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화
“쳐라!!! 이가라는 비렁뱅이들을 이 세상에서 지워 버려라!!!”
여전히 살아 있는 또 다른 삼황, 권황의 포효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거대한 군세가 경복궁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하야!”
나는 형의 부름에 두말하지 않고 전광석화를 발동,광화문을 향해 뛰 었다. 대장전이 이어지던 아까와는 상황이 다르다. 선별자끼리의 전투 를 막던 제약이 사라진 이상,이만 한 대군 앞에 서는 건 죽여달란 말 이나 다름없겠지. 적의 숫자는 10만 이 넘는다. 한 명당 한 대씩만 때려 도 10만 대 이상. 그들이 돌아가며 딱밤 한 대씩을 때려도 이 반쪽짜리 기가스는 박살이 나고 말 것이다.
쩡!!!!!
“컥?!”
그러나 광화문 위로 막 뛰어 을라 가려던 난 등짝을 후려치는 무지막
지한 타격에 그대로 바닥을 뒹굴었 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지만, 정 신을 차릴 수가 없다. 머리가 빙빙 돌고 손발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의 충격을 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좌악!
새까만 검기가 멍하니 서 있던 내 머리를 향해 날아들던 연격을 잘라 버린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공격이었다.
과작! 과자작!
잘려 나간 공격이 광화문에 충돌하 자 광화문이 과자 조각처럼 간단히 부서져 버린다. 궁극 결계. [출입 제 한]의 특성상 별다른 방어 주문을
걸 수 없다고는 하지만 저 큰 성문 이 공격도 아니고 공격의 파편만으 로 박살 나다니.
“대하야,괜찮아?!”
“아,아,와우.”
고개를 흔들며 충격을 흩어낸 후 정신을 집중한다.
그리고 육신의 타격을 고유세계의 육신에 [전달]했다.
[3단계 이상의 중증 외상을 확인. 즉시 수술을 시작하겠습니다.]
‘부탁해.’
고유세계에 있는 내 육신이 수술대 에 눕는 걸 확인하고 즉시 현실로
시야를 되돌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몸 상태는 만전이다.
“어후,놀라라.”
“아니,상처 다 어디 갔어? 이거 회복이야?”
멀쩡히 몸을 일으키는 내 모습에 형이 황당해하거나 말거나 나는 P-1 의 상태부터 살폈다.
“아이고,완전히 박살이 났네.”
맞은 건 등이었지만 동심원의 효과 로 충격이 퍼져 나가면서 기체 전체 가 파괴되었다. 오른손으로 왼팔을 슥 훑어보니,쇳소리를 내며 파츠들 이 죄다 바닥으로 떨어진다.
“화랑단!!! 흩날리는 꽃에 취 하라!!!”
“명을 받듭니다!!”
꽃다운 외모의 무사들이 꽃나무로 만든 화살을 쏜다. 그리고 화살이 허공을 가르자 온 세상이 꽃으로 가 득 찼다.
꽃의 종류는 각각 다르다. 누군가 는 벚나무 가지를. 누군가는 산딸나 무 가지를,누군가는 매화나무,누군 가는 개나리 나무,누군가는 목련 나뭇가지를 쏘았고,그것들은 모두 꽃잎이 되어 비처럼 쏟아진다.
“크아악! 제기랄!! 뚫어!”
“방어 마법을 펼쳐!!!”
주가의 무사들 역시 악을 쓰며 저 항했지만 흥분하여 가장 먼저 몰려 왔던 일파(一派)는 꽃의 비를 버티 지 못하고 쓸려나갔다. 꽃잎들은 화 사하고 아름다웠지만,그것에 닿는 모든 것들을 관통하고 찢어버리는 학살 병기였다.
심지어 화우의 무서움은 그뿐이 아 니다.
“크,크악! 꽃,꽃나무가……!!!"
“떼,떼어버려! 꽃잎에 피부가 닿 으면 안 돼!”
여기저기에서 꽃나무가 자라난다.
벚나무가,산딸나무가,매화나무가 자라난다. 그것들은 광화문 앞에 가 득한 피와 살점을 게걸스럽게 집어 삼키며 가공할 속도로 성장했고, 그 렇게 자라난 꽃나무들은 다시 흐드 러지게 꽃잎을 뿌렸다.
좌악!
그때 내 옆에 서 있던 형이 또다 시 무언가를 잘라냈다. 그리고 그제 야 나는 내 등을 후려친 공격이 뭔 지 알 수 있었다. 새하얀 머리칼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건장한 체구 의 노인,권황이 나를 향해 주먹을 뻗고 있었으니까.
“와, 무슨 백보신권 같은 건가?”
“빨리 물러나야 해,대하야! 이제 저것들 성문으로 쳐들어온다!”
“알았어.”
나는 뻗었던 주먹을 회수하는 권황 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흩날리 는 꽃잎 사이에서 내 쪽을 노려보는 노인의 얼굴이 살벌하다.
“야! 너 괜찮아?!”
재빨리 물러나 경복궁 안쪽으로 들 어오자 양복을 입은 한 무리의 사내 들과 이야기하고 있던 재석이 달려 온다.
“여,재석아.”
“여는 무슨 미친놈아! 영능에 입문
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적진으로 뛰 어들어?! 제정신이야?”
“멀쩡하잖아.”
“갑옷이 다 박살 났는데 뭔 멀쩡? 이면 세계가 얼마나 위험한 줄 알 아? 좀만 삐끗했으면 사망이라고!”
텅! 좌르릉!
헬멧을 벗는다. 너덜너덜한 상의와 하의도 내던지고 발을 탈탈 털어 부 츠도 벗어버린다. 어느새 내 발밑에 는 금가고 부서지고 박살 난 금속 파편들이 쌓여 버린다.
“하긴 네 말도 맞다.”
“하긴이라니……. 아니,너 원래 이
런 캐릭터 아니지 않았냐? 무사안일 주의의 화신 같던 녀석이 뭔 관우 장비가 되어 돌아왔어? 힘이 생겨서 성격이 변하는 건 많이 봤지만 이건 너무 극단적인데?”
황당해하는 녀석의 말을 들으며 바 닥에 쌓여 있는 금속 파편에 손을 올린다.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금속 의 속성력. 파편들이 천천히 액체처 럼 녹아 커다란 쇠공의 형태로 뭉친 다.
그리고 그대로 뻥!
쇠공은 사람들 다리 사이로 데굴데 굴 굴러가 구석에 대충 처박혔다. 표면 세계의 경복궁이라면 대략 매
표소가 있을 즈음이다.
“전투 준비하라!!!”
“안전거리를 확보해!!”
순간 들려오는 거센 고함. 재석은 깜짝 놀라 나를 끌고 이가 병력의 뒤로 황급히 물러났다.
“시작된다.”
“시작이라니. 이미 싸우고 있었잖 아.”
“그거야 우리가 일방적으로 때리던 거고. 녀석들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었겠지만……. 공성전이 벌어질 가 능성이 있는데 대책을 안 세웠을 리 는 없지.”
과연 그의 말대로였다.
과과과광!!!
무지막지한 마법 세례가 광화문으 로 쏟아진다. 한두 발의 마법이 아 니라 수십,수백 발의 마법이 유기 적으로 연동된 폭격! 잠시간 버티던 광화문은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박살 나 무너져 버렸다. 광화문 근 처 성벽에,또 위 누각에 있던 화랑 단은 이미 성문 안쪽으로 들어와 진 형을 새로 짠 지 오래다.
“윽! 아직도 가깝네. 더 빠지자.”
귀를 막고 괴로워하는 재석을 따라 뒤로 한참이나 빠진다. 흥례문,근정
문을 지나서 근정전 앞 조정에 도달 한다. 불과 얼마 전에 검성이 이가 의 가주를 핍박하고 대장전을 천명 했던 장소.
평소에는 사정전이나 강녕전으로 향할 때 조정 부분을 밟지 못하게 눈치 주는 궁녀들이 있었지만,이 혼란한 상황에 그럴 여유가 있을 리 없다. 웅성웅성하며 바쁘게 움직이 며 화살이나 마법 도구 같은 전투용 품을 나르는 궁녀들과 긴장한 표정 으로 자신의 무기를 점검하고 있는 전투원들만이 있었다.
“뭐야. 저 녀석들은 누군데 광화문 쪽에서 오지?”
“저기 저 떡대는 내가 알아. 배재 석이라는 이름이었나. 일성 회장 손 자.”
“이 난리통에 일반인이 돌아다닌다 고?”
“일성이 아무리 이가의 재정을 담 당한다곤 해도……
몇몇 능력자들이 우리를 보며 자기 들끼리 속삭였지만,그저 그뿐. 다가 와서 말이나 시비를 걸기에는 조정 의 분위기가 너무나 삼엄하다. 1선 의 이능력자들에 비해 여러모로 어 설픈 레벨과 장비를 가진 후기지수 들이지만 지금은 이가의 총력을 기 울이는 상황이었던 만큼 그들 역시
전투를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야,고작 몇십 미터 거리인데 밖 상황을 모르는 건가?”
“당연히 모르지. 이미 경복궁 전체 가 전시체제로 들어갔어. 구역별 특 급 결계가 모조리 활성화되었고 문 마다 수문장까지 설정되었다고. 특 히 홍례문하고 근정문은 용(龍)급 대결계를 가지고 있으니 외부 상황 을 눈과 귀로 알기는 어렵지. 대신 근정문을 부수지 않는 이상 이 안으 로 침입할 수도 없고.”
녀석의 말을 들으며 우리보다 먼저 근정문 안으로 들어온 형의 모습을 찾는다. 황당하게도 형은 대여섯 명
의 승려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태 였다.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나무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사바하
“부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이 그 마음 을 다스려야 한다……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
법의를 입은 승려들이 형을 둘러싸 고 중얼중얼 염을 외우자 뭐라 표현 하기 힘든 신비한 기운이 형을 휘감 는다. 나는 어이가 없어 재석이를 돌아보았다.
“저게 뭐야. 설마 승려들이 힐 줌?”
“힐이 뭐냐,힐이……. 법문 독송이 야. 조계종 만당(FE黨)의 투승들은 쌈박질 전문이지만 본질은 성직자니 까.”
“홈.”
나는 스님들의 독송과 함께 묘한 기운이 형의 온몸을 휘돌며 육신을 회복시키고 기운을 북돋고 있는 모 습이 보인다. 형의 전신을 폭급하게 휘몰아치던 흑색의 기운. 그러니까 천살기를 가라앉히며 채워 넣는 과 정이 능숙하기 그지없다.
‘처음이 아니군.’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꽝!
순간 엄청난 폭음과 함께 땅이 흔 들린다.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비명 이 터져 나온다.
“이,이 신호는……. 흥례문! 흥례 문이 파괴되었어!”
“준비된 전투조부터 근정문을 통과 해 지원을 나간다! 방어술식이 가능 한 술법사들도 가세해라!”
삼엄한 긴장감이 감돌던 조정이 대 번에 소란스러워졌다. 다들 뭐가 그 리 급한지 고함을 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여기저기에서 요란스러 운 영기의 파동이 퍼져 나간다.
“도련님.”
그때 양복을 입은 사내 몇 명이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들 의 모습에 재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더 빠지자. 아예 쭉 빠져 서 사정전,강녕전,아니,그냥 향원 지까지 쭉 빠지는 게 낫겠어 어차 피 출입 제한 때문에 전장은 광화 문,흥례문,근정문 순으로 이동할 테니 뒤로 가면 갈수록 안전할 거 야.”
광!
뒤에서 다시 폭음이 울렸다. 재석 의 표정이 다급해진다.
“대하야.”
“아니,잠깐. 아예 쭉 빠지자고? 전쟁은?”
“난 일반인이고 너도 이미 싸울 만 큼 싸웠어. 이면 세계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패기가 넘 쳐?”
“하지만.”
“게다가 이 난리여도 지금 상황은 나쁘지 않아. 이미 공주님은 이미 이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준비해 왔 으니까.”
단언하는 말에 뭔가 새삼스러워져 서 재석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고 보면 이 녀석은 일반인인 주제에 꽤 깊게 이 전쟁에 관여하고 있다. 그 저 평범(?)한 재벌 3세라고 생각했 는데 나름의 사정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모든 게 계획대로다?”
“어떻게 그런 건방진 소리를 하겠 어? 하지만……. 사실 지금 상황은 그 이상이야. 상상 이상으로 너무 잘 풀렸어. 네 깽판도 한몫했지.”
나는 쓰고 있던 우자트를 조정하여 전체적인 전황을 살펴보았다. 박살 난 광화문과 이미 경복궁 안으로 들 어오기 시작한 주가의 전투 병력이
보인다. 여기저기 쓰러진 시체들과 셀 수 없이 쏟아지는 주문들, 화살 들,그리고 포격과 총격까지.
“아.”
그리고 나는 알았다. 알아볼 수 있 었다.
물론 초보 능력자인 네까짓 게 뭘 알아볼 수 있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틀림없이 나는 영능을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였으니까.
그러나 동시에.
나는 전쟁의 전문가다.
“…그렇군. 이미 이긴 것이나 다름
없군.”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는.”
“아니,그렇게 말해도 충분해. 물론 주가는 엄청난 기세로 몰아붙이고 있지만……. 막히고 있어.”
그렇다. 막히고 있다. 틀림없이 이 가에도 피해가 누적되고 있었지만, 이가의 진형은 서서히 물러나고 있 을 뿐 무너질 기미가 전혀 없다.
이런 [어영부영 막히는] 그림은 주 가에게 치명적이다. 차라리 덤빌 엄 두도 못 내고 후퇴하게 되면 다행이 지 상황이 이렇게 흘러간다면.
나는 그 순간,전쟁의 흐름이 처음
부터 끝까지 훤히 보이는 것을 느꼈 다.
그리고 전쟁은 바로 그 예측대로 흘러갔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