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화
깡. 땅.
잠시 어빌리티를 살피는 사이 날아 든 화살이 가벼운 금속음과 함께 바 닥에 떨어진다. 쩡! 쾅! 도 아니고. 심지어 깡! 땅! 도 아닌 소소한 소 음. 나는 눈 부분에 있는 구멍 너머 로 당황하는 공격자들이 모습을 보 았다. 그들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 고 있는 듯했는데,그들이 멍청하거
나 내 갑옷의 성능이 기적 같아서라 기보다,그 매커니즘 자체가 지구의 이능과 이질적이기 때문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최대 출력에 내공까지 담았는데… 갑옷은 물론이고 화살촉까지 멀쩡하 다니.”
“기묘하군. 보호막이면 보호막이지 뭐 저런 마법 갑옷이……
“하지만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데?”
다들 머리를 굴리는 게 보였지만 P-1 의 기능을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P-1 이 모든 충 격을 흡수할 수 있는 이유는,P-1 의 장갑에 고유세계의 사철을 오오
라 제어 능력으로 빗어낸 특수 장 갑, 동심원(同心圓)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오오라라는 게 참 재미있어.’
일반적으로 속성계 오오라를 각성 하게 되면 금의 기운을 다루는 게 가능해진다. 피부를 금속처럼 단단 하게 한다거나,히어로 영화의 빌런 처럼 외부의 금속을 내 의지대로 움 직이는 것.
그런데,내 경우에는 거기에 더해 특수한 기술,정확히는 초능력에 가 까운 특수 능력이 있었다.
[이제 막 입문인데 특성 부여라니. 금속성 친화력이 아무리 높아도 그
렇지.]
[천품을 타고난 캔딜러족의 거장 (巨E)들이나 가질 법한 기술인데 날로 먹는구먼. 이거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기가스 제작 팀에 들어갈 수 있겠다.]
황당해하는 두 관제 인격의 말대로 나는 P-1 의 장갑에 특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외부에서 공격이 가해질 경우,그 힘이 아무리 일점에 집중 되어 있다 하더라도 동심원을 그리 며 갑옷 전체로 분산시키게 만드는 특수 능력을. 물론 충격이 분산되는 것이지 소멸하는 게 아니므로 얻어 맞는 순간 갑옷 전체가 소리굽쇠처
럼 진동하게 된다.
하지만 바로 거기에서 경천칠색이 발동한다.
필요한 것은 진동을 홉수 & 축적 하는 적색.
외부 에너지를 진동으로 전환하는 녹색은 쓸 필요도 없다. 이미 갑옷 을 통과해 나에게 가해진 충격에너 지는 한없이 진동에 가까우니 그저 흡수하면 그만인 것이다.
팡!!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내 옆 으로 한 인영이 떨어져 내린다. 한 참 도황과 싸우고 있던 형이었다.
“대하야?! 여긴 왜 왔어? 대결에 끼면 안 돼!”
“저쪽도 이놈 저놈 다 끼어들고 있 잖아?”
나는 발에 걸리는 시체를 발로 대 충 밀어냈다. 그 잠깐 사이에도 형 에게 덤벼든 적이 열이 넘는다. 물 론 죄다 목이 베어 바닥을 뒹굴고 있었지만,그런데도 그 몇 배에 달 하는 추가 인원이 슬금슬금 다가오 고 있다는 게 문제다.
‘필사적 이군.’
죽음을 불사하는 집념이 느껴진다. 어쩌면 국가와 민족을 위한 헌신일
지도 모르는 그 광기에 가까운 절박 함은 그들이 스스로의 의지로 사지 로 걸어 들어가게끔 하고 있다. 만 일 화랑단의 지원사격이 없었다면, 아무리 형의 솜씨가 뛰어나도 견디 기 어려웠을 것이라 짐작될 정도였 다.
“속행한다!”
그리고 그때 형이 다시 외친다. 슬 쩍 형의 옆에 서며 물었다.
“뭘 자꾸 속행해?”
“외부의 간섭이 있다고 결투를 멈 출 거냐고 해서. 하지만 어림없는 소리지.”
“집중해라!! 놈!!”
쩡!
도황의 푸른색 검기와 형의 흑색 검기가 충돌한다. 나는 슬쩍 움직여 그들의 옆으로 빠져나갔고,그 모습 을 발견한 도황이 눈을 부라린다.
“네 이놈! 여기가 어느 자리라고 끼어드느냐!”
“나 참,그럼 저기 누워 있는 것들 은 뭐 사소한 자리라서 끼어들었나? 나이 먹을 만큼 먹어놓고 추하게 살 지 맙시다,좀.”
“뭐,뭐라고? 네놈이 감히!”
도황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지
만,그저 그뿐,파랗게 타오르는 도 기를 휘두르지는 못한다. 그 또한 시스템 안의 존재인 것은 매한가지 였으니 대마법사의 금제를 이겨내지 못하는 이상 공격이 불가능한 것이 다.
“비켜라, 이놈!”
“제기랄! 어서 저 꼬맹이를 죽여야 해! 저리 꺼지라고!”
형을 습격하려던 무리의 앞을 막아 서자 중국 무사들이 벌겋게 충혈된 눈을 한 채 무지막지한 공세를 쏟아 낸다. 당장에 나를 오체분시하고 형 까지 죽여 버릴 듯 살기 넘치는 공 격들!
깡. 땅.
“제길! 타격감이 이상해!”
“이건 대체 뭐야!!”
그러나 그래 봐야 나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그들이 휘두른 칼은,창은, 그리고 주먹과 화살 모두 내가 몸으 로 받아냈기 때문이었다.
깡. 땅. 깡.
“아,방패 만들걸.”
참격에 머리를 얻어맞으며 투덜대 자 대번에 갈굼이 들어온다.
[야! 왜 얻어맞고만 있어! 반격해 야 할 거 아냐!]
[함장님,기세 좋게 나가신 것치고 지금 거의 샌드백이신데… 좋게 봐 도 인간 방패… 그냥 기가스에 타시 죠? 보기 너무 안 좋기도 하고.]
‘아,시끄러워. 난 투법을 배운 지 며칠 되지도 않았거든?’
안 좋은 꼴이라는 건 나도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애초에 내 반 응속도 자체가 느려 상대방의 공격 을 제대로 보질 못한다. 대인 전투 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 상대방의 움직임을 읽어내지 못하고,심지어 가진 능력조차 완벽히 다루지 못한 다.
‘반격할 수가 없는데?’
[아니,왜? 아까는 그 충격파 잘 쐈잖아!]
‘아니 그게… 적색으로 홉수하고 주황으로 쁨어야 하는데 계속 맞으 니까 뿜을 수가 없네.’
방어할 수 있다. 공격할 수 있다. 그러나 방어하며 공격할 수는 없다. 그림자 늑대를 상대할 때와는 상황 이 다르다. 그때는 방어한 후 공격 하면 됐는데 지금은 적의 공격이 끊 임없이 이어지고 내 동작,호흡 하 나를 살피는 고수들이 쉴 새 없이 빈틈을 노리는 것이다. 0.1 초 이내 에 적색과 주황색을 전환할 수 없다 면 반격 따윈 꿈도 못 꿀 사치.
쩌적!
순간 내 어깨가 화끈한다.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왼쪽 팔꿈치부터 어깨까지 통째로 얼어 있는 게 보인 다. 냉기는 너무도 간단히 갑주를 뚫고 내 육신에 타격을 주고 있다.
“큭!”
반사적으로 외부 에너지를 진동으 로 전환하는 방어 기술,녹색을 사 용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애초에 [진동]과 [냉기]는 너무나 먼 거리의 힘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화염이면 성공했을지도 모 르는데! 제길,아직 냉기는 어렵나?’
경천칠색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 체계를 진동으로 전환한다. 운동 에너지를 진동으로. 열에너지 도 진동으로. 전기에너지도,빛에너 지도 진동으로 전환한다. 경천칠색 이 경지에 오른 수련자는 무슨 광합 성 하는 것처럼 쏟아지는 햇살조차 진동으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니,그야말로 어떤 공격이 자신의 육체를 때려도 그걸 진동 에너지를 전환해 흡수해 버리는 기괴한 존재 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물론,아직 입문자에 불과한 나는 그만한 경지에 이르지 못했으니 속 성 공격은 때리는 족족 다 맞을 수
밖에 없다.
“술법은 통한다!”
“제길,뭐 저런 갑옷이 다 있어!”
“어서 치워!”
대처법을 발견한 중국 술사들이 더 욱 적극적으로 나를 밀어붙이기 시 작한다.
과릉!!
쩌적!
화악!
온갖 주문이 온몸을 두들기기 시작 한다. 내 온몸을 뒤덮은 P-1 이 있 었지만,P-1 의 장갑은 특성,동심원 을 제외하면 그저 튼튼한 중갑일 뿐
별다른 마법 저항력을 가지고 있지 는 못하다.
“대하야!! 괜찮아?!”
걱정 가득한 목소리에 온몸을 때려 오는 고통을 억누르며 검지를 흔들 었다.
“걱정 노노.”
“노,노노라니… 에이! 믿을게!”
다시금 자신의 전투에 집중하는 형 을 슬쩍 확인한 후 다시 정면의 적 들을 노려보았다. 눈에 보이지도 않 는 주문들이 날아오고 있다. 하나같 이 음험하고 살벌한 마력을 담은 공 격들.
“흠,강체사로서는 이 정도가 한계 인가.”
역시 아직은 역량이 부족하다. 나 름대로 없는 시간을 쪼개서 훈련하 고 실전을 겪었지만 그래 봐야 수라 장을 거쳐온 진짜 전사들을,그것도 무더기로 상대할 수는 없던 것이다.
‘지니.’
[관제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함장 님,통제는 제가 해도 괜찮겠지요?]
‘아레스.’
[정령력이나 팍팍 돌려!]
파직!
순간 얼음에 뒤덮여 있던 가슴팍에
서 스파크가 튀었다. 이어서 장갑 안쪽에서 사철 가루가 마치 피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위이잉-一一!
P-1 으로 가용 오오라가 전부가 빨 려 들어간다. 정령력 역시 마찬가지. 사실상,나 스스로가 전투 중 오오 라와 정령력을 제어하는 걸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지만 애초에 감안하고 만든 능력이 바로 기가스 콜(Gigas Call).
생체력을 각성하면서 속성에 대한 내 제어 능력은 크게 둔화하였다. 생체력을 수련하면서 모든 속성에 ‘저항’하고 ‘간섭’할 수 있게 된 것
에 대한 반대급부였다. 전투를 벌이 며 다수의 정령을 제어하거나,정령 을 이용해 특수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혹은 오오라를 사용해 특별한 능력을 갖춘 무언가를 구현하거나 속성력을 발휘하는 일이 매우 어려 워져 버린 상황. 만일 나랑 같은 조 건의 다른 능력자가 있었다면,그는 게임식으로 말하면 망캐가 되어 생 체력을 포기하거나 속성 제어 능력 에 큰 영향을 받는 정령력과 오오라 를 포기해야 하는 절망의 양자택일 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겠지.
괜히 도검이 듀얼 클래스를 선택하 려던 날 말린 게 아니다. 영능 중에
는 오오라 & 정령력,마력 & 순영 력처럼 제법 궁합이 좋은 능력들도 있지만,생체력과 정령력처럼 만나 면 서로 발목만 잡는 관계도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나는 상관없다.
내 [정령력]은 온전히 아레스의 통 제하에서 움직이고,나의 고유세계 에서 만들어진 사철에 흡수된 [오오 라]는 지니의 관제 시스템에 따라 운용되기 때문이다. 본래 서로 발목 을 잡아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해야 할 힘들이,막대한 자본과 환경의 힘으로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 다.
‘기왕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으면 금수저 나름의 방식으로 성장해야 지.’
재벌 아들로 태어났으면서 알바를 해서 종잣돈을 모으고 그걸로 사업 을 하는 건 흙수저들을 기만하는 것 밖에는 안 된다.
파직! 파직!
파지지지직!!
한 점으로 집중된 정령력이 뇌정 (雷精)으로 화했다. 그것이야말로 라이트닝 하트(Lightning Heart). 반 쪽짜리에 불과한 P-1 을 진짜 기가 스로 만드는 최후의 퍼즐이었다.
기이 잉---!
기동음과 함께 P-1 이 제대로 된 가동을 시작한다. 몸 안의 정령력이 일시에 빠져나가면서 탈력감이 들었 지만,비틀거리는 대신 오오라를 전 신으로 뿜어내 세상에 드러냈다.
“기가스 콜(Gigas Call)."
내 능력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타입. P-1.”
그 명칭을 입에 담자 시스템이 거 기에 응답했다.
[스킬: 기가스 콜(Unique)이 개화 되었습니다!]
[등급: F]
쩌적! 펑!!
지금껏 모아낸 진동의 힘을 전신으 로 뿜어내자 온몸을 태우고 얼리던 십수 개의 마법들이 모조리 박살 나 부서지고 마나로 환원되어 흩어진 다.
‘그래. P-1 이 좀 허술하기는 하지. 기가스라고 부르기도 미안할 정도의 성능이야.’
왜 P-1 인가? 프로토타입 1번 작품 이기에 P-1 이다. P-1 의 외장갑은 그저 단순한 구조의 철갑에 불과하
고 제대로 된 아이언 하트도 존재하 지 않아서 내 영력을 기본으로 하는 상황. 기가스면 당연히 달고 있어야 할 주무장도 부무장도 없다. 내가 처음으로 만들어낸 이 기급 기가스 의 장점을 뽑는다면,기껏해야 근사 한 외양 정도겠지.
그러나 사실 그것들은 중요한 문제 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비록 이 꼬라지라 하더라도 이 물건이 기가스라는 점.
“너넨 이제 큰일 났다.”
나는 웃었다. P-1 이 기가스가 된 순간,상황이 전혀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격투술은
기껏해야 초보 수준이지만.
“조종술은 아니거든.”
자세를 낮춘다.
그리고 돌진했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