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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 결혼식
“납득할 거야.”
솔직히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문을 연 상태의 [내]가 마련한 대책을 사용해야 할 것 같았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적의 손에 죽을 테니까.”
사실 연합(Union)에는 적이라 말할 만한 단체가 별로 없다. 연합은 설립 목적 자체가 [외부세계]의 존재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전 우주적인 단체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너도 나도 다 연합 소속인데 따로 누굴 적이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 안에는 레온하르트 제국과 테케아 연방의 관계 같이 적대하는 국가들도 존재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모든 세력이 연합의 이름 아래에 묶인다. 태어날 때부터 강대한 권능을 타고나는 초월종들의 단체인 노블레스(Noblesse)와 끝없는 단련과 노력으로 극한의 권능을 획득한 초월자들의 단체인 엘로힘(Elohim)들이 연합 전체에 최소한의 룰을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연합은 대우주 최대, 최강의 세력이다.
‘그리고 그 말은… 리전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세력인지를 알려주는 말이기도 하지.’
다시 말하지만 연합에는 적이라 할 만한 단체가 별로 없다. 사실상 그들은 우주를 지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넓은 대우주에는 그들조차도 함부로 하기 어려운 무시무시한 세력들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세 개의 대적(大敵)이라 불리는 존재들이다.
기계생명체 리전(Legion).
우주괴수 그로테스크(Grotesque).
대해적단 바사라(ばさら).
그중 바사라는 자체적인 강함이나 전투력보다 전 우주를 아우르는 엄청난 규모와 적아를 구분하기 어려운 불분명성 때문에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힘으로 연합과 적대하는 게 가능한 건 대우주에서도 리전과 그로테스크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규모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한 그들이 연합의 압박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을 수호하는 초월적인 언터쳐블의 존재 때문이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적?”
“그래. 아담 같은 적 말이지.”
“…미쳤어?”
세레스티아가 정신병자를 보듯 날 본다.
“미치다니?”
“그럼 아담을, 최상급 신위를 가진 그 괴물 같은 언터쳐블을 이용하겠다고 말하는데 그걸 어떤 소리로 듣길 바라는 거야? 작정하면 대우주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을 수 있는 그 파괴신 같은 녀석을 고작 황좌 하나 때려치우려고 끌어들인다고?”
[최초의 리전]인 아담은 대부분의 신이 물질계를 떠난 지금 전 우주를 뒤져도 몇 안 되는 최상급 신위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는 당연히 [문을 연] 나보다도 훨씬 상위의 존재다. 상급의 신성, 상급의 신위, 그리고 하급의 신격이라는 기형적인 형태를 가진 나와 다르게 최상급 신위를 완벽하게 수습한, 대신격(大神格)에 준하는 존재인 것.
그러나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건 힘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응.”
“…응이라니, 고작 그걸로 끝이야?”
“끝이지.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 문제니까.”
미안하지만 이 이상 자세한 설명을 해줄 수는 없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우리 사이는 딱 이 정도지.’
나와 세레스티아는 꽤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고 어찌어찌 결혼까지 하게 되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어떠한 [선]을 넘지는 않았다.
그래, 인정한다. 나는 그녀에게 매력을 느꼈다.
그녀는 내가 싫어하는 모든 요소를 다 갖춘, 그야말로 폭탄 같은 여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에서 내려온 별처럼 빛나 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어쩌면 신위에 취한 내가 그녀를 위해 판을 뒤엎어 버린 것 역시, 마치 취객이 속내를 드러낸 것처럼 나도 모르게 내 본심을 드러낸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흠… 그렇구나.”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을 읽은 것인지 세레스티아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기쁜 것 같기도 하면서도 섭섭한 것 같기도 한, 뭐라 표현하기 미묘한 얼굴.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를 내버려 두고 별장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우우웅--
별장에 설치된 기능이 발동하자 젖어 있던 내 몸이 삽시간에 뽀송뽀송하게 마른다. 나는 거실 한쪽에 위치한 벽에 손을 올렸고 이내 냉장실이 열리며 시원한 음료가 손에 잡힌다.
“뭔가 마실래?”
“…푸른 별.”
“음? 그거 술 아닌가?”
“술 마실 수도 있지 뭘. 내 나이가 몇 살인데.”
눈을 가늘게 뜨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다시 벽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러자 다시 냉장실이 열리며 파란색의 액체가 들어 있는 병이 손에 잡힌다. 별장을 관리하는 관제인격이 우리가 원하는 음료를 집어준 것이다.
꿀꺽꿀꺽!
세레스티아는 내가 넘겨준 병을 낚아채듯 잡고 병나발을 불었다. 저거 한 병이 어지간한 집 한 채 만큼 비싸다는 사실은, 지금 이 순간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숨넘어가겠다.”
피식 웃으며 나 역시 과일 주스를 마셨다. 세레스티아는 어느새 푸른 별을 반 병 가까이 마시고는 차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 어머니에 대해 알고 있어?”
“그냥 어렴풋이는. 자세한 건 몰라.”
문을 연 상태의 나는 전지에 가까운 정보제어 능력으로 그녀의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지만 다시 문이 닫히면 그 모든 지식과 정보가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가는 모래알처럼 사라지고 막상 손에는 얼마 남지 않는다. 신의 권능은 위대하지만, 인간의 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는 극히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꿈과 같다.
아침에 일어나 전날의 꿈을 다 기억할 수도 있지만, 대체의 경우는 이미지만 남는다. 악몽이었던 것 같아, 뭔가에 쫓겼던 것 같아, 맛있는 걸 먹었던 것 같아, 예쁜 여자가 나왔던 것 같아. 뭐 이런 식으로 단편적인 기억은 나도 정확한 상황이나 지나가며 봤던 건물들의 모양 같은 걸 다 기억할 수는 없는 것.
때문에 코디네이터들에게 의미심장한 대사를 던질 수는 있었어도, 그 모든 상황을 완벽히 알 수는 없었다. 정확한 사정을 알려면 지금 상태에서 설명을 들을 필요가 있었다.
“내가 배경이 없다는 건 알지?”
“정확히는 가문이 없다고 들었어.”
“그게 그거지 뭐.”
피식 웃는 그녀의 말대로 그녀에게는 가문이랄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녀의 친모는 대가를 받고 전대 황제를 모신, 일종의 창부(娼婦)였기 때문이다.
“외부에는 평민 여성이라고 알려져 있어. 잠시 외출을 나왔던 아버지가 꽃집을 하던 여성과 금단에 사랑에 빠졌다… 고 광고를 한 거지.”
즉 다른 국민들은 그녀의 모친이 귀족도 황족도 아닌 보통 여인이라고 알고 있고, 다른 황족과 귀족들은 그녀의 모친이 대가를 받고 몸을 판 창부라고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당연하지. 애초에… 황태자였던 아버지가 왜 굳이 정치적인 부담을 무릅쓰고 외부에서 창부 같은 것을 구하겠어? 차라리 시녀나 귀족 중에 하나를 골라서 침실로 들이는 게 낫지.”
그녀의 모친이 창부라는 사실조차 황족과 귀족들이나 아는 기밀이지만, 정말 진실을 말하자면 그것조차 거짓이라는 말이다. 그녀의 모친은 도저히 외부에 알릴 수 없는 정체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중으로 진실을 감춘 것.
“그럼 그녀는 누구였지?”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전투 생명체. 그러니까 굳이 설명하자면… 키메라(Chimera)였지.”
그녀는 황가에서 직접 운영하는 무력단체, [그림자단]을 만들어내기 위한 실험체 중 하나였다. 여러 가지 상위종과 노블레스 같은 초월종, 심지어 비인들의 인자까지 섞어 만들어낸 후 가혹한 훈련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존재.
다만 문제는, 그녀가 실패작이었다는 점이다.
“어머니는 다른 키메라들에 비해 열등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어. 제대로 된 언어를 구사하지도 못했고 전투 능력도 반쪽짜리, 심지어 지능까지 떨어져 시종으로도 쓸 수 없는 폐품이었지.”
“그러면 보통 폐기되는 게 정상 아냐? 보안 문제라던가?”
“그래야 정상이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어. 어머니는 몹시 아름다웠거든.”
때문에 그녀는 황실 안에서 [다른] 용도로 사용되게 되었다. 그녀가 가진 것은 단지 그 아름다운 외모뿐이었으니, 어찌 생각한다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황족과 귀족들에게 그녀의 모친이 창부라고 알려진 것은, 바로 이 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전대 황제도?”
“아니, 그렇지는 않았어. 기본적으로 금욕적인 성격인 아버지는 황족들 사이를 빙빙 돌고 있는 어머니 더럽게 보고 있었거든. 다만 어머니가 그렇게 [사용]되던 어느 날… 청원이 그녀를 보게 된 것이 문제였지.”
잠시 일이 있어 황실에 들렀던 혈통관리인 좌자는 그녀의 안에 돌연변이적으로 생겨난 어떤 [인자]를 읽어내게 된다. 그녀가 단순한 실패작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그렇군. 그가 마음에 내켜하지 않는 앙겔로스 3세에게 접근해 억지로 그녀와 결혼하게 한 거야.”
레온하르트 황가의 혈통관리인이었던 청원의 의견은 황실에서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고 들었다. 하물며 이건 그가 관리하던 후사에 관한 문제가 아니던가?
그러나 세레스티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랬으면, 그랬으면 차라리 다행이지.”
“그럼?”
“오히려 반대야.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황자들 간에 경쟁이 붙었어.”
“…그녀가 신혈을 이을 수 있는 귀중한 존재였기 때문에?”
“맞아.”
초대 황제 레온하르트가 죽은 이상 사실 황족의 몰락은 예견된 일이었다. 황족의 특별함은 신혈을 이었다는 점에서 유지가 되는 것이었는데, 바로 그 신혈이 문제였던 것이다.
“신혈은 아무 대상으로나 이을 수 있는 게 아냐. 후사를 보기도 힘들고 설사 후사를 보는 데 성공했다 해도 점점 옅어지지… 따라와 봐.”
세레스티아는 아직 약간 남은 푸른 별을 마시며 별장의 한쪽에 위치한 방으로 이동했다. 나는 순순히 그녀를 따라갔다.
위이잉--- 철컹!
그녀가 한쪽 벽을 조작하자 바닥이 열리며 계단이 드러난다. 계단의 끝에는 푸른색으로 빛나는 마법진이 있었다.
“이건 뭐야?”
“황족들이 모를 수 없는 공간이야. 나도 실제로 와보는 건 처음이지만.”
웅!
마법진에 올라서기가 무섭게 배경이 변한다. 어느새 나와 세레스티아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화원의 한가운데로 이동해 있었다.
“…멋지군.”
온통 황금빛으로 빛나는 곳이다. 마치 금실을 짜서 만든 것 같은 황금색의 꽃들이 사방에 가득히 피어 있다.
“이것들이 뭔지는 알지?”
“그야 알지.”
세레스티아의 질문에 피식 웃는다. 그렇다. 그 황금색의 장미들은 나에게 매우 익숙한 종류였다. 왜냐하면, 세레스티아가 나에게 프러포즈(?)을 할 때 내밀었던 종류이기 때문이다. 다른 게 있다면 그때는 몇 송이 안 되었는데 지금은 몇천 몇만 송이나 피어 있다는 점 정도겠지.
“데탈트의 황금 장미였던가?”
“그래.”
차분하게 대답하며 화원 한가운데로 향한다. 그곳에는 커다란 옥좌가 있었는데, 거기에 환한 금발의 사내가 턱을 괴고 앉아 있다.
마치 태양 같은 남자다.
잠이라도 든 것처럼 두 눈을 감고 있음에도 선명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금색의 장발을 길게 늘어뜨린, 남자가 소화하기 어려운 헤어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 모습이 마치 명공이 그려 완성한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빤히 바라보게 될 정도로 아름다운 사내.
“솔직히 말하면 공작들이 우리를 이곳에 오게 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었어. 이곳은 레온하르트 황가에게 있어 아주 의미가 깊은 장소거든.”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옥좌에 앉은 사내를 바라보았다.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내는 그였지만, 우리가 왔음에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초대인가.”
“그래. 초대 황제이자 광황(光皇)이라 불렸던 존재이며 모든 신화와 비극의 시작인… 응?”
마치 오페라 가수처럼 과장된 표정으로 그에 대해 설명하던 세레스티아의 말이 멈춘다. 나 역시 멈칫했다.
“지금… 움직이지 않았어?”
“…움직였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는 레온하르트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때였다.
번쩍!
레온하르트 황제의 눈이 별안간 크게 떠진다. 그러나 절대, 절대 잠들었던 황제가 깨어난 경사, 같은 상황은 아니었다.
[끼아아아아악-------!]
끔찍한 괴음과 함께 레온하르트 황제의 고개가 번쩍 들리더니 우리를 향해 돌아간다. 마치 먹물을 뿌려놓기라도 한 것처럼 새카맣게 물든 그의 눈동자가 살벌한 기세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