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머리 위에-93화 (9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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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장 황성으로

“쉐도우 드래곤(Shadow Dragon).”

내 말을 들은 렉스의 표정이 굳는다.

“노블레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힘을 가지고 태어나는 초월종(超越種)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우주를 지배한다고까지 일컬어지는 [연합]을 지탱하는 두 기둥 중 하나인 노블레스는 단체로서든 개체로서든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존재. 하물며 그중 용종이라면 단지 태어나 나이를 먹는 것만으로 초월지경에 오르는 무시무시한 존재들이다.

“당신은 누구죠?”

아무래도 세레스티아 역시 그를 보는 건 처음인 듯 의문을 표한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말에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뿜어내던 그가 고개를 숙였다.

“말을 낮추십시오, 여왕님. 저는 당신의 검. 평소처럼 대해주시면 됩니다.”

“평소처럼 이라니, 그게 무…….”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하려다가 멈칫한다.

“당신의 검? 너 설마……?”

“네. 제2대 별빛기사단장 어둑서니입니다. 지금까지처럼 어둑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아무래도 아는 사이인 모양이었지만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없어 현일을 돌아본다.

“별빛기사단장은 또 뭐예요?”

“뭐긴 뭐야, 별빛기사단의 단장이지.”

성의 없는 답변에 눈살을 찌푸린다.

“무슨 답변을 그렇게… 그럼 별빛기사단은 뭔데요?”

“팬클럽 이름.”

“…….”

뭔가 무력 단체 같은 건 줄 알았다가 기막혀 할 말을 잊는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림자 용, 쉐도우 드래곤이 팬클럽 회장이라고?

‘아니, 이게 무슨 아이돌 팬미팅에 UN 사무총장 찾아오는 소리야!’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막혀하는 건 나뿐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어둑이 네가 노블레스였다고? 내가 팬 싸이트 관리를 노블레스한테 시켰단 말이야?”

“기뻐서 한 일이니 찝찝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하, 오라는 대원들은 안 오고 웬 그림자 용.”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그녀의 모습을 뒤쪽으로 밀려난 렉스가 초조한 얼굴로 보고 있다. 그는 잠시 어둑서니의 눈치를 살피다가 세레스티아를 보며 말했다.

“황녀님… 설마 외세를 끌어들이실 생각입니까?”

아무래도 상당히 위험하게 몰아갈 수 있는 이야기를 꺼내 압박해 보려는 모양이었지만 세레스티아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그냥 팬클럽이 모인 거지 외세는 무슨. 어둑서니.”

“예, 황녀님.”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다시 예를 갖춘다. 명색에 노블레스라는 녀석이 여왕님, 여왕님 떠드는 것도 그렇지만 자신의 팬클럽 회장이 노블레스라는 게 밝혀졌는데 잠깐 놀랐을 뿐 금세 말을 놓아버리는 세레스티아도 보통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 노블레스가 내 근처에 있는 건 좀 위험하지 않나?’

현재 나를 지켜주고 있는 하와는 연합의 대적(大敵)이라 불리는 리전의 수장이고 노블레스는 그 연합의 중심 세력이다.

물론 상급 이상의 신, 언터쳐블은 그 이름 그대로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존재이기에 그녀를 방치한다 해도 잘못은 아니다. 보고하지 않은 것 또한, 상대를 강제할 수 있는 그녀의 힘을 생각했을 때 변명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으니 별다른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놓고 노블레스와 접촉해도 괜찮은 건가?’

그러나 내가 그런 고민을 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세레스티아는 제법 친숙한 태도로 어둑서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혹시 내가 결혼할 거라는 사실을 들었어?”

“예. 여왕님께서 위험하다는 소식을 듣고 날아오다 통합망에 올라온 정보를 접하게 되었죠. 여기 이렇게 많은 이가 모여든 이유는 물론 여왕님의 위험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결혼 소식 때문인 이도 많습니다. 저기에 모인 단원 중에는 테딘 은하 출신도 있지요.”

“…그 먼 데서?”

“예. 결혼 소식을 듣자마자 모든 걸 내팽개치고 왔더군요. 사실 여기 있는 인원도 아직 다 모인 것은 아닙니다.”

차분한 설명에 세레스티아가 어깨를 으쓱인다.

“활동도 고작 1년밖에 안했는데 말이야.”

“그 1년이야말로 저희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지요.”

정중한 어둑서니의 목소리에 세레스티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묻는다.

“반응은 어때?”

“반응 말입니까?”

“그래. 내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팬들의 반응.”

눈을 반짝이는 그녀의 모습에 내심 투덜거린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그녀가 옆에 다가온 이후로는 살기가 직접적으로 쏘아지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래도 그녀에게 먼지만큼의 피해도 주고 싶지 않은 모양이니까.

그러나 불길이란 게 꼭 이쪽으로 덮쳐야만 무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라는 방화벽에 막혀 넘어오지 못하고 있지만, 저 멀리서 활활 타고 있는 살기를 보는 것만으로 기가 질릴 정도인 것.

농담이 아니라 이글이글 끓어오르는 살기 때문에 팬들의 위쪽 공간이 일그러져 보인다.

“좋지 않습니다. 감히 여왕께 어울릴 반려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라.”

“그럼 넌 어때? 내가 결혼할 거라는 사실에 실망감을 느꼈어?”

“물론입니다. 혹시라도 외부의 강압 같은 것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면 그를 죽여 버리겠다고 결심했죠.”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지만 그 내용은 실로 살벌. 그러나 세레스티아는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그를 본 판단은?”

“…제가 오만했습니다. 제가 제 잣대로 함부로 여왕님의 눈을 판단했군요.”

그렇게 말하며 새까만 눈으로 나를 응시한다. 어둠조차 빨아들일 것 같은 그의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나는 그것만으로도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드럽게 잘생겼네.’

나도 그렇게 못난 얼굴은 아니다. 키도 제법 훤칠한 편이고 이목구비도 뚜렷해서 옷만 잘 차려입는다면 충분히 훈남의 영역을 노려볼 수 있는 수준이니까.

그러나… 내 앞에 있는 이 그림자 용은 옷을 잘 차려입는 게 아니라 어디서 주운 넝마 같은 걸 대충 걸쳐도 빛이 나는 외모다. 일반인 중에서 준수한 수준에 불과한 나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흐응~ 그렇단 말이지.”

그리고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는 세레스티아는 그런 그보다도 더 돋보이는 외모의 소유자. 이 빛나듯 아름다워 보이는 선남선녀가 마주하고 있으니 나 같은 오징어는 어디 구석에 박혀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솔직히 척 봐도 이 둘이 커플이지 세상 누가 거기에 나를 가져다 댈 생각을 하겠는가? 아마 그녀와 내가 같이 걸어도 커플로 안 보이고 연예인과 그녀를 보조하는 매니저 정도로 보일 것이다.

와락.

“뭐야?”

그런데 그때 잠시 떨어졌던 세레스티아가 다시 내 팔을 껴안는다. 난데없는 행동에 의문을 표했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고 어둑서니에게 말했다.

“우리를 위로 올려줘.”

“명령대로.”

대답과 동시에 발밑의 그림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우리의 몸이 수십 미터나 치솟았다. 신기한 건 이렇게나 급작스럽게 움직이는데도 몸에 걸리는 부하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아아.”

여전히 내 팔을 껴안고 있는 세레스티아가 가볍게 목을 푼다. 그리고 그러자 그녀의 기운이 주변과 공명하기 시작한다.

[오랜만이야. 왜 이렇게들 몰려왔어?]

마치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은 소리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건 나뿐이 아닌 듯 잠시 침묵을 지키던 팬들이 떠들기 시작한다.

“여왕님을 지키러 왔습니다!”

“여왕님, 보고 싶었어요!”

“군인 같은 거 하지 마요!!”

“진짜 결혼하는 거 아니죠?!”

엄청난 소란이다. 귀가 멍멍해질 정도의 외침에 세레스티아가 답한다.

[마음은 고맙지만.]

거기서 슬쩍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너무 늦었어, 이것들아! 난 이미 위험에서 탈출했거든! 그리고 3일 뒤에 결혼할 거야!]

폭탄선언에 양동이로 물을 끼얹은 것 같은 침묵이 내려앉는다. 잠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시선들이 이내 그녀에게 안겨 있는 나에게로 향한다.

미움받아 본 적이 있는가?

쿠오오오오----

지금 난.

내 인생에 받을 모든 미움을 몰아 받고 있다.

“아니, 이런… 흡!”

심지어 나는 그 상황을 따지지도 못했다. 내 팔을 안고 있던 세레스티아가 가볍게 내 몸을 기울여 버렸기 때문이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내 시야 가득히 그녀의 파란 눈동자가 들어 차 있었다.

‘아.’

홀린 듯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바라본다. 바다 같은 눈동자라는 직유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그녀만큼 그 말이 잘 어울리는 눈동자는 본 적이 없다.

나는 그녀를 밀쳐 내지 못했다. 그녀의 팬들이 가득한 상황에서 그녀를 밀치면 일이 더 커질 거라는 위기감 때문만은 아니다. 입술에 와 닿는 감촉, 내 목을 감고 있는 그녀의 팔, 숨결, 심장 소리. 그 모든 것이 내 움직임을 막았다.

‘한심하군. 그녀가 나에게 마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한시적으로나마 부부가 되었지만 우리는 서로서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게는 연애 감정이라는 것이 없다.

물론 내가 그녀를 보고 흔들린 것을 인정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감정의 교류나 떨림이 아닌, 그저 단순한 발정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녀는 내가 피해야 할 모든 요소를 다 가진 존재야.’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보통 여자가 아니다. 아름답고, 빛나며 무엇보다 야망을 가슴에 품은 이 소녀는 평범한 삶을 살았으며 또 그렇게 살길 원하는 나에게 없는 치열함이라는 게 있었으니까.

그녀가 구체적으로 나에게 털어놓은 적은 없지만, 나는 그것을 너무나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그녀는 나와 함께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계약이야. 명심하자. 선을 넘는 순간 망하는 거야.’

거듭 다짐하며 조심스레 그녀와 떨어진다. 이런 상황은 그녀로서도 흔치 않은지 약간은 상기된 볼이 보인다.

나는 그녀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속삭였다.

“이 바보야, 날 죽일 셈이냐?”

“흐응?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한 거야?”

“어째서라니, 지금 네 팬들이.”

그러나 그 순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멋지다, 여왕!”

“다시 한 번 반하겠어!”

“여왕님---!!”

엄청난 환호성에 귀가 멍멍하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여, 대체.’

도대체 어떤 사고의 흐름으로 여기서 환호성이 터지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설마 세레스티아는 이 반응을 예상하고 일을 벌인 건가?

[어디 가지 말고 기다리다가 결혼식 참석해라!]

이어지는 그 말에 모두가 ‘예 여왕님!’ 하고 복창한다. 모두가 저러니 저들이 이상한 건지 내가 이상한 건지를 모르겠다.

“이것 참.”

어쨌거나 단숨에 변한 상황에 헛웃음 짓는다. 우리를 떠받치고 있던 그림자는 어느새 그 크기를 줄여 우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즐거운가?

그리고 그때.

-행복한가?

[나]에게 말을 거는 존재가 있었다.

끼이이이익---------!

순간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 거슬리는 소리가 세상을 뒤덮었다. 환호하고 있던 세레스티아의 팬들이 당황해 두리번거리기 시작하고 한결같이 차분하던 분위기의 그림자 용 어둑서니조차 놀란 표정을 짓는다.

-즐거운가? 행복한가? 그분의 피를 가지고 인간의 환호성 사이에 있는가?

파란색 하늘이 찢어발겨지고 그 틈 사이로 거대한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상대가 눈동자만으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말이 아니다. 그 틈 사이로 나타난 존재가 너무나 커서, 하늘 가득히 보이는 것이 오직 그의 눈동자뿐이었다.

“이, 이게 뭐야!?”

“막… 크악?!”

“살려줘!”

땅이 한 차례 출렁이더니 온갖 금속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팔이 만들어져 사방을 휩쓸기 시작한다. 우주 곳곳에서 모여든 만큼 광장에 모여 있던 이들 대부분이 강력한 능력자이거나 만만치 않은 개인화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중 누구도 그 거대한 팔을 막아서지 못하고 학살당한다. 환호로 가득하던 광장은 한순간에 피와 시체가 들어 찬 죽음의 공간이 되었다.

쿵!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공터 위로 [무언가]가 내려섰다.

그렇다. 그건 [무언가]라고밖에 표현할 말이 없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허공에 회색 크레파스를 죽죽 그어 그려낸 것처럼, 그 형태를 제대로 묘사할 수 없는 무언가가 우리를, 아니, 정확히는 그들 사이에 있는 나를 직시했다.

“아…….”

엄청난 충격에 신음했다. 그저 마주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흔들리고 정신이 아찔하다. 틀림없이 나는 모든 정신계 간섭에 면역일 텐데도, 그를 보는 순간 온갖 공포가 떠올라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미움 받아 본 적 있는가?

-드디어 만났군.

온 세상의 미움과 증오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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