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Chapter 2. 재능 감별
“응애! 응애!!”
간호사에게 엉덩이를 얻어맞은 아 이가 우렁찬 울음을 토해낸다.
“하하! 건강한 딸이군요!”
TV 속에서 흔히 봐오던 것과는 전 혀 다른,온몸이 쪼글쪼글한 아이가 우는 모습은 사실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뽀얀 피부는 어디에도 없고
온통 새빨갛기만 한 아기의 모습은 언뜻 징그럽게까지 보이겠지. 하지 만 그 아기를 보는 산모의 눈에는 감사와 사랑이 가득하다. 눈물을 글 씽이다 숫제 훌쩍거리기 시작한 남 편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 하지 않은 상황.
그런데 탄생의 기쁨과 감동이 함께 하는 그 자리에는,그 모든 광경과 너무나 다른 이질적인 존재가 섞여 있었다.
“뭐야.”
특이한 외양의 사내다. 계절에 맞 지 않는 가죽 코트에 허리까지 늘어 지는 기나긴 장발을 지닌 사내. 심
지어 그 장발은 밝은 연둣빛을 띠고 있었고 무슨 샴푸 광고의 한 장면처 럼 물결치고 있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을에 바람을 휘감고 있다고 느껴 질 정도였다.
“아니…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거 지? 시온의 눈이 고장 났나?”
사내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쓰고 있던 외눈 안경을 벗어 손수건 으로 닦았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 도 안경이 가리키는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판정 불가라니 이 무슨.”
사내는 간호사의 품에 안긴 아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특이한 점은 그
가 그러고 있어도 산부인과의 그 누 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빈 자리가… 아,그래. 사영 (四影).”
사내의 나직한 옮조림에 공간이 일 렁이더니 그와 똑같이 생긴 존재가 생겨난다. 완전히 같은 외형과 복장, 그리고 장비를 지닌 그는 잠시 가만 히 서 있다가 이내 깊은 한숨을 쉬 었다.
“장기 임무로군. 적어도 20년은 걸 리잖아?”
“휴가라고 생각해. 비교적 평화로 운 세계이기도 하고.”
“여기가 평화롭다고?”
“비교적 그렇다는 거지. 게다가 지 구기도 하잖아. 익숙할 테니 녹아들 기 쉽겠지.”
“신분은?”
“친구.”
“하,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사내,즉, 분신(分身)이 다시 한숨을 쉬었다. 본체와 완전히 동일한 기억과 능력 을 갖추고 있는 그였기에 상대가 무 슨 판단을 내렸는지 정확히 인지하 고 있었다.
“대상은?”
“마침 이 병원에 사산아(死産兒)가 하나 막 생겼어. [씨앗]과 같은 지 역에 사는 부부의 자식이기도 하 지.”
“진심이냐……
출력에 제한이 있을 뿐 본체와 완 전히 같은 권능과 경지를 지닌 그는 갓난아기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영 혼 깊숙한 곳에 있는 높디높은 세계 의 씨앗을 눈치챌 수 있다.
그것은 그녀의 안에 있지만,그렇 다 하더라도 그녀와 별개의 존재다. 땅이 씨앗을 품었다고 해서 땅과 씨 앗을 동일시할 수 없는 것처럼,그 씨앗은 그저 그녀의 영혼 안에 잠들
어 있을 뿐이다.
“…아무리 그래도 갓난아기라니.”
분신은 가볍게 투덜거리며 어머니 의 품에 안겨 있는 핏덩이의 모습을 다시금 내려다보았다. 이제,그는 그 녀와 함께 자라야 할 것이다. 어쩌 면,평생을 그녀와 함께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녀를 보호하고,지켜보고, 그•리고 마침내 씨앗에 담긴 창조의 힘이 각성할 때 그에게 주어진 목적 을 달성해야 하리라.
“잘 부탁해. 나는 제니카를 도와주 러 가봐야 하니.”
“일루전을 모방한 육성 시스템을 만든다고 했던가. 아주 대우주 전체
에 난리가 났구먼. 여기저기에서 다 만든다고 설치고 있으니.”
“원래 누군가 대박을 치면 아류작 이 우수수 쏟아지는 법이니까.”
말과 함께 분신의 주위로 대여섯 개의 마법진이 떠오른다. 기척도 뭣 도 없이 발동된 그것들은 하나하나 가 세계의 법칙을 뒤트는 궁극 마 법.
애초에 그가 말한 대우주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던 [대박]이 누구 인가? 바로 그 자신이다.
황제 클래스의 존재 중에서도 최강 이라 불리는 만능의 전사. 대우주의 멸망을 막아냈던 위대한 영웅이자
인간의 몸으로 육계의 지배자들과 나란히 선 존재.
인중신(人中神). 올 마스터(All Ma ster).
밀레이온 더 윈드리스.
그래 봤자 황제 클래스(중급 초월 자)라고 격하하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대전쟁 중 그의 검에 죽어간 언터쳐를(상급 초월자)이 열 을 넘어가는 시점에서 무의미한 헛 소리일 뿐. 그는 이미 세상 전체에 명성을 떨쳐 울리는 우주적인 강자 이다.
스르륵-
분신의 본질이 녹아내려 다른 분만 실에서 숨을 거뒀던 사산아의 몸 안 으로 스며들었다. 창백한 얼굴로 아 이를 들고 있던 간호사가 기침과 함 께 숨을 토해내는 아이의 모습에 비 명을 지른다.
“아,아이가 기침을 했어요!”
“뭐? 그게 말이 돼?”
“선생님!!”
“아,그,그래! 이럴 때가 아니 지!!”
초상집 분위기였던 분만실에 소란 이 인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과릉!!
“아,깜짝이야!! 아니,비도 안 오 는데 웬 벼락이야!”
“선생님!!”
“알았어! 알았다고!”
비명과 함께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다. 혼란과 안도,경악과 기쁨으로 범벅이 된 어느 순간.
바로 그것이-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다.
“벌써 35년도 넘었군.”
일한은 한 고층 빌딩 옥상에서 등 교 중인 대하를 내려다보았다. 오랜 만의 학교가 어색한 듯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아들의 모습이 반갑다.
“하지만… 이건 예상외의 상황인 데.”
일한은 대하의 영력을 읽어내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왜냐하면,그 의 영력이 너무나도 보잘것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품고 있던 오롯하고 강대한 신성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 다. 연결은 남아 있는 걸 보니 우주 에 두고 온 모양이다.
“설마 상황이 이렇게 되다니.”
그가 지구에 남겨졌을 때,그의 [본체]가 그에게 부여한 목적은 그 의 아내가 죽음을 맞이하며 끝났다. 그의 목표는 은정의 영혼을 명확히 파악하는 것뿐으로,그 외 어떤 부 가 조건도 달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 정한 원칙대로라면 그는 벌써 분신을 해제하고 본체로 기억을 전 송했어야 한다. 혹시라도 본체조차 도달하지 못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 을 가능성이 보인다면 그것에 매진 할 수도 있겠지만,이제 와서 그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일한]으로서 여기에 있다.
그저 은정의 부탁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은정이 죽기 1년도 전,그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즈음,34지구 에서 벌어진 상상도 못 할 돌발 사 태 때문이다.
세상 누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변방의 행성에 최상급 신격이 [둘]이나 추락했을 것이라고.
“은정아, 예지가 틀렸잖아. 대하가 언터쳐블이 되어 지구로 돌아올 거 라면서.”
이제는 죽어 없는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일한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저렇 게나 높은 격을 지닌 존재를 이 정 도까지 예지해 낸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으니까.
“심지어 이 상황에 본체 쪽에서 연 락까지 와버리고……
일한의 품에서 구슬 하나를 꺼내 들었다. 적당한 크기를 가지고 있는 하얀색 구슬은 겉으로 보기엔 공장 에서 찍어낸 양산품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저 외양만 그런 것이 아 니라 느껴지는 기운조차 전혀 없으 니,본체 쪽에서 상당한 수고를 감 수하고 보낸 물건이 아니었으면 그 냥 버려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정말 계획이 엉망진창이구 만……
텅 빈 옥상에서 아무도 듣지 않을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이미 모든 조 건이 계획과 틀어졌다. 충분하다고 자신할 정도로 많았던 준비는 허사 가 되었고 그는 위태로운 상황에 부 닥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일한은 어째서인지 그다지 분노하 지 않는 자신을 느꼈다.
“참 너도 너다.”
그는 교실로 들어서는 제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탄생 비화부터가 대 우주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비범 했던,그러나 그런데도 누구보다 평 범하고 또 평범하길 바랐던 아이를.
“푸훗!”
문득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일한은 입을 막고 낄낄거리며 웃었다.
“아니,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 게 신성을 버리고 오냐? 미친 거 아냐? 하하하!”
재벌이 자신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건 죽기 직전에나 일어나 는 일이고,권력자는 곧 죽어도 권 력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심지어, 그마저도 ‘고작’ 돈과 권력의 이야
기.
원초적인 힘. 그리고 권능이 불러 일으키는 욕망과 충족감은 실로 절 대적이다. 그저 약간의 영력,1갑자 도 늘려주지 못하는 영약,남들이 모르는 지식이 담긴 책 한 권으로도 죽고 죽이는 게 인간이라는 존재일 진대 신의 힘을 버릴 수가 있다니.
“과연 우리 아들.”
피식 웃으며 일한은 눈을 감았다. 대하가 태어나던 날이 떠오른다. 그 를 받던 자신의 모습을. 걸음마를 하던 모습. 그를 아버지라 부르던 모습. 울며 떼쓰는 모습. 밤새 고통 받으며 비명을 지르던 모습까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일한은 다시 눈을 떴다.
“내 식대로 상황을 해결하는 수밖 에.”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일한의 모습 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다. 그가 서 있던 자리를 맴도는 건 지나가던 바람뿐이었다.
“우리 배신자께서 드디어 귀환했구 먼! 친구를 버리고 벌컥벌컥 마신
미국물은 달콤하더냐?”
“달콤은 무슨,밍밍하지 뭐.”
크하하 하고 웃으며 어깨동무를 하 는 재석의 모습에 나 역시 미소로 답한다. 꽤 오랜 시간 헤어져 있었 던 탓인지 녀석의 경박한 모습조차 반갑다.
“이야,그나저나 영어 제대로 배웠 는데? 고작 반년 만에 얼마나 했을 까 했는데.”
“영어?”
영문 모를 소리에 의아해하는 나에 게 지니가 설명한다.
[우자트의 자동 통역 기능이 활성
화 중입니다. 현재 저 학우분은 영 어로 말을 걸었고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기능에 내심 휘파람을 불었다. 하긴 알바트로스 함에도 거의 모든 종족의 언어를 포 용하는 언어 통일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레온하르트 제국에서도 쉽 게 보기 힘든 마법과 과학의 융합 품. 마도병기 우자트에 언어 관련 기능이 있다고 이상할 건 없겠지.
[다만 발성과 입 모양이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점은 고려하셔야 합니다.]
‘주의하지.’
지니와의 대화를 마치고 재석을 바
라본다. 괜히 영어로 더 대화할 필 요는 없었기에 내 안경,우자트를 간단히 제어해 한국어로 말했다.
“그나저나 어떻게 지냈냐? 성적은 좀 올랐어?”
“으으… 반년 만에 돌아와서 하는 질문이 너무 실망이다,친구여!”
실망하거나 말거나 나는 녀석의 상 처에 다시 칼을 꽂았다.
“학원은 여전히 다니고 있냐?”
“으아! 으아아,제기랄! 망할 학원 들 진짜 극혐이야! 학생이 세 명밖 에 없어 농땡이도 안 되고! 심지어 그 세 명 안에서 비교질까지 하다
니!”
분통을 터뜨리는 재석이었지만 이 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는 묻는다.
“그런데 네 형은 왜 안 온 거야? 어차피 고3이니 그냥 외국 학교 계 속 다니려고?”
재석의 질문에 어깨를 으쏙인다.
“나도 몰라. 나는 미국으로 간 거 고 형은 독일로 간 거라.”
“아니,너희 집 왜 그러냐? 뜬금없 이 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뭔 사 채를 쓴 것도 아닐 텐데 난데없이 집도 없어지고.”
“나도 그건 황당하더라고.”
뭐라 해줄 말이 없어 쓰게 웃자 재 석이 머리를 긁적인다.
“뭐,각자 사정이 있겠지. 그 위대 하신 관일한 님 문제니.”
꽤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던 만큼 아버지의 사기성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재석이 대충 상황을 넘겨준다.
그러나 사실 난 아니었다.
‘아빠.’
나는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앞치 마를 입은 채 부엌에 서 있던 반듯 한 뒷모습이 떠오른다.
그것은 내가 가진 [집]의 이미지.
그러나 그 이미지의 중심인 아버지 의 존재는 의혹투성이다.
‘아빠는 대체 뭐예요?’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