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화
-그 제물. 받겠다!
권황의 주위로 뿜어졌던 시뻘건 기 운이 허공의 한 지점에 뭉쳐 검게 물들었다. 그것은 잠시 후 인간의 형상을 취했고,그것의 입이라고 추 정되는 부분이 찢어질 듯 크게 벌려 졌다.
웅!
동시에 아직도 주가 병력 중 상당 수의 몸에서 시뻘건 기운이 뿜어졌 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주가 의 병력이 아니라 주가를 돕기 위한 외부 병력이었다는 점이다.
“이 술식! 이 낙인! 권황! 아니,주 가니!!!! 설마 우리에게 제물의 낙인 을 찍은 거냐?!”
“이건 절대 하루 이틀 만에 준비할 수 있는 술식이 아닌데. 아니 그냥 술식도 아니고… 설마 이 많은 사람 에게 기생 벌레를 심었단 말인가? 대체 언제?!”
“어,어서 해주를……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저항하려 했지만,그럴 틈도 없었다.
푸확!!
언뜻 보아도 수만 명이 넘는 사람 들의 몸에서 피분수가 뿜어진다. 비 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진 사람들 의 위에서 검은 인간이 광소(狂笑) 한다. 그저 검기만 하던 그의 모습 이 점점 뚜렷해져 화려한 관을 쓴 사내의 모습으로 화한다.
-크하하하하! 만족스러운 제물이로
구나! 이제 소원을 말하라!
“새로운 제물을 바치겠소. 방식은 자율. 대상은 경복궁 안의 모든 인 간. 이는 소원이 아니라 대가를 더 하는 것이니 코스트의 감소는 절반 으로 하지.”
-큭큭,과연 약삭빠르구나. 물론.
새까만 기운이 하늘을 뒤덮는다.
-거절하지 않겠다!
섬뜩한 외침이 경복궁 전체를 쩌렁 쩌렁 울린다. 내가 음식들을 먹는 동안 여러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 던 재석이 창백한 얼굴로 다가왔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야? 이 목소리는 뭐지? 대하야, 너 뭣 좀 알아?”
“왜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이곳에서 너 혼자 태 연하게 있으니까.”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둘 러봤고,이내 안가에 숨어 있는 수 많은 이들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
다.
그곳에는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다. 공포,기대,혼란과 걱정 등 등. 그들은 지금 이 전쟁의 결과에 따라 자신들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 뀌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국 가와 집단의 흥망성쇠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개개인의 사정과 운명 따위는 얼마든지 휩쓸려 버릴 테니 까.
‘하지만 상관없지.’
그러나 그들의 눈을 무시했다. 감 정을 털어버렸다,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관찰자에 불과한 나는 이 모든 상황을 별다른 감흥 없이 지켜
보고 있을 뿐이니까.
“아직도 상황 파악이 잘 안 되었나 보지.”
아무 말이나 대충 지껄인다. 그만 큼이나 나는 이 상황을,수많은 사 람이 죽어나가고 있는 [전쟁]을 남 일처럼 여기고 있던 것이다.
그러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방심하고 있었다. 이 전쟁을 마주한 난 그저 구경꾼이자 참견꾼 일 뿐 이 참사의 당사자가 될 거라 고는 조금도 생각지 않고 있었으니 까.
변명하자면…….
나는 지구에 와서 그 누구에게도 위협을 느낀 적이 없다. 계속 나 스 스로는 약할 뿐이고 초보 능력자일 뿐이라고 되새기고 있었지만,그래 봐야 그 모든 조건을 뛰어넘는 무시 와 멸시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 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구의 이면 세계에서는 모두의 존 경을 받으며 신처럼 추앙받는 대마 법사조차도 대우주에서는 그저 무수 히 많은 초월자 중 한 명일 뿐이다. 대우주에서도 커다란 세력을 가지고 있던 레온하르트 제국의 공작들조차 내가 영력을 개방했을 때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지구 따위는 감히 비빌 수도 없는 무수한 세력을 이끌 고,또 스스로도 초월자급 생체력 수련자였던 하워드 공작은 [내] 심 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그 세력이 통째로 괴멸당하는 비극에 처하고 말았다.
지구에 와서 이능을 각성하고 또 열심히 수련했지만 그건 절대 [힘] 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초월지경까지의 모든 길이 상세히 안내된 경천칠색?
정령계에 입성하자마자 정령신을 만나 고유세계까지 다루게 된 정령 술?
초월자들이 정성을 다해 만들어낸 본보기들이 가득한 대장술?
그것들은 물론 대단한 수련법들이 었지만 내가 태어날 때부터 영혼 안 에 품고 있던 신성(神聖)에 감히 비 할 바가 아니다. 내가 그것들을 수 련하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의 힘과 영혼을 다스리기 위한,굳이 말하자 면 건강을 위해 헬스를 다니거나 다 이어트를 위해 식단을 조절하는 둥 의 행위에 불과하지 거기에서 얻게 될 힘은 그저 덤에 불과한 것이다.
그만큼이나 지구,이면 세계는 나 에게 위협의 대상이 아니다. 잘났다 고 힘을 뽐내고 잔혹함 앞에서,역
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자부심 앞에 서 나는 조금의 위협감도,위압감도 느끼지 못했다. 아니,오히려 나 스 스로가 신성에 취해 그들 모두를 멸 망시킬까 두려워했었지.
이 유리잔 같은 세상.
이 솜털 같은 세상.
그렇기에 예상하지 못했다. 온갖 불길한 힘을 뿜어내며 권황이 마신 이라는 존재를 불러냈을 때조차도 그저 신기해했을 뿐 예상하지 못했 다.
그 연약한 세상도,얼마든지 나에 게 상실감을 안겨줄 수 있다는 사실 을.
“안 돼! 지니! 아레스H 지금 당 장……!”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러나 너 무 늦어 있었다. 나의 인지능력은 그다지 빠르지 않다. 그냥 흔하디흔 한 생체력 수련자에 불과했으니까.
푸확!!!
거대한 악의(惡意)가 이가의 병력 을 향해 쏟아졌다. 어마어마한,마치 해일과도 같은 힘이었다.
“형을 지켜……!!!”
[대기하고 있던 황금기사가 움직였 습……. 맙소사! 이건 말도 안 돼……!!]
부풀어 오르는 악의에 지니가 비명 을 질렀다. 아레스조차 깜짝 놀랐다.
[초월의 힘이라고?! 어째서 이런 것들이?! 이까짓 제물 좀 바쳤다 고?!]
“뭐,뭐야,저건?! 뭐냐고!”
“으아악!!”
악의로 가득 찬 파도가 이가를 향 해 쏟아졌다.
콰과광!!!
하늘에서부터 폭격이 쏟아져 암흑 의 해일을 후려쳤다. 그저 평범한 폭격이 아닌,아이언 하트에서 쏟아 진 폭격이었음에도 암흑의 해일을 1
초 정도밖에 막아서지 못한다.
쿵!
그러나 그 막간의 시간을 벌었기에 황금기사는 형의 앞에 떨어져 내릴 수 있었다. 황금기사의 정면에는 이 미 전력으로 전개된 황금 방패가 있 다. 모든 황금기사들에게 내장된 강 대한 방어형 어빌리티.
“형! 들리지?!”
내가 소리쳤다. 비록 안가에서 소 리치고 있었지만,그 말은 우자트를 통해 알바트로스함에 전달되고 또다 시 황금기사에게 전달되어 형의 귀 에도 들어갔을 것이다.
나는 우자트의 안경알을 통해 경복 궁 안을 몰아치고 있는 악의의 파도 를 보았다. 수백 수천 년 동안 쌓인 악업이 형상화되기라도 한 것처럼 압도적인 규모의 힘.
단지 힘의 규모만이 큰 것이 아니 라 그것들은 이 세상의 이치를 [초 월]한 힘을 담고 있었다. 고작해야 완성자에 불과한 권황이,아무리 사 이한 힘과 제물을 바쳤다고 해도 이 만한 규모와 수준의 힘을 어찌 다룰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다.’
뒤늦게 나는 상황을 파악했다. 허 공에 떠 있는 저 새카만 존재. 권황
이 마신이라 부른 존재.
‘죽은 초월자의 영혼을 소환한 거 야!!!’
나는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황금기사의 등에 바짝 붙어!”
나는 이대로 형이 황금기사의 뒤로 붙으면 충분히 악의의 파도를 견뎌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 다. 아무리 초월의 힘이라 하더라도 검은 인영이 힘을 발휘하는 범위는 너무나 넓다. 아이언 하트의 상성 보정을 받고 방어에 특화된 인급 기 가스 황금기사의 힘이라면 적어도 극히 일부의 영역을 지키는 것은 가 능할 테니까.
그러나.
팟!
화면 속의 형이 황금기사의 어깨를 박차고 뛰어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미친,안 돼……!!!”
그러나 내가 더 뭘 하기도 전에.
일참(一斷)이 악의를 갈랐다.
-이런… 하찮은.
해일처럼 몸을 일으키던 모든 악의 가 흩어진다. 허공에서 광소하던 검 은 인영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자
신의 몸을 가르고 있는 거대한 [균 열]을 보았다.
“하하,그러니까 방심하면 안 되 지.”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 형이 떠 있었다. 자의로 떠 있는 것은 아니 다. 촉수 같은 검은색의 기운이 형 의 온몸을 관통하고 있다.
“끝까지 제멋대로라 미안해,대하 야. 그래도.”
피를 폭포수처럼 쏟아내 창백해진 얼굴로 형이 사과했다.
“그녀를 부탁해.”
쿠오오오---!
-아,안 돼! 이,하찮은 필멸자 놈 이----!!!
비명과 함께 허공에 떠 있는 균열 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그 모든 것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해일같이 밀려오던 악의도,그것을 일으켜 낸 마신이라는 존재도. 그리 고 그에게 달려들었던 한 명의 검사 조차도 모조리 사라지고 없다.
“•"뭐야.”
“이게 대체
한순간 적막이 내려앉은 전장의 모 습이 보인다. 멍한 표정의 사람들도 보였다. 그 꼬락서니가 보기 싫어서 우자트를 벗어버렸다.
“대상 지정. 영민이 형.”
성큼성큼 걸어가며 말한다. 그리고 대답하듯 눈앞으로 텍스트가 떠오른 다.
[대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상 지정. 영민이 형.”
[대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동!!!”
[대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 말 없이 걸어나간다. 안가의 문까지 걸어가자 안가를 지키고 있 던 수문장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안가는 봉 인이다.”
“전쟁은 끝났어.”
“헛소리하지 말고 들어가라.”
“대상 지정. 민경.”
팟!
일순간 배경이 변한다. 함화당의 지하에 있던 안가는 물론이고 근정 전에도 공간 이동을 방해하는 온갖 술식과 수단들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재앙급 타이틀,[인류의 재앙]이 가 지는 공간 이동은 모든 방해를 무시 하는〈절대 이동〉효과를 가지고 있다. 이미 소모해 보았던 능력이지 만,[악인을 1회 살해할 때마다 이 동 스택 1 충전(최대 10회)]의 효과 로 이미 회복되어 있다. 이 칭호가 판단하기로,전쟁터에서 내 손에 죽
은 누군가가 악인이었던 모양이다.
좌황!
“누구냐!”
“어떻게 여기로 공간 이동을?!”
“아니,잠깐. 저 녀석은……
반사적으로 무기를 겨누었던 이가 의 무사들이 내 모습을 확인하고 어 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다. 여전히 주가도,이가도,그리고 그 전쟁에 끼어든 다른 이들도 정신을 못 차리 고 있는 상태였기에 그들은 반사적 으로 무기를 겨누고 있을 뿐 어쩔 줄 모르고 있다. 언제나 당당한 태 도를 유지하던 민경 역시 멍하니 나
를 보고 있을 뿐.
나는 그 모두를 무시하고 전장을 가로질러 형이 사라졌던 자리로 걸 었다.
“•"네놈. 여기에는 왜 왔지.”
망연자실 서 있던 권황이 말을 걸 었다. 나는 무시하고 바닥을 살폈다. 거기에는 형이 들고 있던 커터 칼이 있었다.
“내말 안 들리나?”
미친 노인네가 뭐라고 떠들었지만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커터 칼을 들고 가만히 있었다.
이게 다다. 남은 것이라고는 이 커
터 칼과 바닥에 잔뜩 쏟아져 있는 형의 피뿐이었다. 그마저도 다른 이 들이 쏟아낸 피와 뒤섞여 구별조차 잘되지 않는다.
“하하.”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나오 지 않는다.
형은 살 수 있었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냥 내 말대로 황 금기사의 등 뒤로 숨었다면 악의 가 득한 어둠의 파도쯤 얼마든지 버틸 수 있었을 테니까. 아니,그 거대한 참격을 날릴 수 있는 형이라면 굳이 황금기사가 아니더라도 스스로의 몸 을 추스를 수 있었을 것이다. 참격
을 날려 균열을 만들고 그 안으로 피한다면 얼마든지 악의의 해일을 피해낼 수 있었을 테니까.
“하하하하!”
그러나 형은 알았다. 만일 형이 그 렇게 스스로의 목숨을 지켰다면 ……. 자신이 뒤에 있던 이가의 모 든 병력이,그리고 그들을 이끌던 대한제국의 황녀가 죽게 될 것이라 는 사실을.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대체 뭐지?
이게 무슨 상황이지?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지?
믿을 수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수많은 죽음으로 가득한 전쟁에 참 여하고서도,이런 상황이 될 거라고 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형 은 내가 봐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강했으며,만약을 위한 대비 역시 충분히 해놨었으니까.
“해명은 나중에 듣기로 하고. 일단 빠져야겠습니다,권황 님. 저 멍청한 놈이 검마의 동생이라고 하니 이대 로 잡아가서.”
“••♦구나.”
“뭐라고?”
난데없는 내 말에 의문을 표하는 녀석을 보며 몸을 돌렸다.
“정말 어쩔 수가 없구나. 이.”
그리고 말한다.
벌
레
아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