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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 2부-20화 (137/249)

20 화

“뭐야? 누가 이 시간에,아,그렇 군. 네가 바로 그 [제자]인가.”

“네. 반갑습니다. 저는……

“됐어. 말이 좋아 제자지. 시스템일 뿐 나랑 너는 사제도 뭣도 아니니 굳이 소개 같은 걸 할 필요는 없다. 내가 가르치는 건 고작 입문에 해당 하는 영역일 뿐 비전도 오의도 가르 칠 생각이 없으니.”

그의 표정에는 적의도 호의도 호기 심도 없다. 그야말로 완벽히 비즈니 스 관계라는 식.

“흠.”

뜻밖의 상황이었지만 나로서는 나 쁠 것 없는 반응이라는 생각이 들었 다. 아니,오히려 편하다면 편한 상 황이라고 할 수 있겠지.

“뭐,그렇다면 잘 부탁드립니다.”

“알았으니 기다려. 아직 작업이 안 끝났으니.”

그렇게 말하고는 내려놨던 망치를 잡아 들더니 작업을 재개한다.

깡! 까앙!

치이익!

피어오르는 수증기 너머로 근육질 의 상체가 보인다. 190이 넘는 신장 에 팔뚝이 내 허벅지보다 굵을 정도 로 단련된 육신.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군기시]

[9 레벨]

[장비 제작 전문가 이도검]

‘9레벨이라.’

칭호에서 이능의 경지는 입문자,

숙련자,전문가,완성자,초월자로 분류된다. 굳이 레벨로 표현하자면 1~3레벨은 이제 막 이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입문자,4〜6레벨은 그 이능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해진 숙 련자,7〜9레벨은 그 이능을 자유자 재로 사용하는 전문가며 마침내 10 레벨에 이르면 깨달음을 얻어 권능 (비록 그 수준은 높지 않지만)과도 같은 초상능력을 얻게 되는 완성자 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즉 그가 지금 9레벨이라는 말은.

‘벽에 막힐 즈음이군.’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정체했을지 는 나도 알 수 없다. 주름 하나 없

이 팽팽한 그의 피부는 그의 나이를 추정키 어렵게 만들고 있었지만,하 얗게 센 머리카락과 고집스러운 눈 매는 노인의 그것이었으니까.

치이익!

도검은 한참 담금질하던 검을 젤리 같기도 하고 묵 같기도 한 묘한 물 질에 찔러 넣더니 손을 탁탁 털었 다.

“저기 그거 괜찮은 겁니까? 연기가 나는데……

"신경 쓰지 마라. 우려내는 중이니 까.”

우려낸다? 이해할 수 없는 표현에

내가 의아해하거나 말거나 도검은 근처 작업대 위에 털썩 걸터앉았다. 그러고서 슬쩍 고개를 돌려 허공을 바라본다. 보통 사람이야 왜 갑자기 한눈을 파는가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거 뭘 보고 있는지 안다.

‘미션을 보고 있군.’

과연 그는 이내 다시 고개를 돌린 다.

“시작부터 정령사,대장장이,강체 사를 동시에 선택했다고? 게다가 이 왕 정령술을 익히는 데 정령력을 이 용한 제작술도 아니고 오오라 제작 술이라니 제정신이 아니군. 왜 튜토 리얼 따위가 나한테까지 왔나 했더

니… 아니,그것보다.”

도검이 고개를 모로 꼬아 나를 바 라본다. 뭔가 상당히 불만이 많아 보이는 태도다.

“너 빽이 누구냐?”

“별다른 배경은 없습니다만.”

“그런 게 없는데 미션 보상이 왜 이렇게… 아니,아니다.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겠지.”

그는 고개를 흔들어 보이고는 작업 실 한쪽에 위치한 찬장을 뒤지더니 금빛으로 반짝이는 작은 사이즈의 의자를 꺼내왔다.

금색 의자는 3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각각 다른 색의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다.

“정령술부터 시작하지. 정령술은 철저히 될놈될이니까.”

“될놈될이요?”

“될 놈만 된다고. 무공이나 마법은 그저 입문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 과 수련이 필요하지만 정령술은 다 르거든. 될놈은 가르쳐 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자연스럽게 쓰고 안 될 놈은 죽을 때까지 뭔 노력을 해도 안 되지.”

그극.

금색 의자를 내 앞으로 밀어낸다.

이제 와서 다시 보니 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예술품이나 다름없는 물건이 었다.

“뭐,그걸 감안하더라도 넌 꽤 운 이 좋아. 이가에서 나만큼 정령 계 약을 쉽게 주선해 줄 수 있는 사람 은 없는데.”

“이거 설마 순금입니까?”

“그럼 도금일까. 헛소리 말고 앉아 라.”

그의 안내에 따라 의자에 앉자 도 검은 웬 소주를 한 병 꺼내더니 뚜 껑을 따 그대로 내 머리 위에 콸괄 부어버린다. 머리칼을 흠뻑 적신 소 주가 얼굴과 목을 따라 온몸을 적시

기 시작했다.

“앗,차가. 뭐 하는 겁니까?”

“다 과정이다. 아,계약은 어려울 것 없을 거다. 그냥 정령계에서 너 한테 다가오는 최하급 정령을 만나 계약하면 끝이니까. 다가오는 녀석 이 없으면 재능이 없다는 뜻이니 그 때는 뭔 짓을 해도 소용없고.”

괄괄괄.

두 번째,세 번째,네 번째 병을 들어 붓는다. 이제는 숫제 옷도 다 젖고 바닥까지 소주가 훙건하게 고 인다. 자욱한 알코올 냄새에 머리가 띵해져 온다.

“저기 언제까지 소주를…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싹둑.

벽에 고정되어 있던 드라이기를 꺼 내 들더니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 으로 전선을 잘라내는 도검의 모습 에 불안감이 밀려온다.

“도검 님?”

내가 부르거나 말거나 그는 드라이 기를 한쪽에 던져 놓고는 전선을 풀 어내 훙건히 고여 있는 소주 웅덩이 에 던져놓았다.

그가 설명한다.

“다시 말하지만 네가 뭘 할 필요는

없어. 결정은 정령이 하는 거고 너 는 고개만 끄덕여도 된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전기 코드를 들어 -

“아니,아니,잠깐만요. 지금 설 마.”

콘센트에 꽂았다.

파지직-!!

고통은 없었다. 느낄 틈조차 없었 다.

“•••이런 미친.”

나는 전혀 새로운 장소에 서 있었 으니까.

[오! 정령계는 나도 처음 와봐! 되

게 신기한데?]

어느새 내 옆에는 조각같이 반듯반 듯한 외모에 근육질의 몸을 가진 아 레스가 구현되어 있었다. 우자트에 의한 증강 현실 따위가 아니라 사념 을 구현해 만들어낸 염체(念體).

다만 지니는 그런 재주가 없는 듯 목소리만을 전한다.

[차원 이동을 확인했습니다. 현재 위치 엘리멘탈 플레인 (Elemetal Plane)의 73B 구역입니다. 그곳은 외차원으로 본 함선에서의 간섭이 불가능하며 극히 희귀한 확률이겠지 만 언터쳐블을 만날 수도 있는 공간 이니 각별한 주의를 요망합니다.]

‘정령계로도 통신이 되는 거야?’

[외차원으로의 통신이 불가능하다 면 아스트랄 드라이빙 중 외부 통신 이 먹통이겠지요. 물론 정령계까지 연락이 가능한 건 현실에 있는 함장 님의 육신이 중계기 역할을 하고 마 도병기 우자트가 수신기 겸 관측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

그녀의 설명을 걸으며 숲속을 걷는 다. 겉모습만 보면 정령계가 아니라 지구의 어딘가로 이동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평범하지만,그저 걸으 며 숨을 들이쉬는 것만으로 온몸에 힘이 들어갈 정도로 생명력이 들어

찬다는 점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숲.

“아 차거… 어?”

졸졸졸 흐르는 연못에 발을 살짝 담갔다 꺼내다 미처 눈치채지 못했 던 이질감의 정체를 깨닫는다.

“뭐야,옷 다 어디 갔어?”

[옷은 없습니다,함장님. 정령계로 넘어간 것은 함장님의 영혼이니까 요.]

“우자트는 있잖아?”

[우자트는 마도병기니까요. 영력을 품은 장비는 정령계에도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쉐도우 스토커도 있구먼.”

즉 나는.

나체(探體) 상태에서 안경과 시계 만 차고 있는 것이다.

“어,얼른 계약하고 나가야겠다.”

그러나 그런 나의 희망과 달리 주 변은 적막하기만 하다.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정령 따위는 보이지 않는 것.

도검은 이곳에서 적당한 최하급 정 령을 만나 계약을 체결하면 끝이라 고 했다. 정령 계약의 성사는 절대 적으로 [재능]의 문제이므로 별다른

선행학습은 필요 없다 했던 것.

그러나.

내가 정령들을 만나 화기애애하게 계약을 맺는 일 따위는 없었다. 심 지어 단순히 재능이 없다는 이야기 조차 아니었다.

[와! 엄청난 기운이… 히익?!]

[으악! 저게 뭐야?!]

[깍! 도망쳐!!]

땅을 파고 머리를 내밀었던 두더지 모양의 정령이 비명을 지르며 자신 이 파놓은 토굴 속으로 머리를 처박 는다. 나무 위에서는 다람쥐 모양의 정령이 나무를 놓쳐 바닥으로 떨어

지고 근처에 흐르던 냇가에서 물장 구치던 소녀 모양의 정령은 비명을 지르며 냇가로 뛰어든다.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패닉에 빠 진 정령들이 정신없이 도망가고 나 자 생명력이 넘치던 숲에 적막이 내 려앉는다.

[도망가는데?]

[도망가네요.]

무슨 침몰 직전의 배에서 탈출하는 쥐 떼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는 정령 들의 모습을 잠시 어이가 없어 지켜 본다.

[겁 없이 시비 걸던 인간들하고 다 르게 정령들은 뭔가 느껴지는 모양 이군.]

“아니,그래도 그렇지 다 도망가 버리면 계약은 어떻게 해?”

기막혀하며 숲속을 걷는다. 딱히 추격은 아니다. 그저 이 정령계라는 곳이 어떤 장소인지 궁금했던 것뿐.

그러나 내 걸음걸음마다 시야 저편 의 숲이 요동친다. 무슨 파도가 치 는 것처럼 숲이 출렁출렁 흔들린다.

[깍! 이쪽으로 온다!]

[아,밀지 마!]

[차라리 좀 더 멀리 떨어지자!]

수없이 많은 목소리들이 들린다. 마치 속삭임 같은 웅성거림이 먼 곳 에서부터 들려오고 있는 것. 그러나 이미 거리는 너무나 벌어져 이제는 목소리만 들릴 뿐 모습은 보이지도 않는다.

“이래서야 내 속성도 알 수가 없잖 아……

인간은 태어날 때 각각 하나,혹은 그 이상의 속성을 타고나며 이능을 수련함에 있어 그 속성이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이능을 수련하는 자들은 모두 각자 의 방법으로 자신의 속성을 확인하 는데 정령사는 그중에서도 가장 쉽

게 속성을 확인할 수 있는 존재다. 일단 정령계로 접속이 가능한 순간, 오직 해당 속성의 정령들만이 그에 게 접근하기 때문이다.

[결국 계약은 꽝인가?]

[저기요…….]

[그냥 나오세요,함장님. 대우주시 대에 정령술이 웬 말이에요? 우주 공간에서는 가장 쓰기 힘든 힘이 자 연력인데. 역시 답은 생산계뿐입니 다.]

[저,저기요…….]

“아니,너희 너무 말 쉽게 하는 거 아니냐? 기껏 수련하려고 왔더니

만.”

아레스와 지니의 말에 기막혀하는 순간이었다.

[저기요!!!!!]

“깜짝이야.”

느닷없는 고함에 놀라 고개를 돌린 다. 그곳에는 1미터가 채 안 되는 신장의 소녀가 서 있다.

아니,그걸 소녀라고 할 수 있을 까?

“이,이게 뭐야. 피규어?”

분명히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건 인간이 아니었다. 명백히 인간 의 그것과 차이를 보이는 광택의 피

부. 1미터의 작은 신장이지만 완벽 한 비율의 늘씬한 몸매.

그렇다. 그녀는 인간이 아니라 미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금속 피규 어였다.

[안녕하세요. 금속의 최상급 정령 핑크핑크입니다.]

[이름 봐……]

지니의 신음 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 앞에 선 피규어를 바라보았다.

“금속의 정령이라고? 피규어의 정 령이 아니라?”

[아무리 세상에 미친놈이 많아도 피규어의 정령이 만들어질 정도로

많지는 않을 테지만… 아니,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앗! 다가오지 마 시고요!!]

한 발짝 앞으로 이동했다가 기겁해 서 물러나는 핑크핑크의 모습에 당 황한다. 금속 광택이 흐르는 그녀의 얼굴에서 명백한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괜찮아?”

[안 괜찮아요!! 아니,그런데 당신 대체 뭐예요? 영압(靈歷)이 너무 강 해서 폐가 오그라들 거 같아요! 물 론 저한테 폐는 없지만!!]

“아… 그럼 설마 나 정령 계약 할 수 없나?”

[최상급 정령인 저도 접근조차 힘 든데 무슨 수로 계약을 해요? 그나 마 당신에게 금속의 냄새가 물씬 풍 겨서 조언이라도 해주는 거예요.]

핑크핑크의 말에 가볍게 입맛을 다 신다. 이왕 영력과 호응력이 있는 이상 정령술을 배워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았다.

“정령왕은 어때?”

무심코 묻는다. 물론 정령계에 막 들어온 주제에 정령왕을 논하는 건 문자 그대로 양심이 없는 일이겠지 만 최상급 정령 위에는 정령왕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

그런데 핑크핑크가 뜻밖의 말을 했 다.

[금속의 정령왕은 없는데요.]

“오행(五行)에 들어가는 금속성에 정령왕이 없다고?”

어이가 없어 되묻는다. 내가 정령 술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우 주를 조성(組成)하는 다섯 가지의 원기(木火土金水)에 들어가는 금속 성에 정령왕이 없다는 건 명백히 이 상한 일이었기 때문.

그러나 그렇게 황당해하는 나를 보 며.

[그게.]

핑크핑크가 핑크색 머리칼을 비비 꼰다.

[얼마 전에 다 돌아가셔서…….]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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