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머리 위에 2부-2화 (119/249)

2 화

아무래도 [아귀족]은 지닌 힘은 몰 라도 머리만큼은 그리 좋지 않은 모 양이었다. 이렇게 자주 잡히고 이용 당하는 걸 보니.

“그나저나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일이라니 무슨?”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한다. 전 체적으로 후덕한,정말이지 누가 봐

도 성격 좋은 아주머니로밖에 보이 지 않는 그녀가 마족이라니 기가 찰 지경이다.

“분위기가 조금 묘해서요.”

“분위기라… 뭐, 당연한 일이지. 크 크크……

순간 그녀의 입꼬리가 쭈욱,하고 올라가더니 거의 귀밑에 닿을 정도 로 크게 입이 벌어진다. 입술 안쪽 으로 보이는 날카로운 이빨들은 강 철이라도 씹어 먹을 것만 같다. 내 가 아니라 다른 일반인이었다면 보 고서 자지러졌을 게 뻔한,그야말로 공포영화에서나 나을 비주얼이었다.

“…아주머니?”

“핫!”

이제야 정신을 차린 식당 아줌마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입가를 수습한 다. 그녀는 짐짓 헛기침을 하며 말 했다.

“크흠! 뭐 녀석들한테는 천지가 개 벽한 날이다. 슬픈 놈도 기쁜 놈도 절망하는 놈도 희망에 가득 찬 놈도 있으니 이런 잔잔함이 오히려 신기 할 지경이야.”

피식피식 웃은 그녀가 스프를 따로 그릇에 담아 내민다.

“자,맛있게 먹고.”

“네,감사합니다.”

접시를 받아 들고 버릇처럼 음식의 칭호를 확인한다.

[하늘아귀]

[오염도 제거용 햄버그스테이크]

[하늘아귀]

[오염도 제거용 양송이 스프]

‘오염도라.’

음식에 장난질이 되어 있는 것 같 지는 않은데 그렇다 하더라도 특이 한 효과다. 오염도를 제거한다? 여

기 거주하는 사람들이 저 오염도라 는 걸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는 말인 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수저를 움 직인다. 지니가 추천했던 대로 맛은 훌륭했다. 알바트로스함의 식단에 익숙해진 나에게도 나쁘지 않은 수 준.

그런데 그때 지니의 음성이 머릿속 을 울린다.

[함장님,3번 타깃이 광화문에 도 착했습니다.]

3번 타깃이라 함은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유일한 연줄, 경은이다. 참고 로 1번은 행방을 찾을 수가 없는

아버지고,2번은 다른 장소에 있다 는 영민이 형이다.

‘동선은?’

[북쪽… 그러니까 속칭 [탑]이라고 불리는 장소에 들렀다가 돌아왔습니 다. 초월자급 마법사가 만들어냈다 고 짐작되는 폐쇄 공간이 펼쳐져 있 어 들여다보는 건 불가능했지만 해 당 공간에 수백이 넘는 고위 능력자 가 집결하는 과정이 감지되었습니 다.]

‘고위 능력자가 수백이라고?’

그 정도 규모면 3문명인 레온하르 트 제국에서도 흔치 않은 숫자다. 물론 그래 봤자 초월자 하나도 감당

하기 힘들겠지만 이런 지방 행성에 그만한 규모의 인재들이 모이다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란 말인가?

‘기껏 지구에 돌아왔는데……

절로 인상이 찡그려진다. 내가 대 체 무엇 때문에 온갖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지구에 돌아왔던가. 내가 알 고,익숙하고,평온하고 평범한 삶을 살길 원했기 때문이 아니던가? 그런 데 지구마저 이런 꼴이라니.

‘물론 무시하고 살면 그만이지 만……

그러나 이미 신성을 깨우친 내 육 감이 그럴 수는 없다고 강렬하게 예

지하고 있다. 뭐가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하여튼 내가 바라는 방향으 로 살 수는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예감.

내심 헛웃음을 지으며 햄버그스테 이크를 썰어 먹는다.

그리고 그렇게 반 정도 먹었을 먹 었을까? 밖이 응성응성하더니 개량 한복을 입은 경은이 식당 안으로 들 어온다.

‘아니,저따위로 개량할 거면 한복 이 무슨 의미야?’

한복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떠올 리는 단아한 미 같은 건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팽팽함이 느껴질 정

도로 착 달라붙어 그녀의 늘씬한 몸 매를 확연하게 드러내는 백색과 갈 색의 조화는 농염함을 넘어 퇴폐적 이기까지 했으니까.

심지어 저 옷은 한복 주제에 노출 도가 높아서 그녀의 배꼽을 슬쩍슬 쩍 드러내고 있다! 식당에 가득한 남정네들이 괜히 넋이 나간 듯 그녀 를 바라보는 게 아닌 것!

그리고 바로 그 아이돌 같은 여인 네께서는 내 쪽을 바라보고 손을 번 쩍 든다.

“앗,대하야!”

“아아… 그래.”

반사적으로 대답하자 주변의 시선 이 확 하고 모여들었다.

“흠.”

[괜찮겠습니까?]

‘그럼 괜찮지.’

[하긴 당연한 일이겠지요.]

지니의 말대로다. 나름 살벌한 기 세지만 그래 봐야 [별빛기사단]이라 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그 무시무시 한 팬클럽의 시선에 비하면 귀여운 정도에 불과하다.

"지내기는 좀 괜찮아? 표면 세계 사람들은 이런 장소에 오면 많이 당 황하던데.”

표면 세계(表面世界)란 내가 알던 지구 그 자체를 말한다. 이들이 사 는 세계. 어나더 플레인이 가지고 있는 이면 세계와 대비되는 이름이 다. 전면,혹은 안쪽이라고도 불리지 만 표면 세계라는 명칭이 일반적으 로 사용되는 걸로 알고 있다.

“당황은 내 집이 없어졌을 때 다 해서.”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내 모습에 경 은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다.

“흠,너 혹시 이면 세계로 나와본 적이 있는 거야?”

“그럴 리가 있겠냐. 네가 아는 그

대로 평범하게 살았지.”

거짓말은 아니다. 적어도 지구에서 는 평범하게 살았었으니까. 하지만 그 대답이 납득이 안 되는 건지 경 은이 눈을 가늘게 뜬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 태연한데

“내 원래 성격이 그래. 그나저나 무슨 일이 있어? 분위기가 묘한데.”

“무슨 일? 아아,물론 있지. 곧 발 표될 거야.”

“발표?”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에 의아해 하는 순간이었다.

뿌우우우우——

거대한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진다. 평범한 나팔 소리가 아니라 거대한 영력이 담겨 있는 영능의 발현.

확실하지는 않지만,그 소리가 단 지 이 자리뿐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 에 울려 퍼질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영능을 익힌 자라면 지구 어디에 있더라도 그 소리를 들 을 수 있겠지.

[위대하고 위대하신 대마법사께서

하늘에 오르셨다! 그는 우리의 아버 지였으며 보호자였고 인류를 위해 싸워온 투사,문명의 구원자였다. 질 서의 수호자였던 그의 유지에 따라 우리는 싸워갈 것이다! 이겨낼 것이 다! 그리고,그래서 살아남을 것이 다! 모두 고개를 숙여 그의 평온을 기원하라!]

“맙소사,정말로"•…

“오래전부터 나오던 말이긴 했지 만… 결국 죽었군.”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기도 한다.

“홍,독재자 놈.”

“아버지. 그래,그는 확실히 아버지 였지. 심심하면 자식을 찢어 죽이던 아버지라 그렇지.”

“그가 한 인체 실험의 희생자가 몇 명인 줄 알아? 한자리에 모으면 웬 만한 국가 하나를 세울 수 있을걸.”

죽은 누군가를 비난하는 사람도.

“은혜도 모르는 금수 같은 것들. 인류를 여태껏 지켜낸 분이 누군 데……

“반대로 그가 구해낸 숫자는 지구 전체라는 걸 모른 척하는 건가!”

분노하는 사람도.

“대마법사께서……

“이제 어나더 플레인은 어떻게 될 까……

슬퍼하고 불안해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속삭임들도 잠시.

뿌우우우우〜

다시금 울리는 뿔나팔 소리에 모두 가 고개를 숙여 묵념한다. 그의 죽 음에 슬퍼하는 이도,기뻐하는 이도, 뭔가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이도 있 었지만 적어도 모두들 예우 정도는 표현하고 있다.

“대마법사라는 건 뭐야?”

내 질문에 경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본다.

“역시 영능을 깨우쳤구나? 지고의 마탑하고 좀 얽힌 적이 있다고 듣기 했는데.”

“뭐,그렇다고 딱히 무슨 이능을 배운 건 아니야.”

그건 사실이다. 나는 무공으로 몸 을 강화하지도,마법을 사용하지도 못한다. 예전 알바트로스함에서 마 나를 사용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 들을 사용했었지만 언제나 마찬가지 다.

나는 마나를 감지할 수 있지만 사 용할 수는 없다.

‘이제는 다를까?’

나는 신성을 각성해 공작가를 쓸어 버린 전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틀림없이… 그때의 나는 온갖 권능 과 이능을 숨 쉬듯 사용했다. 물론 아레스가 없었다면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내 안에서 뭔가가 달라진 것만은 틀림 없는 사실일 것이다.

“흐음〜 영능을 각성하긴 했는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은 없는 건가… 뭐,이미 가문에 보고가 들 어가 있으니 기다려. 허가가 나오면

내가 좀 가르쳐 줄까.”

“네가?”

“뭐야. 미덥지 못하다 이거야?”

“그런 게 아니라……

나는 말끝을 흐리며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그녀와 대화를 나 누는 것만으로도 여기저기에서 화살 같은 시선이 쏘아지고 있는 상황인 데,내가 그녀에게 직접 뭔가를 배 우게 된다면 상황이 어떻게 될까?

그러나 그런 내 상황을 아는지 모 르는지 그녀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묻는다.

“아니라?”

“흠.”

과거였다면 깔끔하게 철벽을 쳤을 것이다.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 로 아름답던,대우주급 아이돌 세레 스티아의 청혼조차도 가볍게 거절했 던 내가 아니던가? 경은이 예쁜 것 은 사실이지만 세레스티아와 비교하 자면 부족한 게 사실이니까.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굳이 그럴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의 외모,사람들에게 받고 있 는 선망,[밖]이라 불리는 어나더 플레인에서의 막대한 배경 따위는 나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다. 이미 그녀는 나에게 있어 선망의 주체도,

협박의 주체도 될 수 없다.

‘영능에 제대로 입문하지도 못한 주제에 좀 건방진 게 아닌가 싶지 만.’

상급의 신성,상급의 신위,그리고 하급의 신격.

온 우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 는 기형적인 불균형으로 지닌 힘의 극히 일부밖에 활용할 수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는 중급 신에 맞먹 는 힘을 가질 수 있었다.

대우주에도 별로 없다는 중급 초월 자. 전력을 다한 일격을 떨쳐내면 행성을 부수는 것조차 가능하고 맨 몸으로 우주를 날아다니며 온갖 강

대한 권능을 휘두르는 [황제] 클래 스의 힘.

그러나 그 힘은 이미 없다.

레온하르트 제국의 신급 기가스, 라(Ra)에 신성을 온전히 담아버린 그 순간부터 나는 약간 뛰어난 일반 인에 불과하다. 레벨로 치면 궁녀보 다도 낮은 2레벨. 마법도,무공도 사용할 수 없고 육체의 기능은 ‘고 작’ 국가 대표급 운동선수 정도에 불과하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위기감이 안 든다.’

어쩌면,일반인에 불과하다고 했지

만 그건 내 육신에 한정된 이야기일 뿐이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3문명의 끝에 도달한 레온하르트 제국에도 20대밖에 없는 테라(Tera) 급 함선,알바트로스함.

4문명의 결정체,쉐도우 스토커.

그리고 무엇보다.

[셀을 차고 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여자가 꼬이네.]

‘꼬이긴 뭘 꼬여,멍청아.’

[뭐? 멍청이? 이 위대하신 전신님 께 못하는 말이 없군!]

‘까불긴.’

그렇다. 그가 있다.

넘버링 613번의 초월병기.

전쟁의 신 아레스(Ares).

“뭐.”

피식 웃는다. 주변 사람들이 시선 이 점점 더 강렬해졌지만 아무렇지 도 않다. 아니,오히려 마음속에서 불쑥,하고 반감이 피어오른다.

“상관없지. 부탁할게.”

“후후,그래. 뭐 계통 문제도 있으 니 선생님들을 데려갈게. 아! 나는 일정이 있어서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이바이〜 하고 손을 흔든 그녀는 이내 싁 하 고 몸을 돌려 성큼성큼 식당을 나섰

다.

“여전히 요란한 녀석이구먼.”

바람처럼 왔다 간 그녀의 모습에 쓴웃음을 짓는다. 그녀가 나와 대화 를 나눈 시간은 몇 분 되지 않지만 식당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 나마 대마법사인가 뭔가 하는 녀석 때문에 어수선한 분위기라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죄다 날 보고 있었 겠지.

물론 주변 분위기가 어떻든 상관없 는 녀석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일까?

턱.

그릇들을 치우고 식당을 나서려는 내 어깨 위로 누군가의 손이 올라온 다.

“거기 잠깐.”

“…누구신지?”

어깨를 끌어당기는 손길에 따라 몸 을 돌리자 특이한 인상을 가진 세 명의 사내가 보인다. 그중 한 명은 신장이 2미터는 되어 보였는데 비쩍 마른 몸 때문에 무슨 막대기를 세워 놓은 것 같았고 반대로 1.5미터도 안 되는 신장을 가진 녀석은 살이 엄청나게 쪄서 발로 툭 차면 데굴데 굴 굴러갈 것 같은 인상. 그리고 마 지막으로 날 돌려 세운 녀석은.

‘뭐야 이놈은.’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다. 부상을 입었다거나 하는 느낌은 아니다. 그 야말로 전신. 콧구멍은 물론이고 두 눈조차 완전히 가려져 몸 어디에서 도 녀석의 피부를 훔쳐볼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나는 녀석의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 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