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화
“이놈이 어딜 감히!”
돌진하는 나를 대머리 무사가 막아 선다. 녀석은 양손에 끝이 세 갈래 로 갈라져 있는 기묘한 둔기를 들고 있다.
‘닌자거북이가 들던 그거 아냐? 이 름이 필가차였나.’
사극에서나 볼 법한 물건이지만 지
금 이곳은 그런 물건들이 살인 병기 로써 최전선을 뛰는 전쟁터. 머리카 락은 하나도 없는 주제에 턱수염이 북슬북슬한 녀석은 시퍼런 필가차로 시퍼런 내력을 뿜어내며 목 부분의 빈틈을 찌르려 들었다.
흑.
최후의 최후까지 반응하지 않다 공 격이 갑주 사이로 찔러 들어오려는 순간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그것만 으로 관통을 목적으로 했던 필가차 는 투구의 경사에 빗겨 나간다.
파직!!!
스파크와 함께 가속한다. 그것은 전설급 어빌리티〈전광석화(電光石
火)〉의 힘. 나는 아스팔트 바닥이 으깨질 정도로 강하게 바닥을 디딘 후 벼락처럼 상체를 들어 올리며 그 보다 더 빠르게 오른팔을 휘둘렀다.
서걱.
금속 제어 능력으로 한순간 날카로 운 형태로 변한 오른팔의 장갑이 경 천칠색,주황의 힘을 받아 초진동 나이프처럼 가볍게 녀석의 오른팔을 절단한다. 이어서 돌진. 자세를 더 낮추며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리는 녀석의 몸을 쳐올린다. 이어 다시 경천칠색 주황. 내 양팔이 녀석의 두 다리를 스쳐 지나가고 녀석의 왼 팔을 잡아 몸을 회전시키며 올려 찼
다. 그야말로 찰나간에,물 흐르는 듯 부드러운.
사지절단(29技切斷).
인도적인 기술이다. 그 어떤 기가 스도 조종석이 팔다리에 달려 있지 는 않기 때문에 이 기술에 당한 조 종사는 95% 이상의 확률로 별다른 부상 없이 생존하게 될 것이다. 패 배=사망이 당연한 공식인 우주 전 투에서 이 이상 인도적인 전투 기술 은 존재하지 않을 거라 생각될 정도 로 자상한 기술.
그러나 대인전에서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좌아아아악!!!
“크,크악!!! 내,내 팔!!! 내 다리 가아아아아!!!!!!”
“아이고.”
사지를 잃어버리고 몸통만 남아 버 둥거리는 무사를 보며 신음했다. 비 명을 지르며 꿈틀거리는 그의 모습 이 묘하게 굼벵이 같아서 더욱 끔찍 하다. 차라리 일반인이었다면 쇼크 사라든가 과다 출혈로 죽기라도 할 텐데 강대한 생명력을 가진 이능력 자인 그는 이 상황에도 살아남아 더 더욱 큰 고통을 느끼는 것.
그는 죽지 않을 것이다. 사지를 잃 어버렸다는 고통과 절망 때문에 자 살하지 않는 이상 이대로 내버려 둬
도 출혈을 멈추고 긴 시간 생존할 수 있는 초인이 바로 육체계 능력자 였으니까.
“흠,그래도 너무 피가 튀니 상처 를 지져야겠-”
땅!
“다. 아야.”
이마를 후려치는 충격에 휘청거렸 다가 다시 자세를 잡는다. 그야말로 귀신같은 저격이었지만 타격은 없 다. 잠시 집중이 풀려 경천칠색을 유지하지 못했음에도 기습이 통하지 않은 것. 기가스 콜이 작동하면서부 터 P-1 의 방어력이 부쩍 증가했다 는 증거다.
“제,젠장,저 녀석 뭐야?! 뭐 하는 놈이야?! 어떻게 선별자랑 비선별자 가 이렇게 섞여 있는 곳에서 맘대로 움직일 수가 있지?!”
“아니,그보다 저거 너무 빨라! 전 신갑옷을 입고 뭐 이렇게 빠른 거 야?!”
“너무 튼튼해! 제기랄,저 갑옷 대 체 뭐야?!”
“제길,징징대지 말고 죽여!!! 여기 사람이 몇 명인데 저깟 애송이 한 놈한테……!!"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온 비선별 인 원들이 칼을 휘두른다. 그야말로 벼
락같은 속도에,수없이 긴 수련을 거쳐 온 현묘한 검로.
그러나 소용없다.
파직!
[전광석화]. 벼락같이 떨어지던 공 격들이 굼벵이처럼 느리게 인식된 다. 그리고 그 느릿한 시간 속에서 양손을 든 나는 휘둘러지는 칼을, 심지어 멀리에서 쏘아진 저격까지 튕겨낸다. 이어 전력으로 휘둘렀던 칼이 튕겨 나가 자세가 흐트러진 녀 석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사지절단.
진동의 힘으로 땅을 때려 빙글빙글
회전. 허공으로 튀어 오른다. 뒤쪽 애매한 위치에 끼어 내 전투를 보고 있던 녀석의 품으로 날아들어 몸통 박치기. 휘청거리는 녀석의 다리를 걸고 몸을 비틀며.
사지 절단.
“크악! 내 팔! 내 다리!! 으아아 악!!!!”
“시발! 이게 뭐야! 뭐냐고!!”
“절단부를 접합해!”
“접합이 안 돼! 상처 단면이 무슨 전기로 지진 것처럼……!”
내가 뛰어들어 깽판을 치자 형을 중심으로 집결하려 하던 비선별 인
원들의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물론 내 손에 걸린 무사는 그들 중에서도 한 줌도 안 되는 일부에 불과하지만 대놓고 자기 옆에 있던 동료가 사지 가 잘리는데 무시하고 지나갈 수는 없을 테니까.
팡!
내 몸을 붙잡아 들어 올리려던 염 력이 어빌리티,[보호막]에 막혀 취 소된다. 나는 즉시 땅을 박차 미사 일처럼 몸을 날렸다. 사방을 포위한 수천수만 명의 능력자들이 살기를 뿜어내고 있지만,어차피 나 역시 선별자인 건 마찬가지인지라,이렇 게 엉망으로 얽혀 있는 상황에서 그
들은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 없다.
“아니,뭐야! 저놈은 비선별자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막 움직이는 거야?! 무슨 방법을 쓴 거지?”
“움직임과 시선을 살펴봐! 뭔가 우 회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제기랄,그냥 평범하게 날뛰 고 있잖아!”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분통에 찬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온다. 그들은 내가 어떤 비결을 사용했다 고 판단한 듯 온갖 주문과 관찰로 그걸 알아내려 했지만 그런 게 있을 리 있나. 그냥 대마법사의 제약이 안 먹힌 것인데.
‘생각 이상으로 수월한데?’
시스템의 제약은 시스템에 속한 자 들의 의식을 강제하는 정신계 대마 법.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는 정신계 공격에 면역이다. 어떻게 될지 몰라 자제하고 있을 뿐 마음만 먹으면 다 른 선별자를 직접 공격하는 것조차 가능하겠지.
‘이대로 진행되면 비선별 인원을 다 처리하는 것도 가능하겠어.’
강제력에 의해 온갖 제약을 다 안 고 있는 그들은 아무리 숫자가 많아 도 제대로 된 집단전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집단전이 불가능하다면 그들 의 그 많은 숫자는 오히려 그들을
억누르는 방해물에 불과한 상황.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물--러- 나----- 라----
시”
천둥처럼 쩌렁쩌렁한 고함과 함께 광화문 앞을 빽빽하게 메우고 있던 주가군이 뒤로 물러난다. 순식간에 빠지는 녀석들의 흐름에 놀라 땅을 차 그들의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정렬!”
“정렬하라!”
물러났다고는 하지만 그리 멀리 간 것은 아니었다. 이순신 장군 동상. 정확히는 마도골렘 순신의 뒤까지만
물러서 죽 늘어섰다. 일사불란한 움 직임을 보니 미리 이야기되어 있던 신호인 모양. 나는 그들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형의 옆에 다가가 섰 다. 어느새 광화문 앞에는 형과 나, 그리고 형과 싸우던 도황과 병력을 지휘하던 권황만이 자리하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끊임없이 이어지 고 있던 화랑단들의 사격 역시 멈췄 다. 하긴 멈출 수밖에 없다. 그들이 사격의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머리 위에 표식이 떠 있는 비선별 인원들뿐. 이렇게 거리를 벌리고 또 선별 인원들 뒤로 완벽히 숨어버리 면 대장전이 끝나기 전에는 화살 한
발 날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대하야,괜찮아?”
“물론. 형은?”
“나도 물론 괜찮지만… 아니,대체 너 우주로 나가서 무슨 상황을 겪은 거야?”
형이 약간은 찡그린 표정으로 물었 다. 치열한 전투로 발갛게 상기되어 있는 그의 눈에는 걱정과 우려가 가 득하다.
‘아,그렇군.’
나는 이제야 주변의 광경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다. 광화문 앞 도로. 나아가 광화문 광장의 2/3에 해당
하는 공간이 시뻘겋게 물들어 있는 그 처참한 광경을.
이미 광화문 광장은 전쟁 영화 정 도가 아니라 스너프 필름에서도 함 부로 다루지 못할 지옥도로 변해 버 린 상태였다. 너무나 많은 피와 살 점이 바닥을 적셔 금속 부츠를 신고 있는 나조차도 바닥이 미끈미끈하게 느껴질 정도.
그리 길지도 않은 전투였는데 이미 수천이 넘는 시체가 바닥을 뒹굴고 있다. 우측의 정부종합청사 쪽에 밀 려 있는 시체는 너무나 많아서 그냥 땅에 널린 정도가 아니라 숫제 언덕 과 비슷한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냈
을 정도. 심지어 그 시체들 뒤에는 몸에 화살을 박은 채 신음하고 있는 부상자들이 모여 있다.
“말했잖아. 황제가 되었다고. 황제 가 그냥 가서 어찌어찌하다 보니 될 수 있을 리 있겠어?”
“끔찍하군… 권력욕이……. 아니, 그냥 욕심 자체가 없어서 평화 평온 노래를 부르던 네가 그런 상황에 부 닥치다니.”
“그러게 말이야.”
어깨를 으쏙일 때였다.
"〒7 Q'Q 一一一一
도황의 몸에서 묵직한 기세가 뿜어
져 나온다.
“끔찍이라. 지금 끔찍하다는 말을 너희가 한 것인가? 별다른 피해도 없이?”
“누가 들으면 평화롭게 살고 있던 너희를 우리가 학살한 줄 알겠네.”
“후후… 정말 알 수가 없군. 설마 성인도 못 된 꼬맹이 따위에게 내 가. 우리 주가가 벼랑 끝으로 몰리 는 상황이 올 줄이야.”
분노로 대추처럼 달아올라 있던 도 황의 얼굴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 다. 도는 바닥에 닿을 정도로 늘어 뜨려 있는 상황.
언뜻 보면 싸움을 포기한 모양새였 지만 점점 커지는 기세는 그게 아니 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제야 볼만한 얼굴을 하는군.”
“하수에게나 할 만한 말을 나에게 하는가……. 아니,그래. 이 경우에 는 내가 하수가 맞군. 추한 노인네 가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 지.”
도황의 기색과 안색이 차분함을 넘 어 초탈해졌다. 바락바락 소리를 지 르던 아까보다 오히려 더 위험한 분 위기다.
그는 별다른 대답 없이도 혼자서
중얼거렸다.
“추하게 늙었어. 그래,정말 추하게 늙어버렸다. 하하하! 나 도황 장강 림이 이토록 추한 늙은이가 되었다 니! 이렇게 되고서도 차마 물러서지 도 못할 정도로 추한……
고오오오!
기파가 뿜어진다. 커다란 도황의 도에 새파란 도기가 깃든다. 무를 연마해 완성자의 경지에 올라선 자 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는 기의 유 형화. 그러나 형은 도리어 서늘히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진짜 실력이라도 드러낼 셈인가, 할아범?”
치이이----
형의 몸에서도 날카로운 기파가 뿜 어지기 시작했다. 들고 있는 것은 여전히 커터 칼이었지만 그 위로 새 까만 천살기가 깃들면서 1미터 가까 이 크기를 키운 상태다.
“허허,진짜 실력이라니. 지금까지 내가 대충한 것으로 보였단 말인가? 나는 그저.”
바닥에 늘어져 있던 도황의 도가 그의 머리 위로 올라온다. 전형적인 일도양단의 자세다.
“나는 그저.”
그리고 그 순간.
번쩍!
눈부신 빛과 새까만 어둠이 충돌한 다. 격들은 한순간. 전광석화를 발동 하지 않은 나로서는 그 잔상조차 보 지 못할 정도의 쾌속! 어느새 도황 과 형의 위치가 서로 바뀌어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잠시 후. 도황이 허탈하게 웃었다.
“내가 바라던 건 이게 아니었는 데.”
그의 전신에 핏빛 선이 그어진다.
“이게 아니었.”
푸확!!
피바람이 몰아친다. 도황의 시체가 조각나 쏟아진다.
“제길… 살려놓지 못했어. 10분은 더 싸웠어야 했는데.”
형은 낭패한 듯 혀를 찼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보았다.
“고마워. 네가 전열을 죄다 헤집어 놓지 않았으면 상황이 완전히 꼬였 을지도.”
“꼬여?”
내가 의문을 표하는 순간이었다.
[이가의 대장이 승리하였습니다!]
[진행: 0/1,3/3]
[축하합니다! 이가가 대장전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점령이 종료되었습니다!]
[점령자의 권한이 승리자 이가에게 주어집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텍스트가 떠오른다. 십수만의 병력 전부가 숨을 들이켜 는 것을 보니 나만이 보는 내용도 아닌 모양. 그리고.
“쳐라!!! 이가라는 비렁뱅이들을
이 세상에서 지워 버려라!!!”
여전히 살아 있는 또 다른 삼황, 권황의 포효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