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머리 위에-111화 (11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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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 결혼식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저주는 분명히 제대로 먹혔을 텐데.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어야 하는데…….”

“아니, 그것보다… 황제의 상태도 이상해. 봉인술식을 재개하지도 않았는데 쓰러지다니.”

레온하르트 황제가 잠들어 있는 성지 [데탈트]에 진득한 피가 흘러내린다. 황금장미를 피워 올린 성스러운 땅이 혈기가 담긴 피를 거부해 시체에서 흘러내린 피가 성지 밖으로 밀려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피를 흘리는 수십의 시체.

아직 살아 있는 세 명의 사내는 창백한 얼굴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레온하르트와 대하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물론 그 옆에는 세레스티아 역시 쓰러져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 그녀는 그들의 관심 밖의 존재였다.

“도저히 멸살의 검을 꽂을 수 없는가?”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그의 손에는 온갖 죽음의 저주가 겹겹이 압축되어 있는 마법의 검이 들려 있었다. 대마법사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물건이었기에, 어지간히 강력한 초월자라도 무방비 상태에서 이 저주받은 칼날에 찔리게 되면 무사할 수가 없다.

“자네도 보지 않았나… 접근할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지만 도저히 칼을 찌를 수가 없네.”

그렇다. 그것이 문제이다. 그들은 황제의 저주에 전염되어 정신을 잃은 대하를 죽이기 위해 데탈트에 들어왔지만, 도저히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제길! 어떻게든 해야 해! 하압!!”

입술을 곱씹던 사내가 온몸을 뒤덮을 정도로 강력한 호신기를 두르고 대하를 향해 뛰어든다. 완벽한 대주천을 완성하여 절정고수의 경지에 이른 그였기에 보통 사람이라면 그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의 속도였다.

그러나.

퍽!

달려들던 사내의 몸에서 머리가 사라진다. 벼락같이 달려들던 그의 몸은 그 여력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미치겠군. 이게 대체 어떤 원리인지… 이해조차 못하겠어.”

“분위기를 봐서는 일종의 방어 시스템 같기는 하지만 우리가 인식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공격이라니.”

모든 것이 계획대로였다. 초대 황제가 머물던 별장을 빌려준 이상 대하와 세레스티아가 데탈트에 들어갈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고, 바로 그때에 맞추어 저주를 폭주시키는 것 역시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정신을 잃은 그를 죽이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중급 초월자 중에서도 강맹하던 레온하르트 황제조차 몇 백 년이 되도록 이겨내지 못한 저주다. 그런 저주를 앳돼 보이는 그가 이겨낼 것이라는 생각은 애당초 들지도 않은 것이 당연지사.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고 그를 공격하려던 모두가 죽었다. 그를 공격하려고만 하면 뭔가 알 수 없는 공격이 그들의 육신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어. 이곳은 성지라 감시가 불가능하겠지만, 성지에 들어선 황녀와 차기 황제가 긴 시간 동안 나오지 않으면 별장의 관제인격이 외부에 연락을 하게 될 거야.”

그리고 그렇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그를 처리해야했다. 애초에 살기를 바라고 한 일도 아니었지만, 설마 목숨을 걸고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줄은 몰랐다.

“아니, 사실 이렇게만 되어도 목적은 반쯤 이뤘다고 할 수 있지. 환몽관의 저주는 누구도 해제할 수 없으니…….”

레온하르트 황제는 제국의 시작이자 끝으로, 말하자면 심장과도 같은 존재였다. 더불어 그가 처음 저주에 걸렸을 때에는, 그의 옆에 언터쳐블인 황금사자신까지 있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해제하지 못한 것이 환몽관의 저주이다.

“여기서 그를 죽이지 못하면 그를 잡아먹은 저주의 힘이 더더욱 강해지게 되지만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군.”

사내는 이를 악물고 멸살검을 갈무리했다. 사용하게 되면 저절로 소멸하는 1회용의 마법기였지만 상황이 바뀌어 사용하지 않게 되었으니 추적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회수하는 것이다.

“물러나자, 연.”

“…….”

“연?”

멸살검을 갈무리한 사내가 대답하지 않는 동료들의 행동에 의문을 표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거기에 서 있는 것은 그의 동료들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눈치가 느리군.”

“무, 무슨?!”

대하의 아래에 두 명의 사내가 쓰러져 있다. 차크라를 연마한 사내는 그들을 일견하는 순간 이미 그 목숨이 다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를 제외한 특임대 전체가 전멸한 것이다.

“하워드와 황족들인가… 아무리 그래도 이목이 이렇게 집중된 상태에서 나를 제거할 생각을 하다니.”

“흥! 뭐라고 생각해도 상관없다! 이미 제국에 황제 따위 필요 없어!”

그는 공화주의자(共和主義者)이다.

초월자의 존재를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그래서 왕정제가 흔히 존재하는 대우주 시대라지만 그렇다고 모든 인간이 자신 위에 존재하는 신적인 존재를 용납하는 것은 아니었다. 조국에 헌신하는 자립적인 공민(시민)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공화주의자들은 특히나 더 그런 존재.

때문에 그들은 황제 클래스의 존재를 증오했다. 하급 초월자인 경우야 어떻게든 현대병기와 전함의 힘으로 상대가 가능하지만, 문명의 힘 전체를 모아도 어찌하기 힘든 그들은 반드시 사람 위에 군림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며 이 일에 자원한 그 역시 이용당하고 있는 상태다. 대하를 해친 것은 새로운 황제가 나타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공화주의자들의 짓, 이라는 것이 대하를 위기에 빠뜨린 [적]들이 바라는 최종적인 시나리오였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정말 우습게 보였나 보군.’

지금의 대하가 전지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흥! 네놈! 자신이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그것만으로 사람의 위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저 본신의 힘만으로 사회와의 합의 없이…….”

“시끄러.”

퍽.

가벼운 소리와 함께 거세게 소리치던 사내의 가슴에 구멍이 뚫린다. 대하는 쉐도우 스토커를 다시 시계의 형태로 되돌리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웃기지도 않는군… 전지에 이런 구멍이 있었다니.”

[문을 연] 상태의 대하는 절대권능, 갓 노우즈(God Knows)에 의해 세계로부터 직접적으로 정보를 제공받는다. 때문에 그에게는 어떠한 음모나 계략이 먹히지 않고 배신이나 기습을 거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랬어야 했다.

문제는 대하조차 스스로의 미래를 보지 못한다는 점.

물론 기본적으로 예지능력은 초월자들에 의해 여러 가지 간섭을 받는다. 예지능력자들이 초월자들을 [변수]라 부르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던가? 세계의 흐름에서 자유로워진 초월자들은 자신의 판단으로 운명을 넘어서는 게 가능하다. 초월자가 없다고 해서 예지가 100%인 것도 아니지만, 초월자들이 끼게 되면 예언 자체가 높은 확률로 비틀리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

그런데 대하는 그런 초월자들보다 그 정도가 훨씬 심해서 일단 그가 끼어들면 모든 예지가 어그러져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심지어 아담이나 하와 같은 언터쳐블들조차 그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의 미래마저 알 수 없을 지경.

그리고 그런 제약에는 그 스스로마저 포함되었다.

‘즉 [나]에 대한 미래는 간접적으로도 알 수 없다는 말인가.’

그를 해치려는 음모가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 음모는 그에게 심대한 위기를 가져다주었다. 인간 상태의 대하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지만 사실 꽤 위험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만일 습격자들이 환몽관의 저주에 걸린 그를 죽이는 대신 부상을 입힌다는 선택지를 골랐다면, 그리고 그래서 하와가 그들의 공격을 막아주지 않았다면 그는 부상을 입은 채 가사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그리고 육신이 그 지경이 되어버리면 열쇠로 문을 열어도 현실로 돌아올 수 없다. 단지 악몽에 고통받지 않을 뿐 레온하르트 황제와 똑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영원히.

“감히.”

뿌드득, 하고 이가 갈리며 살기가 퍼져 나가자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던 황금빛 장미들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깜짝 놀라 봉우리를 닫았다.

대하는 오해하고 있었다.

그는 [문]을 연 자신이 본질적으로는 평상시의 자신과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대회의실에서 일을 걷잡을 수 없이 크게 벌였을 때처럼 멋대로 행동할 수는 있어도, 결국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것이라는 판단.

사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신성을 얻은 자신이 여러 가지 일을 해결했다는 [결과]만을 보았으니 어찌 그 위험성을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다르다. 정확히는 달라지고 있다.

맨 처음 문을 열었을 때의 그는 평소의 그와 거의 다르지 않았지만, 문을 여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 차이는 점점 커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신의 관점과 인간의 관점은 전혀 다르다는 점을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했다.

“감히…….”

평상시의 대하 역시 목숨을 위협 당하면 당연히 분노할 것이다. 그러나 그 분노는 절제되었을 것이고 혹여 복수나 저항을 하게 되더라도 그 대상은 자기를 죽이려는 적, 그리고 그 조력자에 한정될 것이다.

그러나 [문]을 열어낸 대하는 그렇지 않다. 그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기에, 사람들을 보는 관점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이 말벌에 쏘여서 중상을 당하면 그는 그 벌만을 잡아 죄질을 엄밀하게 따진 후 처벌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벌집을 통째로 불태울 것이다.

철컥!

시계의 형태로 변했던 쉐도우 스토커가 다시 권총의 형태로 변했다. 대하는 그것을 들어 왼쪽 빈 공간을 향해 쏘았다.

키잉--!

공간이 갈라지며 차원문이 열렸다. 그저 근거리 이동만을 위한 차원문이 아니라, 항성 간 이동이 가능한 초장거리 게이트. 만약 쉐도우 스토커를 만든 제작자들이 보았다면 경악해 비명을 질럿을 것이다. 쉐도우 스토커에 차원문을 열 기능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이 우주 여행을 가능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팟!

천천히 걸어 게이트를 넘자 주변 배경이 변한다.

“뭐, 뭐야?!”

“어째서, 아니, 어떻게 여기에 게이트가?”

“누가 감히!!”

대하가 차원문을 넘어 나타나자 그곳에 있던 모든 이가 경악해 비명을 질렀다. 왜냐하면 그곳은 하워드 공작가의 심처(深處)였기에 허락받지 않은 존재는 절대 들어올 수 없어야 정상이기 때문이다.

“오호~ 이게 누구야. 차기 황제 폐하께서 오셨군.”

“할아버지.”

“아아, 미안하다. 차기 황제는 너였지.”

“…….”

그곳에 있는 것은 하워드 공작과 황태자 루이 레온하르트였다. 그들은 대하가 자신들의 심처에 온 것을 보고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침착하게 평소의 자신을 연기한 것.

그러나 대하에게 그런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래. 너희군.”

왜냐하면 그들의 머리 위에 정답이 쓰여 있기 때문이다.

“너희라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그깟 왕관 좀 썼다고 제국이 만만해 보이나?”

“그보다 여기는 왜 온 거야? 셀 녀석이 밤에 징징대기라도 하던가?”

하워드 공작과 루이가 그를 보며 적의를 드러냈다. 진심으로도, 그리고 연기를 생각하더라도 그게 옳았기 때문. 그러나 대하는 그들이 뭐라고 떠들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아레스.”

“아레스? 지금 무슨 소.”

쿵!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묵직한 기도를 퍼뜨리는 거신(巨神)이 모습을 드러낸다.

“뭐야,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감히 여기에 기가스를 데리고 오다니!”

여기저기에서 왁왁 떠드는 소리가 들리거나 말거나 대하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라.”

속삭임과 함께 번쩍, 하고 대하의 머리 위에 빛으로 이루어진 왕관이 쓰인다. 그것이야말로 황제의 증명이나 다름없는 태양의 왕관.

그러나 대하는 즉시 태양의 왕관을 벗어 허공으로 집어 던졌다.

우웅!

태양의 왕관이 커진다. 그러나 초대 황제가 사용했던 것처럼 라를 기가스의 형태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태양의 왕관은 단지 크기만 키웠을 뿐 그 형태는 그대로였던 것.

대신 태양의 왕관은 그대로 날아올라 아레스의 머리에 씌워진다.

샤아아----!

그리고 그대로 빛이 폭발하자 모두 경악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 이건 뭐야?!”

“태양의 관을… 기가스에 씌운다고?”

“이런 건 들어본 적도 없어!”

모두가 경악해 비명을 지른다. 특히나 그들 중 하워드 공작의 경우는 초월자의 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당혹감을 버리지 못했다.

아니, 그는 초월자였기에 더더욱 공황에 빠졌다. 그의 강렬한 직감이, 그제야 파멸적인 미래를 예지했기 때문이다.

“너, 너… 네놈, 설마.”

부들부들 떨며 대하를 가리키는 하워드.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대하가 웃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왜 왔냐는 질문에 대답을 안 했군. 내가 여기 왜 왔냐면 말이야.”

빛의 왕관을 쓴 아레스가 대하를 잡아들며 자신의 몸을 열었다. 대하는 아레스의 손길에 따라 마치 거대한 괴물에게 잡아먹히듯 그 안으로 사라졌다.

기잉-!

그리고 그렇게 대하가 탑승을 완료하자 아레스에게서 초월자들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패도적인 기세가 뿜어진다. 그리고 아레스가, 아니, 그 안에 있는 대하가 말했다.

“대청소를 하러 왔다.”

동시에 파괴적인 빛이 사방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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