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6 / 0117 ----------------------------------------------
신으로서, 인간으로서
세레스티아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순간.
번쩍!
태양의 왕관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신성을 이겨낼 정신을 만들지 못하는 이상 무슨 짓을 해도 침식을 막아낼 수 없어.’
그리고 그렇기에 사실 아담이 제시한 길은 꽤나 합리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나라면 아카식 레코드 안에서 수백 년씩이나 있을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기에 더욱 그렇다.
짧으면 10년, 길어도 30년.
최상급 신위를 가진 아담이 백 수십 년간 헤매면서도 아직 가닥을 잡지 못했는데 겨우 저 정도 시간밖에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느껴지는 걸 어쩌란 말인가?
아카식 레코드를 관조할 때의 나는 마치 [원래 그러한] 존재이기라도 한 것처럼 거기에 안착했고, 또 아주 잠깐의 관조만 했을 뿐인데도 놀라운 성장을 보였다. 10년, 30년도 여유로운 예측이라 어쩌면 그보다도 더 빨리 가능할지도 모르지.
‘게다가 현실의 상황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
하워드 공작가를 궤멸시킨 상황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나를 폭군으로 보는 모양이지만 신성에 잠식된 나는 단지 나와 다를 뿐 악한 존재가 아니다.
나는 좋은… 아니, 뛰어난 황제가 될 것이다.
하워드 공작가를 과하게 벌한 것은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황제가 된다면 두고두고 말썽을 부릴 수많은 귀족이 이 한 번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서 감히 반항할 엄두조차 못 내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지(全知).
뒤에서 일을 꾸미는 음모자에게… 전지의 능력은 그야말로 천적이나 다름없다. 제국에는 황제의 죽음을 비롯한 다수의 음모가 복잡하게 엮여 있었지만, 그것을 통찰(洞察)한 내 행동에 그중 태반이 박살 나버렸다는 것이 바로 그 훌륭한 증거이다.
어디 그뿐인가? 하워드 공작가를 뒤에서 조종하던 비밀결사 [일루미나티]는 뭘 해보지도 못하고 공작가와 같이 멸망했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황제 암살이라는 대사건을 일으킨 집단치고는 너무나 허무한 결말이었다. 그들은 온갖 정치적인 대책과 악독한 음모들을 준비했지만, 그 모든 것이 압도적인 힘 앞에서 부서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개인적인 욕망이 없어. 아마 제위에 오른다면 황제로서의 업무에 충실하겠지.’
신성에 침식된 나는 기본적으로 오만하고 인간을 하찮게 보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증오하거나 일부로 해할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이 먼저 자극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이끌어 미래로 나아가겠지.
‘그야말로 완벽한 황제다.’
만약 신성에 취한 내가 황제가 된다면… 레온하르트 제국은 개국 이래 최대의 부흥기를 맞이할 것이다. 내가 [지식]까지 풀기로 작정한다면 문명 레벨을 올리는 것조차 가능할 테니, 그냥 적당히 덩치만 큰 제국 클래스 정도가 아니라 노블레스나 엘로힘도 함부로 여기기 어려운 대세력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 역시 변할 것이다. 하늘 도서관 안에서 끝없이 관조를 거듭한다면… 어쩌면 나는 유산을 수습하여 다음 층으로 나아가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대우주에도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진정한 대신격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래서?’
누군가는 그것을 자신의 종족을 멸망시키거나 사랑하는 모든 걸 다 잃어버리는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얻길 원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다.
대신격이라니.
잘 살고 있던 고딩 데려다가 이 무슨 떡국 끓여 먹는 소리란 말인가?
[뭐? 아니, 잠깐. 멈춰봐. 너 지금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걸 하려는 건 아니지?]
‘글쎄.’
[글쎄라니! 제정신이 아니구나! 아, 아버지의 신성을 포기하겠다고?]
다급해 소리 지르는 녀석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인다. 왕관에서 뿜어지는 빛이 너무나 강해져 이제는 주변 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왜 이렇게 기겁해. 너한테는 오히려 좋은 일일 텐데.’
한번 예시를 들었었지만 지금의 아담과 나는 유산을 두고 다투는 친아들과 양아들 같은 관계다. 당연하지만 내가 유산을 포기한다면, 그 혜택은 고스란히 그가 보게 되는 것.
과연 내 말에 아담이 멈칫한다.
[그, 그건…….]
‘아냐?’
[아니 맞다…….]
그러나 왠지 시원찮은 반응. 분위기를 보니 아담 스스로도 자기가 왜 그러는지 이해를 못하는 느낌이었다.
‘뭐, 내가 알 바 아니지.’
나는 알 수 있었다. 이대로 현실을 내버려 두고 하늘도서관에서 스스로를 단련하는 게 정답이라는 것을. 제국은 번창할 것이고, 내 이름은 온 우주에 널리 퍼질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은 인간 관대하가 아니다.
‘신으로서의 이상 따위.’
나에게는 인간으로서의 자아가 더욱 중요하다. 나의 인생은 온전히 나의 것. 나의 자아 자체가 변질되어 버린다면, 그 후에 아무리 큰 것을 얻어도 그건 내가 얻는 것이라 인정할 수 없다.
구구구구궁-----!
그리고 그때 즈음에 작업이 완료된다. 최대한 조용히 하고 싶어도 움직이는 힘이 너무나 커서 불가능하다.
“맙소사, 태양의 왕관이… 대체 뭘 한 거야?”
내 바로 앞에 서 있던 셀은 빛을 뿜어내다 못해 숫제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한 태양의 왕관을 보며 신음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신음하는 또 다른 존재가 있었다.
[무슨… 신성을 분리한 게 아냐?]
‘쯧쯧. 지금 이 상황에서 신성을 어떻게 분리해. 저 죽거든요?’
이미 신성은 내 영혼과 하나나 마찬가지라서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팔 하나를 몸에서 잘라낸다고 죽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머리를 잘라내면 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담은 내가 왕관에 신성을 담을 거라고 예상한 모양이지만 그런 게 아니다. 내가 담은 것은.
[영혼… 영혼 전체를 다 담았군.]
‘그래. 영능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나]는 지금 이 몸이 아니라 저 왕관이지.’
나에게 있어 육신이란 껍데기이자 족쇄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족쇄가 있음으로써 나는 비로소 인간일 수 있다.
때문에 나는 신성과 영혼을 분리하는 대신, 정신과 영혼을 분리해 각각 태양의 왕관과 육체에 나눠 담았다. 마치 신계의 신이 하계에 화신(化身)을 만드는 것과 같은 과정.
다시 말하지만 신성 그 자체에는 자아가 없기 때문에… 굳이 멀리 있는 정신을 침식하기 위해 쫒아올 일은 없다. 이렇게 정신과 영혼을 분리하는 것만으로도 침식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신성과 너의 정신에 균열을 만들면… 그걸 다시 포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아예 포기하려고도 했는데 그쯤이야.’
이로서 대신격은 영원히 바이바이일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신이 되어 세상을 내려다보는 일 따위는 원해본 적이 없기에 망설일 필요가 없는 상황.
그런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아담이 고개를 번쩍 든다.
[…아니, 잠깐. 그럼 지금의 네 육신이 죽으면 상황이 어떻게 되는 거지?]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이 대우주에 언터쳐블들조차 벌벌 떨 절대 무적의 기가스가 탄생하는 거지. 그 꼴 보기 싫으면 하와보고 더 철두철미하게 지키라고 그래.’
[…….]
할 말을 잃어버린 아담을 두고 왕관을 들어 올린다. 이제 내가 뿜어대던 엄청난 기세는 온전히 왕관으로 옮겨졌다. 모두가 태양의 왕관에서 뿜어지는 어마어마한 기운을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라, 셀을 부탁해.’
[…왕이여.]
지금 상황을 아는 것인지 씁쓸한 목소리에 답한다.
‘이제 왕이 아냐. 때려치울 거거든.’
[하지만… 아니, 명에 따르겠다.]
라에게서 엄청난 힘과 위엄이 느껴진다. 내 영혼을 그 안에 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 영혼은 나의 것이니 그가 신성을 발휘하는 일은 있을 수 없겠지만, 단지 그것을 안에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라의 성능은 경이적으로 상승된다. 아마 지금 이 순간, 이 대우주에 존재하는 최강의 기가스는 바로 녀석일 것이다.
-황제로서 첫 번째이자 마지막 명령을 내리겠다.
다시 선언한다. 수많은 눈이 나와 내가 들고 있는 왕관, 그리고 그 앞에 있는 세레스티아를 바라보고 있다.
-바로 그녀가
셀의 머리에 왕관을 씌운다.
-제국의 새로운 황제다.
빛이 뿜어진다. 거대한 신성이 라의 안에 담기자 빛을 근본으로 하는 라의 힘이 거기에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눈부시게 빛나는 왕관을 쓴 세레스티아는 마치 빛의 여신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여신처럼 보이는 셀이 말을 건다.
“너… 사람들이 이런 걸 납득할 것 같아?”
코가 맞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를 두고 속삭인다. 사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불만이다. 나야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힘으로 제국을 공포에 질리게 함으로써 별다른 세력 없이도 황위를 강탈하듯 얻어낼 수 있었지만 그녀는 상황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과연 다른 황족들이, 귀족들이, 그리고 제국민들이 황좌를 [선물] 받는 상황을 납득할 것인가?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가볍게 웃었다.
“그거야 네가 알아서 할 문제지.”
“뭐?”
“원래 이게 네 목표였잖아? 이쯤 해줬으면 뒤처리 정도는 할 줄 알아야겠지. 위자료로 이 정도면 정말 엄청난 수준이라고.”
“위자료……?”
“그래. 계약대로.”
나는 웃으며 세레스티아를 바라보았다.
“이혼하자.”
“…….”
세레스티아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 역시 웃음을 터뜨렸다.
“마, 맙소사. 푸하하하하! 너 진짜! 큭큭큭!”
빛나는 왕관을 머리에 쓰고 경망스럽게 웃는다. 이 모습이 방송을 타면 곤란할 테지만 태양의 왕관에서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빛은 우리의 모습을 외부로부터 가려주었다.
“이혼하는 와중인데 이제 와서 반하지는 말고.”
“아니, 너, 푸하하! 와, 몇 번이고 날 차더니 최후의 최후까지.”
마구 웃는다. 어쩐 일인지, 그녀는 꽤 즐거워 보인다.
“하아, 하아… 정말이지.”
“너무 웃는다, 너.”
이제는 눈물까지 글썽이는 그녀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이자 세레스티아가 말한다.
“당연하지 바보야. 하지만… 좀 아쉽네. 너를 좀 더 일찍, 다른 방식으로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크게 웃느라 헝클어진 옷매무새를 고치며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별을 담은 듯 반짝이는 그녀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한다.
“왠지 좀 아쉽지만… 그래, 계약대로.”
“계약대로.”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고 하면 짧은 나의 우주여행이 끝났다.
그리고.
그리고…….
나는 이혼남이 되었다.
============================ 작품 후기 ============================
다음 편은 에필로그. 즉시 2부(어나더 플레인 편)를 시작할지 잠시 쉬고 디오를 끝낼지는 지금 고민 중입니다 ㅠㅠ 으으… 둘 다 하는 게 최상인데 왜 하지를 못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