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화
나는 녀석의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 다.
[이 (李)가]
[5 레벨]
[사령술 숙련자 이현진]
‘사령술이라.’
나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생소한 계 통의 힘이다. 레온하르트 제국에서 사령술은 철저한 비주류 학파인 데 다 경원시당하기 때문에 제국에 도 착하자마자 고귀한 자들만 모인 황 실에 도착한 나로서는 볼 일이 없었 기 때문이다.
[쯧쯧,더러운 시체성애자들이 나 셨군.]
‘너무 그러지 마. 그래도 성능은 좋다고 하던데.’
사령술은 레온하르트 제국에서 철 저하게 경원시당하는 비주류의 마법 학파이다. 레온하르트 제국에서 사 령술사라고 하면 소아성애자로 이루
어진 조직 폭력배 같은 존재로 인식 할 정도니까.
그러나 인식이 안 좋다는 게 약하 다는 뜻은 아니다. 아니,굳이 말하 면 강한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 지. 사령술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강대한 학문으로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진 마도학문이었으니까.
요는 환경의 문제다.
사령술은 시체와 영혼을 다루는 학 파이며,그렇기에 죽음이 가득한 세 상에서 그 위세를 떨친다. 잘 정비 된 제도와 법규에 의해 통치받는 레 온하르트 제국에는 죽음도 시체도 부족한 데다,영혼을 능욕하는 행위
는 살인 이상의 형량을 받는 최악의 불법이니 다른 발달된 마법학파들에 비해 가성비만 떨어지는 학문이 되 어버리는 것.
‘그런데 이곳 어나더 플레인에서 사령술사가 이렇게 대놓고 돌아다닌 다는 것은……
간단한 이야기다.
이곳,어나더 플레인이 그만큼 죽 음과 가깝다는 이야기겠지.
“뭐? 누구신지? 푸하하하! 너 표면 세계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꽤 강단 이 좋구나?”
“크으, 말을 곱게 하니까 무시를
당하지,
“등신… 식당에서 사고 칠 생각 하 지 마……
뭐가 그렇게 웃긴 것인지 배를 잡 고 웃던 녀석 뒤에 있는 막대기와 덩어리가 음산한 목소리를 흘려낸 다. 아무래도 셋은 친구로 보인다.
“뭐,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이 면 세계에 발을 먼저 디딘 선배님들 이지. 표면 세계 사람이 학당(學堂) 도 성(城)도 거치지 않고 바로 궁에 왔다는 사실에 놀라서 말을 걸어본 거야.”
궁 (宮).
내가 지금 와 있는 이 장소를 칭 하는 말이다. 다만 특이한 점은,그 장소가 현실의 사람들,그러니까 [표면] 쪽의 사람들에게도 매우 익 숙한 장소라는 점이겠지.
경복궁 (景福宮).
그렇다. 바로 그곳이다. 사적 117 호. 조선왕조의 건립에 따라 창건되 어 정궁으로 사용되었던,다섯 개의 궁궐 중 첫 번째인 조선왕조의 법 궁.
‘다만 문제는 드러난 것보다 숨겨 진 공간이 더 넓다는 거지만.’
어쨌든 이곳이야말로 대한민국 토
착 세력인 이가(李家)의 본거지이 다. 어나더 플레인에서 활동하는 사 람들이라도 아무나 을 수 있는 장소 는 아닌데 안쪽 사람인 내가 와 있 다는 사실이 고까운 모양이다.
“뭐,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 그런데?”
“엄지로 하지.”
"흠?”
난데없는 말에 의문을 표한다. 나 를 바라보는 녀석의 표정은 칭칭 감 겨진 붕대로 가려져 읽어낼 수가 없 는 상황.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며 녀석이 말
한다.
“엄지손가락을 자르면 여기에서의 안전을 보장하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아니,이놈 봐라?
“협박인가?”
“협박이 아니라 당연한 과정이야.”
“싫다면?”
“싫다……
“나 참……
순간 막대기와 덩어리의 눈이 서늘 하게 빛난다.
“후후후,꽤 기개가 있는데? 너 같 은 녀석 싫어하지 않아……
말로는 칭찬하지만 붕대 녀석에게 서도 살기가 퍼져 나가는 것은 마찬 가지.
그러나.
“나 이거 참……
그저 헛웃음만이 나온다.
“지랄 났네.”
“•.•뭐?”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던 것인 지 녀석들이 표정이 멍청하게 변했 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녀석 들의 살기가 섬뜩하게 터져 나온다.
그리고 그 순간.
“그만.”
날카롭게 그 모든 살기를 가르며 우리 사이로 걸어 들어오는 존재가 있었다. 아까 식당을 떠났던 경은이 다.
"내 손님한테 지금 무슨 짓이야?”
“아,죄송합니다. 아가씨. 하지만 궁에 들어오려면 원칙적으로……
“왕족이라 하더라도 관습은 지키셔 야 합니다.”
“그리고......
마치 몰아붙이듯 다다다 떠드는 녀 석들이었지만 경은은 가볍게 그 말
을 자른다.
“대하는 우리 일족이 되기 위해 이 곳에 온 게 아냐. 손님이지.”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이야? 더 이 상 이 일에 왈가왈부하는 건 나에 대한 도전으로 알겠어.”
침묵을 지키는 녀석들을 보며 경은 이 엄한 표정을 짓는다.
“대답은?”
“•••예,아가씨.”
전혀 납득한 표정이 아니었지만 대 놓고 반항할 수는 없는 것인지 순순
히 고개를 끄덕이는 셋을 잠시 노려 보던 경은은 이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사과한다.
“미안해,대하야. 아저씨한테 부탁 도 받았으면서… 이거 받아.”
“아니,아가씨,그건……
“아,좀 닥쳐! 너 같은 녀석들 때 문이잖아!”
시끌시끌한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호랑이 모양의 옥패(포保)를 받아 든다.
[마탑주 신인화]
[8 레벨 (3 회)]
[소환석 eg 換石]
‘마탑주라.’
[34지구를 암중으로 지배하고 있는 마탑의 수장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 정도야 알지.’
세계의 이면인 어나더 플레인은 열 다섯 개의 세력에 의해 지배받고 있 다.
삼대 마탑.
오대 무파.
칠대 가문.
한국에는 이 중 두 개의 세력이
존재하고 있었는데,이 중 하나는 한국의 토착 세력이자 왕실(또室)을 대표하고 있는 이가(李家)이다. 내 가 지금 머물고 있는 경복궁이 바로 그 근거지라고 할 수 있겠지.
그리고 또 다른 세력은 보람이 소 속되기도 한 지고의 마탑. 다만 온 전히 한국 사람들로 이루어진 이가 와 다르게 지고의 마탑은 동북아시 아 전체를 아우르는 다국적 단체였 다.
[사실 지고의 마탑은 50%가 중국 인,30%가 일본인,그리고 15%의 기타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한 국인은 5%, 그러니까 2,000명에 불
과합니다. 그 2,000명 중에 마탑주 가 있다는 점이 특이사항이지만요.]
‘복잡하구먼.’
내가 머릿속을 울리는 지니의 설명 을 가만히 듣고 있는 사이 세 녀석. 그러니까 양아치 심•총사 녀석들을 눈빛으로 단속한 경은이 말한다.
“항상 가지고 다녀.”
“이걸?”
“그래. 솔직히 말하면 지금 네 태 도는 너무 위험해. 이곳. [밖]은 언 제 사람이 죽어나가도 이상할 게 전 혀 없는 곳이니까. 뭐 그래도……
후후후,하고 웃으며 경은이 떠나
간다.
“깡 있는 남자는 싫어하지 않아.”
경은이 떠나가고 잠시 우리들 사이 에 침묵이 흐른다. 나는 어이가 없 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나 참,뭔 호감도 오르는 소리를 하고 앉았어.”
“너,여전히 태평하군.”
“슬슬 재미없는데.”
막대기와 덩어리가 서늘한 목소리
로 시비를 걸었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는 잡소리일 뿐. 가볍게 무시하고 몸을 돌린다.
그리고 그렇게 걸어가는 나를 향해 붕대가 말을 건다.
“너… 시계 좋군.”
“시계?”
난데없는 소리에 황당해하며 왼팔 을 들어 올린다. 물론 내 시계는 꽤 근사한 물건이다. 검은 광택이 흐르 는 근사한 디자인의 메탈 워치는 누 가 봐도 나를 위해 맞춤으로 만들어 낸 명품의 그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사실 이 시계는 그저 명
품 따위가 아니다.
이것은 제4문명의 결정체. 쉐도우 스토커.
정점의 기술 문명을 이룩한 캔딜러 족이 중급 신위를 가진 레온하르트 황제를 위해 만들어낸 이 궁극의 개 인 무장은 절대속성이라 불리는 시 (時),공(空),무(無)의 요소를 실질 적으로 활용하는 데 성공했다.
때문에,쉐도우 스토커의 탄환은 시간을 가로질러 적을 관통한다. 제 아무리 놀라운 반사 신경을 가진 존 재라도,혹은 완벽에 가까운 예지 능력을 가진 존재라 해도 쉐도우 스 토커의 탄환을 피하거나 막아낼 수
는 없다.
때문에,쉐도우 스토커의 탄환은 영원히 바닥나지 않는다. 그 크기가 달에 육박하는 거대한 군수공장이 그 안에서 무한정의 병기를 찍어내 기 때문이다.
때문에,쉐도우 스토커의 탄환은 창조와 소멸을 불러일으킨다. 단 한 발의 탄환이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 벙커로 변할 수도 있고,거꾸로 모 든 것을 파괴하는 극대소멸을 일으 키기도 한다.
그저 영성이 부족하여 초월병기에 비비지 못할 뿐,대우주급 세력들에 게도 국보급 보물이 바로 이 쉐도우
스토커인 것이다.
‘쉐도우 스토커의 정체를 알아보는 건 아닐 텐데.’
탐욕이 느껴지는 붕대 녀석의 목소 리에 의혹이 떠오른다. 왜냐하면 4 문명의 결정체인 쉐도우 스토커를 알아볼 정도로 그의 경지가 높지 않 았기 때문.
그러나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하 긴 알면 어떻고 모르면 또 어떻겠는 가?
“좋지. 이 행성을 팔아도 못 살 물 건인데.”
“뭐? 그게 무슨 말이지?”
“무슨 말은.”
말 그대로지.
나는 피식 웃으며 그를 무시하고 지나간다. 녀석이 발끈해 한 발 앞 으로 나섰지만 뒤에 있던 막대기와 덩어리가 녀석을 막는다.
“잘 먹었습니다.”
"후후,잘 먹었다니 다행이구나. 다 만 식당에서 싸우는 건.”
“자제하라고요?”
가볍게 자르고 들어간 내 말에 아 주머니가 웃는다.
“아니,권장한다고.”
“…왜죠?”
“왜냐니.”
무슨 그런 질문이 있느냐는 듯 식 당 아줌마가. 정확히는 아귀의 피를 타고 난 마족이 씨익 하고 웃는다.
“원래 좁밥들 싸움이 제일 재미있 는 법이거든.”
'••아,네,
떨떠름하게 대답하다 슬쩍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식당 아줌마이긴 해도 밥을 타 가는 사람 들이 그셔를 조심히 대했다는 사실 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그녀의 정체 는 비밀 같은 게 아닌 모양.
그리고 비밀이 아니라면 당연히 모 두가 그녀를 조심스럽게 대해야 한 다. 12레벨이나 되는 탐식아귀는 어 느 정도 숙련된 완성자,그러니까 마스터급의 강자가 아니던가?
그러나 그런 나와는 생각이 다른 듯 여태 조용히 있던 아레스가 헛웃 음을 짓는다.
[하찮은 마계의 졸(卒) 따위가 약 자들 사이에서 사자인 척하는군.]
지니도 말을 보탠다.
[그래 봐야 목줄 매인 짐승 주제에 말이에요. 하지만 저런 마족의 활용 법은 신기하긴 해요. 이런 하위 문
명에서 저런 일이 가능하다니.]
식기들을 밀어 넣고 식당을 나서며 지니에게 생각을 전한다.
‘대마법사가 개인적으로 잡은 모양 이더라고. 마족을 잡아서 고작 식당 아주머니를 시키고 있다는 점이 의 문이지만… 리스크가 있다는 걸 감 안해 보면 필요해서 한 일이겠지.’
다만 문제가 있다면 바로 그 [대마 법사]가 오늘 죽었다는 점이다. 조 치가 되어 있는 듯 대마법사가 죽었 음에도 마족 녀석이 탈출하거나 하 지는 못하고 있지만,지구의 이면 세계를 지배하던 가장 강대한 존재 가 사라졌으니 어나더 플레인 전체
가 휘청거릴 권력의 지각변동이 일 어날 건 불 보듯 뻔한 일이겠지.
좌아아-
식당을 나서자 잔잔히 출렁거리는 연못의 모습이 보인다. 사실 이것은 이곳,그러니까 [밖]에 오기 전에도 본 적이 있던 광경이다.
“설마 경회루를 식당으로 쓰는 집 단에 들어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경회루(慶會樓).
이곳은 경복궁에 있는 누각으로, 조선 시대에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대한민국 국보 제224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장소.
경회루의 연못,경회지(慶會池)의 물은 지하에서 샘이 솟아나고 있으 며,북쪽 향원지(香遠池)에서 흐르 는 물이 배수로를 타고 동쪽 지안 (池岸)에 설치된 용두의 입을 통하 여 폭포로 떨어진다고 한다.
‘5층으로 개조당한 건물들도 그랬 지만… 여기도 표면 세계랑은 다르 군.’
나는 걸음을 옮겨 경회지를 내려다 보았다. 맑고 맑은 경회지에서 느긋 하게 유영하고 있는 금빛 비늘의 잉 어들이 보인다.
다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이거야 원… 여기가 정말 하위 문 명이 맞긴 한 건가.’
[뭔가 이상이 있습니까. 함장님?]
‘아니,뭐 별로.’
나는 연못 가장 깊숙한 곳을 내려 다보며 웃었다.
[대마법사 제논]
[15 레벨]
[이무기 백(白)]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