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머리 위에-92화 (9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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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장 황성으로

미움받아 본 적이 있는가?

사실 알고는 있었다. 자신이 열광하는 연예인이 결혼한다는데 팬들이 그걸 반기는 경우가 그리 흔할 리는 없으니까. 그 둘이 정말 누구라도 인정할 수 없는 이상적인 커플이거나. 혹은 그 연예인이 이미 나이가 많아서 ‘맞아 우리 언니 이미 너무 늦었지’라든가, ‘오빠 홀아비 냄새 나요!’ 뭐 이런 말이 나오는 상황이 아닌 이상 반드시 거기에 반발하는 분위기가 되는 게 정상인 것이다.

지구의 아이돌끼리 연애설만 터져도 그 팬들이 들불처럼 들고 일어나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테러를 가하고 악플을 다는 일이 벌어진다. 과거 검증은 기본이고 소속사에 항의할 정도로 격하게 반응한다.

하물며 세레스티아는 젊고 생기발랄한 미모의 우주 아이돌.

팬들이 어떤 심정일지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무서워요…….”

“피부가 따갑군… 우주선에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야.”

알바트로스함에는 물론 세레스티아의 팬이 많았다. 자국의 황녀가 우주 아이돌이라는 칭호가 붙을 정도로 전 우주에 이름을 퍼뜨렸으니 그 국민들이 그녀의 팬이 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일 테니까. 그녀의 별칭이라고 할 수 있는 [별빛의 여왕]은 일종의 상징이나 마찬가지라 다른 연예인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욕일 정도로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알바트로스함의 승무원 전부가 그녀의 광팬인 것은 아니다. 음악에 별 관심이 없는 이들도 있고 아이돌 같은 걸 싫어하는 이도 있다. 혹은 좋아하긴 하는데 그리 몰입하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알바트로스함에서 나는 모두의 목숨을 구한 영웅이었다. 선내에 타고 있던 대부분의 승무원이 알게 모르게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녀와의 결혼 결정을 발표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도 별다른 고생을 하지 않았다. 좀 신경 쓰이는 수준. 딱 그 정도의 시선만을 경험한 것.

그러나… 전 우주에서 거르고 걸러진, 오직 그녀를 보겠다는 목적 하나로 머나먼 우주를 가로지른 세레스티아의 팬들에게 있어 나는 누구인가?

듣도 보도 못한 잡것.

그렇다. 그 듣도 보도 못한 잡것이 그들의 여왕을 차지했다.

쩌억-!

시야가 일그러진다. 알바트로스함의 드워프 소녀, 권혜란을 갈궈서 다시 받아낸 안경 형태의 마도병기 우자트가 깨지며 난 소리다.

“으아… 살기 때문에 안경에 금이 갔어요.”

“유형화된 살기도 아니고 그저 순수한 살기일 뿐인데.”

“과연 대우주. 빠돌이 수준이 지구와 차원이 다르네요.”

태연한 표정과 목소리였지만 보람도 동민도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다. 그리고 그러다 문득 나를 보고 묻는다.

“그나저나 선배 괜찮아요?”

“뭐가?”

“‘뭐가?’라니요. 당연히 살기죠. 공격 행위를 할 생각은 없는지 기파를 싣거나 하지도 않았는데 안경이 깨질 정도라고요.”

“그러고 보면 지나칠 정도로 멀쩡하군. 나는 살기의 여파만으로 손이 떨리는데… 생각보다 의연한 성격이었어.”

“이게 성격 정도로 해결될 문제예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수군거리는 둘의 목소리를 들으며 주변을 둘러본다. 농담이 아니라 당장에라도 나를 찢어 죽이고 싶어 하는 것이 완연히 느껴지는 시선이 폭풍우처럼 주변에 휘몰아치고 있다. 분노, 질투, 짜증, 원망이 가득한 시선들.

‘하지만 버틸 만하다는 게 문제야.’

나는 내 정신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모든 간섭에 면역이다. 나를 납치한 비인들은 약물까지 쓰고도 내 정신에 간섭하는 데 실패했고 초월자의 눈까지 속일 수 있었던 신성의 파편조차 내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무언가를 보거나 느낀 후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면 그건 [나 스스로]가 절망감이나 위압감을 느껴서 그런 것이지 내 정신 자체가 상대방에게 제압당해서가 아니라고 확언할 수 있을 정도로 내 정신 방벽은 완벽하다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단단히 마음먹고 나온 상황에서는 그 어떤 압박도 나에게 소용이 없다. 하물며 순수한 시선만으로 몰아치는 살기 정도는 간지럽지도 않은 수준. 나에게 피해를 주려면 달려와서 주먹으로 때려야지 고작 노려보는 걸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쩌저적!!

“아, 나…….”

이제는 완전히 부서져 시야까지 가려 버리는 우자트를 그냥 벗어버렸다.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기능 때문에 더 민감한 건가? 하고 의아해하고 있을 때였다.

탁!

분위기가 돌변한다. 해일처럼 몰아치고 있던 살기의 파도가 마치 모세를 만나 갈라지는 것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진다. 살기에 고통 받지는 않아도 그 존재 자체는 감지할 수 있었기에 그 과정을 너무나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무슨 난장판이야? 괜찮아?”

세레스티아가 내 오른팔을 안아 들자 그녀의 슬림한 몸매가 의심이 갈 정도로 풍만한 감촉이 상박에 와 닿는다. 심지어 그녀는 그냥 나에게 말을 건 것이 아니라, 그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밀착해 내 귓가에 속삭였다.

쿠오오오오오----!!

살기가 휘몰아친다!!

“야… 왜 쓸데없이 자극하고 그래.”

“어머, 결혼을 약속한 연인을 살짝 안은 게 무슨 자극이야?”

답지 않게 예쁜 척을 하며 더욱 찰싹 들러붙는다. 나도 인간이고 또 남자인지라 솔직히 싫지는 않았는데… 문제는 그걸 수천 명의 팬이 실시간으로 목도하며 살기를 피워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 참. 이렇게나 다양한 종류의 외계인들에게 미움받는 날이 올 줄이야.’

거대한 광장에 모인 팬 중 인간은 약 30~40%에 불과하다. 바꿔 말하자면, 세레스티아의 팬 중 절반이 넘는 숫자가 인외의 존재라는 뜻.

사실 이건 상상하지 못한 경우다.

전 우주에 존재하는 지성체의 70%가 인간형이라는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단지 확률의 문제였다면 그냥 가까운 은하에 존재하는 외계인들이 대부분 인간 형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여기 모인 이들은 랜덤한 조건에 따라 모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세레스티아에게 열광하는, 일종의 팬클럽 같은 게 아닌가?

‘어째서… 인간 미소녀인 세레스티아의 팬 중 인간의 비율이 이리 낮은 거지?’

비인들을 이끌던 대주술사 모르네는 세레스티아와 결혼하라는 청원의 협박에 진심으로 혐오감을 보였다. 세레스티아는 빛나는 외모의 소유자이지만, 그런 미모 따위 심미안 자체가 다른 상대에게 먼지만큼의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최고의 미모를 가진 하마 암컷을 인간이 성적인 대상으로 볼 리 만무하듯 그 역시 세레스티아를 전혀 성적인 대상으로 보지 않았던 것.

그런데 지금 분위기를 보니 그때와는 상황이 달라 보인다.

‘설마 세레스티아의 미모가 어느 정도 통용되는 종족들이 있는 건가? 종이 달라도 인간이 고양이를 귀여워 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의문을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잠깐-! 잠시만요-!”

팬클럽(?) 사이에서 웅성웅성 소란이 일더니 그들을 헤치고 한 무리의 인파가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턱시도를 입은 금발의 사내가 이끌고 있는 그들은 전원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황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황녀님. 꼭 3년 만이군요.”

“그러게. 오랜 만이야, 렉스. 그래도 오늘은 말을 높여주는구나.”

“하, 하하. 무, 무슨 말씀을…….”

전체적으로 미끈미끈한 인상의 미남이 입술 끝을 파르르 떨며 고개를 숙인다. 아무래도 그는 수없이 많은 외계인(그것도 그녀의 열렬한 팬들)에게 둘러싸여 세레스티아를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몹시 불편한 모양이었다.

“누구야?”

“시종장이야. 황실의 대소사를 관리하지.”

“렉스 발렌타인 백작이요.”

세레스티아와 대화를 나눌 때와는 사뭇 다른 톤의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한다. 세레스티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예의를 지켜, 렉스. 그는 내 남편감이야.”

“아직 결정된 일은 아닙니다.”

“결정된 일이 아니다? 지금 이 문제를 나 말고 결정할 사람도 있나?”

“황녀님… 그건 이런 곳에서 꺼낼 화제가 아닙니다.”

“아니면? 아무도 못 보는 밀실에서 겁박당하며 꺼낼 화제인가?”

“그건.”

렉스는 전체적으로 띠꺼운 세레스티아의 태도에 쩔쩔맸다. 뒷배가 없는 세레스티아는 레온하르트 황실에서 그리 대접받는 위치가 아니지만… 미치지 않은 이상 그녀의 팬클럽 한 가운데에서 그녀를 겁박할 수는 없다. [별빛의 여왕]이 레온하르트 황실에게 핍박받고 있다는 것을 전 우주에 소문 낼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니, 그걸 떠나서… 애초에 어떻게 이런 구도가 마련된 거지?’

온 우주에서 그녀의 팬들이 모였다고 해도 그들을 전부 황실에 내려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지금 분위기를 보니 오히려 그들은 여기 모여든 팬들을 불편해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들이 세레스티아를 만나는 상황을 막는 게 오히려 정상적인 상황,

그러나 황실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이 경우에는 그러지 못했다, 라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겠지.’

레온하르트 황실에서도 원로 대우를 받는 볼티몬조차 세레스티아의 광팬이었을 정도니 분명 황실 내부에 그녀의 팬이 더 존재할 것이다. 하물며 국민들은? 세레스티아는 레온하르트 제국을 넘어 전 우주에 이름을 떨친 대스타니 그녀를 자랑스러워하는 이들이 많은 게 당연하다.

대충 상황이 파악되기 시작한다.

한국에는 독보적인 클래스를 가진, 그러니까 자국 내에서 [국민 MC]나 [국민 여동생]. 혹은 [월드 스타]같은 호칭을 공인받은 연예인들이 있다.

당연하지만 이들은 아무런 권력이 없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들은 그냥 돈 좀 많고 유명한 일반인이나 불과하다.

그러나 만약… 정부에서 그들을 불합리한 이유로 탄압한다면 어떻게 될까? 절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그, 혹은 그녀를 파멸로 몰아간다면?

하물며 세레스티아는 레온하르트 제국 내에서 저 세 명을 다 합친 것이나 다름없는, 거기에 [황녀]라는 혈통까지 지닌 완전체.

그리고 무엇보다.

‘우주에서 모여들었다는 이 팬들… 심상치가 않다. 이건 힘으로 강압해서 쫒아낼 수 있는 수준이 아냐.’

다른 황족과 그들을 지원하고 있는 귀족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격이다. 그 누구도 갑자기 그녀에게 이런 지지 세력이 생길 거라고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어, 어쨌든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서 하겠습니다.”

“싫은데?”

세레스티아는 장난스럽게 대꾸했지만 렉스는 못 들은 척 자신을 따라온 금빛 갑주의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황녀님을 모셔라!”

“예!”

십여 명의 기사가 동시에 대답하고는 세레스티아를 향해 다가온다. 그러나 그들의 앞을 천현일 소장이 막아선다.

“이런, 이런. 납치야?”

“…당신은 황실의 행사에 간섭할 수 없소, 천현일 소장. 황실과의 계약을 위반할 생각이오?”

“물론 그럴 수는 없지. 나는 그녀와 매우매우 깊은 친분을 가진 사이지만 내 모든 걸 다 바칠 정도는 아니거든.”

현일의 대답에 렉스의 표정이 밝아진다.

“그렇다면.”

“하지만.”

피식, 웃으며 현일이 턱짓으로 그의 뒤를 가리켰다.

“과연 저 녀석도 그럴까?”

저벅.

한 걸음 내디딘다. 나는 보지 못했음에도 그 장면을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너무나 강대한 존재감이 약간은 어수선하던 주변 분위기를 단숨에 짓눌러 정적이 찾아오게 만들었다.

“착각이겠지만.”

묵직한 목소리로 검은 머리칼의 사나이가 말한다.

“지금 마치 여왕님을 끌고 가려는 것처럼 보이는군.”

그는 훤칠한 키에 검은 장발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미남자였는데 그 분위기가 매우 진중하고 무겁다. 검은 머리칼은 마치 흐릿한 햇빛 아래의 음영(陰影)처럼 일렁이고 그 어둠 너머로 언뜻 언뜻 수없이 많은 별과 은하의 모습이 비친다.

그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인간이 아니었다. 나는 그의 인간형 너머로 그의 진실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용(龍).

나는 그 안에 내재된 거대한 그림자를 발견하고 그 이름을 읊조렸다.

“쉐도우 드래곤(Shadow Dragon).”

내 말을 들은 렉스의 표정이 굳는다.

“노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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