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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 2부-31화 (148/249)

31 화

온갖 칭호를 보며 사는 나이지만.

그럼에도 [성능]을 가진 칭호는 별 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다른 사람 과 달리 스스로의 칭호를 언제든 자 유롭게 변경할 수 있는 나지만,세 상 무수하게 널린 칭호와 고착 칭호 는 그들의 것이었을 뿐 내가 획득하 고 변경할 수 있는 칭호는 몇 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달고

다니던 칭호가 고작 파리 100마리 를 죽여 얻은 [파리 사냥꾼]이었으 니 더 말할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다만 칭호에 대한 짐작 정도는 있 었다.

‘성능을 가진 칭호는 기본적으로 [살해]에 치중되어 있어. 무언가를 죽여,그 생명을 재료로 삼아 만들 어지는 것이 칭호다.’

어떤 존재를 살해하면 [슬레이에 칭호를 획득한다. 그리고 그 살해를 계속해 나가 그 숫자가 100개체를 넘어가면 [사냥꾼] 칭호를 얻을 수 있다.

과거 나는 클래스메이트인 경은이

[인간 사냥꾼]을 달고 다니는 걸 보 고 두려움에 떨었다. 인간 사냥꾼이 라는 칭호가 가리키는 게 무엇인가? 경은이 같은 인간을 100명이나 죽 였다는 말이 아닌가? 제정신 박힌 인간이라면 두려워하는 게 당연하겠 지.

그러나 동시에 나는 알고 있었다.

나 역시 인간을 100명 살해하게 된다면 같은 칭호를 획득할 수 있다 는 것을.

그리고 그 칭호의 효과는 고작 파 리 사냥꾼 ‘따위’와 비교가 불가능 한 수준일 것이라는 사실 역시…….

그리고 지금.

나는 인간 100명의 살육을 필요로 하는 [사냥꾼] 칭호를 넘어 인간 1 만 명을 살육해야 하는 [학살자] 칭 호조차 넘어섰다.

그리고 마침내 100만 명이 넘는 인간을 학살한 결과,나는 마침내 손에 넣고 말았다. 살해자,사냥꾼, 학살자를 넘어선… [재앙]급 타이틀 을.

[인류의 재앙]

-사망 시,〈1>회 부활 가능.

-반경 10킬로미터 내 인간에게 〈5>회 공간 이동 가능. 모든 방해를

무시하는〈절대 이동〉효과.

-1,000명의 인간을 살려줄 때마다 부활 스택(stack) 1회 충전(최대 2 회)

-악인을 1회 살해할 때마다 이동 스택 1 충전(최대 10회)

-당신은 누군가의 아버지를 죽였 습니다. 어머니도 죽였지요. 딸도, 아들도,노인도,아이도, 가리지 않 고 학살했습니다.

100만 명이 넘는 인류를 학살한 당신. 끝없이 회개해도 모자랄 것입 니다.

밤에 잠은 잘 오십니까?

‘역시 기분 나쁜 설명이야.’

그러나 비난이나 다름없는 이 내용 은 틀림없는 사실이며,동시에 그 내용을 채워 넣은 개발자의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선(善)에 가까운 의도.

‘인간의 생명을 살리고,굳이 죽여 야 한다면 악인을 죽여라……

동시에 텍스트는 이것은 개발자의 한계 역시 보여주고 있다.

'제재할 생각이 없다. 혹은 제재를 할 수가 없다.’

실제로 텍스트에서는 그저 살육을 질책하는 내용이 담겨 있을 뿐 페널 티를 부가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있 는 것은 그저 약간의 방향성. 칭호 의 설명을 채워 넣은 이는 이 칭호 를 가진 존재가 100만이 넘는 인류 를 학살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 으면서도 그걸 막는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이다.

‘칭호는 얻으면 얻는 대로. 강화하 면 강화할수록 이득이다.’

하려고만 한다면 나는 이대로 [재 앙]을 넘어서는 칭호를 노릴 수도 있다. 100만의 인류를 살해해야 얻 을 수 있는 재앙 칭호 다음 단계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1억의 인류를 살해해 얻을 수 있을 테고,지금의 나에게 그것은 단지 궤도 폭격 한 번이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다. 지구 에는 인간이 70억이나 있고 나는 이미 천만도 훨씬 넘는 숫자를 이미 충족시켰으니까.

[문제가 있으십니까,함장님?]

문득 지니가 말을 걸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아니,아니. 별로.’

깊이 심호흡한다. 심장이 미친 듯 이 뛰는 게 느껴졌다.

‘제정신이 아니군.’

이게 무슨 미친 소리란 말인가. 지 구에 인간이 70억이나 있다고? 이 미 천만도 넘게 충족시켰으니 궤도 폭격 한 번이면 간단하다고?

[함장님.]

‘괜찮아. 괜찮아.’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쥔다. 정신을 침범당했다거나 하는 이질감은 전혀 없다. 하지만 그래서 더 끔찍했다. 바닥이 느껴지 지 않는 공포가 밀려들어 왔다.

과연,내가-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아마 예전의 나는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평범하게 고등학교에 다니 고,평범하게 대학에 진학해서,평범 하게 군대에 가고 평범하게 직장에 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 삶 이 정말로 평화로웠을 리는 없겠지.

평범함에는 평범함에 걸맞은 치열 함이 있는 법.

평범한 삶을 살길 바란다면,나는 군대에 입대해 2년이라는 시간을 날 려야 했을 것이다. 부조리한 악폐습 을 경험했을 테고 어쩌면 구타나 모 욕을 당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

사회에 나가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상사에게 불합리한 지시를 듣 게 될 수 있다. 사내 정치에 휘둘려

온갖 고생을 다 할 수도,거지 같은 회사를 만나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는 나를 안다.

나는 참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당할 때는 기분이 거지 같겠 지만 세상 누가 인생을 재미있게만 살겠는가? 나는 참을 수 있었다. 억 울한 일에 분통을 터뜨리고 마음속 에서 상사 욕,회사 욕으로 30분짜 리 랩을 풀어놓을지언정 겉으로는 꾹 참고 아부할 수 있었겠지.

내가 어릴 적부터 꿔온 300년 치 의 악몽은 그냥 영화를 좀 길게 본 그런 수준의 경험이 아니다. 직접

경험한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경험 은 경험. 난 20년도 살지 못한 고등 학생에 불과한 어린아이지만,그럼 에도 노인에 가까운 정신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그래. 나는 그렇게 살 수 있었다.

아무리 거지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웃어넘길 수 있었다. 나는 온갖 고 난이 닥쳐오더라도 쓴웃음으로 이겨 내고 다만 양념치킨 한 마리,다만 게임 몇 판에 웃으며 그 모든 스트 레스를 풀어버릴 수 있는 그런 인간 이었다.

그러나.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제길.’

전장을 활보하면서도 한시도 잊은 적 없던 꿈이 흐릿해지는 것이 느껴 진다.

나는 깨달았다. 지금의 나는 스트 레스를 치킨과 게임으로 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홀로 스트레스를 푸는 대신, 과장의 머리통을 척추째로 뽑아버릴 것이다.

왜냐하면,이미 나는 변해 버렸으 니까.

오만(微慢)하고 무자비(無慈悲)한.

인간을 벗어난 존재로…….

[대하.]

그때 문득 아레스가 말했다.

[배가 불렀구나.]

‘•"뭐라고?’

[겁에 질려 있어. 자기 병력을 무 서워하는 애송이 장군 같다.]

‘아레스,이건 그렇게 간단한.’

[간단한 문제다.]

내 말을 가볍게 자르며 아레스가 말했다.

[결국 제대로 통솔하지 못할까 봐, 휘둘릴까 봐 두려운 거 아니냐?]

‘나는.’

[그저.]

또다시 말을 자르며 아레스가 말했 다.

[극기(東e)하지 못하는 것이지.]

[공포를 키우지 마라,대하. 신성은 네 영혼을 좀먹는 악마가 아니다.]

아레스의 말에 흥분으로 쿵쾅대던 심장이 천천히 진정되기 시작한다.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나는 변했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 이다. 그러나 세상에 변치 않는 사 람이 있을까?

나는 인간을 벗어났다. 그러나 사 실,나는 원래부터 인간이 아니었다.

나는…….

덜컹!

그때,창문이 열리는 소리에 정신 을 차린 난 그제야 고개를 들어 주 변을 둘러보았다. 위를 올려다보니 고풍스러운 양식의 꽃문양들이 보이 고 창호지를 바른 창문들을 들어 걸 쇠에 걸어놓음으로써 잘 관리된 연 못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만 들어진 장소가 눈에 비친다.

‘향원정 (香遠事)이군.’

내가 도착한 곳은 연못 안에 있는

섬에 건립된 육각형의 정자였다. 경 복궁 경회루가 대형 연회를 위한 것 이라면 이곳은 임금 개인의 휴식 공 간으로 만들어진 장소. 아래층은 온 돌이고 위층에는 마루를 깐 전천후 휴식처이 다.

[꽤나 대접받고 있는 모양이군요. 이런 공간을 제공받다니.]

‘뭐 상황이 상황이니 당연한 일이 지.’

나는 창가에 서 형의 모습을 바라 보았다.

역•아이•—

불어오는 바람에 형과 그 옆에 서

있는 여인의 머리칼이 흩날린다. 멀 지도 가깝지도 않은. 딱 한 뼘 정도 의 거리를 두고 서 있는 둘의 모습 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나 참.’

웃기는 일이지만 우리 학교에는 트 윈 로즈라는 게 있었다. 지상계(?) 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TV에나 나올 법한 연예인급 미소녀들을 가 리키는 호칭.

그야말로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 유 치하기 짝이 없는 호칭의 대상은 나 와 같은 학년,같은 반이었던 휴먼 슬레이어 경은이었고 또 한 명이 바 로 블랙 로즈,혹은 얼음 공주로 유

명한 학생회장 민경이었다. 워낙 대 외적인 활동을 많이 하고 금수저 집 안이라서 나중에 정치를 할지 모른 다고 알려진,문자 그대로 멜로드라 마에나 나올 것 같던 존재.

그러나 사실 그녀는 드라마가 아니 라 판타지 소설이나 현대판 사극에 나 나올 법한 인물이었다. 원래 한 씨가 아니라 이씨인 그녀는 이가의 적통을 잇고 있는 공주(公主)였던 것.

그런데 어쩐 일인지,그녀와 형의 관계가 몹시 가까워 보인다.

[묘한 분위기로군요.]

‘그래. 정말 묘하네.’

나는 가만히 서서 그 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미 어빌리티,은폐(隱敍)가 발동 해 누구도 내 기척을 느끼지 못 하 는 상태. 나는 별다른 장애 없이 그 녀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기본적인 감상은,그녀가 무인(武 人)이라는 것이다.

매끄러운 선을 자랑하는 몸매는 영 락없는 아이돌의 그것이었지만 잘 보면 가날파 보이는 몸은 극도로 단 련되어 압축된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고,두 손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 로 거칠고 단단한 굳은살이 박혀 있 다.

그리고 그 눈.

또렷하고 깨끗한 검은 눈동자는 일 말의 미혹 없이 또렷하다. 무슨 독 립투사처럼 단단한 신념과 의지로 무장된 눈을 아직 세상모를 나이의 여학생이 달고 있으니,뭐라 표현하 기 어려울 정도로 이질적인 매력이 뿜어진다.

‘뭐,형도 거기에 꿀릴 건 없지만.’

1기센티미터. 남자치고는 별로 크 지 않은 신장을 가진 형이었지만 그 미모는 어지간한 미녀를 데려와도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나다. 게다가 어쩐 일인지 항상 생기발랄 하던 형의 몸에 살기가 깃들면서 묘

하게 위험하고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상황.

게다가 지금 형의 위치는 어떠한 가? 아직 20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인류 최강급의 무위를 가지게 된 것 이 바로 그다. 설사 그가 이가에서 보기에 [근본 없는] 존재라 하더라 도 상관없다. 형 정도의 무위라면 그 어떤 가문이든 잡고 싶어 안달할 것이다.

쿵!

그때 저 멀리서 묵직한 북소리가, 고요함을 깨고 들어온다. 향원정 아 래 있는 연못물이 작게 파문을 만들 어내며 퍼진다. 전투를 알리는 날카

로운 북소리에 연못이 울리고 있다.

형과 민경의 고개가 동시에 들리더 니 북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한다. 북소리는 몇 번 더 들리고는 다시 잠잠해졌다.

“시간이네.”

a..r

“누구냐!”

순간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던 느낀 두 명이 벼락처럼 몸을 돌린다. 형도 민경도 빼어난 실력의 무인이었던 만큼 느껴지는 예기가 살벌한 수준. 그러나 정자 한편에 서 있는 내 모습을 확인하자 형의

몸에서 뿜어지던 무시무시한 살기는 삽시간에 사라지고 놀람과 반가움이 터져 나온다.

“대하야!”

도도도 달려와 확 하고 안겨든다. 도저히 형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 도로 귀여운 생물체. 이 사람이 불 과 수십 시간 전 커터 칼로 사람 모가지를 따던 사람이라고 어느 누 가 생각할 수 있겠는가?

“오랜만이야,형.”

“…정말. 형제가 하나도 안 닮았는 데 터무니없다는 건 똑같군.”

어느새 커다란 환도를 꺼내 들었던

민경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세를 풀었다. 그러나 푼 것은 자세뿐 표 정에는 경계심이 가득하다.

“어떻게 여기에 들어온 거지? 고위 마법사도 넘어올 수 없는 온갖 방벽 이 쳐진 장소인데……

“몸은 좀 괜찮아?”

무시하고 내 품에 안겨 있던 형을 떼어놓는다.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 어 있는 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었다.

“네가 내 걱정을 할 때야? 너 실 종되었다는 말 듣고 뛰쳐나갈 뻔했 어.”

“그러지 말라고 말 전했잖아.”

“아,그거.”

거기까지 말한 형이 잠시 눈치를 살폈다. 나는 민경을 돌아보았다. 내 태도에서 뭔가 느낀 것인지 민경이 멈칫한다.

“민경 선배.”

“잠깐. 너 뭐야. 너,정말로 ‘뭔가’ 가 있는 건가?”

무뚝뚝한 말투다. 명령을 내리는 것에 익숙한. 언제나 떠받들어지며 살아온 고귀한 자의 말투.

그러나 나는 그녀의 음성에서 두려 움을 읽었다.

“뭔가?”

“그래. 너,뭔가 있나?”

“..2”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에 형을 돌아본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방실 방실 웃고 있다. 확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화사한 얼굴이었다.

“뭐야,형. 대체 학생회장한테 나에 대해 뭐라고 설명한 거야?”

“별 이야기는 안 했어. 그냥.”

헤헤,하고 웃으며 형이 답한다.

“내 동생이 초월자일지도 모른다고 했지. 그것도 아주 아주 무서운.”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한 거야?”

이해가 안 돼서 물어볼 수밖에 없 었다. 왜냐하면,지구에 있을 때까지 나는 평범한 고등학생에 불과했으니 까. 물론 칭호를 볼 수 있다는 점에 서,300년 치 꿈을 꿨다는 특이점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전혀 겉으로 드러나는 능력이 아닌데 왜 이런 이 상한 생각을 했단 말인가?

“가족이잖아.”

“뭐?”

“가족인데 척 보면 알지.”

“…나 참.”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지만,

어째서일까? 최악이었던 기분이 묘 하게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신성에 침범당한 이후로 어떤 인간을 봐도 깊이 마음을 주기 어렵고 다 격하 (格下)의 존재로 보였는데 형은 달 탔다. 어쩌면 그의 말대로,우리는 가족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왜.”

“음?”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민경이 가관인 얼굴로 나를 바라보 는 모습이 보인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뭔가를 보는 표정이었다.

“또 뭡니까?”

“왜,부정하지 않지?”

“뭘 말입니까.”

“초월자!”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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