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Chapter 8. 영웅은 꽃처럼 지고 신은 불처럼 타오른다
경복궁은 이가에게 압도적으로 유 리한 전장이다. 경복궁을 둘러싸고 있는 [출입 제한]은 대마법사의 궁 극 마법이 적용된 결계로 이면 세계 의 그 어떤 능력자도 파괴할 수 없 는 절대적인 방어력을 자랑하니까.
그 때문에 주가의 병력은 오직 광 화문을 포함한 [허가구역]을 통해서
만 공성전을 진행할 수 있다. 정확 한 범위를 말하자면 광화문의 약 2 배 정도 되는 범위의 성문과 성벽을 파괴할 수 있을 뿐 그 외 범위의 성벽은 타고 올라갈 수도,파괴할 수도 없는 것.
그러니까 결국 문제는 숫자뿐이다.
3만 대 15만이라는 그 절대적인 차이.
주가는 공성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 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압도적인 규모의 술법사들을 대동하고 있었 고,그들은 광복궁을 포함한 [허가 구역]에 무시무시한 폭격을 날렸다. 그것은 일종의 제압사격과도 같은
효과를 발휘했기에 주가의 병력이 조금씩조금씩 경복궁 안으로 침입할 틈을 만들었다.
‘이 페이스대로 전쟁이 계속 진행 된다면 결국 이가는 멸망할 수밖에 없겠지.’
그 말대로다.
이 페이스대로 전쟁이 계속 진행될 수 있다면 말이다.
“이건 글렀군. 난 빠지겠다.”
쏟아지는 화살을 피하며 전투를 수 행하던 무사 하나가 이를 갈며 몸을 뺀다. 이미 땅에는 시체가 언덕을 이루고 있고 피가 강이 되어 흐르고
있다.
많은 이가의 능력자들이 죽었다. 이가의 역사를 통틀어봐도 유례없을 정도로 엄청난 피해.
그러나……. 죽어가는 그 이상으로 많은 주가의 능력자들이 죽었고,또 죽어나가고 있다. 교환비 자체도 주 가가 생각하던 수준을 한참 넘어섰 으며,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교전 시간이었다.
그렇다. 전쟁이.
길어지고 있다.
“가만 보니 이 개새끼들이 우리를 선두에 세우고 있잖아? 우리는 이기
는 전투를 도우러 온 거지 죽어주러 온 게 아니다!”
“제길. 이딴 상황이 될 줄 알았으 면 우리 양산박은 애초에 끼지도 않 았다,망할 것들아!”
용맹을 자랑하며,흉포함을 뽐내며 달려들던 주가 능력자들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술식을 소모해 광화문을 뚫 었더니 흥례문을 중심으로 한 방어 진이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그 또 한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고 뚫었더 니 근정문을 중심으로 한 방어진이 펼쳐져 있다. 어떻게든 선회해 넘어 가려 했지만,국립고궁박물관은 이
미 요새화되어 있고 건춘문으로 향 하는 광장은 온통 지뢰밭이다. 엄청 난 피해를 감수하고 그 모든 방해를 뚫고서 전진했을 때는,이미 근정문 을 중심으로 철옹성이나 다름없는 방어선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까지 40시간이 걸렸다.
“이건,이건 아니야. 뭔가 잘못되고 있어.”
“제길! 도저히 방어를 뚫을 수가 없어! 준비가 너무 잘 되어 있다 고!”
“내부에서 호응이 있을 거라면서! 왜 아무 반응도 없는 거야?!”
자신만만하던 주가의 전쟁 계획은 이미 완전히 어그러져 있다. 이미 입은 피해가 너무나 크다. 도황 검 마에게 별다른 피해조차 입히지 못 한 채 패배하며 예기가 꺾여 버렸고 시스템의 빈틈을 찌르는 비수(匕首) 가 되어야 했을 비선별 인원들이 제 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몰 살당해 버렸다. 거기에 그들을 노리 고 쏘아졌던 화살들에 함께 죽어나 간 선두 병력들 때문에,진형 자체 가 완전히 뭉개진 상태에서 전투를 시작하기까지.
주가의 입장에서,이미 모든 상황 은 상정해 둔 최악을 넘어서는 상황
으로 흘러가고 있다. 소모한 시약과 마법 물품들도,죽어간 능력자의 숫 자도 이미 감당이 안 되는 수준에 이르러 버렸으니 이대로는 이겨도 이긴 게 아닌 처지가 되어버린 것.
물론 압도적인 병력 차이가 있으니 이대로 계속 밀어붙인다면 엄청난 피해를 볼지언정 승리는 주가의 것 이겠지만,지금 이곳에 있는 이 대 군(大軍)은 결코 통일된 하나의 집 단이 아니다.
“잠시 정지! 즉시 우측으로 빠져 라!”
“강 대인? 지금 뭐 하는 거요?”
느닷없는 병력의 이탈에 당황하는
소리가 터져 나오자 상의를 탈의한 근육질의 사내가 이를 악물고 소리 쳤다.
“정말 너무하는구려! 좋은 마음으 로 돕고자 온 우리를 이런 A]•지(死 地)로 몰아넣다니!”
“웃기는 소리군! 전장이란 본디 삶 과 죽음이 오가는 공간! 설마 지금 와서 배신하겠다고?”
병력을 지휘하던 주가 무사의 외침 에 금강문의 수련자가 발끈해 소리 친다.
“배신이라니 말을 함부로 하는군! 아무리 같은 중국인이라 해도 우리 는 주가 소속이 아니라 금강문의 수
련자! 이미 너무나 큰 피해를 보았 으니 이미 할 만큼 했다고 보오!”
그 말과 동시에 주가의 전면부에 있던 금강문의 능력자들이 우르르 물러선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 다.
“저희 지고마탑도 이쯤에서 빠지겠 어요. 소중한 제자들이 너무나 많이 죽었습니다.”
“양산박도 빠진다! 이 젠장할 것 들! 15만 중 5만 가까이 죽었는데 죽은 주가 놈은 한 줌도 안 되는구 나!”
“흑암파도 빠지겠소. 더 돕고 싶지 만……. 자금성을 잃어버린 주가가
우리의 피해를 제대로 보상하지 못 할까 우려가 되는바 어쩔 수가 없구 려.”
아직도 10만 가까이 남아 있던 주 가군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한다.
주가군(軍)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려 표현했지만 사실 중국의 모든 능력 자가 주가의 소속인 것은 아니다. 그저 스스로를 황실이라 주장하는 주가를 대부분의 중국인 능력자들이 인정하고 있기에 나오는 대표성일 뿐.
그들이 주가를 따랐지만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주가인 것은 아니다. 15만이라는 엄청난 숫자는 중국 내
의 거대 단체들,그러니까 5대 무파 중에서는 금강파(金剛派),흑암파 (黑暗派),진천파(振天派)가. 3대 마 탑 중에서는 지고마탑이 더해진 결 과이며 더불어 무수히 많은 군소 세 력에게 지원받거나,대가를 주고 받 아들였거나,심지어는 끌고 온 이들 까지 더해진 결과였으니까.
그들은 중국인이기 이전에 각자 자 신의 단체를 가진 존재들이다. 지금 까지처럼 주가가 압도적인 영향력이 나 권리,혹은 대표성을 가졌을 때 라면 모르겠지만 이미 본진마저 잃 어버린 그들을 위해 어쩌면 공멸(共 減)할지도 모를 최악의 전쟁을 대신
수행해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진천파도 빠지겠소. 이런 무의 미한 전투에 문도들을 더는 희생시 킬 수는 없으니.”
“태룡인(太龍人)들 역시 이쯤 하겠 습니다.”
10만의 군세 중 절반이 넘는 숫자 가 천천히 병력을 빼기 시작하자 전 투가 소강상태에 빠진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자 적게는 십수 명 씩. 많게는 백여 명씩 참가한 군소 단체들 또한 무기를 늘어뜨리기 시 작했다.
“잠시 대기.”
그 분위기를 눈치챈 공주가 손을 들었고,그것을 본 리프가 화살을 쏘아대고 있던 화랑단을 막았다.
전쟁이 멈췄다.
“이,이! 이 배신자들!!”
“지금 뭐 하는 거냐!”
주가 측 능력자들이 당혹스러워하 며 소리친다. 이제 전장에서 전쟁을 원하는 것은 오직 그들뿐이었으니 까. 이미 자금성을 잃어 이가를 몰 살,혹은 항복시키고 경복궁을 정복 해야 하는 게 그들의 입장이었는데 분위기가 이상해지고 있었으니까.
그들은 오히려 더 발악하며 마법을
쏘아내고 검을 휘둘렀지만 그렇다고 분위기가 바뀌지는 않았다. 왜냐하 면,모두들 슬슬 깨닫고 있었기 때 문이다. 과연 반도 채 남지 않은. 심지어 기세가 크게 꺾인 그들이 경 복궁을 점령하는 게 가능할 것인가?
하지만 어쩐 일인지 주가의 대장이 라고 할 수 있는 권황은 별로 당혹 스러워하는 기색이 아니다.
“아미타불.”
그는 고요히 염불을 외우고 있다. 초탈하게까지 보이는 그의 분위기는 그가 불과 10여 분 전만 해도 수라 (修羅)처럼 수백의 사람을 때려죽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다.
“권황 님! 어찌해야 합니까?”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권황 님!”
“주가와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뭔 가 작전이 있는 겁니까?”
군을 이끌고 있던 주가의 고위 능 력자들이 자신들의 임무조차 내팽개 치고 물어오고 있음에도 권황은 대 답하지 않고 염주만 굴렸다.
“권황 님?”
“…권황?”
마침내 웅성웅성하던 주가의 능력 자들까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 닫고 조용해지기 시작한다.
권황이 눈을 뜬 건 바로 그쯤이었 다.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었군.”
“흡?”
“뭣?!”
“이런 미친……!”
주가의 수뇌부들이 크게 술렁인다. 주가는 물론이고 권황을 보고 있던 사람들 모두 놀라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권황의 눈이 검은자위도 흰자위도 없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 다. 권황이 씹어 토해내듯 말했다.
“아미타불(阿弼防佛)
푸욱!
권황이 어디선가 나타난 고풍스러 운 보검으로 자신의 심장을 찔렀다. 어쩐 일인지 피는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는데 그 대신 시뻘건 기운이 사 방으로 퍼져 나간다.
“하늘을 검게 물들일 마신(魔神)이 여! 약속된 제물이 여기에 있으니 계약에 따라 임하시오!”
“혈마기! 미친! 권황 당신이 혈마 기를 다루다니……!”
“아니 그보다 저건 의천검(倍天劍) 이잖소! 봉인기(封印器)를 쓰는 건 협약 위반이요!”
“당신 미쳤어?! 이렇게 되면 다른 세력들도 봉인기를 꺼낼 명분이 생 기오! 당장 이가부터 봉인기를 꺼낼 텐데!!”
주가의 동맹들은 물론이고 주가 소 속의 능력자들마저도 기겁해 소리친 다. 권황의 아군이 그러할진대 적인 이가의 반응은 뻔하다.
“저 노친네가 완전히 미쳤군! 제정 신이 아니야! 당장 조치하고 모든 세력에 이 사실을 전파해야 하오!”
“대마법사께서 돌아가신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그분의 명령을 어긴 단 말인가!!”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자칫 세 계대전이 벌어질 것이오!!”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던 전장이 다 시금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결연하 고 분기탱천하는 분위기. 그러나 위 성처럼 하늘에 떠 알바트로스함의 시점에서 모든 걸 내려다보고 있는 내 생각은 좀 달랐다.
‘귀엽구먼.’
우걱우걱.
산처럼 쌓인 김밥들을 씹어 먹어 소모된 칼로리를 충당하며 봉인기라 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대마법사 가 막대한 재화와 시간을 소모해 하
나하나 만들어냈다는 명품 중의 명 품.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종말의 그날까지 봉인해야 하는 위대한 신 기 (神器).
‘그래 봐야 상급 마법기인데 말이 야.’
그렇다. 기껏해야 상급 마법기에 불과한 것들이 바로 지구에서 봉인 기라고 불리는 병기들의 정체다. 물 론 최고 수준의 능력자가 10레벨. 그러니까 완성자에 불과한 지구에서 는 적정 레벨이 15가 넘는 상급 마 법기는 신기로 보일 수도 있겠지.
[그래도 이름만큼은 하나같이 어마 어 마합니 다. 엑 스칼리 버 에 (Excalibu
r) 에 천부인(天符印)에 미스텔테인 (Misteltein) 에 초치검(草藥劍),브류 나크(Brionac)까지. 이런 하위 문명 에서 혼히 있는 일이긴 합니다 만……J
[모조품들 가지고 잘난 척하는 걸 보면 참. 아! 그러고 보니 그 보람 이라는 여자아이는 궁니르를 들고 다녀서 정말 웃겼는데.]
‘너무 그러지 마. 나름대로 자부심 을 가진 무기들이잖아.’
약간 흉보는 분위기가 되어버려 자 제시키자 아레스가 동그란 눈으로 반문했다.
[음? 아니 내가 웃긴다는 건 그 이 야기가 아닌데.]
‘그럼 뭔데?’
[그야 궁니르가 지금.]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캬캬캬캬! 어리석은 필멸자야.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자비 한.
마주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한.
-그 제물. 받겠다!
그러한 악(惡)이 눈을 떴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