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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 2부-5화 (122/249)

5 화

나는 무언가가 변했다는 것을 깨달 았다.

“•••뭐야?”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본다. 경회 루로 향하는 문에 서 있던 궁녀가 사라지고 없다. 장소가 변한 것은 아니다. 기와가 얹혀 있는 담벼락과 다듬지 않은 박석(薄石)으로 이루어 진 바닥까지 모두가 그대로니까.

‘하지만 달라.’

그렇다. 똑같아 보이지만 분명히 다르다. 원래부터 내가 살고 있던 표면 세계와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이 이면 세계였지만,이 [장소]는 그 이면 세계와도 다르다. 공간 자체가 거품처럼 희미하고 불 안정하기만 한 것이다.

[함장님. 지금 함장님이 관측되지 않습니다.]

‘난데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차원 진동 감지! 위험합니다! 함 장님께서는 지금 강제 이동되셨으니 당장……J

푹!

그러나 그녀의 말을 채 끝까지 듣 기도 전에 화끈한 무언가가 내 가슴 팍을 파고 들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이어 저항할 틈도 없이 내 몸이 번 쩍 하고 허공으로 들어 올려진다.

“쯧쯧,멍청한 표정하고는.”

“작작해야지. 너무 까불었어.”

“네... 녀석들.”

나는 치밀어 오르는 고통에 인상을 찡그리며 뒤틀린 미소를 짓고 있는 두 사내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들을 모를 리는 당연히 없다. 헤어진 지 채 30분도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러게.”

순간 화끈한 고통과 함께 내 몸이 뒤로 밀린다.

“손가락을 잘랐어야지.”

내 아래에서 슥 나타나는 붕대 녀 석의 모습에 헛웃음을 짓는다. 이제 보니 내 가슴팍을 뚫고 들어와 나를 공중으로 들어 올린 것은 그의 몸을 칭칭 감고 있는 붕대 중 일부였다. 언뜻 하늘하늘해 보이는 천 쪼가리 가 마치 강철처럼 경화(硬化)되어 내 몸을 꿰뚫은 것이다.

“일단 이건 내놓고.”

녀석이 내 품을 뒤져 호랑이 모양

의 옥패(크라M)를 빼앗는다. 경은이 내게 넘겼던 소환석인가 하는 물건 이다.

“아가씨도 참 순진하단 말이야. 소 환석의 발동 조건을 누구보다 잘 아 는 게 우리인데.”

“솔직히 위험한… 멍청한… 정신 나간… 짓이지만 할 수 없나.”

“어차피 격변의 시기야. 지금 이런 시기에 이가가 우리를 함부로 할 수 는 없지. 그것도 이런 일반인 때문 이라면 더더욱.”

나는 마음속으로 양아치 삼총사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높였다. 물론 경은이 경고했다고 해서 그들이 참

고 넘어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 았다. 그들은 그 어떤 치졸한 수를 써서라도 보복할 인간성의 소유자로 보였으니까.

그러나 이렇게나 빠르게,그것도 비능력자라고 알려진 나를 기습에 가까운 형태로 공격할 거라고는 미 처 예상하지 못했다.

[비상! 비상상황! 관제 인격의 권 한으로 저11급 비상상황을 선포합니 다! 알바트로스함 하강 시작! ‘황금 기사단’ 전기 출격! ‘황금사자부대’ 전기 출격! ‘R7’ 비행대대 전기 출 격!]

요란스러운 경고음과 함께 위기감

가득한 지니의 외침이 머릿속을 울 린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양아치 삼 총사는 그것을 듣지 못했고,이 공 간의 특수성 때문인지 내 목소리 역 시 그녀에게 닿지 못한다.

‘난리 났네.’

알바트로스함의 주력이었던 하늘거 인 기갑여단과 강철 십자 비행여단 은 이제 없다. 나는 함선을 받은 것 이지 그 구성원들까지 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목적 없이 고향에 정착하려는 입장에서 남의 인생을 소비시킬 생각이 없기도 했 고.

대신 나는 레온하르트 제국으로부

터 알바트로스함을 지킬 무인 병기 들을 제공받았다. 그리고 그것들이 바로 황제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친위기사단에 소속된,레온하르트 제국의 모든 기술력을 집중시켜 만 든 최신예급 전투 병기들이다.

‘그야말로 돈지랄… 이지만.’

문제는 그것들이 가진 화력이다. 열 기의 황금기사단은 그 하나하나 가 인(人)급 기가스에 준하는 전투 력을 가지고 있고 50기의 황금사자 부대는 하나하나가 수(獸)급에 준하 는 전투력을 가진다. 그리고 마지막 으로 100대의 ‘R7’ 비행대대는 비 록 기(器)급에 불과한 영자력을 가

지고 있지만 대신 온갖 특수전에 대 비한 첨단 병기들과 폭격기들을 포 함하고 있다.

농담이 아니라 지니가 1급 비상상 황에 대한 ‘해석’을 독하게 한다면 변경 지역의 원주민(레온하르트 제 국의 관점)에 불과한 이가 따위는 그야말로 한 시간 만에 잿더미로 변 해 버릴지도 모른다.

“얼씨구? 웃어?”

짜악!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오른쪽 뺨이 화끈하게 달아오른다. 자기들이 지 금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전혀 짐작 도 못 하는 머저리들이 나를 아니꼬

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붕대 녀석이 말한다.

“나는 너같이 현실감이 부족한 놈 들이 정말 싫어. 우리가 장난하는 것 같아? 전혀 모르던 신비한 세계 로 넘어오니 여기가 무슨 영화 세트 장이고 네가 주인공같이 느껴져? 천 만에! 넌 자격도 없이 평화를 누리 던 머저리일 뿐이고 우리의 보호하 에 살아가고 있었어! 알아?!”

영문 모를 짜증과 적의가 가득한 시선이다. 녀석 뒤쪽에 있는 막대기 와 덩어리 역시 비슷한 시선으로 나 를 바라보고 있다.

"제길! 빌어먹을 독재자 새끼! 왜

이런 힘을 가진 우리가 이렇게 숨죽 이고 살아야 해?”

“…그만. 잔말이 많아.”

“흥! 이미 뒈진 노인네가 두려운 거야? 이 새끼 눈을 봐! 건방진 놈!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된다 이거지?”

콰득!

“윽!”

가슴팍을 꿰뚫고 있던 붕대가 우악 스럽게 움직이며 갈비뼈가 박살 나 는 게 느껴진다. 우주에 나가 비인 (非人)들에게 고문까지 당했던 내가 못 버틸 고통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이 녀석이 비인 녀석들과 다르게 내

가 죽든 말든 상관없이 나에게 고통 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하,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붕대 녀 석의 기세가 더욱더 사나워진다.

“하? 하아아아아아???? 이 새끼가 또 웃어?”

붕대를 움직여 내 몸을 끌어당기는 녀석의 모습에 호흡을 가다듬는다.

‘화낼 필요 없다.’

최악으로 보이지만 결국 다 해결될 문제다. 녀석들이 당장 내 목을 쳐 즉사시키지 않는 이상,나는 결국

녀석에게 풀려나 복수할 수 있는 상 황이 될 것이다.

아니,오히려 지금은 다른 걱정을 해야 한다.

34지구가 레온하르트 제국과 어느 정도 수교를 맺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대마법사를 포함한 최상위층만 아는 사실일 뿐이었다. 실제로 제법 강력한 능력자라고 할 수 있는 보람 과 동민은 외계인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으니 거의 대부분의 존재 들이 외계의 존재를 모른다고 해도 무방하겠지.

하강을 시작한 알바트로스함을 본 이가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농담이 아니라 그들은 외계인의 침 략을 생각할 것이다.

‘참아야……

어떻게든 호흡을 가다듬는 나를 보 며 붕대 녀석이 말한다.

“이제 세상이 바뀌어서 지금까지와 는 다르다는 걸 알려줄 제물이 필요 했는데 잘 걸렸어.”

“하긴. 제논 그 늙은이가 죽은 이 상 지금까지와 같은 통제력은 없겠 지. 지킴이들도 비활성화될 걸? 애 초에 그 녀석들도 제논 그 늙은이랑 계약한 거였잖아!”

“그래! 이제 다 바뀐다. 우리들 세

상이라고! 하! 경은 그년! 금수저 물고 태어난 걸 제가 잘난 줄 알고 건방지게 구는데! 두고 봐. 내 가……

화낼 필요 없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으려 노력했다. 그래,화낼 필요가 없다. 다 해결될 문제다. 애초에 이가의 전력 따위로 알바트로스함을 막는다는 건 불가능 하니 결국 그녀는 결국 이 장소를 찾아낼 것이다. 이곳은 일종의 개별 차원 같은 곳이었지만 몰래 정탐하 는 게 힘든 거지 개별 차원을 깨고 들어오는 것 정도야 아이언 하트를 가진 기가스들에게 어려운 일도 아

니니까.

그러니까 화낼 필요가…….

덜컹.

“•••뭐라고?”

그러나 그 순간.

덜컹!

문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호오〜 이제야 좀 상황 파악이 되 나? 지금… 응?”

한참 신나서 떠들던 붕대 녀석이 멈칫한다. 녀석의 고개가 천천히 내 려가고,녀석의 가슴팍에 뚫려 있는 머리통만 한 구멍이 그의 시야에 잡 힌다.

어느새 내 손에는 흑색의 총. 쉐도 우 스토커가 윤기 나는 검은 몸체를 드러내고 있다.

“너… 어. 그 시계… 어? 총? 내가 총에… 맞았다고?”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떠듬떠 듬 흘러나오자 이제야 상황을 파악 한 두 녀석이 신음을 홀린다.

“뭐,뭐야?! 현진아,괜찮아?”

“…이게 무슨.”

스스륵,하고 내 가슴팍을 헤집고 있던 붕대가 몸 밖으로 밀려 나온 다. 나는 피가 철철 흐르는 가슴팍 을 손바닥으로 막고 속삭였다.

“책.”

파라라락-!

말과 동시에 눈앞으로 한 권의 책 이 떠올라 자동으로 펼쳐진다. 표지 에는 아무런 글자도 없어 제목조차 알 수 없었지만,펼쳐진 페이지에는 [나폴레옹]이라는 소제목이 쓰여 있 다.

나는 그 책에 쓰여 있는 세 줄의 문장 중 하나를 읊는다.

“〈죽지 않는 황제〉.”

웅!

순간 내 몸 주위로 보호막이 떠오 르고 이내 무시무시한 속도로 가슴

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다.

그러나 늦었다.

덜컹덜컹!

“안 돼.”

덜컹덜컹덜컹!

“이런 미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무지막지한 힘이 몰아친다. 그러나 그건 절대 좋은 일이 아니다. 아니,오히려 절 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감정을 추 스르고 스스로를 가다듬으려 발버둥 쳤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무소용.

내 알량한 자아(§我)는 해일처럼 휘몰아치는 신성 앞에 마치 각설탕 처럼 녹아내린다.

“이.”

이어 활화산 같은 분노가 끓어오르 고.

신성이 터져 나온다.

번쩍!

내 몸을 중심으로 반경 수백 미터 안의 모든 것이 먼지로 변해 흩어진 다. 양아치 삼총사는 이미 그 흔적 조차 찾을 수 없다. 그저 신성이 휘 몰아친 후폭풍만으로 그들의 존재는 물론이고 영혼마저 멸살(減殺)된다.

‘안 돼!’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소용 없다. 나는 이미 내 육체의 통제권 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어떻게 된 거야?! 어째서 라에 두 고 온 신성이! 심지어 상황이 악화

되었잖아?! 아니,아닌가? 이건 좋 아졌다고 해야 하나?’

과거 내가 신성에 취했을 때에는 나 스스로가 변했다는 자각조차도 없었다. 마치 술에 취하면 스스로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평소에 절 대 할 수 없는 미친 짓을 하는 것 처럼 온갖 대사건을 닥치는 대로 저 질렀던 것.

그러나 지금은 내 자아가 육신으로 부터 유리(遊離)되어서 내면에서 외 면을 바라보는 형태가 되었다. 적어 도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 할 수 있는 환경은 마련된 것이다.

“후.”

완전히 신성을 되찾은 [내]가 서늘 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경복궁 이 박살이 났지만 정말로 이면 세계 의 이가가 박살 난 것은 아니다. 이 곳은 일종의 개별 차원. 현실을 본 떠 만들어진 거품과 같은 장소다.

‘•••잠깐. 안 돼! 야! 멈춰!’

순간 나는 [내]가 떠올린 생각을 눈치채고 마구 소리를 질렀다. 이 미친놈이.

‘뭔 또 청소야!! 학살 좀 그만해!!’

과거 신성에 취한 나는 나를 죽이 려 음모를 깠던 하워드 공작가 전부 를 멸망시킨 전례가 있다. 하워드

공작가에는 초월지경에 오른 공작과 셀 수 없이 많은 전함,그리고 기가 스들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나를 막 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하워드 공작은 물 론 천만 명이 넘는 공작가문의 구성 원들 모두가 죽었다. 마치 밭에 해 충약을 뿌리는 농부처럼,나는 나를 적대하는 모든 존재를 멸하고 말았 던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이제는 초월 자조차 없는 34지구의 세력이 나를 막을 수 있을 리 없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지금 내 스탯은.

성명: ????

클래스: ????

칭호: ???? ??레벨

근력: 100 체력: 100 생명력: 100 순발력: 100

마나: 1,054 마나력: 900 항마력:

1025

회복력: 100 마나 회복력: 1,050 운: 900

상태: 9? 9999 99? ??? 999?

'미친,무슨 스랫이……! 999가 끝

이 아니었던 건가?!’

신음이 절로 나온다. 마나에 관련 된 모든 스탯이 미쳐 돌아가고 있 다. 레온하르트 제국의 중추 중 하 나라고 할 수 있는 하워드 공작가가 괜히 멸망한 게 아니다. 그야말로 초월적인. 신이나 다름없는 힘!

그러나 그런 나와 다르게.

"흠? 뭐지? 왜……

내 육신을 차지한 [나]는 전혀 다 른 감상을 내뱉었다.

“어째서 신성에 봉인이… 게다가 전지(全知)의 권능마저 사라지다니.”

녀석이 당혹스러워하는 게 느껴진 다. 내가 보고 경악한 스탯마저도

녀석에게는 온전한 상태가 아닌 모 양.

그러나 그러한 사실은 조금의 위로 도 되지 않는다. [내]가 아무런 문 제 없다는 듯 말했기 때문이다.

“불러와야겠군.”

‘뭐라고?’

기겁하며 정신을 집중했지만 [나] 는 그런 내 마음 따위는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라. 내가 지금 명하노니.”

하지만 [명령]이 발동하려던 그때.

“잠깐! 잠깐만!”

지금의 나를 막을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가 모습을 드 러 낸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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