입술을 깨물었다.

“자기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

할 정도로 우두머리가 못나서 그렇 지.”

거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차가 학교 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리자 마치 마술처럼 선애 의 궁녀복이 교복으로 변했다. 나는 운전석의 지검을 보며 말했다.

“학생회장에게 전해.”

“말씀하십시오.”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지검을 보며 말했다.

“나를 보험으로 삼아도 좋다.”

그것은 형의 당부로 인한 최소한의 도리.

“보험,입니까.”

“그래. 하지만 기억해야 할 거야.”

그러나 그 형은 이제 없다.

“이제 이가와 나 사이에는 연결점 이 없다는 걸.”

그렇게만 말하고 등교하는 학생들 사이로 들어간다.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채 왁자지껄 떠 들며 등교하는 아이들.

‘귀찮아.’

어느새인가 그들을 보는 내 시선이 조금은 식어 있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학교로 향한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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