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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102화 (10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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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8 왕관을 위하여

“나는.”

위이이잉…….

왼손에 차고 있던 쉐도우 스토커가 시계 형태에서 권총의 형태로 변형된다.

자연스럽게 그를 겨누며 말한다.

“너의 죽음이다.”

퍽!

마치 주먹으로 뭔가를 가볍게 친 것 같은 소리가 났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잘 들리지도 않을 그런 소리.

그러나.

“거짓말…….”

그것은 수천 년을 살아온 대신선의 마지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거짓말이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본다. 어느새 그의 상체에는 사람 머리통 하나는 가볍게 들어갈 만 한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철컥!

어떤 문명이 지성을 깨우치고 문명을 꽃피우면 제1문명이 시작된다. 그리고 더 발전해 자신의 행성 전체, 혹은 대부분을 장악하는 정보망과 네트워크를 완성하면 제2문명에 들어서고, 자신이 살고 있던 행성에서 벗어나 다른 항성, 다른 은하로 넘어가는 게 가능해지면 제3문명에 들어서게 된다.

그렇다면 4문명에 들어가는 조건은 무엇일까?

‘3대속성의 제어.’

마법의 신인 카인은 마법학에서의 속성을 12개로 분류했고 다시 그중에서 세 가지를 따로 떼어내 절대속성, 혹은 3대속성이라고 명명했다. 그것은 그것들이 다른 속성보다 명백히 상위에 존재하는, 오직 신들만이 완벽히 다룰 수 있는 특수한 속성이었기 때문이다.

시(時), 공(空), 무(無).

제4문명은 저 세 가지 요소를 실질적으로 활용하는 데 성공하면 들어설 수 있는 영역이다. 과학의 힘으로 공간을 뒤틀고, 과학의 힘으로 시간의 흐름에 간섭하며, 과학의 힘으로 소멸과 창조가 가능해지는 것.

즉 쉐도우 스토커가 4문명의 결정체라고 불린다는 것은… 이 총이 세 개의 절대속성 모두를 제어할 수 있다는 뜻이다.

퍽!

다시금 좌자의 몸이 흔들린다. 처음 첫 탄이 치명타였다면, 두 번째 탄은 사망선고나 다름이 없었는데도 좌자는 그것을 막지 못했다.

심지어 막을 능력이 있었음에도 그렇다.

“너무 많은 무리수를 뒀어. 아무리 그래도 자기방어의 사명까지 잃어버릴 정도까지 설치다니.”

어차피 새 몸으로 갈아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좌자는 도저히 신선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는 자신의 사명을 곡해하여 나와 세레스티아를 비인들의 함선으로 내몰았고, 그 이후에도 몇 번이고 물질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심지어 그중 몇 개는 그의 안전이나 사명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종류의 것.

이는 절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신선들이 그렇게나 사명을 가볍게 여길 수 있었으면 대우주는 벌써 예전에 선인들의 손에 들어갔을 것이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지? 그 총은 뭐냐? 어찌 그런 개인 화기 따위가 천간(天間) 안에서 작동할 수 있는 거지?”

당연한 말이지만 좌자가 무방비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그는 자기가 사명을 무시하고 농락함으로써 생긴 페널티를 알고 있었기에 모든 인과의 흐름에서 벗어나 정지된 시간 속에서만 움직이는, 그리고 그러면서도 외부의 존재를 끌어들일 수 있는 초월경의 술법을 적용했던 것이다.

천간(天間).

그것은 좌자가 자기 방어의 사명마저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해 만들어낸 대안이다. 왜곡된 시간의 틈새에 만들어진 이 기묘한 공간에서는 상대와 대화만 할 수 있을 뿐 그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 물리적인 건 물론이고 마법적인 능력들도, 심지어 권능마저도 전혀 발휘가 안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절대적인 평화 지대란 말이지.’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나는 그의 방비는 물론이고 그 대응법까지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컥!

공이를 당기자 약실이 돌아가며 필요한 효과가 적용된다. 그리고 불신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좌자의 몸을 겨눈다.

그는 도망갈 수도, 막을 수도 없다. 온갖 제약으로 온몸이 꽁꽁 묶인 지금의 그는, [확정]된 자신의 미래를 바꿀 방법이 없었다.

“어이가… 없군. 설마, 설마 내가 이렇.”

퍽!

유언조차 다 마치지 못한 좌자의 몸이 쓰러진다. 물질계에서 신이나 다름없다는 황제클래스의 존재치고는 허망한 결말.

그리고 그렇게 그의 몸이 쓰러지자.

키이이…….

묘한 울림과 함께 정지해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정신 차려라, 셀. 이 녀석이 엄청난 조종사라는 것은 알지만 이건 전혀 별개의 문제야. 탐욕스러운 귀족들이라도, 아니, 오히려 탐욕스러운 귀족들이기에 이런 일을 저지를 이유가 없다는 걸 잊어서 안 돼.”

“알고 있어. 하지만 청원도 피해가지 못한 능력을 아몬 공작이 피할 거라는 생각은 도저히 안 드는걸.”

“…청원에게 통할 정도의 고위 능력이라고?”

어느새 나는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으로 돌아와 있다. 주변에 있는 그 누구도, 심지어 초월자인 로스타나 아몬 공작조차도 아무런 낌새도 느끼지 못했다. 좌자의 시체 또한 시공의 미아가 되어버렸기에, 그의 존재는 긴 시간 동안 행방불명으로 남을 것이다.

‘정말 허무하군.’

중국 후한 말의 도인으로 금단술의 시조가 되었으며 후에 중급 신위를 얻어 대신선의 경지에 올랐던 좌자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긴 시간을 인내해 온 그였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운명의 소용돌이를 완벽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하야, 일단 네가 알 수 있는 걸 간략하게 설명해 줄래?”

그렇게 잠시 멍하니 있는데 세레스티아가 말을 걸었다. 옆에 있는 로스타 역시 나를 해부하기라도 할 것처럼 노려보고 있다.

“그래. 네가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일단 확실하게 알려라. 솔직히 신뢰하기 어렵지만 네가 초월자가 하는 말의 진위마저 읽어낼 힘이 있다면 그것을.”

“시끄럽군.”

“그것을… 뭐라고?”

“떽떽거리지 마라, 노인. 네가 사랑했던 여자의 딸을 아껴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게 나에게 무례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지금… 너. 뭐?”

순간 말문이 막힌 듯 입만 뻥긋뻥긋거린다. 그러나 알 바 아니었기에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나가지. 여기에서는 더 볼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저기, 대하야? 무, 물론 나도 여기 계속 있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상황이.”

“따라와라.”

세레스티아의 손목을 잡고 그대로 잡아끌었다. 그녀는 당황한 듯 어어, 하고 버둥거렸지만 내 손길을 쳐내거나 버티지는 못하고 그대로 끌려왔다.

“엇?”

“아니?”

여기저기에서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단상 위에 있던 아몬 공작의 표정마저 한순간 변했다.

‘왜냐하면 곤란한 타이밍이니까.’

세레스티아도 로스타도 지금은 물러서기 애매한 상황이라고 보았다. 대회의실에 있는 모든 귀족이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인식하였으니 지금 바로 빠져나가는 것은 시선을 끌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에 지금이 유일한 기회다. 시선을 끌고 있기에 녀석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나는 알고 있다. 그 모든 것이 보인다. 황제파의 그 알량한 수작질과 귀족파의 대응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진다.

이렇게나 뻔히 보이고 느껴지는데 거기에 당해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냥 조용히 나가. 돌아보지도 말고 그냥 뭐라 떠들든 안 보인다고 생각하면 돼.”

“하지만 막으면 소용없는 일 아냐?”

“다 무시하고 억지로 나가려고 들면 결국 못 막아. 그건 명분을 잃는 일이고 우리는… 아니, 정확히 너는 그런 리스크를 감수할 정도의 거물이 아냐.”

“…납득이 가면서도 성질이 나는 말인데.”

입술을 뾰죽 내미는 그녀를 끌고 거침없이 나아간다. 주변에서 들리는 웅성거림은 점점 커져 간다.

“세상에. 4황녀가 끌려가고 있군요.”

“옆에 있는 녀석은 뭐죠? 경호원?”

“아뇨 그녀의 남편감이라고 하던데…….”

“설마 그 소문이 사실이란 말인가요? 저런 것과 결혼한다고?”

멋대로들 떠들고 있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거리임에도 별로 상관없는 느낌이다. 분명 세레스티아는 황족이었지만 그럼에도 다른 황족과 귀족들에게 무시받고 있는 것이다.

‘웃기지도 않는군. 황족으로 모시고 있으면서도 차별을 하다니.’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그녀는 어째서 황실에 소속감이 없는가?

어째서 황족인 그녀가 아무런 배경이 없는가?

어째서 그녀는 다른 황족이나 귀족들에 비해 명백한 차별을 받고 있는가?

‘이건… 별로군.’

나는 묻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단지 의문을 품는 것만으로 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신은 알고 있나니(God Knows), 세상 천지에 풀지 못할 의문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우뚝.

발걸음을 멈춘다. 내게 끌려가던 세레스티아도, 얼결에 우리 뒤를 따르고 있던 로스타도 할 말 많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마음에 안 드는군.”

나는 지금 몸을 돌려 나가는 것이 나에게 있어 최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몬 공작은 세레스티아를 이용해 먹고 싶어 하지만 그렇다고 힘들게 소집한 대회의를 망치면서까지 그걸 고집할 생각은 없다. 세레스티아가 바보같이 대회의가 끝날 때까지 여기에 있었다면 남들의 눈이 없는 틈을 타 그녀를 억류할 생각이지만, 또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그냥 포기할 생각도 있었다.

그에게 있어 세레스티아는 딱 그 정도의 존재다.

“마음에 들지 않아.”

“대하야?”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의문을 표하는 세레스티아를 바라본다. 그녀를 보자[觀] 그녀의 인생과 내면이 보인다. 시련을 견뎌내며 힘겹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작은 소녀의 모습이다.

“아마 이 상태가 풀리면 후회하겠지만…….”

나는 웃었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린다.

“대하야?”

대회의실의 중앙부에 위치한 단상으로 걷기 시작한다. 깜짝 놀란 세레스티아가 지금까지와 달리 팔과 다리에 힘을 주었지만.

“어어?”

속절없이 끌려온다. 나는 거침없이 단상을 향해 나아갔다.

“그나저나 4황녀는 정말로 결혼식을 올릴 생각이라고 하오?”

“믿을 수 없지만 전대 황제가 허락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 직후 돌아가셨는데 그게 효력이 있겠… 어어? 저기 봐요, 저것들 되돌아오는데?”

“당연하죠. 대회의 중에 나가는 몰상식한 짓을… 어디 가는 거야?”

아무도 나를 막지 못했다. 그런 [순간]이었다. 단상 근처에 아몬 공작과 그 보좌관을 빼고는 아무도 없는 순간.

“오, 4황녀님. 모두에게 할 말씀이라도 있으신 거요?”

“그게…….”

세레스티아조차도 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혹스러운 표정만을 지을 뿐 제대로 된 말을 하지 못한다. 당연하다. 갑자기 끌려왔는데 여기에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러나 상관없었다.

“아몬 공작, 나를 아나?”

“…네놈! 공작님께 무슨 건방.”

“잠시 진정하게.”

분노하는 보좌관을 만류하며 아몬 공작이 나를 바라본다. 나를 꿰뚫어 보기라도 할 듯 날카로운 시선이다.

“물론 알고 있네. 4황녀가 남편감이라고 데려온 천민이라고 들었지. 시선 끌기용으로 질질 끌려 다니는 장난감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자아가 있는 인간이었던 모양이군.”

나직하면서도 서늘한 목소리로 나를 모욕한다. 그의 눈에서 쏘아지는 위압감은 보통 사람이라면 정신에 크나큰 타격을 받아 정신병을 앓게 되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공격적이다.

“네 판단 따위는 상관없고. 잠깐 사람들에게 내 소개를 하고 싶다.”

“…허허.”

문득 아몬 공작의 눈에 흥미가 깃든다.

“재미있군. 그럼 어디 그래보게나.”

“공작님?!”

뒤에서 씹어 먹을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던 보좌관이 경악해 외치거나 말거나 아몬 공작이 단상에서 내려온다. 당연하지만 그가 그럴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나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지나쳤다.

“야! 지금 너 뭐하는 거야? 왜 이런.”

“기다리고 있어.”

“대하야?”

당황하는 세레스티아의 손을 잠시 놓고 단상에 오른다. 셀 수 없이 많은 시선이 나에게로 날아와 꽂혔다.

시선은 다양하다. 전체적으로 불만이 가득하고, 한심하다는 듯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들이다. 개중에는 의문을 담고 있는 것도 있었지만 짜증을 품는 것도 있었고, 일부는 질투와 시기가 섞여 있기도 했다.

딸깍.

그리고 그런 그들 앞에서 문을 연다.

“관대하다.”

내려다본다. 그들은 저 아래 까마득한 곳에 있다. 그들이 나를 보기 위해서는, 목이 부러져라 고개를 쳐들어야 했다.

“만나서 반갑다.”

시끄럽던 대회의장에 침묵이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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