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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6 장미 꽃다발
피 묻은 금색 권총을 든 세레스티아가 사과한다.
“아, 미안미안. 이 영감탱이가 좀 또라이라.”
“…….”
어이가 없어 입만 뻥긋거린다. 아니 이 무슨 노인공격이란 말인가?
‘아니 그걸 떠나서 초월자가 총으로 후려치는 걸 그냥 맞아? 심지어 쓰러진다고?’
하위 문명에서는 신이나 다름없다는 초월자의 명성에 비하면 기괴하기까지 한 모습에 당황하고 있는데 쓰러져 있던 양 뿔 노인이 벌떡 일어난다.
“허허허. 못볼 꼴을 보였네. 이것 참, 나이도 많이 먹고 자제를 못 하는군. 여왕님께도 정말 송구스럽습니다.”
“송구스러울 짓은 애초에 하지를 말아, 멍청아. 그리고 여왕이라고 부르지 말랬지? 차라리 황녀라고 부르든가. 여기가 무슨 음악 프로야?”
“허허, 설령 무대가 아니더라도 여왕은 여왕이지요. 어쨌든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다시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가 사람 좋게 웃는다. 세레스티아의 권총에 얻어맞았던 뒤통수는 어느새 상처 하나 없다.
[우로보로스]
[영혼 조각사 볼티몬]
‘영혼 조각사?’
영문을 알 수 없는 칭호에 의아해하다가 이내 분류를 시작한다. 어차피 저런 뜬금없는 단어의 나열로는 알아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정보를 확인하는 것. 그리고 [능력] 카테고리로 분류해 낸 그의 칭호는 이렇다.
[우로보로스]
[생산계 초월자 볼티몬]
‘오호. 이게 그 소문으로만 듣던…….’
세상에는 다양한 이능이 존재하며 초월경에 이르는 수단이 꼭 전투적인 종류일 필요는 없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아레스만 해도 캔딜러 성인 중에 존재하는 생산계 초월자들이 만든 것이고(심지어 [교수]라 불렸던 존재는 중급 신위를 가진 것으로 보였다), 테라급 이상의 전함 등의 초월병기를 만들 때에도 생산계 초월자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었으니까.
‘아, 그리고 그래서 세레스티아에게 얻어맞는 게 가능한 건가.’
전투계열 초월자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평생 전투에 몸을 던지며 스스로를 단련하는 그들은 본능의 레벨에서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모든 공격을 방어해 내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러 맞아줄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나를 본 그는 실제로 눈이 뒤집어진 상태였으니까.
“무슨 생각 해요?”
“저런 녀석이 많으면 언제 비명횡사할지 모른다는 생각?”
“흠. 거기에는 나도 동감이다. 저 우주 아이돌이라는 여자가 유명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팬 층에 초월자가 있을 정도일 줄이야.”
“대우주 정말 못 해먹겠어요.”
“맞다. 무슨 초월자가 이렇게 많은지…….”
그렇게 우리가 서로 수군수군하는 사이 세레스티아가 몸을 돌려 양 뿔 머리의 노인, 볼티몬을 소개했다.
“뭐, 첫 만남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서로 인사해. 대우주 최고의 학문 기관인 우로보로스(Ouroboros)의 볼티몬 박사야. 영혼학 전문가고 현재 레온하르트 제국의 전투기술부에서 일하고 있어. 생산계열의 초월자지.”
칭호를 봐서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내색할 수 없는 주제였기에 질문한다.
“생산계열 초월자?”
“그래. 이렇게 보여도 우주적인 인재야. 생산계 초월자는 초월자 중에서도 희귀하거든.”
“허허. 이렇게 보여도라니 너무하시는구려.”
“시끄러, 양 대가리야.”
“으으… 더, 더 해주시오. 더 가열한, 더 경멸스러운 어조로…….”
“…….”
그 당돌한 세레스티아조차도 질린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볼티몬이 헛 하고 정신을 차린다.
“험험. 죄송하게 되었구려. 마족의 피 때문에.”
마족은 어둠의 마나로 이루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네거티브하고 마이너스한 감정에 노출되었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
즉 그들은 사랑받을 때보다 미움 받을 때 행복하며 존경의 대상이 될 때보다 공포의 대상이 되었을 때, 혹은 경멸의 대상이 되었을 때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상대를 보았을 때에 그들이 느끼는 감각은 인간이 느끼는 절정의 쾌감과 맞먹는다고 할 정도.
때문에 다른 생명체와 마주한 그들은 그들에게서 미움 받고 경멸받을 행동만 골라서 하게 되며 거기에 더해 어떻게 하면 그에게 더 큰 고통과 괴로움을 줄 수 있을까 궁리해 왔다. ‘다수와 만난 마족은 학살을 시작하고 소수와 만난 마족은 고문을 시작한다’는 격언이 생겨난 것이 바로 그들의 그러한 특성 때문이니 물질계의 존재들이 마족이라면 치를 떠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비록 지금 볼티몬이 마조히스트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고 하나… 사실 마족의 피를 이은 것 치고 이 정도면 굉장히 양호한 편.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세레스티아는 이내 한숨 쉬며 화제를 돌렸다.
“됐고… 온 목적은 완료했어?”
“틀은 떴는데 그 이상 진행을 못하고 있소. 이제 뭐 남은 것도 없을 텐데 생각보다 완강하게 버티는구려.”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려 터벅터벅 걷는다. 나는 그 뒤를 따라 걷는 세레스티아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모르네를 심문 중이거든.”
“모르네? 살아 있었어?”
“천현일 소장이 빈사상태인 걸 잡아 왔어. 대천공을 포획한 것도 그렇고… 엄청난 공이지. 엘리언 그 망할 놈 때문에 라이징 스톰하고 싸우지만 않았으면 개선장군처럼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거기까지 말한 세레스티아가 잠시 고민하다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엘리언은 어떻게 된 거야? 진짜 도망갔어?”
“그야 나도 모르지. 어느새 보니 골드리안에 생명 반응이 없던 상태라.”
그렇게 말하면서 세레스티아의 눈을 슬쩍 바라본다. 나를 똑바로 직시하는 푸른색의 눈동자. 그녀는 나를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고마워.”
“고맙긴.”
태연히 답하면서도 내심 한숨 쉬었다.
‘눈치챘군.’
고맙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아무래도 그녀는 내가 그녀를 위해 손을 더럽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니까.
‘어디 그녀뿐일까.’
나는 6황자 엘리언의 행방불명 때문에 앞으로 더 잡음이 있으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지금 그녀가 그렇듯 내가 그를 죽였다는 사실을 짐작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증거는 없다.
단 한순간이었지만 나는 상급신에 가까운 권능을 가지고 있었고 동급의 존재가 아닌 이상 그때의 정보를 읽어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골드리안의 메모리를 뒤지거나 사이코메트리 같은 능력을 사용한다 해도 제대로 된 정보를 얻어낼 수는 없겠지.
하지만 황족의 죽음이란 증거가 없다고 그냥 넘어갈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6황자와 마지막에 싸운 상대는 나였고 그 다음 그가 행방불명되었다면 그 용의자는 당연히 내가 될 것이다. 그가 레온하르트 제국군을 사사로이 이용해 같은 황족을 먼저 공격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입증되지 않았다면 정신을 잃은 직후 구금당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큭! 루이첼! 리스! 일레느!”
그런데 그때 앞서 걷고 있던 볼티몬으로부터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놀라서 바라보니 아까처럼 두 눈을 크게 떠 육망성과 불꽃의 문양이 그려진 눈동자를 드러낸 그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자신의 품(品)자 형태로 감싸고 있는 세 여인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다. 그녀들은 하나하나가 절대 만만치 않은 절대적인 기운을 품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들에게 보호받고 있는 볼티몬은 절대 안심한 표정이 아니다.
볼티몬이 발작하듯 소리친다.
“이, 이, 이브……!”
드넓은 대우주에서도 상급 신위를 가진 존재는 자연재해나 다름없다. 하위문명에서는 신으로 추앙되기까지 하는 존재가 초월자라면, 상급 신위는 그냥 신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힘을 가진 것이다.
“그래요, 볼티몬. 오랜만이네요.”
“다, 당신이 어찌 여기에 있는 거요!? 상위 신격을 가진 당신이 이렇게 함부로 물질계에 간섭하는 건!”
버럭 소리 지르며 마력을 발하는 그의 모습에 단아한 외모의 흑발 소녀, 하와가 웃었다.
“간섭하는 건? 안 되나요?”
“물론… 아니오.”
뭔가 억눌린 것 같은 목소리로 엉뚱한 소리를 한다. 뒤에서 지켜보는 나로서는 ‘이 영감탱이가 뭐라는 거야’ 하는 심정이었지만 이해 못할 상황은 아니다.
‘완전 깡패구만, 깡패.’
중급 신위를 가지고 있던 청원의 경우에는 사명에라도 묶여 있었는데 그녀에게는 그런 것조차 없는 상황. 나는 어이가 없어서 세레스티아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대놓고 이 배에 타고 있는데 새로 찾아온 볼티몬이 전혀 모르는 기색이었기 때문이다.
“뭐야. 이 녀석에 대해서는 본성에 연락 안 했어?”
“못 했어.”
“…왜?”
내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하와가 그 이유를 보여주었다.
“볼티몬.”
“왜, 그러시… 아니, 네.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볼티몬을 향해 하와가 말한다.
명령이다.
“나에 대한 모든 정보를 그 어떤 방식으로도 퍼뜨리지 마라.”
“…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모든 것은 끝. 하와는 싱긋 웃으며 우리를 돌아보았다.
“깨어나셨군요. 꽤 기다렸어요.”
“하하, 뭘 굳이…….”
과거 이름을 찾지 못했을 때와 달리 싱그럽기까지 한 분위기를 풍기는 하와였지만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명령권을 썼다고? 그것도 기계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반마족에게?’
무시무시한 일이다. 쉽게 말해 그녀는 상대방의 종족이나 의사에 상관없이 뭐든 명령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것은 누구라도 지배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게 가능한 힘. 황망해 고개를 슬쩍 돌려보자 세레스티아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능신언(全能神言)이야. 그녀의 말 자체에 힘이 실려 있어서 자격되지 않는 자는 저항할 수 없지. 지금은 사소하게 사용했지만… 그녀의 말은 자연계의 법칙조차도 뒤틀 수 있어.”
“돌겠군.”
터무니없는 능력에 기막혀하는데 하와가 어깨를 으쓱인다.
“시끄러워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니 염려하실 필요 없어요. 저도 받은 경고가 많아서 몸을 사리는 중이거든요.”
그녀 역시 제약이 없지는 않은 듯 우는 소리를 했지만 믿을 수가 없다. 뭐만 하려고 하면 사명의 제약에 걸리던 청원과 다르게 그녀는 말 그대로 모든 걸 맘대로 하고 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흠. 어쨌든… 여기는 어쩐 일이죠?”
“아, 별건 아니고 저 녀석한테도 보안 서약을 좀. 그러고 보니 대하 님에게도 말씀드려야겠군요.”
그렇게 말하며 슥 하고 다가온다. 순간적으로 뒷걸음이 치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소용없는 짓이지. 뒷걸음을 한 100만 광년 칠 거 아니면.’
어차피 도망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오히려 당당하게 귀를 내밀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서는 살기가 없는 상황.
그리고 그런 나에게 그녀가 속삭였다.
“그 열쇠, 쓰지 마세요.”
“…싫다면?”
반항해 보았다. 왜냐하면 내 목에 걸려 있는 열쇠는 위기의 상황에서 날 몇 번이나 구해준 비장의 무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거절을 하는 순간 어떤 영상이 떠오른다.
웅-!
그것은 지구다. 내가 살고 있던 고향 행성.
“알아보니 34지구 출신이더군요. 바꿔 말하면 34태양계 출신이라고 할 수 있죠.”
“그, 그래서?”
“지금부터 그 열쇠, 단 한번이라도 쓰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머릿속의 영상이 진행된다. 시점이 지구를 넘어 우주로 넓어져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태양계를 비춘다.
“그 34태양계를 요~ 렇게 접어서.”
공간이 갈라지고 거대한 강철의 손이 나타나더니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거머쥔다.
“이~ 렇게 뭉쳐서.”
강철의 주먹이 쥐어지자 모든 것이 압착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구 역시 거기에 포함이다.
“당신 머리통만 하게 압축시켜 버릴 거예요.”
모든 것이 뭉쳐진다. 아마 그렇게 된다면 지구에 있는 존재들은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사멸할 것이다.
“대하야?”
내가 창백하게 굳어서 아무 말 못하자 세레스티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무래도 그녀의 말은 나에게만 들린 모양이다.
하와가 말했다.
“당신은 알 수 있죠? 내 말이 진짜라는 걸?”
그녀의 말대로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나에게 보여준 그 이미지를 실제로 할 수 있는 힘이 있었고… 무엇보다 지금 이 말은 농담이 아닌 진심이었다.
“…이런 미친.”
헛웃음만 나온다. 과연 지구인들은 지금 자기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걸 알고나 있을까?