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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113화 (11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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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으로서, 인간으로서

그러나 무지막지한 힘이 문 안에서부터 느껴진다. 문을 단단히 잡고 있음에도 그 틈으로 새하얀 증기가 새어 나오는 기분이다.

덜컹! 덜컹! 덜컹!

대하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문을 가로막았지만, 술을 계속 마시다 보면 아무리 집중해 봐야 정신이 혼미해지듯 머릿속이 몽롱해지고 있었다.

덜컹! 덜컹! 쾅!

그리고 강제로 문이 열렸다.

“네 이놈!!”

뒤에 있는 초월자들의 보조를 받은 하워드 공작이 아레스의 가슴 장갑을 부수고 들어온다. 물론 아레스에 탑재된 아발론 시스템이 조종사인 대하를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번에 대하에게 해를 끼치지는 못했지만 지금처럼 무방비 상태로 있다면 그렇게 되는 것도 시간문제.

그러나… 그 잠깐의 시간 동안 혼란에 빠져 있던 대하의 표정이 침착하게 변한다.

“아, 이런. 미안, 미안.”

파라락!

하워드 공작에게는 보이지 않는 두터운 책장이 넘어가 어빌리티를 변경한다. 그리고 그러자 부서졌던 아레스의 외부 장갑이 삽시간에 복구되기 시작했다.

“아, 안 돼!”

부서진 장갑 사이로 슬쩍 보였던 대하의 모습이 다시 가려지자 당황한 하워드 공작이 마구 주먹을 휘둘렀지만 더 이상 아레스는 무방비로 당하지 않았다. 아레스의 전신으로 뿜어진 영파(靈波)가 아레스에 접근하던 모든 적을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수리는 순식간이다.

뒤로 튕겨 나갔던 하워드 공작은 어느새 원상 복구되어 기스 하나 없는 아레스의 장갑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떨어져 나갔던 단 한 개의 나사마저도 제자리로 돌아가 피해를 입기 전보다 더 튼튼해진 상태였다.

고오오오--!

아레스의, 그리고 라의 아이언 하트가 가동하며 어마어마한 영압이 불꽃처럼 타오른다. 하워드를 내세운 초월자들이 다시 그에게 접근하려 했지만, 이미 냉정을 되찾은 대하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그들을 압도하기 시작한다.

“이럴 때 마음이 흔들리다니, 큰일 날 뻔했어.”

피식하고 웃자 아레스가 한 걸음 내디딘다. 불타오르던 영력이 사방으로 흩어져 회색빛의 거인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아레스의 초월기, <전신의 군세>였다.

“이제 시작인데 말이야.”

*

‘한심하군.’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맨 처음 문을 열었을 때를 떠올린다. 그때의 나는 평상시의 나와 다르게 단호하고 거칠었지만, 그렇다고 원래의 나와 완전히 다른 성향은 아니었다. 평시도 아니고 전쟁터였음에도 적을 죽이기보다 제압하는 방향으로 움직였고, 이후 대회의장에서 귀족들을 제압했을 때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때문에 나는 비록 그 방법이 난폭하거나 과격할 수는 있어도 문을 연 상태의 내가 저지르는 일들은 모두 내가 원하는 일이다, 라고 판단을 내렸다. 내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고 싶던 일들을 힘을 가진 상태에서는 참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상상하기도 끔찍한 대학살을 저질렀다.

하워드 공작을 비롯한 일당을 처리하는 것에는 충분히 동감할 수 있다. 남을 죽이려 한다면 자신 역시 죽을 각오를 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그가 먼저 나를 공격한 이상, 거기에 대한 반격은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단지 하워드 공작가에 소속되어 있을 뿐인 사람들은 대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그들은 하워드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 그리고 왜 그랬는지 알지도 못한다. 참여한 것도 아니고, 동의하지도 않은 일에 함께 처벌당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이건 절대 내가 원할 일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적들과 싸웠을 때나 세레스티아를 안쓰러워하는 마음에 그녀를 구했던 일이라면 백번 양보해서 내 깊은 곳에 그런 마음이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지만, 이건 아니다.

‘…끝장이군.’

[밖]의 모습이 보인다. 빛나는 왕관을 쓴 아레스가 수십 척의 전함을 때려 부수고 있었다.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다.

아레스에 올라타 신의 권능을 휘두르는 나의 전력은 그 자체로 어지간한 중급 신을 뛰어넘는다. 제국 클래스의 국가라면 대우주에서도 그리 작지 않은 규모의 세력이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감히 감당할 적이 아니었던 것이다. 제국의 총력을 집중해 상대해도 될까 말까 한데 지금처럼 [습격당한 황제]라는 명분을 가진 존재를 어찌 상대한단 말인가?

그나마 다행인 건 모든 적을 학살하는 게 아니라 오직 하워드 공작가만을 짓밟고 있다는 점이지만…….

‘끝장이야.’

너무 허탈해서 헛웃음만이 나온다. 이 거대한 악업을 어찌 감당해야 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신혈 각성이 마냥 편리한 힘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는데.’

만취 상태에서 주정을 하는 정도라면 조심하는 선에서 자제할 수 있다.

그러나 만취 상태에서 살인을 한다면 어떨까? 심지어 술에 취해 있는 상태에서는 그 누구도 나에게 죗값을 물을 수 없다면?

‘일단… 일단 술을 끊어야지.’

“안 될걸.”

그러나 그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머리를 관통하고 지나간다.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린 나는 어느새 아무것도 없던 어둠이 특정한 장소로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넌…….”

“신혈 각성을 그만할 생각이지? 늦었다, 어리석은 것아.”

전체적으로 차분한 인상의 흑발 미남이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그러나 나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없는 듯 거대한 문에 등을 기댄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잠깐… 뭐야. 몸이 있잖아? 그보다 여기는 어디야? 뭐가 이렇게 커?”

어둠 속에서 신성에 취한 내가 분탕질 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고 있던 나는 내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신전을 보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기가스 전용 신전이라도 되는 것인지 문짝의 크기가 어지간한 건물보다도 더 크다. 이 안에서 나와 비슷한 사이즈를 가진 건 조금 전에 나를 비웃은 사내뿐이었다.

“쯧. 이런 모자란 놈 때문에… 집중해, 멍청아. 집중해서 다시 한 번 도서관을 봐라.”

“집중……?”

의아해하면서도 다시 한 번 신전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러자… 문에 달려 있는 손잡이가 내 키만 하던 신전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한다.

그그긍---!

세계 전체가 뒤틀리는 느낌이다. 제대로 그 형태를 잡을 수도 없을 정도로 거대한 신전이 순식간에 크기를 줄여 나가는 것. 그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모습에, 나는 내가 있는 곳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 적응은 빠르군. 여기서 헤매고 있었으면 그냥 버리고 들어갔을 텐데.”

“…그런데 넌 누구야?”

“그걸 질문해야 아나? 너는 [볼] 수 있잖아?”

싸늘한 목소리에 슬쩍 그의 칭호를 바라본다.

[리전]

[첫째 아담]

“이런.”

멈칫한다. 비록 지금의 그와는 비슷하지도 않지만, 새카맣게 타오를 정도로 선명한 증오와 질투를 내보이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네가 밉다.

그 압도적인 증오, 원망, 질투와 혼란… 모든 것을 초월한 신이 아니라 울며 방황하는 아이와도 같은 감정의 폭풍.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물론 지금의 그도 나를 별로 즐겁지 않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때와 같은 광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와라.”

끼익. 쿵.

나는 멍한 표정으로 아담이 신전풍의 도서관에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눈치가 빠른 편이라고 생각했던 나이지만 그럼에도 상황 파악이 안 된다. 애초에 육체의 통제권을 잃어버리고 의식의 안으로 잠겨 들어온 내가 왜 아담을 만난단 말인가? 아니, 그보다 그렇게나 미쳐 날뛰던 아담이 왜 이렇게 차분하지?

“일단… 따라가 봐야겠군.”

고개를 돌린다. 배경이 생겨나면서 [밖]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여기서 멍하니 있어도 어차피 의미는 없었기 때문.

나는 아담이 지나가고 다시 닫힌 문으로 다가섰다. 뭔지 알 수 없는 묘한 재질로 만들어진 문의 손잡이를 잡자, 한순간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느낌에 인상을 찡그렸지만 그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소근소근.

웅성웅성.

그곳은 아담의 말대로 거대한 도서관의 모습을 하고 있다. 큼직큼직한 책장들이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서 있고 그 책장에 온갖 종류의 책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는 것.

그러나 그런 책들보다 내 신경을 잡아끄는 건 그 안을 돌아다니는 그림자들의 존재였다.

“이것들은… 뭐야?”

인간으로 보이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또 그와 매우 닮은 녀석들도 있다. 키가 3미터가 넘어 보이는 녀석도 있지만 30센티도 안 되는 녀석도 있는 상황. 다만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 모두의 모습이 흐릿하여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접속자들이다.”

“접속자?”

“그래. 하늘도서관에 접속하는 능력 자체는 별로 희귀한 종류가 아니니까.”

“하늘 도서관…….”

그것은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s)의 다른 이름이다. 우주 도서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태초부터 영원까지 온 우주에서 일어나는 생각, 말, 그리고 행위를 기록한다는 아카식 레코드는 우주의 모든 정보를 저장한다고 알려져 있다.

“당연하지만 지금 네가 보고 있는 것은 그냥 이미지일 뿐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형태는 사람마다 다르지. 아카식 레코드의 본질은 비물질체로 코드화된 지식들이니까.”

나직한 목소리에 아담을 바라본다. 차분하고 정돈된 분위기. 나는 무심코 말했다.

“친절하군.”

“…흥.”

코웃음 치며 다시 걷기 시작한다. 그는 네 개의 갈림길에서 하나를 골라 이동하더니 거기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그런데 계단에 또 문이 있었다. 계단 중간에 문이 설치되어 있는,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형태의 문이다.

끼익. 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녀석을 따라 문의 손잡이를 잡는다. 그런데 열리지 않았다.

“이봐?”

“알아서 들어와라. 들어오지 못한다면 자격이 없다는 뜻이겠지.”

목소리는 벌써 멀어졌다. 나는 투덜거리며 열쇠를 사용했다. 문에는 열쇠구멍이 없었지만, 어차피 이 열쇠는 그런 걸 따지는 물건이 아니다.

철컥!

2층으로 올라간다.

철컥!

그리고 3층으로 올라갔다.

층을 올라갈수록 주변을 돌아다니는 그림자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간다. 1층은 완전히 시장통이었는데 2층에는 그림자가 십여 개뿐이었고 3층에 올라서자 나와 아담을 제외하고는 단 하나의 그림자만이 보인다. 그림자의 형태를 보아 인간, 혹은 그와 비슷한 종족으로 보였는데 아무래도 녀석은 우리를 감지하지 못하는 듯 벽에 잔뜩 있는 책들 중 하나에 손을 얹고 중얼중얼 거리고만 있었다.

“여기가 마지막이다.”

아담은 4층으로 올라가는 문 옆에 서 있다. 나는 의문을 표했다.

“왜 들어가지 않아?”

“않은 게 아니다. 못한 거지.”

“흠?”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열쇠를 사용했다.

팅!

그러나 열쇠가 들어가지 않았다. 벽에 박히지 못하고 가볍게 튕겨난 것이다.

“역시.”

그리고 그 모습에 아담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무슨 상황이야?”

“무슨 상황이냐면.”

아담이 나를 보며 쓰게 웃었다.

“너랑 내가 같은 처지에 빠진 상황이지.”

“같은 처지…….”

아담의 말에 현실에서 보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광기에 가득 차 있던. 증오를 불태우던 최상급의 언터쳐블을.

그리고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설마, 너도 나처럼 통제권을 잃어버린 거야?”

“그래. 웃기는 일이야. 나는 아버지의 신위에 먹혀 이 모양이 되었는데 너는 아버지의 신성에 먹혔구나.”

현실에서의 아담은 광기에 차 있었다. 이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감정에 휘둘리는, 그래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조차도 충동적으로 어겨 버리던 상태.

그리고 지금의 나 역시 본래의 나와 다른 존재가 되었다. 잔혹하고 냉정한, 인간을 벌레 이하로 보는 거만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잠깐… 지금 이런 걸 묻기는 뭐하지만.”

얼굴이 굳는다. 신혈 각성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던 나에게 아담이 늦었다고 말하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가서 통제권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스스로를 갈고닦아 신성을, 혹은 신위를 이겨낼 정신을 완성해야지.”

“못하면?”

“네 경우에는 네 육신이 황제가 되어 제국을 다스리는 모습을 봐야겠지. 내가 미쳐 날뛰는 내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처럼.”

기가 막힌 이야기에 헛웃음이 나온다.

“너는 얼마나 여기에 있었는데?”

“별로 오래는 아니었다.”

가벼운 목소리로 아담이 말했다.

“150년 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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