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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으로서, 인간으로서
촤악.
순식간에 배경이 변한다. 마치 생생한 꿈을 꾸다 단박에 잠에서 깨어나는 것만 같은 불쾌한 감각. 그리고 그렇게 깨어난 나는 내가 옥좌(玉座)에 앉아 수천 명의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맙소사. 이 자식.’
그리고 몰아치는 기억을 받아들이며 눈살을 찌푸린다.
‘추진력이 너무 엄청나잖아.’
그것은 즉위식이었다.
“이것… 참.”
셀 수 없이 많은 귀족이 새로운 황제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 있다. 그냥 적당히 올 수 있는 귀족만 모인 게 아니라, 그야말로 제국의 [모든] 귀족이 빠짐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그뿐이 아니다.
자리 한편에는 수십 명이 넘는 미남미녀가 굳은 얼굴로 옥좌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레온하르트 제국의 황족으로, 그중에는 초월지경에 올라 그 어떤 공식 행사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원로들까지 있었다.
그야말로 건국 이래 최대의 참석률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즉위식의 분위기는 무겁다. 모두의 얼굴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레온하르트 최대 세력 중에 하나인 하워드 공작가를 궤멸시켰으니 당연하지. 심지어 밖에 나가 있던 전함들까지 다 날려 버렸으니…….’
당연히 저항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태양의 왕관을 쓴 아레스를 막을 수 없었다. 심지어 나는 자신의 적을 명확히 한정하고 그 명분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물론 증거까지 보인 것은 아니지만… 명분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황녀인 세레스티아와 혼인해 태양의 왕관을 쓴 내가 정치적인 수완까지 발휘하자, 레온하르트 제국은 총력을 집중시키는 것조차 불가능한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피의 숙청을 완벽하게 성공했다. 자신을 해치려 한 하워드 공작가의 존재를 제국에서 지워 버린 것이다. 전지의 힘을 지닌 내 시야에서 벗어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일부 세력이 살아남아 복수를 기약하는 일 따위는 일어날 수 없었다.
‘젠장…….’
기분이 우울하다. 비록 신성에 먹혀 벌인 일이라고 해도 그것은 모두 나의 손으로 저지른 일이었으니까. 술 먹고 깨었더니 살인을 했더라. 뭐 이런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자고 일어났더니 히틀러보다 더 잔혹한 존재가 되어 있는 셈이니 만일 내가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죄책감으로 정신이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그보다 더 짜증나는 것은, ‘왜 고작 그런 일로 후회하지?’라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떠오른다는 점이다.
‘나를 오염시키는군…….’
신성 그 자체에는 자아가 없다. 즉 문을 연 상태의 나는 나와 별개의 인격이 아니라 신성에 의해 [변질]된 상태의 나라는 것. 차라리 아담처럼 내면세계로 가라앉은 후 스스로를 보호하면 모르겠는데 지금처럼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행위를 반복하면 [나]를 이루는 인격 자체가 변할 위험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벌써…….
걸어라, 가시밭길을 지나
노래하라, 절망의 끝에서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가 온몸을 감싼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렬한 호소력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건 절대 평범한 노래가 아니었다.
[놀라운 능력이군.]
‘아담.’
시야의 한편에 아담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한 내 정신을 통해 이곳을 인식하는 모양이었다.
[능력 자체는 그렇게 희귀하다고 할 수 없는 종류이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영혼과 정신이 비범하군. 단순히 자신의 영혼을 발현하는 것만으로 이런 힘이라니.]
‘이런 힘?’
[너를 강제로 깨웠잖아.]
‘그건… 그렇군.’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노래하고 있는 세레스티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새로운 황제가 보인 폭군의 기질에 공포에 질려 있던 사람들조차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그만큼 그녀의 노래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뜻이다.
‘인기는 외모로 끌었다더니…….’
그녀의 새빨간 거짓말에 헛웃음 지으며 눈을 감았다. 가라앉았던 기분이 조금씩 나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더 감상할 시간이 없다는 듯 아담이 말한다.
[시간이군. 그만 돌아와라.]
‘돌아오라고?’
[그래. 그녀의 노래가 잠시 너를 끌어당길 수 있었는지 몰라도… 잠깐일 뿐이야.]
그의 말대로 잠시 잠잠해졌던 신성이 다시 깨어나려는 것이 느껴진다. 사실 이런 침식은 스스로 느낄 수 없어야 하지만, 나는 문이 열리는 이미지를 몇 번이고 반복해 완성한 상태다.
덜컹, 덜컹덜컹!
문이 연신 흔들린다. 지금은 내 정신이 안정되어 있는 상태이기에 단번에 뚫리지는 않았지만, 결국 시간문제일 뿐 침식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더 시간을 끌어봐야지.”
거대한 사슬과 튼튼한 자물쇠의 모습을 이미지한다. 어차피 [문] 역시 실존하는 물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렇게 이미지한 자물쇠와 사슬로 그 문을 잠글 수 있었다.
철컥!
문을 쇠사슬로 감고 거기에 다시 자물쇠를 잠근다. 물론 거대한 신성의 힘을 잠깐의 이미지만으로 봉인할 수는 없으니 언젠가는 부수고 나오게 되겠지.
쾅!
철컹! 철컹!
거세게 열린 문이 쇠사슬에 막혀 소음을 내기 시작한다. 열린 문에서 마치 증기가 새어나오듯 뿜어져 나온 신성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정도라면 충분히 견딜 수 있다. 하늘 도서관,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하면서 나의 정신이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일 뿐이었는데 말이지.’
쏟아지는 신성에 서서히 전신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아래에 있는 녀석들이 보기에 하늘을 찌를 듯 묵직했던 위압감이 잠깐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그 주도권을 원래의 내가 잡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 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좋아.”
가볍게 호흡을 고른다. 정신을 집중하고 나의 모든 기운을 끌어 올렸다. 영혼의 깊은 곳으로부터 힘을 끌어당겨 문 밖으로 뽑아냈다. 문을 연 상태에서도 쉽게 여길 수 없을 정도의 전력(全力)이었다.
구구구구-------!
어마어마한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그 압도적인 기운에, 인상을 굳힌 채 자리에 앉아 있던 모든 황족과 귀족들이 벌떡 일어났다.
“하, 하하… 초, 초대 이상의 힘이라고?”
“그 정도가 아니라! 맙소사! 이, 이건 황제 클래스 정도로 낼 수 있는 힘이 아냐!”
“어, 어, 언터쳐블……! 황제 클래스가 아니라 언터쳐블이다!”
“전지(全知)의 권능을 가진 것 같다는 정보에 혹시나 했지만!”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필사적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문 안에서 쏟아지는 힘의 규모가 너무나 커서 나까지 휩쓸릴 것만 같다.
그러나 견딘다. 참아서 몽땅 뽑아내었다.
/-오늘부터 내가 제국의 황제다!(서체 볼드/
그저 단순한 외침이 아닌 포효(咆哮)가 온 우주로 퍼져 나간다. 황성과 가장 가까운 제 13지구는 실질적으로 그 음성에 노출되었고, 음성이나 영상을 비롯한 온갖 방식으로 [나]를 보고 있던 모든 존재마저도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심약한 자들이라면 라디오 방송을 스쳐 듣고도 자리에서 주저앉을 정도로 엄청난 위압(威壓)이었다.
/-나의 즉위에 반대하는 자 있는가!(서체 볼드/
이어서 뿜어져 나오는 외침에 강대한 정신력을 가진 초월자들조차 휘청거렸다.
“마, 말도 안 돼. 화, 황위를… 황위를 이렇게 막무가내로 이을 수는…….”
7대장군의 수장으로 공작들과 그 이름을 나란히 할 정도로 강대한 전투력을 가진 천화대장군(天花大將軍:일종의 합참의장), 에반 레온하르트가 탄식하듯 말을 내뱉었지만, 그 역시 탐스럽게 관리한 하얀색의 수염을 덜덜 떨기만 할 뿐 일어나 내 말에 반대하지 못한다.
스스로 강대한 힘을 가진 초월자인데다가 모든 군권을 한 손에 쥐고 있는 그조차 그럴진대 감히 누가 여기에 반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즉위식 분위기는 무겁다.
전지전능(全知全能)한 폭군(暴君)의 등장.
여기 있는 귀족이나 황족들은 물론이고 각종 매체를 통해 나를 보고 있는 모든 존재가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을 것이다. 수천만 명의 사람을 학살하고 초월자와 황태자를 해치워 하나의 세력 자체를 소멸시켜 버린 내가 황위에 앉으면 과연 제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모두 미칠 지경일 것이다.
‘원래는 절대 두고 보지 않을 생각이었지.’
사실을 말하자면 지금 내 앞에 있는 황족과 귀족 상당수가 기회를 잡아 나를 총공격하려고 계획을 짠 상태이다. 이미 주변에는 레온하르트 제국의 총력이 집중되어 있었고,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천화대장군 에반이 바로 이 자리에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들 전부가 내 압도적인 위압에 짓눌려 버린 지금 모두 소용없는 계획이다.
뚜벅, 뚜벅.
포효 후에 옥좌에서 일어나 계단을 내려간다. 수천수만의 시선이 나에게 몰려 얼굴이 따가울 지경이었지만, 나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그 아래에 있던 세레스티아에게 다가갔다.
“너… 정신 차렸구나?”
“호오.”
놀라 그녀를 바라본다. 물론 지금의 나는 신성에 먹힌 나와 다르지만 그걸 외부에서 관측할 수가 있다니.
‘그러고 보면 초월자인 로스타도 나를 그냥 평범한 인간으로 인식했는데 그녀는 내가 지구에 있을 때부터 나에게 뭔가를 느꼈지.’
나를 보자마자 뭔가를 느낀 존재는 딱 3명이다. 그 첫 번째가 바로 그녀이고 두 번째는 전대 황제, 그리고… 노블레스인 그림자용 어둑서니.
초월자인 어둑서니나 전대 황제야 그렇다고 쳐도 비초월자인 그녀가 나를 관측할 수 있다는 건 꽤 신기한 일이다. 문을 열지 않는다면 다른 초월자들조차 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이제 와서 늦은 질문 같지만, 어쩔 생각이야?”
세레스티아가 도전적인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내 위압은 그녀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텐데도 이렇게 나를 마주하고 말을 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녀가 얼마나 강한 정신의 소유자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고생했어.”
“…….”
순간 세레스티아의 표정이 흔들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묘한 것이 되었다. 내가 지금 한 말이, 단지 지금 이 한순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그녀는 이내 안정을 되찾고 투덜거렸다.
“뭐라는 거야.”
뾰로통한 목소리에 웃는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 말한다.
“내 아내라 그러는 게 아니라… 참으로 아름다워. 그렇지 않나?”
그 뜬금없는 말에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다. 다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조차 못하는 상태.
그러나 유일하게 내가 뭘 하려는지 깨달은 아담이 무섭게 얼굴을 찡그렸다.
[너, 너 이 미친 자식. 설마?]
그러나 그가 신음하거나 말거나 나는 내가 쓰고 있던 왕관을 벗었다.
“황제가 된 기념으로… 우리 아름다운 신부에게 선물을 주고 싶군.”
“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세레스티아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순간.
번쩍!
태양의 왕관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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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1부 마지막 편으로 뵙겠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에는 에필로그겠군요. 이놈의 분량조절 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