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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 2부-46화 (163/249)

46 화

3만 대 15만. 싸우기도 전에 전의 (戰意)가 꺾일 정도로 불합리했던 전쟁은 전 세계 모든 세력의 예상을 뒤집고 3만의 승리로 끝났다.

기적적인 승리다.

절반이 넘는,그러니까 1만 6,000 명의 사상자는 이가의 입장에서도 뼈아픈 타격이지만 주가의 원정군이 입은 피해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

지혈에 불과하다. 자신만만하게 이 가의 영역에 침범했던 주가의 15만 대군은 단 한 명의 생존자조차 없이 몰살(沒殺)을 당했으니 이제 주가 는,나아가 중국에 속한 세력 전체 가 복수는커녕 이면 세계에서 자신 들의 영역을 수습하는 데에도 전력 을 다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만 것 이다.

하물며 주가는 활동의 근거지인 자 금성을 점령해 사실상 멸망의 갈림 길에 선 상황이니,오늘이 지나 이 승리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면 이 면 세계의 세력 구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만한 대첩(大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아주 특수한 지형,보급이나 정치 등의 외부적인 문제,혹은 비대칭적으로 발달한 병기의 존재로 가능한 일이 지 지금처럼 미스테리할 정도의 결 과는 아니었다. 이미 주가의 움직임 을 파악하고 대비하고 있던 세계의 모든 세력이 뒤통수를 맞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치사량의 국뽕을 집어먹은 한국 출 신의 전략가들도 최상 중에서도 최 상의 결과로 전략적 패배에 전술적 승리 정도를 조심스럽게 늘어놓을 뿐 감히 이런 결과를 주장하지는 못

했다.

왜냐하면,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 이다.

적어도 그렇게 인식될 만한 전투였 다.

표면 세계로 예를 들자면 북한과 미국이 싸웠는데 북한이 이긴 정도 의 충격이다.

패배한 미국이 북한의 속국으로 들 어가는 정도의 충격이다.

미국이 항모를 포함한 최신의 병기 들로 최선을 다해 무장한 후 그 숫 자조차도 15만 명이나 끌고,심지어 선전포고도 안 하고서 기습적으로

침범했는데,북한의 징집병 3만에 몰살당한 정도의 충격이다.

기적이라는 단어조차도 가져다 쓸 수 없을 정도로 믿을 수 없는 승리.

애초에 질도,양도 압도적인 열세 인데 누가 승리를 예측했겠는가?

그러나 광화문 광장에서 그 승리를 기뻐하는 이들을 찾아보기는 어려웠 다.

“맙소사,이건 대체……

“으 제길,냄새가. 우을!”

“지금 뭐 하는 거냐! 이래서 애송 이 놈들은! 얼른 움직여! 시체와 장 비들을 수습해라!”

경복궁 안에 피신해 있던 모든 인 력이 광화문 광장으로 나와 전장을 정리하고 있다. 평소 유래 있는 가 문의 후손이라 잘난 척하던 후기지 수들도,전투력이 약해 경복궁 밖으 로 나가는 게 허가되지 않던 수련생 들도,심지어 온갖 제약으로 덕지덕 지 묶여 있던 경복궁의 궁녀들까지 도 땀을 홀리고 피를 묻히며 광화문 광장을 치워 나가고 있었다.

“피 냄새가 이렇게나 진동을 하는 데 마족이 하나도 덤벼들지 않는다 니 좀 섬뜩하지 않아? 그냥 근처에 없는 정도가 아니라 감지 범위에 하 나도 잡히지 않는다니.”

“대규모 전투에 놀라 거리를 벌렸 다잖아.”

“그게 말이 돼? 사지가 다 잘려도 피 냄새를 향해 기어가는 게 마족이 잖아.”

마법이 걸린 커다란 달구지를 끌고 와 거기에 박살 난 병장기들을 담고 있던 수련생들이 수군거렸다. 그들 뿐이 아니었다.

“멀쩡한 시체가 거의 없어. 어떻게 시체 대부분이 터지고 으깨질 수가 있지? 이건 마치……. 그래. 마치 음속으로 날아드는 커다란 기둥에 치인 것 같군.”

“나름 끔찍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 각했는데 그저 애송이에 불과했었 네. 이런 무지막지한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

산처럼 쌓여 있는 시체. 냇물처럼 흐르는 피에 칼날 위를 걷는 것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아왔다고 자신하던 무사들조차도 온몸을 떨었다. 광화 문 광장에 남은 흔적만으로도 그 위 에서 벌어진 전쟁이 얼마나 처참했 는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알 수가 없어. 전쟁의 중후반까지 는 연락도 받고 소식도 듣고 심지어 참여하기까지 했지만……. 도대체

마지막에 이가가 어떤 무기를 썼길 래 이런 파멸적인 위력을 낼 수 있 었던 거지?”

“엄청 찔러봤는데도 아무것도 알아 내지 못했어. 그나마 후방에 빠져 있던 녀석들이 엄청난 폭음과 함께 천둥 벼락이 치는 소리를 들었다고 는 하는데.”

“게다가 포로조차 받지 않고 이 많 은 숫자를 다 죽여 버린다는 건

“역시 금지된 술법을 사용한 것이 겠지?”

같은 이가 소속인 그들조차도 전쟁 말미에 벌어진 참상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이가에 펼쳐진 강력한 결계가 경복궁을 구역별로 분리하고 있어서이기도 했고,민경이 하위 능 력자들의 기억을 왜곡시키는 후속 조처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가에서도 오직 1,000명 정도의 고위 능력자들만이 대하의 존재를 알고 있을 뿐이었다.

“황녀 전하.”

그리고 민경의 곁으로 다가온 소녀 는 바로 그런 고위 능력자 중 하나 다. 이가의 능력자 중에서도 최상위 권에 위치한 강대한 능력자.

“인검 (人劍)

그녀는 이가의 무력을 상징하는 천 (天). 지(地). 인(人) 중 사람을 상징 하는 인검의 수호자이다. 그리고 인 검의 수호자라는 것은 그녀가 이가 의 3대 무력 단체 중 하나인 화랑 단의 수장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화랑단 (花郞團).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청소년들의 수양 단체였던 화랑단은 이미 오래 전 멸망해 사라졌으나 그들의 능력 에 흥미를 느낀 대마법사가 부활시 켰고,그는 인검을 만들어 화랑단을 이끄는 이가 대대로 물려받으며 힘 을 키우도록 명령했다.

화랑은 오로지 인간(人)에게서 힘

을 얻는 자들.

그들은 인간들의 동경과 선망,사 랑과 애정을 힘으로 치환해 사역하 며,그 때문에 화랑들 모두가 가수, 배우,모델이나 방송인 등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어느 장소,어느 사람들과 섞이더라도 빛나는 존재다. 화랑이 라는 집단이 가지는 근본적인 성향 때문에 전쟁터에 나가더라도 스타일 리스트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데리 고 다닐 정도. 그들은 빼어난 외모 와 재능,그리고 매력을 갖춘 존재 들이며 사력을 다해 그걸 발전시키 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화랑단의 단주가 바 로.

“최배달.”

“아,이런 씨……

“뭐라고?”

“아,아닙니다.”

순간 날아갔던 이성이 돌아오고 소 녀가 이성을 되찾았다. 그녀는 화랑 단을 이끄는 단장으로서 이면 세계 에서 높은 명성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그 녀를 다른 호칭으로 기억하고 있다.

천재 싱어송라이터.

국민 여동생.

리프 (Leaf).

그녀는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싱어 송라이터이자 연기력을 인정받은 정 상급 배우였고,온갖 예능에서 똑 부러지는 태도와 행동을 보여 전 국 민적인 호감을 사고 있는 방송인이 기도 했다.

“웃차.”

리프는 민경의 옆으로 다가와 창가 에 기댔다. 민경은 폐허가 된 건물 중에서 그나마 형태가 남아 있는 고 층 건물에 올라와 있던 상태였기에 나란히 서자 한참 전후 처리 중인 광화문 광장이 내려다보인다.

문득 리프가 말한다.

“전 항상 천재 소리를 달고 살았지 요.”

“천재?”

민경이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고개 를 끄덕였다.

“스승님께서 고아였던 절 우연히 발견하고는 손뻑을 치며 미친 듯 웃 으셨다고 하죠.”

일박광소(一相狂笑)의 전설이다. 표정이 없어 목인(木人)이라고 불렸 던 그녀의 스승이 그녀의 놀라운 재 능을 보고 기쁨을 참지 못했다는 사 연. 그녀가 화랑의 독문 수련법 천

지화랑도(天指花郞道)에 얼마나 놀 라운 적성을 가졌는지 단적으로 보 여주는 예라 하겠다.

명문가의 자손인 천검이나 병기로 서 제조된 지검과 다르게 오직 인검 인 그녀만이 오로지 자신의 재능만 으로 단장의 자리에 올랐다.

“노래를 처음 불렀을 때는 음악 천 재라고 불렸고 연기에 진출했을 때 는 연기 천재라고 불렸습니다.”

그녀는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그 냥 맨몸으로 대형 연예 기획사로 찾 아가 단번에 합격했다. 그녀의 음색 과 발성은 기획사에서 트레이너를 붙이기 부담스러워할 정도였고 한

번 본 댄스는 그 자리에서 손끝에서 발끝 처리까지 완벽하게 모방할 수 있을 정도로 몸놀림에 능했다.

“게다가 그 모든 것들보다 항상 앞 에 붙는 호칭이 얼굴 천재였고요.”

너무나 당당한 자기 자랑에 한참 심각하던 민경조차도 어이없는 표정 을 지었다. 하지만 리프는 이내 쓰 게 웃었다.

“그런데,그런데도.”

리프는 고개를 돌려 민경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영민이를 보았을 때……. 저는 열

등감을 느꼈죠.”

그녀가 맨 처음 관영민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물론 외모 때문이었다. 만화를 찢고 나온 것만 같은,남자 가 아니라 머리를 짧게 자른 미소녀 로밖에 안 보이는 외모는 실로 비범 한 수준이었으니까.

그러나 탑 안에서 그가 검을 들었 을 때.

마침내 표면 세계에서는 드러낼 일 없던 무(武)의 재능을 내보였을 때.

그녀는 전율했다.

“녀석은 세상을 뒤엎을 정도의 천 재였습니다.”

그야말로 개세(蓋世)적인 천재다. 그저 수많은 사람 중 가장 강한 자 가 될 정도의 재능이 아니라 혼자의 힘으로 세상을 까서 뒤집을,인간이 라는 종의 한계를 뛰어넘어 초월(超 越)의 경지에 오를지도 모른다고 짐 작될 정신과 재능의 소유자.

“그래. 정말 무시무시한 녀석이었 지.”

이면 세계의 가장 깊은 곳에 박혀 있는 언네임드의 유해. [탑]은 1년 에 한 번씩 전 세계를 대상으로 도 전자를 받아들인다. 만약 도전자가 없거나 모자란다면 강제로 소환했 다.

관영민은 유일한 표면 세계 출신의 도전자였다. 1,000명이 넘던 도전자 중 유일한 일반인.

그러나 그 일반인은 고작 커터 칼 하나 들고 탑의 우승자가 되었다.

“하지만.”

문득 공기가 무거워진다. 리프의 표정이 진중해진다.

“그 동생 녀석은 달라요. 그건,그 건 정말 완전히 다릅니다.”

리프는 관영민의 동생, 관대하를 떠올렸다.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 거릴 정도로 초월적인 마력도,온갖

술법으로 떡칠 되어 있는 병기들을 눈 깜빡할 사이에 액체로 만들어 버 리는 믿기지 않는 수준의 속성력도 실로 두려운 것들이었지만 그녀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간 것은 그가 불 러낸 로봇과 전투기들이었다.

어이가 없다. 검과 마법이 지배하 는 이면 세계에 로봇이라니?

그는 천재 같은 것이 아니다. 그는 존재는 표면 세계는 물론이고 이면 세계에서조차 너무도 이질적이었다.

“대체 그 녀석은 뭡니까?”

민경은 별다른 대답 없이 광화문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궁녀들이 광 화문 한편에 있는 시설을 조작해 하 수구로 흘러나갔던 혈액들을 회수하 는 모습이 보인다.

이번 전투로 입은 피해는 실로 어 마무시한 수준이지만,반대급부의 이득은 그 피해조차도 우습게 여길 정도로 막대하다. 주가의 모든 것이 나 다름없는 자금성의 권한을 얻어 낸 것을 별개로 하더라도 그렇다.

15만 명이 사용하던 장비,물자, 심지어 시체들까지.

지금부터 이가는 칼날 위를 걸어가 야 한다.

지금의 이득으로 더 강한 힘을 지

니게 될 것이며,이가라는 단체가 가지는 위상 자체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달라지겠지만, 다른 세력들 은 그것을 축하하는 대신 발을 걸고 등을 찌르며 승리의 비밀을 캐내려 할 테니까.

“그건 나도 궁금하지만.”

민경이 창가에서 몸을 돌린다. 그 럴 기분이 아니라 하더라도 더는 감 상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다.

“그걸 너무 궁금해해서도 안 된다 는 사실 정도는 알지?”

“…그렇네요. 네. 그렇겠죠.”

리프가 쓰게 웃는다. 대하가,그리

고 그가 탑승한 거대한 로봇이 그들 의 앞에 내려설 때의 압도적인 위압 감이 떠오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말.

“그렇다면,굳이 인류를 멸망시킬 필요는 없겠지.”

그 오만한 말.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녀 는 그 말에서 조금의 허세도 느끼지 못했다.

“머저리들이 녀석을 자극하는 일이 없게 작업해 줘.”

팡!

그렇게 마무리한 민경이 가볍게 땅 을 박차 건물 아래로 뛰어내린다.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보았지만 이 미 그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아이고,답은 하나도 못 듣고 일 만 생기다니.”

리프는 괜히 물어봤네,하고 투덜 거리며 다시 광화문 광장을 내려다 보았다. 수많은 이가의 능력자들이 보인다.

“그래. 인간은 인간의 싸움을 해야 겠지.”

다짐과도 같은 말.

그러나 그녀는 몰랐다. 몰려오는 신화(神話)의 파도 앞에.

[인간의 싸움]이라는 건 허망한 희 망 사항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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