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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 2부-19화 (136/249)

19화 Chapter 4. 튜토리얼

그러나 내가 형을 만나는 일은 없 었다.

대신 내 가방에 어느새 들어가 있 는 한 통의 편지를 읽고 있다.

〈대하에게.

너도 결국 이 빌어먹을 세계에 발 을 들이게 되었네. 이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랐지만,또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허탈하다. 표면 세계에서만 살아가 기에 넌 너무나 비범한 아이였으니 까.〉

‘아니,뭐라고7’

황당한 문구에 할 말을 잃는다. 아 니,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어떤 아이라고?

어이없어하면서도 편지를 읽는 걸 계속한다.

〈나는 싸우기로 결심했어.

미안해. 네가 평온을 바란다는 걸 알고,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럼 에도 도저히 그럴 수 없었어.

정말.

참을 수가 없어.

쥐꼬리만 한 힘으로 약자를 갈취하 는 것들. 타인의 피와 눈물을 비웃 으며 짓밟는 것들이 그 강자존이라 는 명분하에 맘대로 하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어. 대마법사님 의 말이 맞았던 거지. 인간은 어리 석은 머저리면서 동시에 탐욕스러운 짐승. 내가 이제 그놈들하고 같은 진창에서 굴러야 한다는 사실이 절 망스럽지만… 그놈들에게 그 잘난

강자존이 마냥 편리하기만 한 전가 의 보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줘 야겠지.〉

‘…뭔가 많은 일이 있었나 본데.’

형이 내가 우주로 나가 있는 동안, 아니,어쩌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 이면 세계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지만,그럼 에도 편지에서 진한 분노가 느껴진 다.

〈황녀님께 네게 대한 부탁을 해놓 았어. 이가의 전력을 다해 네 생활

에 불편함이 없도록 해주신다고 말 씀하셨으니 아주 조그마한 문제라도 생기면 즉시 궁녀들에게 이야기해. 어떤 부탁이든 무조건 들어주는 방 향으로 진행한다고 하셨어.〉

‘어떤 부탁이든 무조건 들어준다… 파격적이긴 하지만 그것도 당연한 일인가.’

아무런 저항조차 못하고 주가에 이 가 전체를 빼앗길 뻔한 상태에서 오 직 형 개인의 힘으로 회생한 것이 다. 이건 단순한 빚이 아닌 구명지 은(求命之恩). 심지어 지금 이 상황 에서 형이 손을 떼기라도 한다면?

농담이 아니라 이가는 그냥 주가에 먹히는 것보다 더 심한 나락으로 떨 어지고 말 것이다.

지금 이가에게 있어 형은 천상에서 내려온 동아줄인 동시에 생명줄.

형으로 인해 이가는 주가와 당당히 마주할 수 있는,극도로 유리한 협 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게 되었지만 대신 형에게 목줄을 잡힌 상황이기 도 하다. 나머지 2전에서 중국 측 [선별자]를 이겨낼 수 있는 강자가 없는 이상,이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잠적하기 전에 말씀

하셨어. 네게는 엄청난 잠재력이 잠 들어 있고… 지금쯤 그것이 깨어났 을 것이라고. 한 번도 틀린 말 한 적 없는 아버지의 말씀이지만,설사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네가 이 전 쟁통에는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 어. 너는 싸우고 죽이는 일과는 거 리가 먼 녀석이었으니까.

다만 수련은 해놓도록 해. 아무리 강대한 잠재력이라 해도 개화시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니 적어도 몸을 지킬 정도의 힘은 갖춰놓았으면 좋 겠어.

아,다시 회의가 시작된다. 등신들 의 합창을 들으러 가야지.

미안하고,걱정된다.

언젠가 다시 웃으며 만나길 바라 며.

형이.〉

‘뭐 이렇게 비장해.’

쓴웃음이 절로 나왔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약소국의 장수로 서 대국(大國)에 맞서기로 한 상태 였으니까.

‘지니,24시간 형의 상태를 마크하 고 황금사자단을 즉시 출격 상태로 대기시켜 줘.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선조치 후보고 하고.’

[알겠습니다,함장님.]

지니의 대답을 들으며 편지를 다시 가방에 넣는다.

드르륵!

“그나저나.”

나는 교실을 나서며 주변을 둘러보 았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다가오는 사람이 없다.

“다들 정신없는 모양이구먼.”

재석이도 경은이도 없다. 나를 보 러 안 오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학 교에 안 온 상태. 아니,사실 그 둘 뿐만이 아니다.

“아니. 뭔 뜬금없는 바이러스성 눈

병이야? 어제만 해도 다들 멀쩡하지 않았어?”

“개 어이없네. 거의 전교생 중 1/4 이 빠진 거 아니냐?”

“나도 눈병 걸리고 싶다.”

“아 눈병 분양 좀 받으려 했더니 찬석이 놈은 연락이 안 돼.”

“어? 개도 안 돼? 지선이도 연락 이 안 돼. [아파서 요양 중"n가r] 뭐 이딴 프사 걸려 있긴 하던데 되게 심한 바이러스인가?”

하교하는 학생들이 수군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들도 뭔가 묘하다 는 사실을 감지한 듯 분위기가 어둡

다.

“좀 이상하지?”

“응. 선생님들도 꽤 많이 빠졌잖아. 학교 온 선생님들도 뭔가 마음이 콩 밭에 간 느낌이고……

표면 세계는 이면 세계와 분리되어 있지만 그 구성원들에는 틀림없이 교집합이 존재한다. 이능력자들이라 고 해도 24시간 이면 세계에 있는 것은 아니며 현실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경우 역시 많으니까.

'특히 우리 학교는 더하지.’

애초에 이가의 두 공주가 같은 학 교에 다니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아니겠는가? 이곳은 이가가 직접 운영하는 장소이고,때문에 이 가 소속 능력자들의 자식 역시 다수 등교하고 있다.

‘지니. 결석한 학생 중에서 이능력 자로 짐작되는 녀석은 몇이나 되지?’

[거의 없습니다. 혹 능력을 각성했 더라도 미약한 수준이죠. 다만 능력 자들이 전쟁에 대비해 자신의 가족 들을 피신시킨 걸로 예상됩니다.]

‘뭐 거기에 그냥 관련자들도 있을 테고.’

이면 세계 관련자가 꼭 이능력자일 이유는 없다. 당장 재석이만 봐도 고작(?) 재벌 3세일 뿐임에도 이가

와 깊은 관계가 아니던가?

“관대하.”

“음?”

잠시 서서 생각에 잠겨 있다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원일고등학교]

[3 레벨]

[우울한 이선애]

“•♦•안녕.”

친한 사이는 아니다. 그냥 친구라 고 부르기도 애매한 관계. 클래스메

이트로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짝 꿍이지만 내가 지구로 귀환한 뒤로 는 쭉 나를 피했기에 별다른 대화조 차 나눠본 적이 없다.

“너 도야?”

“나도… 그래. 나도. 맞아. 나도야. 태어날 때부터 ‘나도’였지. 그나마 학교는 다닐 수 있어서 좋았는데.”

허탈하게 중얼거리며 걷기 시작하 는 그녀를 따라 교문까지 나선다. 경은이 없음에도 교문 앞에는 어제 보았던 육중한 검은색 세단이 기다 리고 있었는데,어제와는 달리 산검 은 운전석에 앉아 있는 상태다.

“타라.”

별다른 설명 없이 문이 열린다. 나 도 별 질문 없이 거기에 탔고 그 옆으로 선애가 따라붙는다.

팟!

그리고 그 순간 선애의 복장이 순 식간에 변한다.

변신 같은 건 아니었다. 그저 단순 한 환복(換服). 다만 그렇게 갈아입 은 복장이 몹시 익숙한 종류의 것이 다.

“…너 궁녀였어?”

“왜. 궁녀가 학교 다니고 있으니 이상해?”

묘하게 날카로운 반응에 고개를 흔

든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다. 우리 학교 학생 중 궁녀가 있다는 사실 자체에 놀란 건 아니 다. 다만 내가 지금까지,그러니까 레벨 시스템이 추가되기 전까지 그 녀가 능력자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 던 이유 때문에 놀란 것이다.

‘궁녀인데도 소속이 이가가 아니라 학교라.’

나는 세레스티아를 떠올렸다. 나의 '전’ 아내.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음에도 본 지 엄청 오래된 것 같은 우주 최고의 아이돌을.

세레스티아는 레온하르트 제국의 황녀였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대표 적인] 소속은 레온하르트 제국이 아 니라 완전히 엉뚱한 데트로 은하 연 합,그리고 그중에서도 일개 돌격대 였다. 앙겔로스 3세와 레온하르트 제국의 치부인 키메라 사이에서 태 어나 학대를 받으며 살아온 세레스 티아가 레온하르트 제국에 먼지만큼 의 소속감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 문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즉,이 녀석도 마찬가지라는 거 군.’

“거기 궁녀. 손님께 무례를 범하지 마라.”

“네,산검 님.”

즉시 고개를 숙이는 선애. 이내 차 가 출발하고 큰길까지 나간 산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인사가 늦었군요. 산검이라고 합 니다.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냥 대하라고 하세요.”

“네,대하 님. 영능을 선택하셨습니 까?”

그의 말에 잠시 고민한다. 이건 비 밀인가,아닌가? 하지만 이내 별 상 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형이 어그로를 끌대로 끌어놓은 상태라 내가 몸 사려봐야 소용없다.

“그럼 정해졌겠군요. [스승]이.”

산검의 말에 미션 시스템을 활성화 시킨다. 왼쪽 손등이 뜨끈해지고 눈 앞으로 텍스트가 떠오른다.

[미션 발생!]

[영능을 습득하자!]

[정령사,대장장이(오오라),강체사 를 선택하셨습니다!]

[사제를 매칭합니다. 매칭 중… 매 칭 성공!!]

[군기시(軍器寺)의 이도검이 스승

으로 매칭되었습니다! 오후 6시까지 군기시로 이동해 영능에 입문하십시 오!]

[제1목표: 정령 계약]

[제2목표: 오오라 개방]

[제3목표: 생체력 인자 각성]

성공 보상 - 정령사(1차 직업). 대장장이(1차 직업). 강체사(1차 직 업).

실패 벌칙 - 없음.

어젯밤에 내 [직업]을 선택하고 떠 오른 미션을 보고 맨 처음 한 생각

은 생각 이상으로 친절하다는 점이 었다. 그저 시스템 안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 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하긴 고작 텍스트로 영능을 습득 시키는 게 가능할 리 없으니… 이 시스템이면 스승에게도 뭔가 보상이 있겠군.’

"군기시의 이도검 님이라는군요. 오후 6시까지 이동하라는데.”

“뭐라고요?”

산검이 당황하는 표정을 짓는다. ‘어째서 그분에게 튜토리얼 안내 따 위가?’라고 중얼거리고 있다.

“문제가 있나요?”

“아니… 아닙니다. 이동하지요.”

세단은 조용히,그러나 매끄럽게 이동해 처음 보는 주택가로 들어갔 고 전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이면 세계로 진입,이가로 이동했다.

“잘 안내해라.”

“네,산검 님.”

이가에 도착해서는 산검 대신 선애 가 나를 안내했다. 장소는 율을 만 나러 갔던 국립고궁박물관이다.

“군기시라는 것도 여기 있는 거 야?”

“응. 지하 4층이야.”

경복궁의 건물 구조는 특이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층처럼 보인다고 해도 실제로는 전혀 아니었으니까. 내가 숙소로 이용하던 강녕전만 해 도 지상으로 5층. 지하로는 13층짜 리 건물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이놈 의 건물들은 그 엄청난 높이를 가진 주제에 공간 이동 장치는커녕 엘리 베이터조차 없다. 오직 계단. 그것도 성인 남성이라면 단둘조차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계단만이 유일한 통로인 것이 다.

“아 여기 계단 너무 좁아. 답답하 게.”

“방범을 위한 구조야.”

“방범이 아무리 좋아도 생활할 사 람들이 불편할 걸 감수하다니.”

어이없어하면서도 선애를 따라 지 하 4층까지 내려가 긴 복도를 지났 다. 지하 4층에는 총 8개의 문이 있 었는데 선애는 그중 한 문 앞에 섰 다.

“여기야.”

“넌 여기서 기다리는 거야?”

“원래 궁녀가 하는 일이 그거야.”

“흐 ”

、그~.

확실히 그렇긴 하다. 경복궁 여기 저기에서 마치 인형처럼 서 있는 게

바로 궁녀라는 존재였던 것이다.

드륵.

그저 손을 댔을 뿐인데 마치 기다 렸다는 듯 문이 활짝 열린다.

깡! 깡! 깡!

문이 열리자 후끈한 열기와 함께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귀가 아플 정도로 쩌렁쩌렁한 소리였는데 문밖에서는 전혀 안 들렸다는 점이 신기하다.

“뭐야? 누가 이 시간에… 아,그렇 군. 네가 바로 그 [제자]인가.”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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