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머리 위에 2부-7화 (124/249)

7 화

현실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머릿속 으로 지니의 다급한 음성이 울려 퍼 진다.

[함장님! 괜찮으십니까?!]

‘아… 응. 괜찮아. 상황은 어때?’

[비상상황 선포 후 병력 강습 중입 니다. 현재 대기권에서……J

‘아직도 도착을 못 했다고_?’

의문을 표한다. 당연하다. 납치를 당해 이차원으로 끌려간 뒤 성계신 을 만나 한참이나 대화를 나누지 않 았던가? 시간으로 쳐도 족히 40분 은 걸렸다. 농담이 아니라 이 정도 면 알바트로스함이 지구를 쑥대밭으 로 만들어도 이상할 게 없는 시간인 데 아직도 강습 중이라니?

[함장님께서 납치당하신 지 24초, 강습 시작 후 6초만입니다. 아무래 도 시간축이 다른 차원으로 끌려 들 어갔던 모양이로군요. 어느 정도의 시간을 체감하셨습니까?]

‘30분 좀 넘어.’

그러나 그녀의 짐작과는 다르게 내

가 들어갔던 이차원의 시간축이 달 탔던 것은 아니다. 애초에 양아치 3 총사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을 것 같 지도 않고,무엇보다 지니가 비상상 황을 발생했을 때에는 시간 배율에 차이가 없었으니까.

짐작이지만,성계신이 시간을 조절 했을 가능성이 크다. 절대속성이라 불리는 시간이지만 상급 신인 그녀 에게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겠 지.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아니에요,누나. 고마워요.”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내 모습 에 경회루로 향하는 길목에 서 있던

궁녀 누나가 말을 건다. 계단마다 서 있는 누나들은 무슨 벙어리처럼 말이 없는데 그나마 건물 밖에 있는 궁녀들은 그나마 먼저 말이라도 거 는 걸 보니 아무래도 그녀들 사이에 도 계급 같은 게 있는 모양이다.

‘일단 나온 병력들은 다 돌려보내. 알바트로스함도 다시 은폐모드로 들 어가고.’

[이미 처리했습니다. 다만 함장님, 잠시 함 내로 돌아와 주실 수 있겠 습니까?]

‘왜?’

돌아가는 거야 어려울 것 없다. 알 바트로스함에는 승무원들에 대한 리

콜(Recall) 기능이 있으니 인적 없 는 곳에서 귀환하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일단 함으로 돌아가면 다시 나올 수가 없다.

과학기술에서는 공간 제어가 3문명 중반은 넘어서야 건드려 볼 수 있을 정도로 고난이도 기술이지만 영능에 서는 다르다. 리콜 기능이 발동되면, 이가에서는 반드시 그것을 감지할 것이다.

[개별 차원에서 잠시간 관리 시스 템에서 벗어나셨지 않습니까? 신체 적 정신적 문제가 생겼을 수 있으니 상황이 되는 대로 함선으로 돌아오 셔서 건강검진을 받는 것이……J

‘아아,괜찮아. 필요 없어.’

[하지만…….]

‘멀쩡하다니까.’

[걱정되는데…….]

진심이 뚝뚝 묻어나는 지니의 음성 에 헛웃음을 지으며 내가 묵고 있는 숙소,강녕전으로 돌아간다. 문을 열 고 들어가 문 바로 옆에 그림자처럼 대기하고 있던 궁녀에게 눈인사를 하고 그대로 걸음을 옮겨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는다.

그리고 그때였다.

[전신위광!]

‘음? 뭔 소리야,아레스. 그보다 웬

일로 여태 조용히 있었어?’

그러고 보니 기습을 당할 때는 물 론이고 성계신을 만나는 내내 단 한 마디도 없었다. 물론 개별 차원으로 들어가는 순간 연결이 단절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아레스가 다음으로 한 말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전신위광(戰神威光)이다,대하. 전 신위광을 익혀라!]

‘그게 뭔데.’

[초월지경으로 가기 위한 가장 완 벽한 길이지!]

왠지 모르게 흥분한 기색에 혀를

찬다.

‘아,안 사요,안 사.’

[그런 거 아냐! 이 자식! 네가 태 어나기도 전에 전신위광을 얻으려고 일어났던 전쟁에서는 말이야…….]

주절주절 과거의 영광을 읊기 시작 하는 아레스를 무시하며 3층으로 올 라간다. 그리고 여전히 자리를 지키 고 있는 궁녀에게 슬쩍 인사한다. 역시나 아까 방을 나왔을 때 마주쳤 던 그녀다.

‘도대체 몇 시간을 서 있는 거야. 내가 대신 노동부에 찌르고 싶어질 정도네.’

이가의 본거지,경복궁에 가장 높 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직종이 바 로 궁녀다. 농담이 아니라 내가 목 격한 이가의 인물들 중 2/3나 되는 인원이 궁녀일 정도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녀들은 궁 안의 경비를 맡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가의 소 속원들뿐만 아니라 나 같은 방문자 들에게 온갖 편의 관련 서비스를 제 공하고 있다. 심지어 청소까지 도맡 아 하고 있으니 궁녀라기보다 하녀 나 만능 메이드에 가까운 존재라 할 수 있겠지.

위잉. 딸깍!

주문에 의해 봉인되어 있던 문이

열리고 내게 배정된 숙소 안으로 들 어간다. 손님에게 준 것 치고는 상 당히 괜찮은 뭘리티다. 개인 방인데 도 불구하고 30평이 넘어가는 규모 를 가진 방은 개인용 PC나 TV를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가전제품을 구비하고 있었으니까. 음식은 식당 에 가서 먹을 수 있지만 궁녀들에게 부탁하면 방으로 가져다주기도 하고 세탁물도 내놓기만 하면 뽀송뽀송하 게 건조까지 해서 되돌려 줄 정도 니,아버지를 잘 만나 부유한 삶을 살고 있었던 나로서도 아무런 불만 이 없는 수준.

‘손님방이라기보다는 무슨 호텔 같

군. 궁궐 형태니 특이한 테마의 호 텔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옷장 안에 준비되어 있던 간편복으 로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몸을 던진 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아레스는 계속 떠들고 있다.

[그러므로! 너는 전신위광을 익혀 야 한다는 것이지!]

‘아,그래그래.’

[성의 있게 좀 들어줘…….]

아레스가 제법 불쌍한 표정을 지었 지만 남정네가,그것도 2미터가 넘 어 보이는 회색 머리칼의 거한이 그

래 봤자 아무런 감정이 안 든다. 차 라리 지니가 그런다면 모를까.

어쨌든 너무 무시해도 삐칠 것 같 았기에 물어는 보았다.

‘좋은 거야?’

[나와 함께 태어난 신의 기예이니 당연하지! 사실 네가 날 너무 막 타 긴 하는데 원래 전신위광을 충분히 숙련시켜야 탑승자로서의 자격을 주 거든?]

여러 가지 의미로 조각 같은 외모 를 가진 아레스가 뽐내듯 우풀거린 다.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도병기 우자트가 비추는 증강 현 실임에도 실제로 그가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러운 표정.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잠시 고민했다.

‘좋다고 하면 익혀도 나쁠 건 없겠 지만.’

그러나 순간 애매한 [직감]이 들었 기에 확인차 묻는다.

‘어떻게 수련하는 거야? 무슨 무공 처럼 심법 같은 걸 수련하나?’

[그런 저급한 것들과 비교하면 곤 란하지! 전신위광은 그런 것들과 완 전히 다른 수련법을 가진다!]

‘다른 수련법이 뭔데?’

[전쟁! 오직 전쟁만이 전신의 위세 와 빛을 키워 나가지!]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딱 봐 도 전신위광의 스타일이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호전적인 이능이지?’

[그럼 세상에 평화적인 전쟁도 있 단 말이냐?]

“에라이.”

참지 못하고 입 밖에 말을 내고 말았다. 애초에 요번 사달이 왜 일 어났던가? 잠잠해진 줄 알았던 신성 이 어떤 이유로 폭주했냐는 말이다.

분노 (같 ⑯).

그렇다. 단 한순간의 분노였다. 그 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 하나만으 로 아무 힘도 없을 거라고 짐작되는 사람을 납치,살해하려던 인간 말종 들에게 진심으로 분노하는 순간 신 성이 터져 나온 것이다.

내 신성을 분리해 완벽히 봉인했다 고 생각했지만,실상 그건 코끼리 우리를 나무 갈대로 짜놓은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허술한 처리였다. 쉽게 얻었기에 신성이라는 개념을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이다.

[왜,왜?]

내 표정에 떠오른 짜증을 읽은 것 인지 멈칫하는 아레스를 보며 의념

을 전달한다. 무심코 말을 입에 담 았지만 실수로 남들 앞에서 혼잣말 을 할 수 있었기에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가뜩이나 신성이 불안정해서 극한 의 명경지수(明鏡止水)를 완성해야 하는 판국에 전쟁 같은 소리를 하니 까 그렇지. 분위기를 보니 정신에도 영향을 주는 힘이구먼.’

[왜,왜 꼭 악영향을 주는 것처럼 말하는 거냐? 전신위광은 수련자의 내면에 숨어 있던 용맹을…….]

‘그게 악영향이야.’

명색에 신급 기가스가 내장하고 있 는 영능이니 무슨 흑마법이나 사법

(邪法)처럼 심각한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호 전성을 높였다가는 될 일도 안 된 다. 그 전신위광인가 뭔가를 익힌다 면,어쩌면 기다렸다는 듯 또 다른 [내]가 몸을 차지할지도 모른다.

나는 작은 소녀로밖에 보이지 않았 던 인류의 수호자,성계신의 말을 떠을렸다.

“조심해. 너의 본질과 자아가 지나 치게 유리(遊離)되고 있어. 이대로 라면 새로운 자아가 탄생한다."

“그런… 신성에 취했을 뿐 다른 자 아는 아니지 않습니까? 당장 통제가

안 될 뿐 시간이 지나면 자각이 있 는데.”

“신성을 받아들였다면 그랬겠지만 이제는 아니지. 실제로 아까는 완전 히 분리되어 있었지?”

“그런……

“지금 이 구도로 가면 결국 시간문 제야.”

나는 드넓은 대우주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특이한 상태를 유지하 고 있다.

상급의 신성(神¹혈),하급의 신위 (神位),그리고 필멸자의 격(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나는 전 세계를 호령하던 재벌의 자식이고 그 재산(神聖)을 고스란히 물려받았 다. 그리고 그 재벌의 자식인 만큼 회장 자리(神位)에도 어느 정도 지 분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

여기서 문제는.

스스로의 역량(格)!

사실 일반적인 필멸자라면 신성도, 신위도 다 역량으로 얻어내야 하지 만 나는 그것들을 노력 없이 얻어내 고 말았다. 마치 고대의 신족들처럼, 그저 권능과 신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거저 얻어낸 그 재산이 재 앙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면,나는 그것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익혀야만 했다.

“에휴.”

불현듯 홀러나오는 깊은 한숨을 고 개를 흔들어 떨쳐냈지만 암담한 기 분까지 떨쳐낼 수는 없었다. 우주에 서는 지구로 돌아오기만 하면 평화 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했는데 막상 돌아온 현실이 시궁창 이라니.

뭔가 아득한 기분에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는 나에게 지니가 말한다.

[영능을 수련해야 한다면 생산계는 어떠십니까?]

‘…생산계?’

[네,함장님. 캔딜러족의 수련법이 라면 가장 안전하며 평화적이고 적 성에도 맞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홈.’

[연구실에 수련법도 기록되어 있고 무엇보다 재료와 표본이 풍족하게 준비되어 있지요. 추구하셔야 할 가 장 궁극적인 방향성도 제시되어 있 고요,]

‘황금기사단 말이군……

[그렇습니다.]

황제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친위 기사단에 소속된,레온하르트 제국 의 모든 기술력을 집중시켜 만든 최 신예급 무인 전투 병기 [황금기사] 는 단 한 줄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조종사가 필요 없는 인(人)급 기가 스.

이는 레온하르트 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애초에 무인 병기들이 유인 병기들보다 효 율적이라면 제국이 막대한 연봉과 제반 시설,그리고 전 우주적인 스 카우트 시스템(우리 마을에 설치되 어 있는 오락실 같은)을 유지하면서 기가스 조종사들을 운용할 리가 없

지 않겠는가?

조종사가 필요 없는 인급 기가스, 즉 영자력을 다루는 마도 골렘은 틀 림없이 존재하지만,그건 극소수만 이 존재하는 특수 제작품에 해당한 다.

‘하긴 그렇겠지. 황금기사단은 초 월자들이 천문학적인 재화를 쏟아부 어 만든 작품이니까.’

광화문 광장에 서 있던 두 기의 영혼거병을 떠을린다. 세종(世宗)과 순신 (舜臣).

놀람게도 녀석들은 황금기사단과 거의 동등한 출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황금기사단과 그 영혼거병이라

는 녀석들이 일대일로 싸우면 녀석 들이 일방적으로 밀리겠지만 그건 대우주의 전쟁 역사를 새롭게 쓴 혁 신적인 영자기관,아이언 하트가 없 기 때문이지 영혼거병이라는 물건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저것들은 지구 가 아니라 레온하르트 제국에 납품 해도 손색이 없을 수준의 명품들인 것이다.

[물론 황금기사단을 재현할 수는 없으실 겁니다. 아이언 하트는 대우 주에서도 오직 캔딜러족만이 만들 수 있는 물건이니까요.]

그 콧대 높은 용종들도. 온갖 보패 를 자랑하는 신선들도 아이언 하트

를 재현하지 못해 모조리 수입에 의 존하는 실정이다. 제작계 능력이 초 월자에 이르더라도 황금기사단 같은 기가스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뜻.

물건이 필요한 것이라면 힘들게 능 력을 갈고닦을 게 아니라 그냥 제국

에서 괜찮은 기가스를 뻥 뜯어오는 게 더 합리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

겠지.

하지만 지금 나는 무기가 필요한 게 아니다. 스스로를 단련할 [수단] 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 한번 생각해 보지.’

[훌륭한 판단이십니다,함장님.]

[저,저기. 전신위광은…….1

‘시끄러.’

[…나쁜 놈. 치사한 놈.]

‘시커먼 남정네가 칭얼거리기는.’ 찡얼거리는 아레스를 가볍게 무시

하며 베개에 머리를 묻는다.

“하… 초월지경이라니.”

기가 차는 현실에 한숨만 나온다.

“초월지 경……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