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저희 선별사들은 영능의 재능을 총 6가지로 분류합니다. 이건 대마 법사님의 분류이기도 한데,신마기 영응체(神魔氣靈應體)라고 부르지 요.”
“신마기 영응체?”
“신성력,마력,기력,영력,호응력, 체력입니다. 이능을 익히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재능들이지요.”
율은 테이블 아래에 있는 의자를 꺼내 앉더니 그대로 설명을 시작한 다.
“우리들이 무공이나 마법이라는 힘 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이미 알고 있겠지요?”
“모를 수가 없지요. 자기를 마법사 라고 소개하는 여자애는 물론이고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시대에 창칼을 들고 덤벼들던 녀석들도 있으니.”
보람이 황금용신과 계약한 마법소 녀라는 사실은 이면 세계의 능력자 들에게도 전혀 생소한,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였지만 적어도 그녀가 속해 있는 지고의 마탑은 이면 세계
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는 강대한 세 력이라고 들었다. 한국 최대 세력인 이가라면 내 뒷조사를 안 했을 리 없으니 확인 겸 언급한 것.
과연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경은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 보니 용병들한테 습격을 당했다고 했었지. 에휴… 다른 곳도 문제지만 흑월회 놈들이 요새 너무 설치고 있어서.”
“뭐 그런 지방 세력 따위는 제가 알 바 아니니 이야기를 계속하죠.”
“아 너무하네. 이게 약소국의 설움 인가.”
투덜거리는 경은을 두고 율이 설명 을 시작한다.
“위대하신 대마법사님은 고고한 마 력과 끝도 없는 지식,그리고 성계 신의 축복을 이용해 두 개의 율법 단체(律法團體)를 만들었지요.”
“…이야기 흐름상 그중 하나는 당 신들이겠군요.”
내 대답에 율의 가느다란 눈가가 부드럽게 휘어진다. 아무래도 나와 의 대화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한 것 같았다.
“맞습니다. 이면과 표면을 구분하 시려는 대마법사님의 뜻을 강제하는
[지킴이]. 그리고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의 재능을 감지해 선별해 내는 저희 [선별사]. 이 두 세력은 이면 세계의 다른 세력과도 완전히 구분된 역할을 가지고 있지요.”
“다른 세력?”
“삼대 마탑과 오대 무파,그리고 칠대 가문이라 불리는 세력들을 말 합니다.”
“여기 이가는 그중 칠대 가문에 속 하지,
둘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다. 세 계의 이면(妻面)인 어나더 플레인 (Another Plane)을 지배하는 세력들 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는 나 역시
알고 있었으니까.
율이 말한다.
“인류의 구원을 위한 인재들을 찾 아내고 선별해 내는 과정은 우리 선 별사들의 절대적인 의무이자 권한, 때문에 저희는 의무에 대한 권한을 허락받았지요. 그것이 바로.”
우우우-
율이 가볍게 손을 내젓자 여섯 개 의 양초에 파르스름한 영기가 휘돌 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저 단순한 기운의 발현일 뿐이었지만,거기에 담긴 신비(神秘)는 이치를 초월한 격 (格)!
율이 말한다.
“[선별의 빛].”
응!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 다. 그저 여섯 개의 양초에 흐르는 기운이 안착되었을 뿐. 그러나 그걸 보는 경은은 굳어진 얼굴로 신음했 다.
“역시… 되는 건가. 설마 대마법사 님께서 돌아가신 이후에도 제대로 작동하다니.”
가볍게 신음하는 경은의 모습에 율 이 웃는다.
“그분은 예전부터 자신의 죽음을
예지하고 계셨으니 대비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지요.”
“그렇다면 지킴이들도 다 정상이겠 네요?”
“물론이지요.”
“다행이에요. 잘못 판단한 녀석들 이 있는 모양이지만.”
“뭐,누구나 판단을 잘못할 수 있 지요.”
전체적으로 웃는 상의 얼굴을 가진 율의 표정이 순간 서늘해진다.
“그 잘못된 판단에 책임을 질 수만 있다면.”
그들이 뭔가 심각한 분위기로 대화
하는 동안 나는 내 머릿속을 울리는 호들갑 소리를 듣고 있었다.
[놀람군요. 이건 설마…….]
[아니,이건 궁극 마법이잖아? 그 것도 고유 주문! 아니 여기 사는 대 마법사는 대체 뭐 하는 놈이기에 이 렇게 열심히 살아? 설사 그 녀석이 대마법사라고 해도 이 시스템을 제 대로 구축하려면 거의 100년 이상 의 시간이 들어가는 건 물론이고 나 라 하나는 살 만한 자본까지 필요할 텐데?]
[수집한 자료에서 해당 정보를 찾 아냈습니다. 하지만 이런 변방 행성 에서 궁극 마법을 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니.]
그들의 호들갑 소리를 들으며 율의 칭호를 확인한다.
[대마법사 제논]
[0 레벨]
[선별사 율]
‘0레벨이라……
1레벨은 수두룩 빽빽하지만 0레벨 은 나로서도 처음 본다. 짐작이지만, 그는 스스로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 라 어떠한 시스템의 [단말]인 것 같 았다.
“저기.”
“그러니까… 응? 왜?”
“언제 시작하는 거야,이거?”
한참 심각한 이야기 중인 둘의 대 화에 끼어들자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경은이 멋쩍게 웃는다.
“아 미안 미안. 간다는 게 계속 떠 들고 있었네.”
“간다고?”
“선별 과정은 개인 정보라서 가족 도 스승도 아닌 내가 지켜보긴 좀 그렇거든. 개인적으로 할 일도 있 고.”
경은의 말에 육망성을 내려다보고
있던 율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오른 다.
“…그렇군요. 슬슬 대국(大國)이 움직일 즈음이지요.”
“사자(使者)가 왔다고 하더라고요. 적당히 했으면 좋겠는데.”
하여간 힘없으면 서럽다니까,라고 중얼거리며 경은이 방을 나선다. 작 별 인사 겸 휘적휘적 흔들리는 손바 닥이 왠지 처량해 보인다.
[확인했습니다. 율이라는 사내가 설명하는 지킴이라는 단체 또한 비 숫한 시스템을 등에 업고 있습니다. 소속원은 대략 1,000명. 행성 전체 에 흩어져 있는 것이 확인됩니다.]
[꽤 많은 초월자를 봐왔지만 이 행 성 대마법사는 그중에서도 거의 역 대급이야. 한 명밖에 없었고 그것도 이제 죽었다는데 이건 뭐 여기저기 안 낀 데가 없잖아?]
[매우 특수한 케이스입니다. 아마 도 이곳 34행성의 지배자였던 대마 법사는… 흠,함장님.]
뭔가를 감지한 듯 지니가 하던 말 을 멈추고 말했다.
[2번 타깃이 궁으로 이동할 것으로 짐작됩니다.]
지구로 넘어오면서 지니에게 몇몇 인물들을 수색시켰다. 그중 1번은
성계신이 숨기기라도 한 것인지 어 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아버지이고 2번은 다른 장소에 있던 영민이 형, 관측한 바에 따르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일단은 지켜보게만 시켰 었는데-
‘북한 쪽에 있다면서?’
[네. 북한의 이면 세계에 존재하는, 지고의 마탑이 위치한 지역에서 생 활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위치한 텔 레포트 타워에 방문했습니다. 수집 된 정보에 따르면 약 3시간 이후 이곳으로 공간 이동을 시행할 것입 니다.]
‘돌아오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율이 말을 걸었다.
“꽤 특이하군요.”
“뭐가 말입니까?”
“아가씨를 대하는 태도 말입니다.”
흥미롭다는 듯 웃는 율의 말에 대 답한다.
“그냥 평범히 대하고 있는데요. 반 친구 대하듯이.”
“죄송하지만 아가씨의 다른 반 친 구들도 아가씨를 그렇게 대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실제로 지금도 그녀가 나가거나 말거나 관 심도 없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한다. 경은 이가 나가면 나가는 거지 내가 뭘 어쨌어야 한다는 건가? 인사라도 하 라고? 어쨌든 별로 잘못을 했다는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어깨를 으쏙인 다.
“청소년이라고 다 불타는 성욕에 어찌할 줄 모르는 건 아니니까요.”
“…뭐라고요?”
율의 표정이 멍하게 변한다. 귀를 의심하는 표정. 그러나 이내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입이 벌어지더니 이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하하하하! 당신 정말
대박이군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눈물까지 글씽인다. 그리고 다시 표정을 가다 듬었을 때 실처럼 가늘어 잘 보이지 도 않는 그의 눈동자에 흥미가 깃든 상태였다.
“당신 정말 표면 세계에서만 살던 일반인 맞습니까?”
“넘어온 지 며칠 안 되었죠. 태어 나서 이면 세계에는 온 적이 한 번 도 없으니까.”
단지 우주에 갔다 왔을 뿐이지.
나는 이 주제로 더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 귀찮아 책상 위에 그려져 있
는 육망성 앞으로 다가갔다. 육망성 의 꼭짓점에 위치한 양초들이 은은 한 존재감을 흩뿌리고 있다.
“이 촛불들에 불을 붙이는 건가 요?”
“눈치챘군요. 맞습니다. 다만 라이 터나 양초를 쓰는 건 아니지요.”
“그러면?”
“기도하십시오. 불이 붙으라고.”
어이가 없어 돌아보자 웃고 있는 율의 모습이 보인다.
“진깝니다. 저희 선별사의 영기가 깃든 양초는 지정 대상의 염원을 있
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든요. 다만 모 든 초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신마기 영응체.”
내 나직한 중얼거림에 율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해가 빠르니 좋군요. 이 여섯 개의 초에는 각기 상징하는 힘이 있 습니다. 아주 희귀해 그 재능을 타 고난 이가 거의 없는 신성력의 초, 그 어떤 재능을 가진 것보다 촉망받 는 미래가 보장되는 마력의 초,중 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기력의 초, 초능력자들이 타고나는 힘을 파악하 는 영력의 초,무당이나 예언자들이 타고나는 호응력의 초,그리고 그
모든 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신체 능력을 읽어내는 체력의 초까지.”
“그냥 초에 불만 붙일 수 있으면 되는 겁니까?”
“물론 아니지요.”
그렇게 말하며 율이 여섯 개의 초 를 향해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파팟!
여섯 개의 초에 동시에 불이 켜진 다. 다만 평범한 불꽃은 아니었다. 빨. 주. 노. 초. 파. 남색. 비록 보라 색이 없다는 게 옥의 티였지만 이 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다.
“무지개색?”
“맞습니다. 이 초들은 각각의 재능 을 색으로 구별시켜 주지요. 아,물 론 지금 이게 내 재능이라는 건 아 닙니다. 사실 남색 이상의 재능은 전 세계를 뒤져도 한 명도 없거든 요.”
“기준치가 높은가 보네요.”
내 말에 율이 고개를 끄덕인다.
“대마법사께서는 보라색 재능을 가 진 자라면 해당 영역에서 초월자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하셨지 요.”
“그럼 빨간색은 어느 정도죠?”
“입문이 가능한 재능입니다. 예를 들어 기력의 초가 최하급인 붉은색 으로 켜지기만 해도 기감이 눈 뜨는 게 가능하지요. 흔히 적(赤)급 기력 적성이라고 부르는데,단지 그것만 으로 무공을 수련해 나가기에는 부 족하지요.”
“적어도 주황색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게 아니라 육체 또한 받쳐줘야 한다는 겁니다. 설령 기력 적성이 녹급이라고 하더라도 신체가 받쳐주 지 못하면 그는 제대로 된 성장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하긴 단순히 내공만 다룬다고 훌륭
한 무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 다. 무술에 대한 소양과 그것을 펼 칠 만한 육신이 필요한 게 당연하겠 지.
“다른 능력은요?”
“생체력의 경우 신체 재능이 주황 이상이어야 한다는 제한이 있는 대 신 다른 재능의 영향을 안 받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마법은 마력의 초 만 결 수 있으면 입문이 가능한데 그와 별개로 지능이 높아야 성장할 수 있다는 특이점이 있고 소환술이 나 정령술은 영력과 호응력이 둘 다 있어야 하지요. 그 외에도……
파앗!
막 율이 이것저것 설명하려던 순간 여섯 개의 양초 중 신체의 초에 불 이 붙었다. 색은 초록. 말을 멈춘 율이 놀랍다기보다 어이없다는 표정 을 짓는다.
“아니,대마녀의 자식인데 왜 체력 적성이 초록……
“초록색이 놀랄 만한 일인가요? 중 간이잖아요.”
7색 무지개라면 빨주노초파남보니 초록색이면 정확히 중간. 그러나 율 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고개를 흔든다.
“일반인은 붉은색조차 뜨지 않습니
다. 주황색만 되어도 흔치 않은 재 능이고 노란색만 되어도 충분히 기 재의 재능이지요. 이해하기 쉽게 설 명하자면 세계 정상급 운동선수의 재능이 초록색인데.”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나를 바라본 다. 하긴 이상하긴 할 것이다. 별로 운동과 연관 없어 보이는 내가 세계 정상급 육체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데 어찌 의아하지 않겠는가?
‘별로 운동을 한 적도 없는데.’
사실 이건 부작용에 가까운 현상이 다. 내 영혼의 격이 너무나 높아지 면서 그것을 담고 있는 육신과의 괴 리가 너무나 커져 거의 억지로 끌어
올려진 것이니까. 건강한 육신에 건 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격언의 반대 현상이라고나 할까. 그래 봐야 [인 간의 한계] 수준에 불과하겠지만.
“첫 번째 방법은 육체를 강화하는 것이지. 외공(外功)이나 생체력(生 體方)을 단련해 육신이 세계와 일치 되는 경지에 이르면 신성의 범람으 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테니 까.”
성계신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내 문제 중 하나는 영혼과 육신의 부조 화이니 육신을 초월지경까지 단련하
면 지금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말. 하지만 그 부조화 때문에 오히려 생 체력에 대한 재능이 생긴다니 아이 러니한 일이다.
“이 정도면 당장 이가에,아니,이 가보다는 오대 무파 중 하나인 금강 파(金剛派)에서 모셔갈 정도입니다. 여기에 기력 적성까지 높다고 하면 그야말로 모든 무파에서 러브콜을 보내겠지요.”
거기까지 말한 율이 손가락으로 책 상을 톡톡 잠시간 두들기더니 말했 다.
“하지만 놀랍군요. 후천적인 각성 이 없는 건 아니지만 꽤나 드문 일
인데 진짜였다니… 이렇게 되면 정 말 대마녀의 피를 깨웠다는 전제하 에 안내가 필요하겠어요.”
“안내요?”
“네. 당신은 그냥 단순한 [선별 대 상]이 아니라 [선별자]가 될 것 같 으니까요.”
선별자라니… 정말 뻔하디뻔한 명 칭이다. 선별사의 선별을 받아 선별 자라는 말 아닌가? 그래도 굳이 이 렇게 말해주는 건 나름 특별한 존재 라는 것일까.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영능력자는 대부분 저희들의 관리하에서 각성한 이들이지요.”
“대부분이요?”
“적어도 98%. 숫자로 치면 대략 1,000만 명이 넘는 엄청난 숫자인데 그중에서도 선별자는 고작 47만 명 에 불과하죠.”
‘에이,뭐야. 겨우 20분의 1 정도 의 비율이잖아.’
“아무나 선별자가 되지는 못합니 다. 선별자는 빛나는 재능을 가진 존재. 대부분 이면 세계의 고위직에 올라가기 때문에 여러 가지 혜택을 받게 되는데……
율이 뭐라뭐라 설명을 시작했지만 나는 흥미를 잃고 그의 말을 흘려보
냈다. 당연하다. 이제 와서 지구에서 의 직위나 혜택 따위에 관심 가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이 는 대신 다음 초에 기도한다.
‘불타라.’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화악!!!
"뭣?!”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