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그대가 소문이 자자한 빙화(水花) 로군. 과연 듣던 대로 빼어난 미색 이오. 아직 어리다고 들었는데 이 정도라면 충분히 후계를 볼 정도로 성숙했군.”
학생회장,민경의 느닷없는 난입에 도 저우흥이는 당황하지 않았다. 아 니,오히려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전신을 음미하듯 훑어 내렸
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민경은 전 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지.”
“넘어가지?”
거의 원어민에 가까운 수준으로 한 국말을 구사하는 저우홍이였던 만큼 민경의 반말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그의 눈썹이 꿈틀거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 민경은 즉시 움직였다. 잠깐의 고민조차 하지 않 는 걸 봐서 이 상황을 예상하고 있 던 모양새다.
콰직!
2미터는 됨직한 환도(環刀)가 근정 전 바닥을 부수며 박힌다. 동시에 민경의 날카로운 고성이 울려 퍼진 다.
“방위전을 선포한다!”
[미션 발생!]
[이가 측에서 대장전을 받아들였습 니다!]
[진행 –; 주가: 0/1,이가: 0/3]
새롭게 떠오른 텍스트에 저우홍이 의 표정이 변한다.
“[명령에를 알고 있군. 썩어도 칠 대 가문이라 이건가.”
예상외의 상황이라는 듯 입술을 뒤 트는 그였지만 그렇다고 그 태도는 별다를 바 없다. 일이 조금 귀찮아 졌다는 정도.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민경이 말 했다.
“그래. 너희 주가와 똑같은 칠대 가문이지.”
“••.네년.”
여유롭던 저우흥의의 얼굴이 험악
하게 변한다.
“너무 입을 함부로 놀리는군.”
그러나 민경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왜? 너희는 칠대 가문 중 하나인 주가가 아니라 주 황실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그렇다면 어째서 그 말을 대마법사께는 하지 못하고 여기에서 이러고 있지?”
카득!
바닥에 꽂았던 환도를 뽑아낸 그녀 의 안색이 서늘하다. 아름다운 외모 를 가지고 있음에도,아니,오히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더욱 뒤틀려 보이는 차가운 미소.
그녀가 말했다.
“찌질하게.”
순간 어수선하던 근정전에 침묵이 내려앉는다. 험악하게 변했던 저우 흥이의 표정은 숫제 차분하게 가라 앉아 버리고 말았는더L 당연히 그것 은 그의 분노가 사라져서가 아니다.
“…이왕. 주 황실의 대리자로서 좋 게 가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겠군.”
“이왕이라고? 왕 대접을 하긴 했었 나?”
온화한 것을 넘어 호구 소리를 듣
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는 것이 이 가의 가주직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 면 전례 없는 냉소였지만 저우흥이 는 오히려 눈을 번뜩인다.
“그게 싫다면 꼭두각시 노예 대접 을 해줄 수도 있다. 실제로 지금 상 황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군.”
“네놈……!”
이가의 가주,성엽이 충혈된 눈으 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이 보인 다. 국가와 국가의 외교 현장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폭력적이고 비참한 모습.
그리고 그 모습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와,중국 장난 아닌데? 고작 장군 하나가 이 정도인데 중국 황제라고 자칭하는 놈이라도 오면 아주 난리 가 나겠다. 삼궤구고두례(근路九마! 頭禮)라도 시키려나.’
한국에 대한 애국심이랄 게 별로 없는 나조차도 좀 짜증이 날 정도로 막무가내의 현장이다. 농담이 아니 라 내가 피가 펄펄 끊는 애국지사였 으면 이미 중국은 쑥대밭이 되어버 렸겠지.
왜 쑥대밭이 되나 하면.
[함장님,쏠까요?]
[오! 좋지,좋아! 영자폭탄 떨구자,
영자폭탄! 입자포로 좍 그어주는 것 도 좋지!]
[쏠까요?]
[아! 여기 결계 방어 수준이 상당 하니 극대소멸탄을 갈기는 건 어때? 알바트로스함 군수창고에 스물여덟 발이나 있더라고!]
[씁니다!]
[그래,쏘자! 쏘는 거야!]
‘아 시끄러,이것들아.’
홍분한 지니와 신나 있는 아레스를 제지한다. 아니,무슨 관제 인격이 인간인 나보다 더 감정적이야?
‘별로 연관되고 싶지 않으니 신경
꺼. 나한테 직접적으로 피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하지만 기휘(忌請)에 저촉됩니다! 무례한 것들! 감히 황제 폐하 소유 의 나라에!]
‘아,황제 아니라고. 때려치웠다고. 그리고 한국이 왜 내 소유야?’
벌써 몇 번이나 한 이야기였거늘 먹히지 않는다. 지니는 평소 차분한 이미지지만 [황제]라는 직위에 어마 어마한 애착과 외경심(長敬心)을 품 고 있던 것이다. 관제 인격의 형태 는 사막의 무희라도 태생은 엄연히 군용이라는 것일까.
[하지만 함장님,제가 조금만 힘을
써도 이 꼴을 지켜볼 이유가 없습니 다.]
‘그렇긴 하지.’
내가 레온하르트 제국으로부터 증 여(라기보다는 강탈해 온 것에 가까 웠지만)받아 지구로 끌고 온 알바트 로스함은 대우주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천문학적인 가치를 지닌 함선 이다. 테라급 아이언 하트를 내장하 고 있는,제대로 된 방어 시스템이 없는 지구 따위 고작 수십 분이면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강 대한 미래형 다목적 전함.
심지어 알바트로스함에는 레온하르 트 제국에서 챙겨준 열 기의 황금기
사단(人)에. 50기의 황금사자(獸)부 대,100대의 ‘R7’ 비행대대(器)까지 있다. 사실 알바트로스함이 아니라 이 기가스 부대만 잘 굴려도 3대 마탑이고 5대 무파고 다 뒤집어엎을 수 있겠지.
[그렇다면 어째서 아무것도 아닌 대중 사이에 섞여계신 겁니까? 원하 기만 한다면 모두가 함장님만을 우 러러볼 텐데.]
담담하나 왠지 모를 열망을 담은 목소리였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에… 내가 별 다른 가치를 느끼지 못하니까.’
내가 부와 권력을 탐했다면 굳이
지구로 돌아올 필요도 없었을 것이 다. 지구에서 그 어떤 사치와 향락 을 누려봐야 그것은 제국의 황제로 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의 만분의 일 도 되지 않을 테니까.
내가 지구에서 찾았던 것은 그저 [집].
그저 평온하고 지긋지긋한 매일매 일을 보내길 바랐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비웃겠지만… 나는 게임이나 하고 TV나 보고 인터넷이나 들아다 니면서,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인생 과 능력을 낭비하며,그저 고요히 아무런 스트레스 없는 인생을 살다 가 삶을 정리하려 지구에 돌아온 것
이다.
‘그런데.’
쓰게 웃는다. 왜냐하면,막상 지구 에 와서 마주한 현실이 시궁창이었 기 때문이다. 집은 없어져 식객 신 세고 나라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게 생겼다.
‘지니,이가와 주가의 전력 차이는 어떻지?’
[그렇게 압도적이지는 않습니다. 숫자 차이가 좀 있긴 하지만 고작해 야 네 배에서 다섯 배 정도에 불과 하지요.]
[그 이상인 것 같은데?]
[그렇게들 인식되고 있지요. 왜냐 하면 주가에는 외부 세력이 있으 니.]
주가의 진정한 힘은 주가 그 자체 가 아닌 스스로를 [중화제국]이라 생각하는 외부 구성원들에 있다고 한다. 오대 무파 중 중국에 존재하 는 금강파(金剛派),흑암파(黑暗派), 진천파(振天派)가 주가를 지지하고 있고 삼대 마탑 중 북한에 위치한 지고의 마탑 또한 중국이 장악한 것 이나 다름없는 상태이기 때문. 그렇 기에 다른 가문들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를 가진 능력자들의 지지 위에 서 주가는 주씨 가문이 아닌 주 황
실로 스스로를 지칭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좋다! 굳이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 를 마시겠다면 내가 직접 벌을 줄 수밖에!”
내가 설명을 듣고 있는 사이에도 이야기가 진행된 듯 새로운 텍스트 가 떠오른다.
[주가 측 대장이 결정되었습니다!]
순간 저우홍이의 머리 위로 화살표 가 떠오르더니 그의 발밑으로 붉은 색의 원이 그어진다. 그 선명한 그
래픽에 헛웃음이 나온다.
“진짜 게임으로 가네……
내가 기막혀하거나 말거나 저우홍 이가 날이 시퍼렇게 서 있는 검을 뽑아 든다. 1미터가 조금 넘는 길이 에 곧게 뻗은 검신을 가진 검이었는 데 손잡이 부분에는 은빛으로 화려 하게 빛나는 수실이 달려 있다.
“이가의 쌍화(雙花)가 후기지수 중 에서도 특별할 정도로 강하다는 말 은 들었지! 그러나 지금 이 중대한 자리에서 경거망동한다는 게 얼마나 섣부른 일인지 내가 직접 가르침을 내리겠노라!”
저우홍이의 말대로 학생회장은 강
하다. 이가 전체를 둘러보며 내가 봐온 [인간] 중에서는 틀림없이 최 상위권의 레벨을 가지고 있었으니 까.
[대한제국]
[9 레벨]
[황녀 이민경]
‘하지만 그래 봐야 완성자가 못 되 었단 말이지.’
9레벨과 10레벨은 고작 1레벨 차 이지만 그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격차 가 있다. 완성자,즉 마스터의 경지
는 하나의 경지를 완성해 일반적으 로는 얻을 수 없는 권능의 편린을 획득하기 때문에 격하의 존재는 감 히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것.
다행히도 그 정도는 민경도 알고 있는 문제인 듯 그녀는 즉시 한 발 뒤로 물러선다.
“대리인을 지정한다!”
[이가 측 대장이 결정되었습니다!]
[대장전을 시작합니다!]
“호오,대리인인가? 대리인이라고 해봐야.”
저벅.
비웃는 저우홍이 앞으로 한 소년이 앞으로 나선다. 그렇다. 소년이다. 그것도 귀여운 소년.
아니,굳이 말하자면 [예쁜] 소년 에 더 가깝겠지.
그렇다. 그야말로 우리 학교, 아니, 어쩌면 우리나라 최고 미소년 중 하 나.
관영민.
내 형이다.
“안녕,아저씨. 대리인이야.”
우리 형은 내가 언제나 봐오던 사 람 좋은 웃음이 아니라 뒤틀린 미소
를 매달고 있다. 형이 그런 표정을 지으니 일견 퇴폐적으로까지 보이기 까지 한다.
“……네놈?”
순간 당당하던 저우흥이의 표정이 변한다.
“그래,나 놈이시다.”
“뭐,냐. 너… 네놈은 누구냐?”
“알아서 뭐 하게? 덤비기나 하면 되지.”
껄렁껄렁한 태도에 저우홍이가 굳 은 표정으로 버럭 소리를 지른다. 여태까지의 여유는 이미 날아가고 없다.
“건방진! 여기가 어느 자리라고! 어허! 그야말로 정중지와(井中之!睦) 로구나! 네놈은 나설 때 안 나설 때 를 가려야 할 것이다!”
“덤비라니까?”
“너 같은 애송이가 감히 오대고수 인 나에게……!"
“안 덤벼?”
마침내 저우흥이의 입이 다물어진 다.
“뭐야,무슨 일이야?”
“저우홍이가 왜 저러지?”
주변에 포진하고 있던 이가의 능력 자들이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 달은 듯 의문을 표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저우홍이를 따라온 6명의 무 사들의 눈에도 의혹이 떠오른다.
그리고.
쿵!
묵직한 진각과 함께 무언가가 바닥 을 뚫고 솟구친다. 대번에 그걸 알 아본 아레스가 휘파람을 분다.
[오호,이건 또 비싼 녀석이군.]
‘뭐가? 땅에 숨겨져 있던 무기가?’
[정신 차리고 봐. 저건 땅에 숨겨 있던 게 아니야.]
나는 안경에 비치는 영상에 집중했 다. 과연 아레스의 말이 맞다. 그건 땅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니 다. 땅이 솟구쳐 [형태]를 갖춘 것 이다.
“지룡신검 (했 寒!j).
“장군님?”
마치 목석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던 무사들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 안에 당혹스러움이 깃든 걸 보니 아 무래도 저우훙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어째서 저런 애송이를 상대로 지 룡신검을……
“장군님,1급 위기 상황이 아닌 이 상 신검초래(神劍招來)에는 황제 폐 하의 재가가 필요합니다. 자칫 다른 가문들이 간섭할 수 있……
“닥쳐라.”
“…장군님?”
느닷없는 폭언에 당황하는 무사들 이 당혹스러워하거나 말거나 저우홍 이는 돌처럼 굳은 얼굴로 영민이 형 을 노려본다.
나는 웃었다.
‘나름 고수라 이건가. 뭔가를 느낀 모양이니.’
둘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마주
본 둘의 칭호가 나란히 보인다.
[중원]
[11 레벨]
[검술 완성자 저우흥이.]
[대한민국]
[15 레벨]
[천살검귀 관영민.]
어이가 없다.
그래,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지구에 와서 목격한 [최고 레벨]의
인간이.
바로 우리 형이라는 사실은.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