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머리 위에 2부-27화 (144/249)

27 화

“저 갈게요.”

칠대 가문이고 뭐고.

이것들 보호는 그냥 안 받는 게 낫겠다.

“간다고?”

“네. 아,이것들은 아무 데나 묶어 두세요. 내공을 잃어 위협이 되지는 않을 테니.”

그렇게 대충 말해놓은 후 바닥에 쓰러진 선애를 챙겨 근처에 있는 차 량 시트에 눕혔다. 산검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내 말을,나아가서 이 상황 자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 는 모양이었다.

“너,어? 무슨… 지금 정말 총을 와서 녀석들을 쓰러뜨린 거냐? 게다 가 내공을 잃었을 거라고?”

“아저씨.”

문득 짜증이 났다.

“정신 좀 차려요.”

내 짜증에 산검의 얼굴이 한순간

돌처럼 굳는다. 그러나 그는 분노를 터뜨리는 대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다. 못 볼 꼴을 보였군. 하 지만 간다는 건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죠,뭐.”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리는데 기껏 차 시트에 눕혀놓은 선애가 벌떡 뛰 어오른다.

“안 돼! 멈춰!!!”

우웅___!!

선애의 몸에서 묵직한 기파가 퍼져 나간다.

“이건 또 뭐야. 너도 숨겨놓은 정

체 같은 게 있냐?”

기가 막혔지만 그렇다고 놀랍거나 하지는 않는다. 봉인이 걸려 있던 마법소녀 강보람과 제석천의 힘을 강신시켰던 동민에 비하면 [겨우] 이 정도 정체 따위 아무것도 아니었 으니까.

[원일고등학교]

[8 레벨]

[합성 마수 니케]

“크르르르!!!”

자세를 낮춘 선애가 짐승처럼 으르

렁거 린다.

탕!

일시정지 탄환에 짐승이 쓰러진다. 나는 문득 그리워졌다.

“보람이랑 동민이는 잘 지내고 있 으려나……

녀석들은 알바트로스함을 이용해 통신을 시도하더라도 닿을지 알 수 없는 머나먼 장소로 떠났다.

‘드래고니안이라고 했던가. 용들이 무지 많이 사는 세계라고 했었지.’

나는 녀석들이 그냥 함께 돌아오길 바랐지만,녀석들의 생각은 달랐다. 대우주에서 감당 불가능한 적들과

드넓은 세계를 목격한 녀석들은 좀 더 많은 것들을 겪고 경험하길 원했 던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그들을 그냥 내 버려 두고 올 수는 없었다.

녀석들은 지구에서나 강력한 능력 자지 대우주에서는 애매한 수준에 불과하다. 물론 나이에 비해 빼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좋게 봐도 후 기지수에 불과했으니까.

그 때문에 난 레온하르트 황제에게 부탁해 녀석들을 노블레스와 연결해 주었다. 이왕 유학(?)을 갈 거면 제 대로 된 곳으로 가는 게 나을 것이 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디 보자… 이거였던가.”

딸깍!

위이잉!!

벽에 있던 스위치를 누르자 묵직한 기계음과 함께 닫혔던 천장이 열리 기 시작한다. 흑월회의 무인들을 묶 고 있던 산검이 놀라 묻는다.

“기다려. 지금 뭐 하는 거냐?”

“간다고 말했잖아요.”

“밖은 위험하다.”

“안은 안전하고요?”

그가 안가라 안내한 장소는 함정이 었다. 이가에서도 몇 알지 못하던

내 동선이 그대로 읽혔다는 걸 생각 하면 이가에서도 상당히 높은 녀석 들이 날 노리고 있다고 봐도 되겠 지.

“그건.”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확언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산검. 하지 만 이내 그는 고개를 거세게 흔들더 니 나와 눈을 마주쳤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아니,오히 려 그렇다면 더더욱 이곳에 있어야 한다. 혼자서 움직이면 매국노들이 더 쉽게 널 노릴 테니까.”

양팔이 부러지고 전신이 피투성이 가 된 상태에서도 진중한,그렇기에

호소력 있는 목소리. 나는 적어도 지금 그 말이 진짜로 나를,나아가 이가를 향한 그의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뭐,그렇다면 걱정은 덜어주는 게 좋겠지.

“지난주에 성계신을 만났는데.”

“…뭐? 뭐라고? 누구? 누굴 만 나?”

너무 놀라서 말을 더듬는다. 그러 나 정말 놀랄 말은 이 다음이다.

“저한테 엄마라고 불러보라고 하더 라고요.”

“..??!!,,

산검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린 다. 쩍 벌어진 입은 제대로 된 말조 차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태.

나는 그런 그에게 웃어주었다.

“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고개를 들어 완전히 열린 천장을 본다. 애초에 차량이 들어오기 위해 만든 장소였던 만큼 꽤 넓어서 거의 5미터나 되는 높이다.

“어디 보자.”

상체를 바짝 숙인다. 거의 가슴이 땅에 닿을 정도. 그리고 그 상태에 서 양다리에 힘을 주었다. 피가 무 지막지한 속도로 혈관을 달리고 전

신 근육이 꾸욱,하고 죄이는 느낌 이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팡!

고무공을 바닥에 내던진 듯 둔탁한 소리와 함께 몸이 날아오른다. 너무 도 간단하게,나는 지하에서 빠져나 와 지면에 도달할 수 있었다.

“…괜찮은데?”

온몸에 힘이 넘친다. 영능이라기에 는 신비감이 떨어지고 직관적이라 공략되기 쉽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 어 ‘병사의 영능’이라 불리는 생체 력임에도,어쩐지 점점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단지 몸이 강건해지는 것 만으로 늘 내 정신을 좀먹던 이질감 이 줄어들고 뭐라 표현하기 힘든 고 양감이 피어오르는 것이다.

[함장님.]

‘응,지니. 무슨 일이라도 있어?’

[현재 이면 세계에 진입해 계신 상 태입니다.]

‘음?’

그녀의 말에 나는 이제야 주변의 모습을 둘러볼 수 있었다. 시간은 어느덧 6시. 저녁에 가까운 시간이 라고는 하나 아직 여름이라 해가 길 때인데도 주변은 어두컴컴. 해도 달

도 없는 하늘은 검은 크레파스로 범 벅이 된 도화지처럼 새까맣기만 하 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시야에는 문제가 없네.’

광원 하나 없이 어두운 세계임에도 주변 건물들과 사물들의 윤곽이 뚜 렷하게 보인다는 점이 기묘하다. 명 백하게 현실과 동떨어진 다른 차원 의 지구인 것이다.

‘언제 차원 문을 넘었지?’

[조금 전에 계셨던 안가에 시설이 존재했습니다.]

‘마침 잘되었군.’

도로로 나와 걷기 시작한다. 주택 가는 침묵에 잠겨 있다.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사냥을 진행하실 생각입니까?]

'해봐야지. 경험치를 벌어야 하니.’ 경험치.

무심코 내뱉은 단어에 자연스레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오른다.

제논 호 키프리오스.

이제는 죽고 없는,인류의 수호자 였다는 대마법사.

그는 지구에서 그는 절대적인 존재 였을 것이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하고자 하면 지구의 모든 인 류를 노예로 만들어서 부리는 것조 차 가능했던 초월자.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대신 자신을 숨겼다. 사치를 누리는 대신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무지막지 한 규모의 인프라를 설치했다. 스스 로의 경지를 갈고닦아 더 높은 곳으 로 향하려는 향상심을 만족시키는 대신 이면 세계에 거주하는 거의 모 든 능력자들을 선별하여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내었다.

시스템.

그래. 이 [게임] 같은.

내가 평생 봐오던 칭호와 너무나 닮은 시스템을.

“그냥 우연히 닮았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부분에서 겹쳐. 연관이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데.”

과연 그는 어떻게 이 시스템을 만 들었을까?

과연 그 시스템에는 나의 친부가 얼마나 관여하였을까?

나는 나의 친부,디카르마의 기억 을 무려 300년 치나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아주 머나먼 과거의,대우주 어디에 박혀 있을지도 모를 행성의 것이다. 내 기억에서의 친부는 인간

으로 영락(琴落)해 약간의 권능과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을 뿐 레온하르트 제국의 역사서에도 나오 는 기계신 디카르마가 아니었으니 까.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인간으로 영락했던 친부는 어떤 수 를 써서 다시금 최상급 신위를 획득 할 수 있었을까? 그는 왜 리전을 이끌고 온 우주와 싸워야 했을까?

그리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최상급 신과 인간의 혼혈이라는 이 레귤러가 태어날 수 있었나?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없을 정도로 모르는 것투성이다. 고작 친부의 정

체를 안 것만으로 더 이상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스울 정 도. 어쩌면 나 스스로가 그런 의문 점들을 애써 무시했는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할 때,불현듯 지니가 말한다.

[13시간 남았습니다.]

“뭐가?”

[관영민 님의 마지막 대장전이 시 작하기까지 말입니다.]

“아,그거.”

주가는 단 한 번의 대장전으로 이 가를 잡아먹으려 시도했다. 그건 나 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아니, 정확히

는 아주 괜찮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겠지.

이가와 주가에는 그 엄청난 전력 차만큼이나 커다란 정보 격차가 존 재했다. 실제로 이가는 명령어는 물 론이고 점령전이라는 것 자체에 대 해 아는 바가 없지 않았던가?

만일 주가의 계획대로 되었다면 주 가는 아무런 피해 없이 이가를 꿀꺽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털도 안 뽑고 칠대 가문 중 하나를 통째로 삼키는 것이다.

“세상을 회로 보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이가를 날로 먹으려던 그 계획은 형의 등장으로 박살이 나버

렸다. 이가에 파견되었던 주가의 대 표,검성 저우홍이와 비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왔던 검황 쉬자 인이 모조리 형에게 패배하면서 세 계 최강의 세력이라 인정받는 주가 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감히 함장님을 납치하려 시도한 것도 그들이겠지요. 간단한 포격으 로 징벌할까요?]

“쓸데없는 말은 됐고 내 상태나 확 인해 줘. 생체력 수준은 어때?”

내 질문에 내가 쓰고 있는 안경, 마도병기 우자트에서 위잉 하고 묘 한 파장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가 다시 안경으로 돌아간다.

지니가 말했다.

[상당히 빠른 성장 속도입니다. 그 정도면 제국군에 입대하는 것도 가 능하겠군요.]

“장교?”

[병사입니다. 이등병.]

“역시 아직은 그 정도인가.”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상당한 성 장이다. 맨몸 전투에 한한다면,지금 의 나는 일주일 전의 내가 한 10명 쯤 덤벼도 웃으며 때려눕히는 게 가 능하다고 판단될 정도였으니까.

슬쩍 거울을 꺼내 내 머리 위를 비춘다.

[지귀

[3 레벨]

[인류의 재앙 관대하]

레벨이 3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1〜3레벨까지가 입문자 수준이니 숙 련자의 경지를 눈앞에 두었다는 뜻 이기도 하다. 영능을 익히고 직업을 얻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꽤 빠른 성장.

다만 문제가 있다.

활성화된 직업: 정령사,대장장이, 강체사

[현재 레벨: 1,1,1]

“달라.”

나는 며칠 전 만났던 도검과의 대 화를 떠올렸다. 오오라와 정령술에 대한 조언을 듣기 위해 찾아갔던 나 에게 그는 설명했었다.

“경험치는 이면 세계의 마족(魔族) 과 괴수(怪默)들을 잡으면 얻을 수 있다. 아, 참고로 PK(Player Killing) 나 퀘스트로는 얻을 수 없으니 괜한

시도는 하지 마. 이 시스템은 대마 법사께서 이면 세계를 억제할 전사 를 키워내기 위해 만들어내신 것이 다. 1>1<를 하면 오히려 페널티를 받 지.”

“페널티요?”

“죽인 플레이어의 전체 경험치의 30%. 레벨 다운 같은 건 없어서 약 해지지는 않지만 PK가 쌓이기라도 하면 사실상 레벨 업은 포기해야 해.”

“흐음.”

[게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시스템은 놀자고 만든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간들끼리의 살인

을 지양하고 있었다. 시스템의 목적 이 수익이 아닌 이면 세계의 유지와 위험 제거라고 한다면 어쩌면 당연 한 일이다.

때문에 나는 확인했다.

“도검 님은 지금 레벨이 몇이죠?”

그리고 도검이 답한다.

“5 레벨.”

도검의 머리 위에 떠 있던 텍스트 를 떠올린다. 그의 칭호는 장비 제 작 전문가.

레벨은 9였다.

“그래. 다르단 말이지.”

이 시스템의 레벨은 칭호의 그것처 럼 대상의 현재 수준을 보여주는 것 이 아니다. 그것은 일반적인 온라인 게임이 그러하듯, 철저히 벌어들인 [경험치의 총량]으로 결정되는 것.

즉 이 직업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 는 그저 수련하는 것뿐이 아니라 시 스템이 바라는 바를 충족시켜 줘야 한다는 것이다.

“크릉!!”

“그래. 슬슬 나올 줄 알았어.”

커다란,어지간한 호랑이보다도 훨 씬 큰 늑대를 보며 가볍게 몸을 풀 었다.

[5 레벨]

[굶주린 그림자 늑대]

나보다 높은 레벨을 가진 녀석이었 지만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 다. 사실,내 칭호의 레벨 역시 정 말로 지금 내 수준을 나타낸다는 생 각은 들지 않았으니까.

“테스트해 봐야겠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