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화
[원시적인 형태의 기가스입니다.]
[거의 문화재지,문화재. 가슴팍에 코어 수납부 보이지? 아이언 하트도 아니고 핵융합 코어라니. 소름이 돋 는다.]
아이언 하트는 발명된 지 고작(?) 수백 년밖에 안 된 최신 기술이지만
그렇다고 기가스의 역사가 수백 년 밖에 안 되는 건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문명에 불과 한 지구에도 사용자를 강화하는 파 워 슈트가 존재하며,넓게 보면 그 것 역시 원시적인 형태의 기가스라 고 할 수 있다. 결국 기가스라는 건 인간이 조종하는 [거인]을 통칭하는 단어였으니까.
나는 아레스가 현실의 몸을 단련시 키는 동안 고유세계에서 오오라를 이용한 제작을 진행해 왔다. 처음에 야 나폴레옹 같은 인급. 혹 그 정도 는 아니더라도 천둥룡 같은 수급을 만들고 싶었지만,그저 희망 사항이
었을 뿐 안타깝게도 기급조차도 함 부로 넘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알바 트로스함에 수백,수천 장의 설계도 가 있다 하더라도 이제 막 생산직에 입문한 내가 감히 도전할 수준이 아 니었던 것.
그 때문에 나는 최대한 간단한 구 조를 가진 과거의 기가스들을 참고 해 P-1 을 만들었다. 나름대로 최고 의 선택이었거늘 이런 취급이라니.
그러나 그렇게 갈굼 받는 P-1 이라 도 누군가에게는 꽤 신기해 보였나 보다.
“계약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금속 성 정령사가 전신을 뒤덮을 정도의
금속을 통제한다고……?”
“이건 재능의 문제가 아니야. 벌써 저만한 정령력을 모을 수 있다니… 아직 1킬로그램은커녕 500그램의 금속도 제대로 다루지 못해야 정상 일 텐데.”
“저 형태는… 갑옷인가? 무슨 로봇 같기도 하고.”
감탄하는 이가 중진들의 모습에 기 분은 좀 좋아졌지만,한편으로는 어 이가 없기도 했다. 무슨 리액션 담 당도 아니고 지금 뭐 하고 있는 거 란 말인가? 이가를 위해 싸우는 것 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대로 반란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그냥 저 자
리에서 서서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 다니. 전쟁이 벌어졌는데.
과연 모두 바보는 아니었던 듯 그 들 중 하나가 목소리 높여 말한다.
“지금 다들 뭣 하는 건가!! 이가의 적이 몰려오고 있는데 이렇게 멍청 히 서 있기만 하다니!”
“하,하지만 천검(天劍) 어르신! 주 가를 상대로 싸울 수는 없습니다!”
“이건 두 가문 간의 의리를 저버리 는 일이고 우리가 자초한 일이기도 하오! 충분히 자존심을 세웠으니 좋 은 조건으로 협상한다면……
버럭버럭 소리치는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와.”
진짜 대단하다. 이거 병신들 아닌 가? 이 상황에도 저런 소리를 하다 니. 이쯤 되면 주가에 충성을 바치 겠다고 바로 배신하지 않는 게 오히 려 신기하다.
[정확히는 배신을 못 하는 거지.]
[광화문 누각에 밀집된 병력이 상 당합니다.]
나는 슬쩍 이동해 경복궁 안쪽을 살펴보았다. 두 관제 인격의 말대로 그 안에는 어느새 이가의 전력이 총 집결한 상태다. 로브를 걸친 마법사
들,중갑을 걸친 전사들, 짐승의 머 리를 가진 웨어 비스트들과 아무런 방어구 없이 한 자루의 무기만을 챙 겨 든 무인들까지.
게다가 그 인원조차 전부가 아니 다. 이가의 중진들을 나무랐던 백발 의 노인이 고함을 내지른 것이다.
“천검의 이름으로 명한다! 지리산 야차들은 즉각 본연의 모습을 되찾 아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그리고 이내 경복궁 안쪽에서부터 짐승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크아아앙——!
크르르!!!
늑대의,살쾡이의,범과 곰의 머리 를 가진 반인반수,웨어 비스트 (Were beast)들이 광화문으로 집결 했다. 2.5미터에 가까운 무지막지한 덩치를 가진 녀석들은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광포한 기세를 뿜어낼 정도로 거대한 힘을 품은 녀석들.
웨어 비스트라면야 이가 안에서도 많이 본 존재들이지만 [저것]들은 그들과도 차원이 다른 존재라는 게 느껴진다.
게다가 묘하게 익숙한 기운이 느껴 지는 것이…….
‘아 그래. 합성 마수.’
이제는 어색해져 버린 클래스메이 트이자 짝궁인 선애의 칭호에서 봤 던 단어다. 솔직히 별거 아닌 정체 같아서 그냥 넘겨 버렸기에 뭔지는 잘 모른다.
[경복궁 안쪽에 넓게 흩어져 있던 반인반수들입니다. 숫자는 정확히 108마리군요.]
지니의 설명을 들으며 천검이라 불 린 노인을 바라보았다. 마치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듯 굳건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칭호를 슬쩍 세분화하 는 것만으로 그 마음을 알 수 있다.
[이가]
[11 레벨]
[갈림길에 선 이종우]
순간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잠시 고민하다 이내 그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하긴 생각해 보니 상황이 그렇다. 애초에 [외부]의 존재와 싸 우는데 108마리의 합성 마수들이 왜 경복궁 안쪽에 넓게 흩어져 있었 을까? 경복궁은 출입구 외의 모든 침입을 방어하는 절대의 결계,[출 입 제한]이 설치되어 있는데 말이
다.
‘어느 선을 잡을까 고민 중이구 먼?’
상황을 알고 보자 천검의 눈에 담 긴 고민이 보인다. 이면 세계 최강 의 세력인 주가와 연결된 친중파와 우리 형의 존재로 이가 전체를 구원 함은 물론 주가의 콧대를 눌러 버리 게 된 민경의 세력,말하자면 황녀 파 중 어디로 붙어야 할지 확신을 못 하는 것이다.
‘이가에 몇 없는 마스터 레벨의 강 자라도 삐끗하면 파멸하는 선택지 지.’
상황은 너무나 급박해 이가 최강의
강자들이라는 이가 육검(天地人風 雲雨) 중 첫째인 그라 하더라도 경 거망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여기에서 만약 배신했다가 이가가 주가를 상대로 승리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전쟁에 참여해 주가에 크나큰 타격을 준다 면 그 뒤는 또 어떻게 되는가?
차라리 배신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면 이미 저질렀을지도 모르지만,형의 [대장전]은 여전히 진행 중인 만큼 아군끼리의 싸움조 차 금지되었으니 뭔가 제대로 된 배 신조차 하기 힘들다. 전부 대장전이 끝난 이후에나 가능한데,그 전에
상황이 급변하고 있으니 마냥 버티 고 있을 수가 없는 상황.
이가의 비수로서 시스템에 가입하 지 않은 경은이 민경의 옆에 서 [처 벌]을 시작한 이상,그들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극히 한정될 수밖에 없다.
“뭐.”
철컹.
가볍게 뛰어 난간 위로 올라서자 묵직한 금속음이 울린다.
“와아아!!!”
“죽여!!!”
피와 살점이 가득한 전장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이 전쟁은 내 알 바는 아니 지만.”
“대하! 지금 뭐 하는 거냐!”
얼음장같이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 던 민경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일갈한다.
“잠깐 갔다 올게요.”
“무슨! 너도 선별자다! 지금 전투 에 끼어들 수는 없어!”
“글쎄.”
피식 웃으며 난간을 박찼다. 한순 간 몸이 붕 하고 떠올랐다가 그대로 떨어져 내린다. 만일 내가 다른 수
련법으로 생체력을 단련했다면 이런 식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제자리 에서 점프하는 것만으로 수십 미터 는 뛰어을라 포탄처럼 낙하해 충돌 하는 모든 것을 부숴 버렸겠지. 높 은 스탯을 지닌 생체력 수련자는 살 아 움직이는 전차나 다름없는 존재. 접근하는 모든 것을 짓뭉개고 부숴 버리는 파괴의 화신이니까.
그러나 경천칠색의 수련자인 나는 상황이 좀 다르다.
툭.
묵직해 보이는 전신 갑주를 입고 상당한 높이의 광화문 누각에서 뛰 어내린 것치고는 너무나 가벼운 착
지.
“조선 놈이 내려왔다!”
“뭐야,이게? 갑옷?”
“홍,싸울아비 놈인가!”
숙
내가 땅에 내려서자 성벽 아래에 서 있던 무사가 내 눈앞으로 다가오 더니 포옹이라도 할 것처럼 바짝 접 근했다. 나랑 약속이라도 하고 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동작은 그야말로 물이 흐르는 것 같은 연격으로 이루 어진다.
텅!
갑주를 넘어 내부를 파괴하는 침투
경(浸透勤). 이어 몸의 중심을 무너 뜨리는 다리걸기. 머리 위에 화살표 가 떠 있는 중국의 무사는 비틀려 쓰러지는 내 전면 장갑을 잡아 그대 로 들어 올렸다. 문자 그대로 순식 간에 이루어진 제압은 그가 상당한 수준의 고수라는 것을 알려준다.
‘일부로 근처에서 제일 높은 레벨 을 노리고 내려온 거긴 하지만 장난 이 아닌데?’
내 몸을 잡아 드는 하나의 동작에 깃든 무리(武理)는 내가 저항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수천, 수만의 수련과 공부가 단 일 수에 담겼으니 무술이라고는 제대로 배운
적 없는 내가 어찌 저항하겠는가?
그러나 무학에 통달했다 해서.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투두둑.
“…소리가 이게 뭐지?”
“충격에너지가 저장된 거야.”
내 몸을 화살 방패로 써먹었던 중 국 무사의 눈썹이 꿈틀한다. 침투경 에 얻어맞아 정신이 날아갔어야 할 내 목소리가 너무 멀쩡했기 때문일 것이다.
“네놈!”
텅!
벼락같은 일수(一手)가 갑주를 후 려친다. 뜻밖의 상황에 더는 의문을 표하지 않고 전력을 다하는 태도는 나쁘지 않았으나,여전히 그는 나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웅!
“크… 억?”
내 갑주를 붙잡고 있던 무사의 몸 이 한차례 크게 떨리고,이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마스터에 가까운 경지에 도달한 그의 수련은 대단한 수준이었지만,그럼에도 그의 이해 밖에 존재하는 공격을 막아내지 못 한 것이다.
“단장님!!! 네놈! 이가 놈! 조선 놈 이!! 감히!!”
돌진에 이은 참격. 삽시간에 접근 한 무사 하나가 커다란 태도로 내 머리를 내려찍었다. 단박에 나를 일 도양단할 것만 같은 패도적인 기세!
그러나.
깡.
“뭐,뭐야. 타격감이 왜 이래?!”
아무도 내가 온몸을 강철로 둘렀다 는 사실에 당황하지 않았었다. 그들 은 맨손으로 바위를 부수고 탱크의 복합 장갑도 칼로 베어내는 고수들. 그들의 일격,일격은 어지간한 교통
사고 이상의 충격을 적에게 가할 수 있으니,갑옷의 방어력 따위 애초에 아무런 의미가 없던 것이다.
상황이 그러하니 그들은 자신의 공 격이 갑주를 때렸는데 갑주가 찌그 러지지도. 그렇다고 무슨 신묘한 힘 으로 그것을 막아서지도 않았다는 사실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건 명백히 그들의 이해 [밖]에 있 는 현상이었을 테니까.
[괜찮으십니까?]
‘솜뭉치로 맞은 정도지.’
지니의 물음에 대답하며 중국 무사 의 칼을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윙!!!
“컥!”
신음과 함께 쓰러진다.
“저! 저 갑옷 놈 뭐야?!”
“접근하지 마! 뭔가 이상한 놈이 다!”
당황하는 적들의 모습을 무시하며 가볍게 몸을 푼다.
‘생각대로야.’
타격에 극한의 상성을 지닌 경천칠 색을 수련한 내가 예기(銳氣)를 막 아낼 갑주까지 걸치니 사실상 물리 공격에 면역이나 다름없다. 일말의 저항감 없이 영기가 깃든 갑주를 베
어낼 힘이 없다면,공격력이 충격력 으로 전환되는 순간 충격이 진동으 로 변해 내 육신에 흡수되어 버린 다.
“책.”
파라락!
말과 동시에 허공에 [책]이 떠오른 다. 이미 자정이 지난 상황이었기에 오늘의 어빌리티는 갱신되어 있다.
*오늘의 어빌리티!
〈관통〉
〈보호막〉
〈전광석화(電光石火)〉
* 소환 중
[아레싀
책에 쓰여 있는 내용을 보고 멈칫 한다.
“아니? 이 상황에 전설 (Legend)급 어빌리티가?”
그것도 꽤 흉악한 종류의 공격기였 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