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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112화 (11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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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으로서, 인간으로서

제20장 신으로서, 인간으로서

비명과 고함이 가득하다. 빛나는 왕관을 쓴 거인이 그 백색의 오오라를 피워 올리며 손을 휘두르고 있다. 그의 손짓에 따라 건물들이 박살 나고 병력이 몰살당한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온 미사일들은 거인의 주변을 휘감은 초월기 <전쟁의 신>에 가로막혀 털끝만 한 피해도 입히지 못한다.

“안 돼! 막아!”

“이, 이런 악독한……!”

“죽여 버려!!”

부서진 건물들의 잔해를 해치며 다수의 능력자가 돌진해 온다. 그들은 하나하나가 강맹한 기운을 가진 고위 능력자였지만, 대하는 달려오는 그 모습이 마치 메뚜기가 뛰어오는 것 같다고 느꼈다.

퍽!

벼락같이 휘둘러진 팔에 얻어맞은 전사의 육체가 산산이 박살 나 흩어진다. 그는 맨몸으로 기가스에게 덤빌 정도로 강력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빛의 왕관을 쓴 거인, 아레스는 그가 지금까지 상대해 온 기가스들과 차원이 다른 존재였기 때문이다.

뻥!

다시금 손을 휘두르자 공기가 터져 나간다. 손바닥이 어찌나 빨리 움직이는지 바람에서 탄 냄새가 느껴질 정도.

사실 능력자들 사이에서 이 정도 속도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이능을 갈고닦아 완벽하게 체득한 자라면 충분히 재현할 수 있는 움직임인 것. 그러나 문제는… 그 대상이 인간이 아니라 거대한 금속 거인이라는 점이다.

운동에너지란 속도를 가지고 움직이는 무게.

그런데 수십 톤이 넘는 금속 거인이 바람에서 탄 냄새가 날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면 어떤 위력이 나오겠는가?

콰득! 펑! 쿠웅!

아레스의 손이 희끗희끗 움직일 때마다 그에게 덤벼들던 적들이 박살 나 피의 비가 내린다. 그러나 그 피의 비는 아레스의 몸에 닿지도 못했다. 그의 주변을 둘러싼 오오라에 밀려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차적인 적의 공세가 모두 끝났을 때.

아레스의 머리 위로 태양이 떠올랐다.

번쩍-!

바라보는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드는 엄청난 빛이 세상을 뒤덮었다. 그 빛은 단순한 빛이 아니라 거기에 노출된 모든 존재를 멸하는 파괴의 빛이었다.

“아, 안 돼! 사, 살려…….”

“으아아아악!!”

도시 전체가 아비규환으로 변한다. 건물 안에 숨어 있어도, 지하에 있어도, 심지어 특수하게 만들어진 방공호 안에 숨어 있어도 소용이 없었다. 초월기 [징벌의 빛]은 오직 강력한 영능의 힘으로만 방어할 수 있는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할 수 있는 강자들은 징벌의 빛이 퍼지기 전에 아레스의 손에 죽었다.

휘오오오…….

바람이 몰아쳤다. 어느새 비명과 고함, 그리고 굉음이 가득하던 도시는 침묵에 잠겨들었다.

또다시 하나의 도시가 멸망(滅亡)한 것이다.

“여기도 끝이군.”

[대하… 너 정말 괜찮은 거냐?]

아레스가 조심스럽게 묻자 딱딱하게 굳어있는 대하의 얼굴이 온화해진다.

“착하구나, 아레스. 나를 걱정해 주다니.”

전쟁의 신의 위상을 받아들여 만들어진 아레스가 살인을 두려워할 리는 없다. 그는 투쟁을 사랑하고 전쟁터에서 적을 거꾸러뜨리는 과정 자체에서 만족감을 느끼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호오(好惡)와 별개로 그는 대하가 살인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전쟁터에서, 그것도 생포가 극히 힘들다는 기가스 조종사들을 행동불능으로 만들어 그 목숨을 살려줄 리가 없지 않겠는가?

[나는 당연히 네가 그 공작인가 황족인가 하는 녀석들만 처리할 줄 알았는데…….]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황족들과 공작을 제압하고 이내 하워드 공작가가 지배하고 있는 행성, 일루미나티의 모든 존재를 몰살시키기 시작해 마침내 그 과정을 완료한 것이다.

“물론 나도 이 과정이 기꺼운 건 아니지만… 필요해.”

[어째서?]

“왜냐하면 감히 신의 목숨을 노린 본보기를 보여야 하기 때문이지.”

그렇게 말하며 왼손을 든다. 자연스럽게 쉐도우 스토커의 공이가 당겨지고 발사된 탄환이 아레스조차 통과할 수 있는 거대한 차원문을 만든다.

쿵!

아레스가 모습을 드러내자 폐허 한가운데 모여 있는 수만 명의 사람이 살기를 일으킨다. 그들의 한가운데에는 화려한 복장의 황족들과 강대한 초월자들이 있었다.

“벌써 다 회복했군. 역시나 튼튼한데?”

“네놈… 네놈! 감히 내 가문을!!”

한쪽 팔이 절단당하고 온몸이 반쯤 찌그러진 상태에서 빠르게 회복하고 있던 하워드 공작이 이를 갈며 아레스를 노려본다. 보통 사람이라면 시선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사나운 기세가 뿜어졌다.

그러나 대하는 무심한 표정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앞서 한 말도 그냥 혼잣말이었을 뿐 그와 대화를 나눌 생각 자체가 없었다.

어차피 죽을 자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파라락.

아레스에 탑승해 있는 대하의 옆으로 한 권의 책이 떠올라 저절로 페이지가 펼쳐졌다.

<점멸>

<전투예지>

<증폭>

<메마른 심장>

거기에는 그가 [현재] 가지고 있는 어빌리티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하는 잠시 그것들을 바라보다가 손을 휘둘렀다.

<증폭>

<거듭된 집중>

<더하고 더하고 더하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네 개의 어빌리티가 전부 증폭능력으로 채워진다. 지금의 그는 자신이 필요한 어빌리티를 현존하는 [모든] 어빌리티 중에서 임의로 고를 수 있었다. 물론 개중에는 겹치는 종류도 있고 반발하는 종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 모인 이 4개의 어빌리티는 서로 문제없이 합쳐지는 종류의 것들이다.

“라.”

[왕이여… 그들은 너의 신민(臣民)이다.]

“나를 죽이려 한 신민이지.”

[하지만.]

“해라.”

당연한 말이지만 본래의 라였다면 절대 이 명령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 레온하르트가 외적과 싸우기 위해 제국의 모든 힘을 집결해 만들어낸 라는 그 기본 이념 자체가 제국의 수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급 신의 자리에 올라 있는 하와조차 두려워하는 신의 명령을 만들어진 존재가 견딜 수는 없다. 아무리 92번째 넘버링을 가진 그라고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우웅--!

“큭! 전투 준비하라!”

“죽여 버려!”

하워드 공작가는 풍부한 자원을 가진 행성 일루미나티에 자리를 잡고 그곳을 자신들만의 왕국으로 만들었다. 그곳에 사는 이들은 모두 하워드 공작가 소속이기에 행성 전체가 하워드 공작의 명령하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행성 전체에 막대한 병력과 방어시스템이 갖추어져 테라급 이상의 전함들이 몰려와도 충분히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하워드 공작가에 속한 초월자는 무려 셋.

하워드 공작을 제외한 나머지 둘은 하워드 공작가 출신이 아니었지만 혼인 동맹으로 일루미나티에 거주하고 있었고 그들 모두가 대하 앞에 자리하고 있다. 대하는 일부러 그들을 공격하여 핵심 세력들이 한 장소에 모이도록 유도한 것이다.

번쩍!

빛이 폭발한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사용했던 [징벌의 빛]이다.

그러나 네 개의 어빌리티로 증폭된 그 위력은 지금까지와 전혀 달랐다.

샤아아아----!

빛의 폭풍이 마치 핵폭발처럼 터져 나가 모든 것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전투태세를 유지하고 있던 하워드 공작가의 사람들이 나서서 막았지만, 그건 마치 쏟아지는 햇살을 막는 것처럼 덧없는 짓. 모두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들이 받는 타격은 스스로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경지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강력했다.

쿵!

허공에 떠 있던 아레스가 내려선다. 그런데 그때 불현듯 대하의 얼굴이 찡그려진다.

“이런…….”

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나 한순간 그의 의지가 흐릿해진다.

딸깍.

문이 닫혔다. 그리고 동시에 아레스의 몸이 멈칫한다.

“우욱……!”

아레스의 조종석에 앉아있던 대하가 돌연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과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쳤어…….”

창백한 얼굴로 대하가 신음한다. 몇 명이나 죽였는지 정확히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만 명? 십만 명? 아니면 백만? 천만?

[대하! 괜찮은 거야?]

아레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대답할 상황이 아니다. 기나긴 악몽으로 강철같이 단련된 정신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멘탈 좋은 정도로 견딜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살을 저질렀다.

“우웩!”

헛구역질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스스로가 벌인 참상이 너무나 끔찍해 잊고 싶었지만, 그 모든 과정이 너무나 생생해 그럴 수도 없다.

“놈이 멈췄다!”

“움직여!”

어마어마한 공세 후 멈춰선 아레스의 모습에 초월자를 비롯해 살아남은 고위 능력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인간이고 대하는 기가스에 타고 있었지만, 어차피 고위 능력자들의 전투력은 어지간한 기가스에 필적하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는 상황.

쾅!

폭염의 오오라로 전신을 감싼 사내가 아레스를 후려치자 강철의 거체가 휘청거린다.

[이런, 대하! 정신 차려!]

대하의 조종이 멈추자 놀란 아레스가 임의로 몸을 제어하여 적의 공격을 방어했지만 조종사의 도움이 없이 상대하기에 적들이 너무 강하다. 아무리 신급 기가스라도 완전무장한 초월자 셋을 상대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콰득!

놀랍게도 몸 상태도 성치 않은 하워드 공작의 맨주먹이 온갖 희귀금속을 합쳐 만들어진 아레스의 갑주를 뚫고 들어온다. 그는 처음부터 아레스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타고 있는 대하를 노리고 있는 것. 아레스는 반항했지만, 하워드를 제외한 나머지 두 초월자가 그를 보조하고 있었기에 이내 두 팔이 엉망으로 박살 나고 말았다.

[정신 차려라, 대하! 이대로는 위험하다!]

아레스가 경고했지만 대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길게 표현했지만, 하워드를 비롯한 초월자들이 공격을 시작한 지 고작 수 초에 불과하다. 일순간 공황상태에 빠진 대하가 제정신을 차리기에는 너무나 촉박한 시간.

그리고 그러자.

덜컹.

문이 흔들렸다. 잠시 혼란스러워하고 있던 대하가 깜짝 놀라 정신을 집중해 문의 형태를 이미지했다.

그리고 그 앞을 막는다.

“안 돼.”

덜컹, 덜컹.

그러나 무지막지한 힘이 문 안에서부터 느껴진다. 문을 단단히 잡고 있음에도 그 틈으로 새하얀 증기가 새어 나오는 기분이다.

덜컹! 덜컹! 덜컹!

대하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문을 가로막았지만, 술을 계속 마시다 보면 아무리 집중해 봐야 정신이 혼미해지듯 머릿속이 몽롱해지고 있었다.

덜컹! 덜컹! 쾅!

그리고 강제로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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