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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 2부-21화 (138/249)

21 화

[얼마 전에 다 돌아가셔서…….]

“…정령왕이라는 게 죽기도 하는 거야? 영원불멸의 존재가 아니라?”

[저희도 그렇게 믿었는데 실제론 아니더라고요. 대전쟁 때 정령계로 쳐들어온 체르노보그(Chernobog)에 게 대항하시다가 많이들 소멸해 버 리셨죠. 부끄럽지만 이제는 제가 금 속 정령 중에 최고위예요.]

‘또.’

또 그 이야기다. 400년 전 있었던, 온 우주가 휘청거릴 정도로 거대했 다는 전쟁.

대전쟁 (The Great War).

‘이것 참,이 시대에 태어나서 다 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 시절에 태 어났으면 이 우주 어디에서 살았건 휩쓸렸을 것 같으니.’

태초부터 대우주는 필멸자들이 감 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온갖 존재 들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우주의 창조와 함께 태어난 신수와 마수들. 우주를 멸망으로 몰아넣는 게 가능

할 정도로 막대한 권능을 가진 고대 의 신들. 행성보다도 더 거대한 덩 치를 가진 우주 괴수들. 그 근원조 차 불분명한 비설정(非設定)의 존재 들. 그리고 스스로를 단련해 강대한 힘을 손에 넣은 초월자들까지.

그러나 그런 강대한 힘을 가진 그 들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한정적 이었다고 한다. 왜냐하면,그들은 통 제받고 있었으니까.

아수라(阿修羅).

창조신의 이면으로 불리는 그는 아 주 엄격한 [법칙]으로 우주를 통제 했고,강대하고 무시무시한 권능을 가진 존재들조차 감히 그것을 어길

수 없었다.

창조신이 선정한 세상의 주역(主 役)은 필멸자들.

초월자들,그리고 그런 초월자조차 벌레처럼 학살할 수 있는 우주의 강 자들은 [깃털]이라 불리는 기물을 소모해 간섭력을 획득하지 않으면 필멸자들의 운명에 간섭하기는커녕 정해진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억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랬기에… 전쟁은 필연이 었을지도 모른다.

아수라가 소멸하는 순간 그들에게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어져 버렸으 니까.

“죽은 건 그뿐이야?”

[스물두 정령왕 중 열아홉이 죽었 지요. 정령신께서 직접 권능을 발휘 해 다섯의 최상급 정령을 정령왕의 자리에 올렸지만.]

“•••자리를 다 못 채웠구나.”

[혼란의 도가니였죠. 정령계가 통 째로 망할지도 모를 위기였어요.]

핑크핑크가 푹 한숨을 쉴 때였다.

번쩍!

[여기에 엄청난 기운이… 아,깜짝 이야!]

“…기린?”

나는 벼락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빛나는 기린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 보았다. 말 그대로 느닷없이 나타난 녀석은 그 기다란 목을 모로 꼬아 나를 내려다본다.

[와,이거 뭐야. 영압이 왜 이래? 속성력은 쩌는 거 같은데 막상 열 걸음 안쪽으로 다가갈 수가 없다니. 핑크핑크. 저거 뭐 하는 녀석이야?]

[사실 나도 잘 몰라. 신족 같은데. 아,저기 이름이 뭐예요?]

“대하,관대하야.”

[네,대하 님. 이 녀석은 엘라이카 예요. 번개의 최상급 정령이죠.]

녀석의 대화를 듣고 있을 때 잠시 조용히 있던 아레스와 지니가 수군 거린다.

[아무래도 그거인 거 같지?]

[네. 뭐 극히 희귀하다고까지 말할 확률은 아니긴 하지요.]

“너희끼리 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영문을 모를 소리에 의문을 표하자 아레스가 말한다.

[네가 금(金),뢰(雷) 속성에 적성 을 가진 다중속성인 것 같다고. 하 지만 특이하긴 하네. 금속성 정령사 는 흔치 않은데.]

녀석의 말에 나는 핑크핑크와 엘라 이카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주 변 모든 정령들이 다 도망갔는데 이 둘만 다가온 걸 보면 내 속성을 굳 이 확인할 필요는 없는 상황이긴 하 다.

“그런데 금속성 정령사가 별로 없 어?”

거기에 대답을 한 것은 엘라이카에 게 대충 상활을 설명하던 핑크핑크 였다.

[아무래도 그렇죠. 금속성을 타고 나는 사람들은 투쟁심이 강해서 무 사(武士)가 되는 게 일반적이거든 요. 뭐,꼭 자기 속성 정령만 계약

할 수 있는 건 아니니 금속의 정령 을 다루는 정령사는 꽤 되지만,금 속성이 주 속성인 정령사는 정령사 중에서도 0.1%가 안 돼요.]

그런데 그때 아주 멀리에서 큰 울 림이 있었다.

쿵!

[특히나 당신처럼 정령계에 입성하 자마자 이 정도의 파란을 일으키는 존재는 정령계 전 역사를 뒤져봐도 흔치 않은데 이런 경우…….]

쿵!

“잠깐,잠깐만. 이 소리는 뭐야?”

[네? 무슨 소리요?]

“뭐? 이게 안 들려? 이 땅 울리 는、”

그리고 그 순간,다시 한번 쿵! 하 고 묵직한 울림이 울린다. 이번에 소리가 들린 장소는 코앞이라,그 당사자의 모습이 바로 시야에 들어 온다.

“이런.”

신음이 절로 나온다.

“이런.”

압도되어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한 다.

“이런 미친……

내가 지금까지 만난 이들 중 가장 높은 격(格)을 지닌 존재를 찾는다 면 당연히 아담을 꼽을 수 있다. 최 상급 신들 중에서도 특별한,절대신 에 가까운 존재였던 나의 친부가 [정보와 문명의 신]으로서 직접 이 름 붙인 [최초의 리전] 중 하나.

그는 대전쟁이 벌어지기 전 영멸 (永減)한 [기계신]의 신위(神位)를 수습함은 물론이고 자신의 남매나 다름없던 이브의 신격(神格)을 강탈 함으로써 대우주에도 몇 없는 최상 급 신의 자리에 올랐다. 물론 그 직 후 그 막대한 신위의 압력에 잡아먹 혀 광기에 휩싸이고 말았지만,그렇

다 하더라도 무지막지한 권능을 가 진 초월자 중의 초월자라는 것은 누 구도 부정할 수 없겠지.

그러나 나는 내 눈앞에 선 [그것] 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다르다.

[그것]은 아담과도 완전히 다른 존 재였다.

그것은 산맥만큼이나 거대한 산 같 은 덩치를 가지고 있다. 하체는 사 슴의 그것과 비슷한 형태이며 상체

는 아름다운 여인의 그것과 닮은 외 양.

그러나 세상 누가 [그것]을 생명체 라 부를 수 있을까?

마치 활화산처럼 이글거리고 있는 머리카락.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네 개의 다리. 등에는 몸 전체를 다 덮을 것 같은 크기를 가진 빛과 어 둠의 날개가 달려 있고,사슴의 등 부분에는 먹구름이 매달려 폭풍과 벼락이 몰아치고 있다. 오른팔은 보 기만 해도 상쾌할 정도의 담수와 접 근만 해도 녹아버릴 것 같은 독수가 섞일 듯 섞이지 않고 출렁이며,왼 팔은 일그러지는 공간만이 그 형태

를 간신히 드러나게 만들고 있다.

-너••,•••.

나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눈동자는 무슨 아파트 단지만큼이나 커다란 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친… 미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위압 감에 전신이 떨린다. 별다른 말 없 이 내려다보는 시선만으로 영혼 깊 숙한 곳까지 샅샅이 꿰뚫리는 기분.

그것은 한참이나 나를 내려다보았 다. 천만다행히도 살의라든가 불쾌

감이 아닌 호기심이 담긴 시선. 그 리고 그렇게 벌벌 떨며 그것의 시선 을 마주하고 있던 중.

[그것]이 말했다.

- 선물.

“네?”

쿵!

그대로 떠나간다. 더 이상의 용무 는 없다는 듯 뒤돌아보지도 않는 걸 음걸음. 그리고 그렇게 그것이 사라 지자 침묵에 잠겨 있던 천지사방이 들썩인다. 거의 폭발하는 거나 다름

없는 반응이었다.

[깍! 정령신께서 날 보셨어!]

[아냐. 신께서는 잘 자란 나무를 보신 거야.]

[정령신께서 나에게 미소 지으셨 어!]

[아냐. 신께서는 한 송이 꽃을 보 고 웃으신 거야!]

숲 전체가 술렁인다. 심지어 나와 같은 외부인인 지니와 아레스도 경 악을 금치 못한다.

[괜찮으십니까. 함장님?]

[아,아니. 세상에 정령신이라니. 저런 거물이 왜 갑자기…….]

[정말 대단하십니다! 계신(界神)과 동급이라는 정령신이 직접 만나러 오다니!]

[와,순간 숨을 뻔했어. 제우스 놈 도 저 녀석한테는 안 되겠네.]

“후……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변에 있 는 나무에 기댔다. 저 앞에 극도의 홍분 상태에 빠져 방방 뛰는 핑크핑 크와 엘라이카의 모습이 보인다.

“정령신이라니.”

물론 그런 존재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정령계의 주인,선계의 옥황 상제와도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절

대신 중 하나.

“지니,혹시 제국에서 정령신과 접 촉한 적 있어?”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지요. 그 야말로 신화,혹은 전설에서나 나올 법한 존재입니다. 대정령사들이 남 긴 목격담 정도야 남아 있지만 이렇 게 관측된 건 제국 역사상 처음일 겁니다.]

[하지만 진짜 어이 터지는 등장이 긴 하다. 무슨 대단한 대서사시 끝 에 만나는 것도 아니고,비밀스러운 공간에 진입해서 만나는 것도 아니 고 개나 소나 다 들어오는 정령계에 진입하자마자 나오다니.]

그 말에는 나도 동감이다. 말하자 면 관광차 미국에 놀러 갔더니 미 대통령이 공항에 마중 나오는 상황 아닌가? 아니,사실 그것조차 어림 없는 비유다. 대통령이라고 해봐야 결국 인간. 관광차 예루살렘에 갔더 니 예수가 튀어나오는 쪽에 더 가깝 겠지.

[아. 그런데.]

어이없다는 듯 너털웃음 짓던 아레 스가 내 쪽을 돌아본다.

[너 괜찮나?]

“괜찮나니 뭐가… 어라?”

의문을 표하다 뭔가 다르다는 걸

깨닫는다.

“옷이 돌아왔잖아?”

그 말대로다. 어느새 내가 입고 있 던 옷가지들이 다시금 내 몸에 걸쳐 져 있다. 아니,정확히 말하면 걸쳐 졌다는 표현조차 정확치 않겠지. 사 실 옷은 벗겨진 적이 없으니까.

고오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한 기운 이 내 몸 주위를 휘돌고 있다. 그리 고 그 기운이 휘도는 범위만큼 주변 배경이 뒤로 밀려난다. 생명력을 가 득 머금은 꽃과 나무들,비옥한 토 지와 보석 같은 자갈들이 마치 컴퓨 터 그래픽처럼 왜곡되어 죽 밀려나

원을 그리는 것이다.

[어? 나 이 광경 본 적 있던 거 같 은데… 아 맞아. 핑크핑크야. 저거 고유세계 (固有世界)아니니?]

[앵? 그건 공간계를 주 속성으로 가진 다중속성의 대정령사들도 겨우 흉내나 내는 권능인데? 아니,뜬금 없이 왜 갑자기 저런 능력이 개발된 거야?]

뒤늦게 내 상태를 확인한 핑크핑크 와 엘라이카가 수군거린다. 그리 흔 치 않은 상황인 듯 당황이 느껴진 다.

[설마 정령신께서 주신 건가? 하지 만 왜?]

[게다가 저건 고위 정령과 계약하 지 않으면 발동 자체가 안 되는 능 력인데… 설마 우리보고 불이익을 감수하고 계약을 하라는 계시를 내 리신 건가?]

[하지만 지금 접근도 못 하는데 계 약은 무슨 계약이야?]

두 최상급 정령이 뭔가 말할 틈도 없이 둘이서만 떠드는 사이에도 내 몸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멈추지 않 는다. 아니,멈추지 않는 정도가 아 니라 이제는 내 주변 공간과 정령계 가 완벽하게 유리(遊離)되기 시작한 다.

[저기,대하 너 괜찮은 거냐? 뭔가

차원의 균열 같은 게 생기고 있는 것 같은데.]

[아!]

그때 소곤대던 핑크핑크가 불현듯 깨달았다는 듯 아레스에게 삿대질한 다.

[아! 그렇구나! 저거 정령이야! 게 다가 위계가 꽤 높은걸! 저거라면 고유세계 발동이 가능하겠다!]

[오 맞아! 그러고 보니 저 이상한 정령 녀석,이 사람하고 속성 궁합 이 천왕(天王)급이다!]

[게다가 금속성하고 뇌속성을 다가 진 정령이니 굳이 정령계에 올 필요

도 없던 거 아냐?]

시끌시끌 떠드는 말이 거슬렸던 듯 여태껏 그들을 못 본 척하고 있던 아레스가 발끈한다.

[아니,이것들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내가 왜 정령이란 말이 냐?]

[응? 정령이면 정령이지 왜가 어디 있어?]

[너 정령 맞아.]

오히려 그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 는 두 최상급 정령의 모습에 아레스 가 발끈한다.

[난 아레스다!! 정령 따위가 아닌!]

강대한 영력이 퍼져 나간다. 비록 염체에 불과하다고는 하지만 신급 기가스의 아이언 하트에 담긴 영력 은 초월적인 수준.

그리고 그 엄청난 영력으로 아레스 가 포효한다.

[위대한 신성을 가진 전쟁의 신이 라는 것을 알아라!]

우우우——!!!

빛이 번뜩인다. 거대한 기세가 강 림했다. 마주하는 모든 것을 무릎 꿇리고 함께하는 모든 이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패기(顯氣)!

그러나 아레스가 패기를 뿜거나 말

거나. 핑크핑크와 엘라이카의 반응 은 차갑다. 심지어 핑크핑크는 조막 만 한 손을 들어 머리 옆에서 빙빙 돌린다.

[뭐라는 거야?]

[몰라. 돌아이인가 봐.]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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