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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으로서, 인간으로서
양복을 입은 회사원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네 개의 바퀴가 달린 자동차들은 땅 위를 달리고 책가방을 멘 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든다. 개 줄을 잡은 사람들은 헐떡이는 개를 이끌고 그늘을 골라 걸어 다니고 아이들은 땅에서 솟아나오는 분수로 뛰어들어 제 몸이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뛰놀고 있다.
“우와, 진짜진짜 덥다. 작년도 역대급 더위라더니 올해는 더 더워.”
“자기야, 올해 휴가는 어디로 갈 거야?”
“엄마엄마, 나 아이스크림!”
우리 마을 한편에 위치한 공원에 서서 그 모든 모습을 보고 있다. 그 모든 것은 내가 평생 봐왔던 광경이다. 특별할 것도 없고 새로울 것도 없는 그런 일상적인 풍경.
[텔레포트 완료. 지금부터 본 함은 위성궤도를 돌며 대기모드에 들어가겠습니다. 혹시 착륙을 원하시면 3분 이내에 대기모드를 해제하고 지상으로 내려설 수 있습니다.]
‘그건 참 다행이긴 한데… 지상으로 내려와도 괜찮아? 너는 3문명 이상의 작품인데?’
외계문명은 2레벨 이하의 문명에 간섭할 수 없다. 해당 문명이 탄생할 때부터 그들을 수호하는 성계신이 외부로부터의 간섭을 완벽하게 배제하기 때문이다.
성계신은 [가장 흔한 언터쳐블]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존재지만 그 힘은 오히려 언터쳐블 중에서도 강한 편이라 하위의 존재들은 감히 그 뜻을 거스를 수 없다. 대우주를 호령하는 연합조차도 가급적 성계신을 자극하지 않을 정도인데 전함 하나 따위가 어찌 성계신의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해당 문명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이상 상관없습니다. 관광 목적으로 방문하는 우주선도 많을 정도인데요.]
차분한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 보면 세레스티아 역시 관광 목적으로 지구에 들를 때 개인 우주선을 끌고 왔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향해 새로운 설명이 들린다.
[다만… 대하님, 아니, 함장님의 경우는 상황이 다릅니다.]
‘어? 내가 뭐. 안 좋아?’
[오히려 반대이지요. 함장님은 34지구의 정명자(正命者)이고… 저는 그 누구의 의도도 담기지 않은 당신의 소유물입니다. 전지의 능력을 가진 성계신이 그걸 모를 리 없으니 정말 어지간한 참사를 벌이지 않는 이상 개입할 명분이 없겠지요.]
정명자. 즉 [정당한 운명을 가진 자]는 성계신에게 간섭받는 일이 드물다. 우주에서 지구를 멸망시키기 위한 반물질탄이나 차원탄 같은 걸 쏘면 모조리 가로막히지만, 인간끼리 핵전쟁을 일으킨다면 그 행성이 멸망할 수도 있는 게 바로 그 단적인 예이다. 성계신이 막아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외부의 존재들뿐 그 내부의 존재들에게는 별다른 제약을 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군… 그럼 지구에서 기가스를 타도 괜찮은 거야?”
[그 이상도 괜찮습니다. 물론 지구에 아주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행위를 한다면. 그러니까 기술을 풀어서 미래병기를 대량생산한다거나 하는 일을 한다면 경고가 들어오겠지만… 그 당사자가 정명자인 이상 그조차도 원칙적으로는 잘못이 아닙니다. 성계신의 성향에 따라서는 경고조차 안 하는 경우가 수두룩하고요.]
“그건 꽤 희소식인걸.”
그녀의 설명에 웃으며 답한다.
“고마워, 지니.”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함장님.]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레온하르트 제국을 떠나며 챙길 걸 다 챙겼다. 애초에 계약이 계약이었고 해준 일이 워낙 많았으니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 챙긴 것 중 하나가 바로 내가 한동안 활동했던 거주지이자 직장, 알바트로스 함이다.
‘천현일 소장에게는 미안하긴 하지만 지니랑 많이 친해졌으니… 대신 라이징 스톰을 넘겼으니 괜찮겠지.’
물론 테라급 전함은 레온하르트 제국에게도 엄청난 가치를 지닌 물건이었기에 절대 민간에 넘기지 않는다. 황족과 맺어지면 전함을 제공받을 수 있지만 기껏해야 메가(Mega)급. 스스로의 권력과 세력이 엄청나 대가를 치른다 하더라도 기가(Giga)급을 받는 게 한계일 것이다. 아무리 부자라 하더라도 개인이 항공모함을 가지는 경우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
그러나… 잠깐이라고 해도 황제의 자리에 올랐던 나는 상황이 좀 다르다.
‘엑사급이나 마스터급 우주모함을 안 가져온 걸 감사히 여겨야지.’
사실 레온하르트 제국에도 단 1척만 존재한다는 마스터급 모함이 조금 탐나긴 했는데 덩치가 워낙 큰 데다 속도가 느려서 지구까지 가져올 물건이 아니었다.
“귀환인가.”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깔깔대며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지극히 일반적이고 평온한 그 모습은 우주로 나간 내가 내내 그리워하던 종류의 것.
‘그러고 보니 레온하르트는 잘 돌아갔으려나.’
나는 세레스티아에게 황좌를 넘긴 다음의 일을 떠올렸다.
*
“너에게는 몹시 감사하고 있다.”
탄탄하게 단련된 건장한 체구의 미녀는 황금빛 서기(瑞氣)에 둘러싸여 있다. 분위기는 진중하고 목소리 역시 엄숙하다. 마치 사자갈기처럼 부풀어 있는 황금색의 장발은 마치 스스로 빛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야말로 레온하르트 제국의 시조인 황금사자신(黃金獅子神).
제국에 존재하는 신자만 해도 1억이 넘을 정도로 추앙받는 고위의 짐승신이었다.
“도움이 되었다니 저로서도 영광이로군요.”
예의를 차려 답한다. 굳이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기품과 아름다움이 저절로 그렇게 행동하게 만들었다. 물론 아담과 하와는 그녀보다 더 강하거나 혹은 비슷한 경지의 존재들이지만, 왠지 모르게 만만해 보이고 친숙한 그들과 다르게 그녀에게서는 강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후후, 착한 꼬마구나. 그래. 그렇다면 보답을.”
“라이.”
“앗, 자기! 더 누워 있지 않구!”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황금사자신의 몸이 획 하고 돌아간다. 엄숙하던 말투는 마치 꿀이라도 탄 것처럼 달콤하게 변해있다. 조금 전 분위기를 잡던 여인과 동일인, 아니, 동일신 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보답을 해야 한다. 제대로 된 보답을.”
“응응, 물론이지! 우리 하르 지치고 피곤할 텐데 들어가서 푹 쉬고 있으면.”
“라이.”
금색의 장발을 길게 늘어뜨린 사내, 레온하르트가 황금사자신의 말을 자른다.
“네 말대로 나 몹시 지치고 피곤해. 정신적으로도 한계지.”
“아, 알고 있어. 그러니까.”
“라이.”
“흐늉… 하지만 이 녀석 부하 중에 내 대적자가.”
“괜한 수작으로 내 체면 깎지 말고 빠져.”
“흐늉늉.”
거듭된 단호함에 황금사자신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찌그러진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대충 치운 레온하르트가 천천히 걸어와 내 앞에 선다. 본디 강건한 육신을 가지고 있었을 그이지만 긴 시간 동안 강대한 저주에 시달려서인지 많이 쇠약해진 상태다.
당연하지만 그가 저주에서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은 내 덕이다.
그를 괴롭히던 강대한 저주는 나까지 집어삼키려다 통째로 박살 나 사라지고 말았다. 그 직후 문을 열어낸 나는 그를 버리고 떠났지만, 그가 깨어난 것을 감지한 황금사자신이 날아와 그를 수습했다고 한다.
“괜찮은 겁니까?”
“물론 안 괜찮지. 하지만 시간도 충분하고 더 이상 제국을 관리할 필요가 없는 몸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뼈가 있는 말에 하하 하고 웃는다.
“세레스티아에게 황좌를 넘겨준 게 마음에 안 드나요?”
“마음에 안 드는 걸 떠나서 일을 이렇게까지 벌였으면 최소한 10년은 황좌를 맡아줘야 예의지. 거기 좀 앉아보려고 발버둥치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냥 버리고 가다니.”
“하지만 싫은걸요.”
“아니, 대체 권력 금력 무력 다 챙길 수 있는 황좌가 왜 싫어. 너 무슨 신선이라도 되냐? 내일이라도 우화등선할 기세구만.”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빈정거리고 있음에도 참으로 잘생긴 사내다. 전체적으로 병색이 완연한 인상인 데도 오히려 퇴폐적인 미가 느껴질 정도. 세레스티아를 볼 때도 느꼈던 감정이지만 이놈의 신족들은 하나같이 너무 잘생겨서 화가 난다.
“뭐 사람마다 원하는 삶은 다르게 마련이니까요.”
“후우… 그 반응을 보니 금전적인 보상은 별 의미가 없겠구먼.”
“그렇지요.”
내가 금전적인 문제에 완전히 초탈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필요 이상으로 많이 원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손에 넣은 황좌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겠지.
“다행이라고 해야 하려나… 내 친구 중에도 너 같은 놈이 있어서 대충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다.”
“친구요?”
“그래. 망할 놈이 가진 거 다 버리고 선계로 우화등선해 버리더니 무슨 높은 자리도 아니고 한직을 맡아서 굉장히 행복하게 살더군.”
속이 뒤틀린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다.
‘말하자면 알바트로스함에서 꿀을 빨던 초창기 때의 나와 비슷한 상황인가? 생각해 보면 우주로 나와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그때였던 것 같기도 하고.’
“뭘 수긍하고 있어.”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노려본다. 그러나 그는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나를 향해 말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도록 하지.”
그리고 그가 제시한 방법은 나에게 몹시 만족스러운 종류의 것이었다.
*
‘지금 어디에 있어?’
[위성궤도를 따라 지구를 돌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관측되지는 않겠지?’
[은폐모드를 유지 중입니다. 2문명의 기술력으로는 인식이 불가능하죠.]
녀석의 말을 들으며 벤치에서 일어나 집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다행히 레온하르트 제국은 금방 안정되었다.
황위를 [선물]받는 상황에 사람들이 반발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별로 그렇지도 않았다. 황금사자신과 맺어져 제국을 이끌었던 초대 황제의 전례 때문인지 [나]라고 하는 언터쳐블과 맺어진 세레스티아의 존재를 비교적 쉽게 받아들인 것이다.
‘어쩌면 무시무시한 폭군이 탄생하나 하고 불안해하다가 안도한 것일 수도 있고.’
피식 웃으며 세레스티아를 떠올린다. 아무래도 황좌에 앉기에는 세력도 무력도 부족한 그녀이지만… 우주 최강의 기가스 라가 지켜줄 테니 마냥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내 신성을 품은 라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은 그야말로 무진장(無盡藏).
레온하르트 제국은 하운드 공작가가 무너지며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지만 녀석의 존재로 인해 전력은 오히려 늘어났다. 세레스티아를 도우라는 명령도 남겨놓은 상태이니 잘만 다룬다면 정국을 안정시키는 데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여기가 네 고향이야?]
‘응. 정말 오랜만에 돌아왔어.’
안경 형태의 마도병기 우자트를 통해 아레스와 통신하며 걷기 시작한다. 더 이상 시간 낭비할 필요 없이, 일단 집에 가서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주라니. 전쟁이라니. 황제라니.”
헛웃음이 나온다. 하나같이 너무나 거창한 이야기라 현실감이 없었다. 이렇게 지구로 돌아오고 나니, 그 모든 게 꿈이었던 것 같다.
그래, 이제 모든 고난이 끝이다.
이제 골목 하나만 더 지나면, 내 인생에 다시없을 고난과 역경은 모두 끝나고 평범한 일상이 찾아올 것이다. 다시 평범한 고등학생으로서 학교에 다니며 잔잔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
“크하하하하! 역시! 역시 돌아왔구나! 역시 나타날 줄 알았지!”
날카로운 검을 가진 사내가 호탕하게 웃으며 나를 덮쳐 온다. 참으로, 참으로 현실감 없는 광경이다.
탕!
“크하하아… 아… 어? 총? 내가 총에 맞았다고?”
걸어간다. 그래. 이 골목이다. 이 골목만 지나면 내 인생에 모든 고난은 끝나고…….
“나타났구나! 대마녀의 자식!”
“크하하! 역시 복권은 긁고 보는 법이라니까! 나에게도 이런 행운이!”
탕! 탕!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는지 바닥에 누워 있는 두 사내를 발로 대충 차서 치우고 계속 걷는다. 골목이 거의 다 끝나가고 있다.
그래! 이 골목이야! 이 골목만 지나면!
마침내 나의 고난은.
“아.”
드디어 집에 도착해서 발걸음을 멈춘다.
[뭐야, 이 공터는. 아니, 그보다 아까 그놈들 뭐냐? 그렇게 막 쏴버려도 괜찮아? 아니, 뭐 어차피 먼저 덤빈 건 그놈들이다만.]
[하위문명치고는 능력자들 평균 레벨이 꽤 높군요. 조심하십시오, 함장님.]
아레스와 지니가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았지만 들리지 않는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텅 빈 공터.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주변 모든 배경이 다 그대로였지만, 오직 그곳만이 내 기억과 달랐던 것이다. 우주로 나가 계속해서 그리워했던. 내가 평생을 살아온 공간.
집.
그렇다. 집이, 나의 안식처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것이다.
“어째서.”
모든 고난을 이겨냈다. 전쟁도, 고문도 경험했고 적들과 싸우고 학살마저 저질렀지만, 마침내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지구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를 반겨줘야 할 집은 어디에도 없다. 태연하게 웃으며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어야 아버지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어째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집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때였다.
“앗! 정말로 돌아왔구나!”
언젠가 들어본 목소리다. 고개를 돌려보니 캐주얼한 복장을 입고 있는 늘씬한 소녀가 나를 보고 있다.
지구 자체가 오랜만이듯, 그녀 역시 오랜만에 본다.
[원일 고등학교]
[인간 사냥꾼 이경은]
과거의 나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칭호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 경은이 다가온다.
“유학은 잘 다녀왔어?”
“유학?”
“응. 관일한 선생님이 친히 학교에 왕림하셔서 말씀해 주시고 갔는데. 1학기 들어서자마자 일이 생겨서 미안하다고… 뭐 어쨌든 따라와. 여기는 위험하니까.”
“위험하다고?”
“너는 잘 모르겠지만 그럴 일이 있어. 관일한 선생님 부탁으로 우리 집에 잠시 널 머물게 해달라고 하셨거든.”
덥석, 하고 내 손을 잡더니 이내 걷기 시작한다. 나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공터가 보인다.
“하.”
쓰게 웃는다. 왜냐하면 알았기 때문이다.
고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당신의 머리 위에 1부. 대우주편이 종료되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바로 2부로 이어가야 하지만… 한동안 휴재입니다. 슬슬 디오를 완결시키려구요ㅠㅠ 으으 손도 늦고 머리는 더더욱 늦어서 독자분들께 언제나 죄송스러울 뿐입니다ㅠㅠ 시간과 공간의 방 같은 거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할 정도;
디오 완결권을 책 한 권으로 갈지 아니면 연재로 하는 게 나을지는 고민 중입니다. 완성도를 높이려면 책으로 딱 하고 내는 게 좋을 테지만 연재로 하는 게 더 빨리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출판사와 논의해서 좋은 방향으로 진행하겠습니다!
<1부 完>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