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Chapter 7. 난잡한 전쟁
광화문 광장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 작한다.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인파 는 점점 늘어나 수십 명,수천 명을 넘어 마침내 수만 명이 넘게 불어났 다.
“미쳤어. 전쟁을 하자는 것인 가……
“주가의 위세가 무섭긴 무섭군. 이 렇게나 엄청난 규모의 능력자를 모
을 수 있다니……
“파렴치한 놈들. 대장전이라는 말 의 의미를 모르는 것인가.”
여기저기에서 주가를 욕하는 소리 가 들려온다. 물론 그게 의견의 전 부는 아니다.
“당연한 일이지. 고작 이런 전투 한 번에 주가를 홀랑 넘겨야 한다는 데 주가 전체가 거기에 동의할 리 없으니까. 같은 상황이면 우리 이가 도 마찬가지였을걸.”
“원래 국제 정세는 국력에 따라 움 직이는 거야. 고작 도박의 결과에 나라 전체가 휘청거린다는 게 말이 나 될 법한 일인가?”
제멋대로 떠들어댄다. 대장전으로 주가,나아가 중국을 통째로 빼앗기 는 일이 불합리하다면 당연히 반대 의 시도 역시 해서는 안 되었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무시한 헛소리 들.
그러나 형은 그 모든 소란에 조금 의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Q Q---
형이 수많은 시선의 홍수 한가운데 에 있다. 선망과 경멸,경애와 질투, 욕망과 적의가 휘몰아치는 탁류 속 에서도 그는 바닥에 박아놓은 정처 럼 한 점의 미동조차 없다.
우습게도,오히려 아무 움직임이 없었기에 형은 이 소란 속에서도 엄 청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다.
“작고 호리호리해. 그리고 무엇보 다……. 아름답군. 저게 남자라니.”
“너무 어려. 정말 저렇게까지 어린 녀석이 중국 최강의 검사들을 죄다 무찔렀단 말인가.”
“용을 잡아먹는(食龍) 검마(劍魔) 라……
시간이 점점 지난다.
소란이 점점 가라앉는다.
그리고 마침내 꼿꼿한 자세로 서 있던 형의 두 눈이 떠졌을 때,어느
새 그의 앞에는 한 무리의 무사들이 나타나 있는 상태였다.
“권황(掌皇)! 도황(刀皇)까지!”
“삼황(근불) 이다!”
잔뜩 몰려 있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경의와 찬탄이 터져 나온다. 물론 이가 쪽의 반응은 그들과 달랐다.
“삼황은 개뿔,검황이 죽고 이황이 지.”
“게다가 천하제일은 검황이었잖아? 이제 와서 검황보다 한 수 아래라고 여겨지던 둘이 와봐야 어쩌라고?”
비웃고 평가절하한다. 그러나 그러 면서도 웅성웅성한다. 술렁술렁거린
다.
“하, 하지만 천하오대고수인데
“하 미친,적으로 권황과 도황을 마주하는 날이 올 줄이야.”
“적… 그런가. 저들이 적이란 말인 가.”
이가의 기세가 크게 꺾이는 게 느 껴진다. 명백한 [적]이 뭔가를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모습을 드러낸 것 만으로 주눅 들어버리는 것.
너무 어이가 없어 무심코 입을 열 었다.
“등신들이 네.”
“동의한다.”
고개를 돌려 내 옆에 서 있는 민 경을 바라본다. 언제나 그랬듯 무표 정이지만,두 눈동자가 차갑게 이글 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이가의 구성 원들이 보이는 추태에 분노한 것이 다.
“후회하지 않아?”
우리를 포함한 이가의 중진들은 광 화문의 2층 누각에 올라서 모여든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광 화문 누각은 원래 올라오면 안 되는 곳이지만,경회루를 사원 식당같이 쓰는 집단인데 그런 게 어디 있겠는 가. 오히려 편히 쉴 수 있게 내부
인테리어가 잘되어 있는 상태다.
“후회?”
“나라면 주가를 세상에서 지워 버 릴 수도 있는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니,오히려 너무나 간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 지. 지구에는 알바트로스함을 감지 하고 방비할 기술이 없고,알바트로 스함의 화력은 지구 표면을 다 갈아 엎는 게 가능한 수준이었으니까.
“거절한다.”
“왜?”
싸늘한 목소리에 의문을 표하자 민 경이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한
다.
“어차피 그럴 생각이 없다는 건 알 고 있으니까.”
“그렇긴 해.”
이제 와 살인이 두렵다거나 하지는 않다. 그런 순진한 소리를 입에 담 기엔 너무나 멀리 와버린 상태. 그 러나 그렇다고 무의미한 대량 학살 을 자행할 정도로 미친 것도 아니 다. 나는 그만한 야망도,목표를 가 지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학살만이 답은 아니지. 압도당해서,굴복하게 만드는 것 정 도는 할 수 있으니까.”
나는 형에게,그리고 그 옆에 있던 그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대략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설명이 어렵지는 않았다. 알바트로스함의 존재는 너무나 강력한 [증게였으니 까.
그리고 그 상태에서 나는 말했다. 도와주겠다고.
물론 그건 이가가,나아가서 한국 이 예뻐서가 아니다. 우리 형이 너 저분한 국가의 일에 얽히는 게 짜증 나서 다 떨치기 위한 제안이었지.
그러나 민경은 내 제안을 거절했 다.
“이미 말했지만.”
민경이 다시 고개를 돌려 형을 바 라본다.
“독립에 외세를 끌어들일 생각은 없다.”
“어째서?”
“우주선 같은 터무니없는 걸 끌고 오지 않았을 뿐이지… 제안이라면 이며 몇 번이나 받은 상태다. 일본 의 양명가,미국의 록펠러 가문에서 도 비슷한 제안을 했었지. 도와주겠 다고. 힘을 주겠다고.”
“아니,나는.”
“네가 누구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의도도 음모도 없는,오직 형을 위 한 순수하고 자발적인 도움이라 해 도.”
그녀가 다시 나에게 고개를 돌렸 다. 그녀의 눈동자 안에서 격랑이 일고 있다.
“독립은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야 해. 주체(主體)가 되지 못한다면 우 리는 영원히 노예로서의 사슬을 깨 부술 수 없을 테니까.”
“괜히 날 흔들지 말고 지켜봐 줬으 면 좋겠다.”
나는 문득 불편해졌다.
뚜렷한 신념과 목적을 가지고 불가 능에 가까운 목표에 온몸을 던지는 그녀의 모습에 뭐라 표현하기 어려 운 이상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친부로부터 거대한 힘과 권능을 유 산으로 받았지만 아무런 목표도 신 념도 없이 파도 위의 나무토막처럼 그저 상황에 떠밀려 다니는 상황 때 문일까.
“뭐.”
“음?”
“그래도……. 영민이가 위험에 빠 지면 도와주겠지? 가족이니까?”
“외세를 끌어들일 수는 없다면서?”
“안 보이게 하면 되지.”
“…뭐라고?”
황당한 말에 멈칫한다. 민경은 무 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 다. 드물게도 그녀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녀 를 잘 모르는 나조차도 그녀가 엄청 나게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푸훗!”
문득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이내 정색한다.
“형을 내버려 둘 생각은 원래부터 없었어.”
내 웃음소리에 주변에 있던 이가 중진들의 시선이 한순간 모인다. 그 들의 인상은 험악하였는데,이가의 명운을 건 대결을 앞두고 웃음을 터 뜨린 내 모습에 화가 난 모양이다. 아니,어쩌면 지금 이가에서 최고의 권한과 영향력을 가진 민경의 옆에 출신 성분도 모를 나 같은 잡것이 서 있어서일지도 모르지만,당연히 그딴 것들은 내 알 바가 아니다.
‘지니,화면.’
[네,함장님.]
내 안경,우자트로 확대된 형의 모 습이 비치고 머릿속으로는 형 근처 의 소리가 전달된다. 어느새 형의
앞에 도달한 두 노인네가 마음대로 떠들고 있다.
“어리석은 길을 가고 있구려.”
“지금이라도 그만둬라.”
“주가에 투신한다면 상상도 못 해 본 권력과 명성을 가지게 될 것이 오.”
“억지를 부려서 해결될 문제가 아 니다.”
뭐 대충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어 르고 달래고 협박하고 회유하고 아 주 난리도 아니었다.
‘와,정말이지……
천진난만한 늙은이들이었다. 설마
이제 와서 말로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어쨌든 상대가 어리니까요.] 어리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다. 아무리 대단하고 엄청난 일을 이뤄 내도 그걸 이뤄낸 상대가 그저 어리 다는 것만으로 평가절하하고 얕잡아 본다. 과연 그들의 앞에 서 있는 것 이 형의 손에 죽은 검황이어도 저따 위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둘 다 노인이니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을 텐데 아직도 저런 태도라니.
과연 형은 그들의 태도에 눈썹 하 나 까딱하지 않고 답했다.
“같이 덤비나? 왜 나란히 서서 떠 들지?”
“어리석은……!”
“애송이놈의 방자함이 하늘을 찌르 는구나! 우리가 네놈이 두려워서 이 러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건가!”
티격태격하는 사이에도 적들은 점 점 늘어났다. 이미 모인 숫자가 수 백 수천을 넘어 수만 명이 넘었는데 거기에서도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 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일시 정지 중. 점령전 재시작까지
앞으로 1분]
대결의 시간이 도래했을 때.
“맙… 소사.”
“아니,이런,미친.”
광화문 앞에 모여 있던 이가 쪽 능력자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 다. 많은,너무나 많은 [적]들의 숫 자에 압도된 것이다.
“아,나 이 광경 어디선가 본 적 있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이 런 광경을 어디서 본다는 거냐.”
과연 이 상황만큼은 그녀도 예상하
지 못한 듯 민경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있다. 대한제국의 공주,아니, 칭호대로라면 [황녜라고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는 그녀였지만,그렇다 고 하더라도 이만한 규모의 적을 보 고 태연할 수는 없겠지.
그러나 나는 다르다. 오히려 웃음 이 나온다.
“왜,촛불 집회 때도 이 정도는 모 였던 것 같은데.”
물론 그때는 나름 성숙한 시민들의 모임이었고 지금이야 졸렬한 [적]의 모임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겠지 만… 도덕적 우위는 전혀 상관없이 지금의 광경이 훨씬 더 엄청나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평화로운 분위기의 시위대와 적의 와 살의를 뿜어내는 적의 그 본질적 인 차이!
나는 광화문 누각에 서 있었기에 그들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었 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우고 차 한 대 없는 도로 역시 꽉 채울 정 도로 버글거리는 사람들.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 광화문 앞까지 자글자글 모여 있는 중국인들은 당장에라도 광화문을 박 살 내고 경복궁 안으로 쳐들어올 것 처럼 기세등등하다.
“진짜 벌레처럼 많네.”
알바트로스함의 탐색 결과에 따르 면 지구 전체의 능력자는 대략 천만 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중 한국 출신 능력자는 약 15만 명으로 한국의 전체 인구에 비하면 비교적 많다고 할 수 있는 수준.
그러나 한국 출신 능력자가 죄다 이가 소속인 것은 아니다. 경복궁 같은 [대마법사의 은총]이 새겨진 거주지가 없기에 안가의 형태로밖에 존재할 수 없지만,그럼에도 적게는 대여섯 명,많게는 백 명 이상의 인 원으로 이루어진 세력들이 전국 각 지에 흩어져 있으니까. 뿐인가. 이면 세계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고 표면
세계에서만 활동하는 능력자도 상당 수 있다.
결국,이가에 소속된 전체 능력자 의 숫자는 대략 9만 명 정도.
그리고… 지금 광화문 광장에 모여 든 중국 능력자들의 숫자는 그 이상 이다.
“어떻게 이 엄청난 숫자가 한국으 로 모여들 수 있는 거지? 표면 세 계에서도 이면 세계에서도 이런 대 단위 움직임을 감지할 수 없었는 데… 설마 바다를 건너왔단 말인가? 이면 세계의 바다를?”
“미쳤군,미쳤어! 이렇게 되면!”
“혹시라도 대장전에 패해 자금성을
빼앗기게 되면 이가를 멸망시켜 점 령을 무마시키겠다는 건가!”
그야말로 미친 소리였다. 대마법사 의 안배(영혼거병 세종과 순신이라 든지,경회지의 이무기라든지)들은 같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지 않기에 직접 부수거나 하지 않는 이상 반응 하지 않지만,적어도 경복궁의 결계 만큼은 이가에서 완벽히 통제하고 있다. 아무리 능력자들의 질과 숫자 가 이가보다 많다 하더라도 정면으 로 충돌하면 주가 역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타격을 입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때였다.
“결단을 내릴 시간이 되었소,아가
씨.”
쿵쿵. 거친 발걸음 소리와 함께 광 화문 누각 위로 새로운 무리가 모습 을 드러낸다. 대략 스무 명 정도의, 완전무장한 능력자들로 이루어진 무 리. 특히나 그 앞에 있는 건 나도 아는 얼굴이다.
[이 (李)가]
[7 레벨]
[사령술 전문가 이현석]
별거 아닌 인연의 상대였다. 그저 녀석의 동생이,내 손에 죽었을 뿐
이지.
‘흠,생각해 보니 철천지원수로군.’
그러나 적어도 지금 녀석이 이 자 리에 선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닌 것 같았다.
“아가씨?”
“이런이런〜 이런 상황에서도 호칭 이 더 문제인 것이오? 어디,공주라 고 불러드리오리까? 아니면〜 황. 녀. 님?”
뱀처럼 웃는 현석. 그러나 직후 비 열하게 웃던 그의 표정이 굳어버렸 다. 왜냐하면,보았기 때문이리라.
“느리구나.”
언제나 변함없는 표정으로 빙화(水 花)라고까지 불리던 민경이 싸늘하 게 웃고 있는 모습을.
“그 너절한 음모조차도.”
그리고 그와 동시에.
광화문 앞에 서 있던 형이 말했다.
“대장전 속행.”
[대장전을 속행합니다!]
[진행: 0/1,2/3]
대장전이 시작되었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