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Chapter 5. 용을 잡아먹는 검의 귀신,그리고 그 동생 I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이 지났다.
그동안 내 일과는 똑같았다. 경회 루에서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간다. 수업을 듣고 하교한 후 이면 세계에 진입해 경복궁으로 들어간다. 경회 루에 가서 저녁을 먹고 고궁박물관 지하 1층에 있는 훈련장으로 이동한
다.
“와,오늘도 왔네.”
“어이없군. 이면 세계에 온 지 일 주일 밖에 안 되었다는 녀석이
“야야,쳐다보지 마. 지금 상황 몰 라?”
날 보고 수군거리는 이가의 능력자 들이 보였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경은이가 건드리지 말라고 했던 때 와는 다르다. 이가의 일원이라면,감 히 어떤 그 누구도 나에게 와서 시 비를 걸 수가 없는 상황이 바로 지 금이었으니까.
식룡검마(食龍劍魔).
지룡신검의 소유자인 검성(劍聖) 저우홍이(周液M)와 중국이 천하제 일인이라 자부했던 천룡신검의 소유 자,검황(劍皇),쉬자인(奸家印)을 해치우면서 형에게 붙은 이명이다. 그들이 중국 최고의 고수만이 황제 에게 수여받을 수 있다는,대마법사 의 손으로 만들어졌으며,그로 인해 사용에 여러 가지 조건이 붙은 봉인 무구(封印武具), 용신검(龍神劍)의 소유자라는 걸 생각해 보면 그야말 로 전 세계가 들썩일 정도로 충격적 인 사건이었다.
'보통 난리가 아니지.’
사실 용신검들은 지구상에 존재하 는 모든 무구들 중 최상위에 속하는 결전병기다. 아버지가 마법소녀 보 람에게 꺼내오라고 했던 [궁니르]와 같은 급으로. 그저 그 무기를 가져 오라는 말만으로 3차 세계대전을 할 생각이냐고 식겁할 정도의 무기. 그 런데 그런 엄청난 병기를 들고 온 중국 최고 고수들의 목을 형은 커터 칼 하나 들고 다 날려 버린 것이다.
‘누구도 이 상황을 예상치 못했을 테니.’
북한과 미국이 핵 문제로 갈등을 겪다 전쟁이 터졌는데 북한이 이겼 습니다,같은 허무맹랑한 전개다. 원
래대로라면 저항조차 못하고 주가에 먹혔어야 할 이가로서는 형에게 절 절멜 수밖에 없으리라.
뿌득! 뿌드득!
가볍게 온몸을 푸는 것만으로도 살 벌한 소리가 난다. 뼈에서 나는 소 리가 아니라 근육이 뒤틀리며 나는 소리. 나는 온몸을 울리는 소리를 감상하며 영력을 일으켰다.
“아레스.”
속삭였지만 무슨 현상이 일어나지 는 않았다. 내 눈앞에 30미터짜리 신급 기가스가 나타나는 일도,15센 티미터의 정령이 소환되는 일도 없 다.
대신 대답이 들린다.
[준비됐다.]
‘부탁해.’
생각과 동시에 내 몸이 움직인다. 내가 직접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내 정령,[아레스]가 가진 기능을 스킬화한 것이다.
[스킬: 꼭두각시 (Uncommon)] [F 랭크]
[합의하에 정령의 움직임을 제어한 다. 혹은 정령에게 육신의 제어를 맡긴다.]
스킬화되었다고 내가 시스템에게 무슨 스킬 북을 받았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그냥 내가 할 수 있게 된 일을 시스템이 평가하고 등급을 매 겨주는 것일 뿐.
이 정령기를 발동하는 순간 나는 내 육신의 제어권을 내가 아닌 아레 스에게로 넘길 수 있다. 어떻게 이 런 능력이 생겼는지는 모른다. 전기 속성으로 신경계에 간섭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조종사를 태워 [조종]받는 기가스로서의 특성이 반 대로 발현되었을 수도 있겠지.
철컥!
아레스의 조종을 받는 내 몸이 두
다리에 고리 모양의 추를 매단다. 평범한 발찌로 보이는 고리지만 나 름 마법 물품으로,개당 100킬로그 램짜리를 양 발목에 하나씩 착용하 자 그것만으로 200킬로그램의 부하 가 걸린다.
시작은 턱걸이. 100번마다 3분씩 쉬면서 어깨 근육과 가슴 근육에서 피멍이 들 때까지 반복한다.
다음은 스쿼트. 이번에는 팔에도 추를 달고 100개씩. 마찬가지로 세 트 숫자는 따로 없고 육체에 이상이 생길 때까지 반복한다.
다음은 푸시업. 등 뒤에 수백 킬로 그램짜리 추를 올리고 마찬가지로
팔이 맛이 갈 때까지.
다음은 전력 질주. 당연히 매달고 있는 추는 여전하고 마찬가지로 육 신에 이상이 생길 때까지 달린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끝나면 다 시 턱걸이.
“…미쳤군.”
“이게 대체 며칠째야? 이게 정말 가능한 건가?”
“저게 생체력 입문자라고?”
수군거리는 말을 무시한 채 나는 계속 그 모든 과정을 반복한다.
언제까지냐고?
당연히 아침까지였다.
그 이후에는 씻고 아침을 먹고 다 시 등교를 한다.
‘와,진짜 남이 보면 미친놈으로밖 에 보이지 않겠는데 이거?’
미친 운동량이고 미친 스케줄이다. 보통 사람이 이따위로 훈련했다가는 골병이 드는 정도가 아니라 장애인 이 돼버리겠지. 아무리 생체력 수련 자라 해도 훈련하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일과를 이딴 식으로 짤 수 는 없는 것이다.
애초에,하루 일과에 수면시간이 단 1분도 없다는 게 말이나 될 법 한 일인가?
[그런데 함장님에겐 그게 말이 된 단 말이지요.]
“그렇긴 해.”
대답을 할 때 이미 내 눈에 비치 는 세상은 고궁박물관의 훈련장이 아니다.
그곳은 사철로 이루어진 소행성, 내 좌표에 포함되어 있는 내 고유세 계이다. 현실의 내 육신이 열심히 트랙을 달리는 동안 나는 내 세상에 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철 사철 하고는 있 는데 이 소행성이 진짜 사철이기는 해?”
[정확한 표현이 아니기는 합니다. 철의 비율이 가장 높지만 티타늄과 알루미늄은 물론이고 금과 은,구리 도 상당량 존재하니까요.]
나는 잠시 사철의 대지를 둘러보았 다. 특성의 등급이 올라서인지 고유 세계의 크기는 상당히 확장된 상태 다. 고개조차 못 들던 아레스가 당 당히 서 있는 높이는 물론이고 한 바퀴 도는 데 10분이 넘게 걸릴 넓 이까지 가지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 외에도 특이사항이 한 가지 있었다.
치이이익! 철컹! 치이익! 철컹!
드럼통 크기의 기기에 사철을 집어 넣자 그 안이 시뻘겋게 빛나더니 철 괴를 투투툭 뱉어낸다. 때에 따라서 는 길쭉한 철골을 뽑아내기도 했다. 대체 무슨 기술인지는 알 수 없지만 드럼통에서 나올 때는 이미 차갑게 식혀 있는 상태.
뽑아낸 철괴들을 커다란 도장 비슷 한 기기에 집어넣어 바닥에 쾅쾅 찍 어댄다. 그리고 단지 그것만으로 바 닥에 타일이 깔렸다.
[조심하세요. 함장님!]
“앗,응.”
기운차게 경고한 늘씬한 미녀가 커
다란 철골을 번쩍 들고 내 옆을 지 나친다. 가녀린 어깨와 섬세한 손가 락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무슨 깃발 을 땅에 박듯 철골을 박고 손가락에 서 뿜어지는 불길로 용접한다.
“엄청난 광경이구먼……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여인의 갈 색 포니테일이 살랑살랑 휘날린다. 쿵! 하고 건축 자재를 내려놓자 허 리에 감겨 있던 반투명한 비단이 펄 럭이며 있으나 마나 한 천 쪼가리를 드러낸다.
개방적이다 못해 발칙하기까지 한, 사막의 무희들이나 입을 복장이다. 하체는 속이 은은히 비치는 천을 두
르고 상체에는 목에 거는 형식의 가 슴 가리개를 걸쳐 허리와 배꼽은 물 론이고 속가슴까지 훤히 드러내고 있으니 그 어떤 미치광이도 이게 공 사장 인부가 갖출 옷차림이 아니라 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겠지.
“지니,그 캐릭터 이미지(Characte r Image)는 도저히 변경이 불가능 해?”
[앗! 이 모습이 불편하신가요?]
놀라며 몸을 돌리자 그녀의 얼굴만 큼이나 거대한,명백히 물리법칙에 위배된 가슴이 출렁인다.
“불편하거나 그런 건 아냐. 그냥 공사하는데도 그런 모습인 게 좀 그
래서.”
[하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제작 자님께서 제 캐릭터 이미지에 자폭 코드와 동급의 보안등급을 설정해 놓으셨기 때문에… 이건 함장 권한 으로도 변경이 불가능합니다.]
“도대체 그 제작자는 뭐 하는 사람 인지.”
분명 원치 않거나 변경을 원하는 고객이 있었을 텐데 별 이상한 데에 불굴의 신념을 발휘했다. 뭐 어차피 메탈 바디 (Metal Body)에 홀로그램 을 씌운 것뿐이지만 뭔가 가녀린 여 인에게 노가다를 시키고 구경하는 악덕 주인이 된 것 같아 기분이 묘
하다.
“그나저나 숙소를 다 만들려면 얼 마나 걸릴 거 같아?”
[가지고 들어온 메탈 바디가 3개뿐 인 데다 장비도 제한적이라서 아직 15시간은 더 걸릴 것으로 파악됨니 다.]
"꽤 걸리는구나.”
[그나마 원자재가 다 이 안에 있어 서 다행이지요.]
그녀의 답을 들으며 특성을 확인한 다.
[특성: 고유세계 (Legend++++)] [E
랭크]
[차원계 0급 권능]
“뭔 설명이 이렇게 부실한지. 스킬 포인트마저 없으니 이건 뭐 있으나 마나잖아?”
내 고유세계는 여러 가지로 복잡한 능력이다. 일단 [나]라는 존재가 고 유세계와 현실에 중첩되어 있다는 점이 그렇다.
나는 현실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고 유세계 안에도 존재한다. 즉,동시간 대에 두 차원에 겹쳐 존재하고 있다 는 것.
이건 물리학으로도 영능학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그냥 단 순히 두 육체에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 나라는 존재 자체가 물질 차원에서 자유로워졌다는 뜻이 니까.
내 좌표에 포함된 세상이 그저 심 상세계가 아니라 물질계와 왕래가 가능한 차원이라는 점 역시 특이한 점이다. 원한다면 아공간으로도 사 용할 수 있는 능력인데,현실의 물 건을 마음대로 고유세계로 가져올 수는 없었다.
[함장님,다음 진입은 언제쯤 가능 하겠습니까?]
“이게 감각적인 거라서 정확히는 모르겠어. 한 반나절 정도?”
나는 내 손에 닿는 모든 것들을 고유세계로 진입시키는 게 가능하 다. 심지어 생명체나 마법 물품까지 가능할 정도였으니 제한은 없다고 봐야겠지. 다만 끝도 없이 진입시킬 수 있다는 말은 아니어서 제약이 있 었다.
그것은 무게.
정확히는 질량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현실의 물건들을 한 번에 수 킬로그램씩만 고유세계 안으로 들여 보낼 수 있었고 그렇기에 지니의 메 탈 바디도 부품 부품으로 진입시켜
조립해야 했다.
다만 이런 제약에는 두 가지 특이 사항이 존재했다.
첫째,이런 [질량]의 제약은 생물 보다 무생물에 더 엄격하다.
현실의 물건을 고유세계로 들여보 내려면 한 번에 수 킬로그램이 한계 지만 대상이 생명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적게는 스무 배,많게는 서른 배까지 진입이 가능해서 이미 닭과 돼지 같은 가축들을 다수 집어 넣었을 정도니까.
둘째,외부 물질을 고유세계에 진 입시키기 어려운데 반해 고유세계의 물질을 밖으로 꺼내는 데에는 아무
런 제약이 없다.
때문에 이 안에서 금속으로 만들어 진 거대한 빌딩을 만들어도 나는 그 걸 어디에서든 꺼낼 수 있다. 문자 그대로 주머니에서 빌딩을 꺼내는 격!
다만 그렇게 한 번 꺼내면 다시 고유세계로 넣을 수 없다. 질량의 제약에 걸리기 때문이다.
‘분명 대단한 능력인데 여러모로 애매하구먼.’
어쨌든 그런 까닭으로 고유세계를 거대한 아공간처럼 사용할 수는 없 다. 건설을 위한 알바트로스함의 공 구들을 옮기기에도 빠듯한 상황이라
가지고 다니는 현금조차도 아공간에 넣고 꺼낼 여유가 없는 상황.
때문에 현재 질량에 상관없이 이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고 있는 존재 는 오직 하나.
[대하,아침이다.]
나와 [계약]해 이 세계를 만든 당 사자뿐이었다.
“헛 벌써?!”
[네 이 녀석,그 오오라 구현인가 뭔가 꽤 재미있나 보군? 나한테는 운동 다 떠넘기고.]
“하하,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멋쩍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좌르르릉!!
내 오오라 제어가 풀리자 층층이 쌓아올려져 가던 탑이 무너져 내린 다. 현실의 육체가 달리는 동안 나 는 여기에서 오오라 구현을 연마하 고 있었던 것.
나는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침대로 올라가 누웠다. 이제 다시 현실로 나가면 그동안 내 고유세계의 육신 이 지친 육신의 휴식과 수면을 대신 해 줄 것이다.
푹신!
“역시 신기하단 말이야. 통짜 금속 으로 만들어진 침대가 이런 감촉이
라니.”
내가 온몸이 묻히는 감각에 신기해 하자 지니가 답한다.
[기술입니다,함장님. 에켈 공법으 로 가공된 터너 합금은 마치 직물과 같은…….]
쏴아-!
지니의 말을 쏟아지는 물이 묻어버 린다. 온몸을 적시는 뜨거운 열기를 받아들이며 나는 내가 현실로 돌아 왔다는 것을 알았다.
“자,그럼.”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방을 나선 다.
“밥 먹으러 가야지.”
절로 미소가 나온다. 지구의 운명 이고 국가 간의 전쟁이고 뭐고.
충실하고 평화로운 하루하루였다.
등교한다.
평범하게 수업을 들으며 교과 내용 을 필기한다. 같은 반 친구들은 뭔 가 미묘한 학교 분위기에 술렁거리 고 있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선생님의 설명에 집중했다. 누군가 에게는 따분하고 탈출하고 싶은 과
정일지도 모르지만…….
‘재미있다.’
그렇다. 재미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과정에서 마음이 평화롭고 차분히 가라앉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지겨울 학교 수업이 나에게 있어서는 엔간한 멘 탈 케어 시스템보다 훌륭한 힐링 효 과를 보이고 있었던 것.
‘아,이렇게 쭉 그냥 살았으면 좋 겠다.’
평범하게 친구를 만나고 싶다. 우 연히 만난 보통의 여자와 평범한 연 애도 해보고 싶다. 집에 가서 게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TV를 보고 싶
다.
중간고사를 보고 싶다. 지금 이 마 음가짐으로 계속 공부하면 역대급 성적이 나오겠지. 그리고 그 성적표 를 가지고 집에 가서.
집에 가서.
필기를 하던 펜을 멈춘다. 앞치마 를 목에 건 채 부엌에 서 있던 반 듯한 뒷모습이 떠오른다.
“홍.”
고개를 흔들어 떨쳐 버린다. 다시 필기를 시작한다.
“아,학교 쉬는 애가 이렇게 많으
면 휴교 안 하나.”
“으으,나도 눈병 걸리고 싶다고 눈벼어엉……
“거기 조용히 해! 병 안 걸리고 건 강하면 감사한 줄 알아야지!”
나는 필기를 하다 고개를 들어 주 변을 둘러보았다. 삼분의 일 넘게 비어 있는 자리들이 보인다.
내 평온한 매일매일과 다르게.
세계정세는 혼란의 도가니라는 증 거다.
[중국이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습니 다.]
‘결국 그렇게 가나?’
대장전 1라운드에서 규칙 파괴자라 불리던 검성 저우홍이가 죽고.
대장전 2라운드에서 천하제일인이 라 불리던 검황 쉬자인이 죽었다.
중국,정확히는 중화대국을 지배하 는 주가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 다. 그들은 한 번 더 강제 명령권을 발동하여 일시 정지를 실행했지만 그래 봐야 3일짜리 연장일 뿐이고 그마저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물론 대장전에서 주가가 패배한다 고 바로 주가 소속의 능력자들이 이 가의 노예가 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시스템은 그렇게까지 강 한 강제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그러나 대장전에서 패배하는 순간 그들이 여태껏 이용해 온 대마법사 의 [안배]에 대한 소유권은 이가로 이전되게 된다. 이가로 예를 들자면, 지금 잘 쓰고 있는 경복궁을 다른 나라에 빼앗기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이대로 대 장전에서 패한다면… 전력 차이와 별개로 주가는 이가에 목줄을 잡히 고 마니까요.]
이면 세계에서 대마법사가 마련해 놓은 [인프라]의 힘은 막대하다.
그가 초월자라는 사실을 감안한다 하더라도,지구의 대마법사는 너무 나 특이하고 특수한 존재다. 대우주
를 배경으로 활동하던 지니와 아레 스마저도 대마법사가 지구 전체에 꼼꼼히 깔아놓은 인프라에 경악하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까.
이가만 해도 그렇다.
이가 전체에 깔려 있는 궁극의 결 계는 대우주에서도 널리 쓰이는 [출 입 제한]이다. 입구를 정해놓으면 그 문을 제외한 모든 방향이 봉쇄되 는 절대 결계. 대신 입구로 정해진 공간은 그냥 뻥 뚫려 있다시피 하다 는 단점이 있지만 경복궁의 입구, 그러니까 광화문 앞에 무엇이 있던 가?
영혼거병(靈魂巨兵). 세종과 순신.
그저 아이언 하트와 조종사가 없을 뿐 그것들은 인급 기가스에 맞먹는 출력을 가진 마도 골렘이다. 사실 그 두 골렘만 해도 이가의 전체 전 력에 맞먹을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 겠는가?
그뿐이 아니다.
경회지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이 무기,어지간한 도시 이상으로 확장 되어 있는 무지막지한 규모의 공간 결계,그리고 여기저기 숨어 있는 포격 결계와 긴급 물품들까지.
삼대 마탑,오대 무파,칠대 가문 이라고 허울 좋게 말하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감히 대마법사의 인프라
를 재현할 수 없다. 그것들은 초월 자의 엄청난 노력과 시간,그리고 그 이상으로 막대한 재화를 쏟아부 은 결과물인 것이다.
‘정확히 뭘 할 수 있을지 예상할 수 있을까?’
[수집된 정보에 따르면 주가는 퇴 출 명령어를 가장 두려워하는 것 같 습니다.]
‘자금성(紫禁城)에서 쫓아낼 수 있 단 말이지?’
[네. 함장님.]
만일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주가 입장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재앙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면 세계는 마족과 괴수들의 천지를 뒤덮고 있는 장소이며 그 안에서 완 벽히 안전할 수 있는 장소는 극히 한정되어 있으니까. 만일 이가가 주 가에 강제 퇴출 명령을 사용하게 된 다면,세계 최강이라는 주가의 명성 은 그날로 끝나게 되겠지.
‘하지만 아직 기회는 남아 있잖 아?’
이 대장전은 애초에 불공정하게 짜 여 있고, 단 한 번만 패배하면 끝장 인 이가와 다르게 주가에는 세 번의 기회가 있다. 강제 명령으로 벌어놓 은 시간에 형을 이길 만한 강자를
중국 대표로 세운다면 모든 것이 해 결되겠지.
[그것도 이겼을 때 일이겠지요.]
그렇다. 그게 중국의 최대 문제다. 과연 이제 와서,누가 형에게 승리 를 장담할 수 있겠는가?
검성 저우홍이만 해도 중국에서 다 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자였고 검황 쉬자인은 중국이 자랑하는 천 하제일인이었다. 형이 비겁한 수를 썼거나,뭔가 기발한 수를 써서 이 겼다면 모르지만 모든 결투는 정정 당당했다. 천룡검과 지룡검이 다 패 배했는데 이제 와 그 아래 무사들을 데려와서 패배하기라도 하면?
결국 중국은 다른 수를 쓸 수밖에 없다.
“자자. 다들 조심히 들어가고. 눈병 안 옮게 손 깨끗하게 씻어라.”
“네、,
수업이 끝나고 하교한다. 교실을 나서는 내 뒤로 자연스럽게 내 짝 꿍,선애가 붙었다.
“내일은 결석이야.”
“네가?”
“너도.”
교내의 도로를 걸어 내려간다. 교 재를 비롯한 학용품들은 학교에 다 놓고 다니기 때문에 몸은 가볍다.
아니,몸이 가벼운 건 단지 그 이유 뿐만이 아닐 것이다.
몸이 날아갈 듯 가볍다. 이대로 땅 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것만으로 수 십 미터는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니,실제로 될 수 있겠지.’
아직 일주일도 안 되었지만 성장 속도는 상당한 편이다. 이미 상당량 의 영력을 갖춘 만큼 영력을 키우기 위한 필수적인 수련들도 상당 부분 건너될 수 있어 더더욱 그렇다.
“굳이 그래야 하나?”
“…너 진짜 위기감이라는 게 없구 나. 분위기 파악이 안 돼? 요새 이
가 분위기가 뒤승승한 거 안 느껴 져?”
선애가 어이없어하는 게 느껴진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요새 경복궁 내부의 분위기는 용광로처럼 부글부 글 끓고 있었으니까.
‘하긴 말은 없어도 다들 느끼고 있 겠지.’
전쟁의 기운을.
“지금 분위기가 도저히 외부 경호 를 할 수 없는 수준이야. 안가가 정 해졌으니 한동안 그곳에서 한 발짝 도 나오면 안 돼.”
“안가(安家) 라.”
대화하며 동안 교문을 나서자 교문 밖에 언제나처럼 산검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다만 산검 혼 자는 아니다.
“왔군. 타라.”
“사람이 점점 많아지네요?”
“네 안위가 이가 전체에 중요한 문 제가 되었으니까.”
육중한 검은색 세단 근처에는 양복 을 입은 건장한 덩치의 사내 네 명 이 서 사주경계를 행하고 있다.
“와,저거 뭐야. 우리 학교에 조폭 아들도 다니나?”
“너 바보냐? 경찰청장 아들인 형수
랑 검찰청장 손녀인 영미도 다니는 게 우리 학교인데 뭔 조폭이야?”
“기업형이면 그럴 수도 있지.”
“하긴 분위기가 품에서 총 꺼낼 거 같은 분위기이긴 하네.”
수군수군거리는 학생들의 모습에 얼른 차에 탄다. 여러 가지 의미로 쪽팔리다.
“으,왜 차 근처에서 그렇게 서 있 는 거예요? 다들 보잖아요.”
항의했지만 사내들은 내 쪽을 쳐다 보지도 않는다. 그저 명령에 따라 나를 지키고 있을 뿐 나라는 존재에 별다른 관심이나 호의는 없는 분위
기다.
“학교는 결계로 지켜지고 있지만 교문만 해도 그렇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야. 표면 세계에서 일을 벌이는 미친놈은 없겠지만… 지금은 대마법 사님이 돌아가신 상황이라 또 어떻 게 될지 모르니까.”
“요란스럽구먼.”
투덜거리며 차에 탄다. 이어 다른 경호원,아니,경호무사들도 차에 타 고 세단이 미끄러지듯 도시를 빠져 나온다.
세단은 계속 도로를 달렸다. 그리 고 어느 순간부터 도로에 가득하던 차량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한
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어느새 우 리 차량은 텅 빈 도로를 시원스레 달리고 있는 상태였다.
[차원 이동을 확인했습니다. 다만 그 3인방에게 납치되었을 때와는 다 르게 함장님을 관측하는 게 가능하 군요. 고유세계의 함장님이 중계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고유세계에 건물을 지을 때 통신 장비부터 마련했었 지… 그럼 이제 불의의 사태로 통신 이 끊기는 사태는 없는 건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거의 모든 방 식의 전파 방해에서 자유로울 거라 고 짐작됩니다. 좌표 중첩을 해제하
지 않는 이상… 함장님은 언제 어디 서든 저에게 육성으로 말을 걸 수 있으니까요.]
지니의 말을 듣고 있는데 선애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임시 채널이야. 표면 세계와 이면 세계의 중간 지점이지.”
[자꾸 개별 차원을,그것도 너무 빨리 만든다 싶었는데 거품 세계로 군요… 하지만 원래 거품 세계를 만 드는 건 상당히 높은 경지의 술법이 나 영능이 동원되어야 하는데 이렇 게나 쉽게 만들어 내다니 희귀한 케 이스입니다.]
‘대단한 능력이야?’
[최고위 결계이지요. 원래 저런 수 준의 영능으로는 꿈도 못 꿔야 하지 만 아무래도 이 행성에 있는 이면 세계라는 거대한 [환경]이,그들이 손쉽게 거품을 일으킬 수 있게 도움 을 주고 있는 모양입니다.]
“임시 채널이라……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도시에는 생기 가 없다. 당연한 일이다. 도시 안에 서 움직이는 건 오직 우리가 타고 있는 차량뿐이었으니까.
“이면 세계와 비슷하구나.”
“그렇지만 이 모든 게 임시라는 걸 잊으면 안 돼. 이곳은 생명체를 제
외한 표면 세계의 모든 요소들이 구 현되어 있지만 그것들이 다 임시일 뿐이니까. 옷가게에서 옷을 꺼내 입 는 건 네 마음이지만 임시 채널이 닫히면 표면 세계에 나체가 되어 나 타난다는 말이야.”
“이 세계의 것들은 현실로 가면 사 라져 버린다?”
“그래. 이면 세계로 돌아가든 표면 세계로 돌아가든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지. 특히.”
나른하던 선애의 목소리가 차분하 게 가라앉는다.
“특히 혹시라도,만약에라도,그 어 떤 상황에라도 절대 임시 채널의 음
식을 먹으면 안 돼.”
“음식?”
우리가 탄 차량이 어떤 마을로 들 어선다. 선애가 갓길에 서 있는 푸 드 트럭을 가리켰다. 주인 없이 덩 그러니 서 있는 푸드 트럭은 아무래 도 꼬치를 주력으로 삼고 있는 듯 메뉴들에 온갖 꼬치가 가득한 상태.
그리고 그 메뉴판이 틀리지 않다는 듯 푸드 트럭 앞 테이블에 놓인 꼬 치들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 고 있다.
“그래,음식. 임시 채널의 음식은 절대 건들지 마. 현실의 것과 똑같 은 향과 외향을 가지고 있고,또 현
실의 것과 똑같은 맛을 가지고 있어 도 그것들 모두 임시일 뿐이야. 네 가 표면 세계로 돌아가게 되면.”
“…마찬가지로 사라지겠군.”
“그래.”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