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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 결혼식
테라포밍(Terraforming)이란 지구화(地球化), 혹은 행성 개조(行星改造)라 불리는 과정으로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 및 위성, 기타 천체의 환경을 지구의 대기 및 온도, 생태계와 비슷하게 바꾸어 인간이 살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을 말한다.
자신이 사는 행성을 벗어나 다른 항성, 다른 은하로 넘어가는 게 가능한 3문명의 경우 테라포밍 정도는 능숙하게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해당 행성의 여러 가지 조건(물과 에너지원의 존재 여부, 복잡한 유기물이 합성되기에 적합한 환경 등)에 따라 난이도와 소요 시간에 어마어마한 차이가 생기지만, 필요성만 있다면 얼마든지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기에.
“수성(水星)이라니.”
신혼여행을 이런 곳으로 오는 것도 가능하다.
“VIP들이 이용할 휴양지로 꾸며진 곳이지. 현재 이 행성에 있는 [고객]은 너랑 나뿐이지만 평소에는 거의 1,000명 가까운 이용객을 유지할 정도로 인기 있는 곳이야.”
“…1,000명이 많은 거야? 아무리 수성이 작아도 행성인데?”
“VIP들이라고 했잖아. 보통 사람은 평생을 모아도 하루 묵기가 힘들 정도인데 1,000명 정도의 이용객을 상시 유지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지.”
난간에 기대앉은 세레스티아가 나른한 목소리로 설명한다. 나 역시 그녀의 곁에서 멍하니 에메랄드빛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결혼식이 끝났다.
정말이지… 내 인생에 다시없을 난장판이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환호성을 외치고, 누군지도 모를 귀족들이 몰려와 시키지도 않은 충성 맹세를 하다 끌려 나가고, 그다음에는 거대 모함 이노센트(Innocent)에 올라타 13지구를 두 바퀴나 돌았다. 그 모든 과정을 수행하는 데 꼬박 10시간은 걸린 것 같다.
“뭐 확실히… 좋긴 좋지.”
중얼거리며 까마득하게 먼 거리에 펼쳐진 바다의 모습을 바라본다. 우리가 현재 묵고 있는 저택은 [하늘섬]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바다까지의 거리가 수백 미터에 달하는 상태.
나는 잠시 바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난간 위로 올라갔다. 위태위태한 자세였지만 세레스티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탓!
가볍게 난간을 박차 아래로 뛰어내린다. 저 먼 바다를 향해 그대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슈우우---
천천히 내려간다. 추락이라 부르기에는 매우 안정적이다. 아주 느린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빠른 것도 아닌, 마치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는 정도의 속도였다.
풍덩!
정신이 확 들 정도의 차가움이 온몸을 덮치는 것을 느끼며 바닷속을 헤엄쳐 다닌다. 대우주에 나와 만난 온갖 초인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최근 들어 내 몸이 개선되고 있음을 느낀다. 딱히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점점 몸에 근육이 붙고 근력이나 체력 등이 좋아지는 것. 인간을 넘어서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인간의 한계에 근접하고 있다. 이 별장에 있는 벤치프레스를 들어봤는데 좀 집중하면 300킬로그램짜리도 들 수 있을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물론 벤치프레스 세계 신기록이 460킬로그램으로 지금 내 수준을 가볍게 뛰어 넘지만, 딱히 더 덩치가 커진 것도 아닌데 이 정도면 엄청난 변화였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이 정도가 한계다.’
내 심장에는 나폴레옹의 아이언 하트의 정수가 깃들어 있고 거듭된 신혈 각성으로 강화된 내 영혼은 초월자들조차 감히 들여다볼 엄두를 못 낼 정도로 강화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육신은 인간에 불과하다.
당연하지만 나 역시 이능을 배워보려고 몇 번이고 시도해 보았다. 원래 이능이라는 것은 평생을 두고 단련해야 할 정도로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학문이지만, 이미 내 몸에 막대한 영력이 깃들어 있으니 단순히 그것을 다루는 요령만 익혀도 어지간한 상급 능력자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가능하다.
나는 마나를 다룰 수 있으면서도 그것을 실질적으로 활용하는 이능을 배울 수 없었다. 나는 마력도, 내공도, 생체력도, 차크라도 깨울 수 없으니, 결과적으로 스스로의 힘으로는 [필멸자의 격]이라는 상태를 벗어날 수 없었다.
‘마치 인간이라는 [상태]가 강제되는 느낌이란 말이지.’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모든 간섭과 공격에 면역이나 다름없는 절대적인 방어력을 지닌 정신과 다르게, 내 육신은 단 한 발의 총알에도 꿰뚫릴 정도로 나약함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 목숨을 지켜준다는 하와의 약속이 없었다면, 어쩌면 나는 저격의 공포 때문에 결혼식을 제대로 치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푸확!
어느 정도 헤엄을 치다 한 지점에 이르자 하늘로 솟구치는 물살이 내 몸을 휘감더니 하늘로 날아오른다. 처음에는 혼비백산했던 현상이었지만, 이제는 제법 익숙해져 능숙하게 그것을 타고 하늘섬까지 날아오를 수 있었다.
탁.
마치 마술처럼 처음 뛰어내렸던 난간 위로 올라선다. 내 뒤로는 하늘로 솟구쳐 오른 물줄기가 그대로 유턴해 바다로 쏟아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 중력폭포라는 거 꽤 재미있단 말이야.”
“수성의 명물 중 하나야. 엄청난 에너지 낭비의 산물이지.”
수성(水星)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바다로 가득한 행성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원래 수성에 바다 따위는 없다. 태양과 가장 가까운데다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대기 상태 때문에 바다가 생길 만한 환경이 조성될 수도 없었을 뿐더러, 태양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무자비한 열기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밤에는 영하 170도까지 내려갔다가 낮에는 400도를 넘나드는 극한의 환경이 지배하는 곳.
그러나 3문명에 들어선 레온하르트 제국은 수성에 특수한 성질의 대기를 만들어 수성에 쏟아지는 모든 태양열을 흡수하게 만들고 그렇게 모인 태양열을을 에너지로 만들어 수성 곳곳에서 사용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수성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바다를 만들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하늘섬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룩한 자가 바로 레온하르트 제국의 초대 황제였다.
“초대 황제 폐하께서는 수성의 풍경을 매우 좋아하셨다고 해. 그래서 신들의 저주로 죽어 가실 때 머문 곳도 바로 이곳이었지.”
“…이곳이었지? 수성이었지도 아니고?”
“응. 사실 지금 우리가 묵고 있는 이 건물이 초대 황제 폐하의 별장이거든.”
그녀의 말에 새삼 우리가 머물고 있는 거대한 저택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어쩐지 다른 하늘섬에 비해 크기도 훨씬 크고 건물도 고급스럽다 했더니 초대 황제가 머물던 곳이라 그랬나 보다.
“나름 신경 써준 건물이라는 거군. 좋은데?”
태평한 말에 세레스티아의 입이 다물어진다. 나른하던 그녀의 표정이 석고상처럼 딱딱하다.
“역시 넌… 황제가 되는 거야?”
그녀의 말에 결혼식 때를 떠올린다.
라가 나에게 반응하였을 때.
그리고 그래서 녀석이 왕관이 되어 내 머리 위에 자리 잡았을 때.
바로 그때 모든 것이 변했다. 그곳은 그저 황녀 중 하나의 결혼식이 아니라, 새로운 황제의 즉위식이나 다름없는 자리로 변한 것이다. 황족의 결혼식에 네 명의 공작 중 세 명이나 참석한 것도 정치적으로 어마어마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들었지만, 그런 공작들의 파격적인 행보를 다 지워 버릴 정도로 태양의 왕관이 가지는 파급력은 엄청났다.
“만약 아니라면 어떻게 되는데?”
“…엉망이 되겠지, 공작들이. 귀족들이.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들이 납득하지 않을 거야. 황제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이미 레온하르트 제국 전체가 축제 분위기란 말이야.”
제국(帝國)이라는 단어는 황제가 다스리는 국가. 라는 뜻을 가진다.
황제(皇帝)라는 단어는 제국의 군주, 라는 뜻을 가진다.
바꿔 말하자면 [제국 클래스]라는 명칭 자체에 [황제 클래스]에 대한 갈망이 숨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제국이라면 역시 황제 클래스의 강자가 있어야 한다고 사람들이 생각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요번에 일어날 [예정]이었던 반란 역시, 그 근본적인 이유는 황제 클래스의 존재를 전제로 짜인 제국의 시스템을 정상화하기 위해서이다. 초대 레온하르트 같은 존재가 있다면 당연히 따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더 이상 그 시스템에 순응할 수 없다는 뜻.
‘훨씬 더 발전한 세상인데도 결국 근본원리는 똑같구먼.’
결국 힘이라는 한결같은 귀결에 헛웃음이 나온다. 하긴 어쩔 수 없는 일일 수도 있다. 똑같은 제국 클래스의 세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제대로 된] 황제를 가진 나라와 그러지 못한 나라의 위상은 그야말로 천지차이일 테니까.
일례로 만약 초대 레온하르트 황제가 살아 있었다면, 과연 비인들의 제국인 테케아 연방이 지금처럼 레온하르트 제국에게 시비를 걸 수 있었겠는가?
“현실적이구만.”
“합리적이지. 심지어 너는… 스스로 초대 황제만이 쓸 수 있었던 태양의 왕관을 써버렸어. 명분마저 완벽하니 이미 너를 황제라 부르는 이들마저 생기고 있지.”
아마 세 공작은 자신들의 힘으로 나를 추대하려 했던 모양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다 쓸데없는 일이 되었다. 라가 나에게 온 이상, 나는 그저 [황제가 되겠다]라고 선언하기만 해도 황좌에 앉을 수 있는 [명분]을 갖추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 타이밍에 내가 죽는다면?”
“…너 죽어?”
“아니, 죽은 척을 하게 된다면 말이야.”
내 말에 세레스티아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너는 죽을 수도 있는 몸이지만… 사람들은 너를 황제 클래스로 생각하고 있단 말이야. 우주에 몇 없는 황제 클래스의 존재가 갑자기 나타나서 갑자기 죽는 상황을 사람들이 납득할 것 같아? 당장 조사에 들어갈걸?”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납득할 거야.”
솔직히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문을 연 상태의 [내]가 마련한 대책을 사용해야 할 것 같았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적의 손에 죽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