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머리 위에-95화 (9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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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장 황성으로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달의 크기는 지구의 1/4에 달한다. 사실 지구의 크기에 비해 너무나 큰 위성인 달은 스스로 빛나지는 못해도 태양의 빛을 반사해 지상에 자신의 존재를 선명히 드러내 왔다.

때문에 달은 수많은 사람에게 소망의 대상이 되었으며 온간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시인과 문인들이 달을 소재로 노래했고 연인들은 달을 보며 사랑을 약속했다.

그런데 레온하르트 황제가 태어난 제 13지구에는 달이 없다.

심지어 있다가 없어진 게 아니라 원래부터 없었다고 한다. 100개의 지구는 모두 흡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분명한 차이 역시 있었는데 13지구의 경우에는 달의 존재가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13지구에 황금사자신의 골든 로즈(Golden rose)가 생겨났다.

레온하르트 황실의 황성이기도 한 골든 로즈는 달과 비슷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달보다 훨씬 더 지구에 가깝게 위치해 지면에서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달보다 십수 배 이상 크고 선명한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말하자면 밤중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선명하고 환한 금빛의 장미가 그 존재를 뚜렷하게 과시한다는 뜻.

그렇기에… 지구에서 그 거대한 황금 장미를 올려다보며 자란 이들은 그곳에 경외와 동경을 함께 품으며 성장한다. 레온하르트 제국의 황성에 발을 들이는 건, 지구에서 태어난 거의 대부분의 제국민이 평생 가지는 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그러나.

‘불편해… 불편하다구…….’

온갖 음식들이 화려하게 펼쳐져 있다. 개중에는 산적, 불고기, 초밥, 칠면조 구이, 온갖 전이나 만두처럼 내가 아는 음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듣도 보도 못한, 나로서는 그 종류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희귀한 음식들이다.

‘아, 물론 칭호를 보면 알지만… 으, 이게 아니라.’

현실을 외면하려는 정신을 가다듬는다.

내 앞에 늘어져 있는 진수성찬은 살면서 단 한 번도 마주한 적 없을 정도로 호화스러웠지만 그걸 마주한 나는 절대 식사를 즐길 수가 없다.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이고는 있는데 그렇게 잘라낸 음식들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달그락, 달그락.

넓은 식당에 오직 식기 소리만이 가득하다.

식탁에는 세 남녀가 앉아 있다. 그중 하나는 어울리지 않게 정장을 입고 있는 나였고 또 한 명은 화사한 디자인의 드레스를 입어 눈부시게 빛나는 세레스티아, 그리고 마지막은.

‘제기랄.’

마학과 무학을 초월경까지 단련한 강자.

황금사자신의 신혈을 각성하여 8개의 권능을 일깨운 신족.

현 레온하르트 제국의 황제.

그리고… 나의 장인어른.

‘당연히 이런 상황을 예상했어야 하는데… 나는 저능아인가??’

한탄한다. 환한 금발에 시원시원한 외모를 가진, 세레스티아의 아빠가 아니라 오빠로밖에 안 보이는 사내와 식사를 하는 이 상황 때문이다.

황당하게도 여기에 들어와 식사를 다 끝내가는 지금까지 그와 단 한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못했다. 처음 의자에 앉았을 때 세레스티아가 ‘이 사람이에요’라고 말한 이후 계속해서 이 상황이라서 진수성찬이고 나발이고 다 얹힐 것 같다.

“놀랍군.”

그가 식사를 시작한 지 장장 한 시간(더럽게 느긋하게 먹는다!) 만에 꺼낸 한마디였다.

“그렇죠?”

“그래. 대체… 대체 이런 녀석을 어디서 발견한 거지?”

“34지구에서요. 우연히 관광을 가서 만났죠.”

세레스티아의 말에 황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하. 정말이지… 믿기 힘든 행운이구나.”

“제가 좀 천운을 타고나긴 했죠.”

뻐기는 듯한 세레스티아의 목소리에 뭔가 대화의 방향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냐하면 난 당연히 그가 ‘이 결혼 절대 용납 못해!’라고 고함을 지르고 거기에 맞선 세레스티아가 ‘시끄러워요! 내 인생에 왜 아빠가 참견이에요?!’라고 반항하면 ‘뭐야?!’ 하는 분노와 함께 개판이 펼쳐질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딸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교훈(?)으로 대화가 마무리되고 말이다.

오버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객관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다. 어느 날 자신의 딸이, 그것도 전 우주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절세 미소녀가 웬 듣도 보도 못한 남자를 데려와서 3일 뒤에 결혼하겠다는데 그걸 좋게 받아들일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현 레온하르트 제국의 황제, 앙겔로스 3세는 아무런 감정의 표출 없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름이 관대하라고 했나?”

“아, 네.”

“자신이 품고 있는 신혈의 존재를 알고 있겠지?”

“…어렴풋이는.”

사실 어렴풋이가 아니라 비교적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지만 굳이 그걸 입에 담기는 애매하다.

문명과 정보의 신.

그것은 신계에서도 보기 힘든 초고위 신이다. 개념을 지배하는 신들의 경우 그 개념이 광범위하고 거대할수록 강력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문명]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알 수 있으리라.

‘물론 모든 문명은 아닌 것 같아. 내 친부가 지배하는 개념은… 아무래도 과학문명 쪽이겠지.’

그러나 그 정도만 해도 지나칠 정도의 거물이다. 세레스티아와 황제 역시 언터쳐블의 혈통을 이은 신족들이지만… 상급 신, 그것도 지배하는 [개념]이 없는 짐승신의 혈통과 [문명]이라는 개념을 가진 최상급 신의 혈통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가진다. 괜한 자기 PR로 일을 복잡하게 만들 이유가 없으니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인 것.

그런데 그렇게 입조심하는 나를 향해 앙겔로스 3세가 물었다.

“그렇다면 각성률은 알고 있나?”

“…각성률?”

“모르는 건가… 렉스를 보내줘야겠군.”

뭔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황제를 향해 세레스티아가 말한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관여하지 마세요.”

“알아서 한다고?”

“네. 언제부터 챙겨주셨다고 그래요?”

“…….”

순간 싸늘해지는 분위기에 당황한다. 뭐야, 그냥 무난히 대화하기에 괜찮은 줄 알았는데 역시 사이가 안 좋나?

그러나 이내 황제가 고개를 끄덕인다.

“맞는 말이군. 모두 네 말에 따르겠다.”

“그러면?”

“그래. 나는 이 결혼에.”

순간 황제가 웃었다. 우주에서도 그리 흔치 않은 제국 클레스의 국가를 지배하는 강대한 권력자답지 않은 쓴웃음이었다.

“찬성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나와 세레스티아의 결혼이 확정되었다.

*

황제와의 접견을 끝내고 나와 보람과 동민을 만났다.

“분위기는 어땠어요?”

“숨이 막혔어.”

“반대하던가?”

“차라리 그러면 다행이지… 승낙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앞으로 나서자 보람이 가볍게 손가락을 딱! 딱! 딱! 하고 튕겼고, 그에 따라 주변의 마나가 움직여 내 몸을 훑고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황제를 만나러 가느라 잠시 풀었던 결계를 다시 걸어준 것이다.

“지금 와서 좀 늦은 질문일지 모르지만, 지금도 ‘그녀’가 널 지키고 있나?”

“흠. 여기서 말해도 되나?”

“누가 엿듣는 것에 대한 문제라면 걱정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며 동민이 자신의 손에 들린 금강저를 보였다.

“제석천의 시야가 우리를 비추고 있다. 설사 초월자라고 해도 우리의 대화를 엿들을 수는 없어.”

“…그런 기능도 있었어?”

“원래는 없었지만 그때 이후로 개방되었지.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된 건 최근부터고.”

당연한 말이지만 그때라 하면 내가 금강저를 열었을 때를 말함이다. 친부의 유품이라는 내 열쇠는 모든 봉인과 제약을 해제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뭐, 그렇다면 문제없겠지. 사정이 있어서 내 목숨을 보전해 주기로 약속했어. 아마 한동안은 지속될 거야.”

“역시 그랬군. 그래서 그 장군이 죽은 건가.”

잘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동민의 모습에 신기해한다. 처음에는 사방이 꽉 막힌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혼란한 와중에도 비교적 유연하게 잘 대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구에서는 나름대로 최상급의 전투 능력을 가지고 있던 녀석들이 초월자들을 마구 만났는데도 크게 흔들림이 없단 말이지.’

초월자들의 절대적인 힘 앞에 하위의 능력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은 지구에서 적이 별로 없을 정도로 강대한 힘을 가진 존재들이었지만, 대우주에 나와서는 그저 그런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보람과 동민은 별로 괴로워하거나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심각한 박탈감을 느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인데도 그러니 기묘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마치 다른 초월적인 존재들을 봐오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신기했지만 굳이 그 감정을 내색할 필요는 없었기에 고개를 돌린다.

“그러고 보니 보람이 너는 뭐 없어? 너도 내가 열어줬었잖아.”

“아, 그건 여전히 대기 상태예요. 완전 개방 하지 않았거든요.”

“왜? 동민을 보니 하면 좋은 영향이… 아하.”

의문을 표하려다가 말을 멈춘다. 왜냐하면 동민의 봉인을 풀었을 때 일어났던 현상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부작용 같은 게 있을 수 있겠군.’

열쇠로 제석천의 금강저를 열었을 때 동민은 자신의 무기에 육신을 빼앗겨 폭주했다. 내가 원거리에서 다시 금강저를 잠그는 일을 할 수 없었다면, 아마 그는 우리 전부를 살해하고 죽을 때까지 주변을 박살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내가 다시 봉인을 활성화하면 그만이지만 그녀도 그와 똑같은 부작용을 겪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기다렸어?”

그리고 그때 즈음 세레스티아가 문을 열고 내 옆에 섰다. 어느새 옷을 갈아입은 것인지 아까처럼 화려한 드레스가 아닌 평상복 차림이다.

“이제 어딜 가는 거야?”

“아, 물론 [별빛]으로 가야지.”

“별빛?”

“내 궁(宮)의 이름이야. 원래 이름은 성광궁(星光宮)인데 그냥 별빛이라고 부르지.”

그렇게 말하며 황제를 만났던. [알현실]이라 불리는 건물 앞에 준비되어 있던 차량에 올라탄다. 당연히 운전수가 있을 줄 알았는데 운전대를 잡은 건 세레스티아 본인이었다.

웅-

나직한 울림과 함께 떠오른 반중력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 세레스티아는 능숙하게 차량을 운전해 녹음이 가득한 숲과 수십 개의 건물을 가로질러 수십 킬로미터 이상 이동했다. 말이 좋아 반중력 자동차지 비행선이나 다름없는 물건이라서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거대한 은빛 빌딩에 도착했다.

“여기야?”

“응, 별빛.”

그녀의 대답에 100층… 아니, 적어도 200층은 되어 보이는 까마득한 높이의 빌딩을 쳐다본다.

“아니 이게… 무슨 궁이야? 그냥 고층 빌딩이잖아?”

“상징적인 이름이지 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하며 조종간을 당기자 하늘을 날고 있는 반중력 자동차가 더 높이 날아올라 빌딩 중간에 도착한다. 은빛으로 빛나는 빌딩은 한쪽 외벽을 열어 자동차를 받아들인다.

슈우웅.

부드럽게 자동자를 착륙시킨 세레스티아가 차에서 내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와 일행 역시 그 뒤를 따랐다.

“아, 혹시 보람과 동민을 따로 대기시킬 수 있을까? 한동안 호위를 데려갈 수 없는 자리에 방문해야 해서.”

보람과 동민이 언제나 내 뒤를 따라다닌다는 것을 아는 세레스티아가 조심스럽게 부탁한다. 아무래도 황제를 만날 때처럼 호위가 붙어 있으면 난감한 상황이 종종 있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괜찮나?”

동민이 나에게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쉬고 있어.”

“그러지. 혹 문제가 생기면 바로 부르고.”

이미 언제든 보람과 동민을 불러들일 수 있는 부적을 받아 소지하고 있는 상태다. 물론 이 부적들이 모든 상황에서 발동할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최악의 상황에는 하와가 목숨을 건져 줄 테니 그렇게까지는 위험하지 않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고의 마탑 수호결계반]

[성장기 강보람]

[백두신맥]

[성장기 김동민]

둘 다 상태 타이틀이 이래서 억지로 호위를 시키기도 좀 미묘했다. 뭔가 훈련을 해야 될 시기라고 해야 할까? 언제나 원리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동민조차 호위에서 빠지는 상황에 혹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내 느낌이 정확한 분위기.

나는 내심 투덜거렸다.

‘뭐야, 이것들. 호위하라고 우주로 보낸 거 아니었어? 왠지 해외 유학 느낌이…….’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해외(海外)유학이 아니라 외계(外界)유학이긴 하지만 뭐 어쨌든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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