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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 2부-10화 (127/249)

10화

천장은 꽤 높아서 족히 5미터는 되어 보인다.

[공간 확장 주문이 걸려 있군요.]

‘하긴 운전사가 3.2미터짜리니 당 연히 필요한 기술이긴 하겠다.’

인식 장애 주문은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장애를 줘 착각을 일으키는 것일 뿐 물리적인 크기에

변화를 주는 주문이 아니다. 만일 차가 평범한 물건이었다면 3미터도 넘는 녀석은 운전석에 들어서지도 못했겠지.

“공간이 확장되어 있구나.”

“…야.”

“음? ”

뜬금없이 뚱해지는 목소리에 고개 를 돌리자 눈을 가늘게 뜬 경은이 보인다.

“뭐야,너. 왜 이렇게 안 놀라?”

약간의 경계심까지 담겨 있는 물음 에도 당황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녀 가 나의 ‘비밀’을 눈치챌지도 모를

위기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그렇 다 해도 나는 상관없다.

내 비밀은 비밀이 아니다.

헛소리처럼 들리겠지만,그리고 지 구에 돌아을 때만 해도 내가 이런 마음을 먹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 지 못했지만… 이미 나는 내 비밀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을 잃 어버렸다. 굳이 밝히지는 않겠지만 힘들게 숨기고 싶지도 않은 것.

때문에 나는 되는 대로 둘러댔다.

“궁에도 비슷한 기능들이 있었잖 아.”

이면 세계의 경복궁은 사실 외관으

로만 보면 표면 세계의 경복궁과 큰 차이가 없다. 광화문을 들어서면 조 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증언하는 경복궁 근정전이 있고, 향원정이 있 고,경회루와 아미산 굴뚝이 있다. 또 궁궐 양쪽으로 고궁박물관과 민 속박물관이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다면 차이점을 전혀 찾을 수 없겠 지.

그러나 다르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강녕전만 해도 지상으로 5층,지하로는 13층의 규 모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경복궁의 건물 전체에 대단위의 결계가 설치 되어 있다는 뜻으로,그 결계의 힘

으로 경복궁은 1만 명이 넘는 사람 들이 [생활]하는 삶의 터전이 될 수 있었다.

“음. 아니. 뭐 그렇게 말하면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하. 이거 참. 흠, 흐음……

경은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요리조리 뜯어보았지만 나는 뻔뻔하게 푹신한 소파에 앉아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 지 침묵을 지켰다.

“도착했습니다,옹주님.”

“…아 진짜 패고 싶다. 꼴통 새끼. 노친네들한테 세뇌돼서 말이 안 먹 히네.”

경은이 문을 걷어차듯 열어젖히며 차에서 내린다. 도착한 곳은 종로구 에 있는 한 고급 아파트 단지였다.

역빅 西! 西I!

차에서 내리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아파트로 들어선다. 그리고 그대로 승강기에 타 최상층으로 올라간다.

[함장님,최상층에 있는 17()1호부 터 1704호까지 모두 비어 있습니 다.]

‘뭐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지니의 말을 들으며 경은의 뒤를 따른다. 그녀는 1703호로 향하더니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나야.”

[반갑습니다, 아가씨. 궁으로 연결 해 드리겠습니다.]

철컹.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평 범한 고급 아파트 단지의 모습을 하 고 있었고 실제로 단지 안쪽을 돌아 다니는 사람 대부분이 일반인이었지 만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궁의 내부였다.

“짠! 도착했어!”

“뭐 매일 이동하는 거 같은데 새삼 스레 ‘짠’까지야.”

“…와,너 진짜 재미없는 거 알아? 뭔 표면 세계 출신이 이래?”

기막혀하는 경은과 함께 돌바닥을 따라 걷는다. 그리고 그러다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나저나 왜 경복궁이야?”

“응? 뭐가?”

“이가의 근거지 말이지. 다른 좋은 고층 건물들 많은데 굳이 궁을 쓰는 것도 그렇고. 뭐 상징성 때문에 그 렇다고 하면 이해할 수는 있지만 다 른 궁들도 있잖아?”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조선 시대 의 5대 궁궐은 경복궁,창경궁,창

덕궁,덕수궁,그리고 경희궁이다. 물론 경복궁이야말로 5대궁 중 으뜸 인 정궁이지만 능력자들의 숫자가 적은 것도 아니고 수천 명이 넘는다 면 영향력을 굳이 경복궁의 성벽 안 으로 한정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들려오는 답변은 뜻밖이었 다.

“궁의 결계(結界)가 아니면 스스로 의 안위를 지킬 수 없을 정도로 약 하니까.”

“음?”

멈칫하는 내 모습이 재미있는 듯 경은이 웃는다.

“약해서라고. 그거 말고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어.”

“이가의 힘이 약하다니……

나는 경회지의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이무기들을 떠올렸다. 마스터 를 넘어서는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고작 식당 아줌마를 하고 있던 아귀 족도,초월자의 작품일 것이 분명한 광화문 광장의 세종과 순신까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경은조차 대 우주에서 장교는 무리라도 부사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자인데, 고작 변방의 행성에 불과한 34지구 에서 이가가 약하다고? 내가 살던 지구가 그렇게나 빡센 세상이었단

말인가?

“하하하! 저 거들먹거리는 것들이 약하다고 하니 의외로구나? 하지만 사실인걸. 우리가 왜 황가(皇家)는 물론 왕가(조家)도 자처하지도 못하 고 스스로를 이가(李家)라고 부르는 지를 생각해 봐. 우리 한국은……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적당히 하세요,경은 옹주. 더 이 상 황실 모독은 용납할 수 없습니 다.”

“하! 황실 모독? 정신 차려요. 선. 배. 님. 아무도 인정 안 하는 그딴 호칭에 무슨 의미가 있지요?”

날카로운 대화에 슬쩍 고개를 돌리 자 훤칠한 신장의 여인이 눈에 들어 온다. 그녀는 은은하게 빛나는 백색 저고리와 백호와 청룡이 그려진 보 라색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그 단 아한 외모와 달리 냉기가 뚝뚝 떨어 지는 표정을 짓고 있다.

“•••학생회장?”

기억에 있는 얼굴에 무심코 입을 열었다. 자연스럽게 칭호에도 눈이 간다.

[대한제국]

[9 레벨]

[황녀 이민경]

‘본명이 한민경이 아니라 이민경이 라는 거야 예전에도 알고 있었지 만… 나 참,완성자 직전의 능력자 였다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두 여인은 매서운 눈으로 서로를 노려 보고 있다. 당장에라도 싸움이 날 것 같은 일촉즉발의 분위기. 그러나 그것은 민경의 뒤에 서 있던,무슨 역사 드라마에서나 볼 것 같은 근사 한 디자인의 비늘 갑주를 입고 있는 무사의 개입으로 깨어졌다.

“대사가 이미 기다리고 있습니다, 공주님.”

“후우,알겠어요. 지검(地劍)

“아니,한동안 잠잠하더니 또 저러 네. 제국 선포라도 하려고 하는 거 야? 신하국 하나도 없는데 허세도 정도껏 해야……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획 하고 몸을 돌려 궁 안으로 사라진다. 그러고 보니 궁 안의 분위기가 꽤나 어수선 하다. 수십 명의 궁녀들이 바쁘게 길을 오가고 있고 궁 여기저기에 온 갖 무기와 장비를 걸친 능력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난리도 아니네 화랑단에 지리산 야차들,거기에 마탑의 마법사들까 지… 대마법사가 죽자마자 이 꼴이 라니 정말 기가 찬다.”

“무슨 일이야?”

묻는다. 아무래도 상황이 꽤 복잡 해 보였기 때문이다. 경은을 옹주라 부르는 사람들,그리고 그 호칭 자 체를 인정하지 않는 경은,뜬금없이 모습을 드러낸 학생회장이 공주라는 사실까지.

특히나 똑같은 단체에 속한 경은과 민경이 각각 이가(李家)와 대한제국 (大韓帝國)이라는 각기 다른 단체명

을 달고 있다는 점은 꽤 흥미로운 주제가 아니던가?

그러나 경은은 대답해 주는 대신 고개를 흔든다.

“집안 문제야.”

가볍게 일축하는 그녀의 모습에 순 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사실 이게 당연한 것이다. 그녀는 패키지 게임의 NPC 따위가 아니니 툭 건 들면 자기 사정을 주절주절 늘어놓 고 도움을 바라지는 않겠지.

“뭐,그렇다면야.”

“가자.”

나는 다시 그녀를 따라 걸었다. 맨

처음 도착했던 근정전을 돌아 나와 근정문을 통과한 후 영제교를 건너 흥례문을 나선다. 그리고 그대로 광 장을 가로질러 우측에 있는 국립고 궁박물관으로 이동한다.

경회루가 식당으로 쓰이고 강녕정 이 숙소로 쓰이듯 고궁박물관 역시 표면 세계와는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선별사 율(律) 입니다.”

꽤 널찍한 방에 들어가 만난 이는 서글서글 웃는 눈매가 인상적인 사 내였다. 잘 갖춰 입은 양복 때문에 마법사라기보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같이 보인다.

[이제 와서 양복이라니. 몇 번이고 느낀 거지만 이 이가라는 곳 정 말…….]

‘일관성이 없지? 나도 그렇게 생각 해.’

지니의 말에 호응한다. 왜냐하면 며칠 동안 봐온 궁의 모습이 납득이 안 갈 정도로 해괴했기 때문이다.

이 이가라는 곳은 정말 뒤죽박죽인 곳이다.

궁(宮)이라는 환경 때문인지 궁녀 복을 입고 있는 궁녀들이 돌아다니 는 것을 보고 역사와 전통을 지키는

단체라고 생각했는데,정작 다른 사 람들의 복장은 그야말로 가지각색. 심지어 누가 봐도 한국인인데 중국 전통 복장을 입는 이도,서양 갑주 를 입고 다니는 이들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다른 좋은 고층 건물들이 많은데도 굳이 경복궁을 근거지로 삼은 주제에 그 취급도 제 멋대로다. 왕이 독서와 휴식,그리고 신하들과 면담을 하던 강녕전이 손 님들 숙소로 쓰이고,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마다 연회를 베풀던 경회루 가 그저 매일매일 밥 먹는 식당으로 쓰이고 있으니까. 심지어 나오는 음 식들도 한식(韓食)이 아니라 양식

(洋食)이 아니던가?

‘도대체 콘셉트를 어떻게 잡은 거 야,이 이가라는 곳은?’

[아,내가 잠깐 머물렀던 알타 성 운의 행성에 이런 나라가 있긴 했 지.]

뭔가 좀 알겠다는 아레스의 반응에 의문을 표한다.

‘뭐 하는 나라였는데?’

[대여섯 개 정도 되는 강대국에 번 갈아 가며 점령지가 되었던 약소 국.]

잠시 멍하니 서 있는데 율이라는

양복 입은 사내에게 경은이 인사한 다.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아저씨!”

“요새 신입이 많지 않아서 한가할 즈음이었습니다,아가씨. 하지만 대 마녀의 자식이라면 이미 몇 번이나 조사를 한 걸로 기억하는데.”

“달라졌을 수도 있잖아요.”

“무슨 기연을 얻은 것도 아닐 텐데 타고난 재능이 들쑥날쑥 변하지는 않겠지요. 기존의 조사 결과와 다르 게 영능을 깨우쳤다는 말씀에 준비 는 해왔습니다만.”

그렇게 말하며 율은 들고 온 가방

을 열었다.

‘뭘 꺼내려나? 지팡이? 마법이 걸 린 청동판?’

[약물이나 기파를 읽어내는 측정기 일 수도 있지요. 과학 문명도 제법 발달한 세상이니.]

[사실 최고의 측정기는 캔딜러족이 만들어낸 뉴 월드지! 가상의 공간에 서 자신의 재능을 읽어내고 수련까 지 할 수 있는…….]

지니와 아레스가 각자 떠들어댔지 만 율이 가방에서 꺼낸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물건이었다.

“…양초?”

그렇다. 그것은 꽤 두터워 보이는 큼직한 크기의 양초였다.

“네. 당신의 재능을 읽어내는 데 필요한 물건이죠.”

“무슨 마법의 양초 같은 건가요?”

전혀 예상치 못한 물건의 등장에 황당해하는 나를 보며 율이 옅게 웃 는다.

“다이소에서 산겁니다. 개당 2,000 원짜리죠. 제가 자주 사용하는 제품 인데 사과향이 향긋해서 좋지요.”

내가 황당해하거나 말거나 율은 태 연한 표정으로 분필을 하나 꺼내더

니 방 한쪽에 있는 나무 책상에 육 망성(A푠星)을 그리고, 여섯 개의 꼭짓점에 양초들을 한 개씩 올려놓 았다.

율이 설명한다.

“저희 선별사들은 영능의 재능을 총 6가지로 분류합니다. 이건 대마 법사님의 분류이기도 한데,신마기 영응체(神魔氣靈應體)라고 부르지 요.”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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